업력 60년 이상 된 노포(老鋪)들도 코로나19의 여파는 피해 가지 못했다.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노포들이 모여 있는 을지로 일대 식당들 중에서도 매출 하락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업력 60년 이상 된 노포(老鋪)들도 코로나19의 여파는 피해 가지 못했다.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노포들이 모여 있는 을지로 일대 식당들 중에서도 매출 하락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1950년대 후반부터 장사를 해온 서울 을지로3가의 돼지갈비집 ‘안성집’은 지난해 6월 30일 문을 닫았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 문에는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짤막한 문구가 A4용지에 붙어 있었다. 60년 역사를 지닌 가게의 폐업치고는 초라한 퇴장이었다.

안성집은 인근 을지면옥, 양미옥과 함께 을지로의 대표적 노포(老鋪)로 꼽혀온 곳이지만,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은 것이다. 이곳은 저녁엔 돼지갈비, 점심엔 육개장 위주로 장사를 해온 곳으로 노회찬 전 의원을 비롯해 정계인사들도 즐겨 찾던 곳이었다. 여든이 넘은 여사장 최전분씨가 10대 시절부터 장사를 시작해 아들이 가업을 이어온 전형적인 노포다.

안성집 인근의 한 찌개집 사장은 “돼지갈비집이 저녁 장사가 안되는데 버틸 수가 있었겠느냐”면서 “장사를 이어가려면 결국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안성집은 일찍이 포기하고 나간 것”이라고 했다. 이 사장은 “일하시는 분들이 나이도 들었고, 오래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포기가 빨라진 것”이라며 “이제 이 인근 노포들은 하나둘씩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인해 포기가 빨라진 것”

서울시가 추진하는 세운상가 일대 재정비 계획에 따라 을지로 뒷골목 노포들과 공구상은 결국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이 일대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최대 올해 연말까지 을지로에 남아 영업할 수 있지만 어차피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 거라 판단한 가게들은 서둘러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안성집 인근의 찌개집 역시 을지로 뒷골목에서 30년 넘게 장사해온 곳이지만 올해 여름에는 가게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들러본 가게 안에는 저녁 9시 영업제한 시간 전까지 빠르게 한잔하려 모인 사람들로 붐벼 보였지만, 사장은 “우리처럼 세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은 월세도 감당하기가 어렵다.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는데…. 이렇게 해선 더 버틸 수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울의 ‘5대 평양냉면’으로 불리는 을지면옥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2월 2일 저녁 을지면옥 1층에는 5팀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후 5시부터 을지면옥의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가게 앞 통로까지 사람들의 줄이 이어지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양미옥, 통일집, 갯마을횟집, 노가리 골목 등 인근 식당도 손님이 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좁고 어두운 을지로 뒷골목에는 음습한 기운까지 돌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까지 을지로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 노포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거리 한가운데 테이블을 깔고 먹는 ‘노맥(노가리+맥주)’집들이 인기를 얻어 한국 젊은층뿐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들까지 모여들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서울시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근·현대 문화유산 중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골라 지정하는 ‘서울미래유산’에 등록된 곳으로, 여름철이면 길을 지나다니기 힘들 만큼 맥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곳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을지로는 최신 유행에 밝다는 뜻의 ‘힙(hip)’과 합쳐져 ‘힙지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이어져온 코로나19로 인해 을지로를 비롯해 업력이 최소 30년 넘은 전국의 노포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식당들의 매출이 급감했지만, 노포의 경우 좁은 실내와 배달·포장 서비스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을지로 일대 노포들이 존폐 기로에 놓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월 서울시가 ‘세운상가재정비촉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을지로 일대 노포와 공구상가가 헐린 뒤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노포와 공구상들이 강제 철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에 노포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자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 역사와 시민의 삶을 담고 있는 유·무형의 생활유산은 철거하지 않고 ‘보존’을 원칙으로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세운3구역 내 생활유산으로 지정된 을지면옥, 양미옥 등은 강제로 철거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서울시는 세운지구 내 정비구역 해제 지역에 대해 ‘도시재생’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이때의 강제 철거 위기도 피해간 노포들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자진 폐업’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과 손잡으며 생존 모색

서울 명동의 대표적 한식당으로 알려진 ‘전주중앙회관’ 역시 지난해 7월 영업을 종료했다. 50년 전통으로 비빔밥을 판매해오던 전주중앙회관은 외국인 관광객이 손님의 70% 이상을 차지해 왔는데, 코로나19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영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명동 전주중앙회관 역시 ‘서울미래유산’으로도 등록됐으나, 폐점으로 등록이 해지됐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의정부의 ‘평양면옥’은 코로나19가 재확산하던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한 달간 아예 휴업에 들어갔다. 1987년 5월 강남구 신사동에서 시작해 영업 34년 차였던 ‘압구정춘천막국수’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 이어지자 문을 닫았다. 업력 30년 가까이 된 서울 왕십리의 ‘원주할머니 소곱창구이’(구 원주집)도 문을 닫았다. 통계청과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자영업자 수는 553만1000명으로 전년보다 7만5000명(1.3%)이 감소했다. 창업보다 폐업이 7만5000명 많았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일부 노포들은 배달 서비스와 마트 판매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의 60년 전통 부대찌개집 ‘오뎅식당’은 이마트 피코크와 손잡고 냉장보관용 상품을 출시했다. 서울 성동구 금호시장에서 1966년부터 영업해온 ‘골목냉면’은 지난해 7월부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