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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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쇠고기 1㎏’을 소비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양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이는 일반 승용차로 서울역에서 충북 충주역까지 약 129㎞를 왕복 주행할 때, 가정에서 9일 동안 난방을 했을 때, 테니스장 절반(약 860㎡)을 조성할 때 발생하는 양과 맞먹는다. 쇠고기 1㎏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약 59.6㎏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국내외 기후학자들 분석에 따른 결과다. 30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6.6㎏. 최소 10그루의 소나무는 있어야 이를 상쇄·흡수할 수 있다.

국내에선 아직 잘 와닿진 않지만, 해외에선 수년 전부터 기후 위기를 논할 때마다 이 같은 내용이 거론됐다. 지난 1월 빌 게이츠가 그의 저서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출간을 앞두고 조선일보를 포함한 한·중·일 언론사 11곳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와 아내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빌 게이츠는 인터뷰에서 친환경 전력생산 방안으로 ‘원전’을 강조하면서도 소고기로 대표되는 축산업이 안고 있는 기후문제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의 저서엔 소고기를 포함한 축산업에 대한 우려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식용으로 약 10억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이들이 트림과 방귀로 내뿜는 메탄은 이산화탄소 20억t과 동일한 온난화 효과를 일으킨다. 이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다. 천연가스를 트림과 방귀로 배출하는 문제는 반추동물들의 고유한 문제다. 그러나 모든 동물에게 공통적인 온실가스 배출원이 있으니, 바로 똥이다. 똥은 분해되면서 강력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한마디로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부산물이 온실가스의 주범이라는 이야기다. 빌 게이츠의 이 같은 지적은 에너지 전환만으로 저탄소 경제구조 및 지속 가능 성장을 꾀하는 현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축산업과 기후 간 관계를 연구해 온 조길예 전남대 명예교수는 “해외에선 에너지 전환이나 기술혁신만으론 탄소중립(대기 중 온실가스를 ‘0’으로 만드는 것)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며 “일상의 먹거리, 구체적으로는 축산업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 현 정부 정책 전략안에 부재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전략 등 그린뉴딜 정책엔 축산업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 등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전략 등 그린뉴딜 정책엔 축산업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 등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photo 뉴시스

축산업, 전체 온실가스의 51% 방출

해외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축산업이 기후 위기를 앞당길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만 해도 지난 2008년 보고서 ‘축산업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를 통해 “축산업은 환경문제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라며 “가장 긴급하게 다뤄져야 할 주요 정책 의제”라고 평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 중 60%가 육류 관련 부문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통수단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보다 높은 수치라는 것이 FAO의 지적이다.

2009년 세계 환경전문 연구기관 월드워치연구소도 11·12월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축산업이 극적으로 팽창하여 인류를 위협하고 있으며 육류를 더 나은 대안으로 대체하지 않고선 전 지구적 기후 관련 위험성을 다룰 방법이 없음을 이제는 이해해야 한다.’ 당시 연구소는 축산업이 전체 온실가스의 51% 이상까지 방출한다고 내다봤다.

이들이 기후문제에서 축산업을 거론하는 건 가축의 호흡·배설물 외에도 가축을 위한 사료 생산, 도축, 운송·포장 등에서 실제 높은 수치의 온실가스가 배출돼서다. 앞서 보고서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축산은 그 과정에서 인류가 발생시키는 아산화질소의 65%, 메탄가스의 37%, 이산화탄소의 9%를 배출한다. 아산화질소는 필요 이상의 축분퇴비와 가축비료 등에서, 메탄가스는 가축의 트림과 방귀, 이산화탄소는 사료 경작지 및 방목지 조성을 위해 산림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아산화질소와 메탄이 불러오는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보다 각각 296배, 23배 크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이의철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센터장은 “가축 사육을 위한 대지 조성이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는 요인들까지 없앤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축별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이를 다시 계산하면, 축산업이 기후에 미치는 위험성은 더 뚜렷해진다. 사단법인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2019년 ‘에너지 프로시디아(Energy Procedia)’의 연구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소 한 마리를 평생 사육하는 데만 총 3090~3406MtCO2-eq(1Mt=10억㎏, ‘CO2-eq’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의 단위)의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료 등 농자재 생산 과정에서 79~138MtCO2-eq, 사료 생산에서 779~892MtCO2-eq, 가축 사육에 2227MtCO2-eq, 도축 및 후처리 5~15MtCO2-eq, 유통 0~134MtCO2-eq의 온실가스가 배출된 데 따른 결과다. 이는 수천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도 상쇄하기 어려운 규모로 닭의 총온실가스 배출량 374~1016MtCO2-eq, 돼지의 381~874MtCO2-eq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를 먹거리(food)와 비먹거리(non-food)로 구분해 살펴보면, 먹거리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26%로 여기에서 58%가 동물성 식품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이 동물성 식품 온실가스의 절반은 소와 양 등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발생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인 IPCC(기후변동에 관한 정부 간 패널)는 2019년 8월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았을 때 감축되는 온실가스양을 제시하기도 했다. IPCC에 따르면, 전 세계인들이 동물성 식품을 근절했을 때 전체 온실가스(2018년 기준 371억t)의 약 22%(80억t)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정부가 전기차 등에 관심을 갖는 것만큼이나 먹거리, 토지 이용 방식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IPCC의 지적이다.

한국처럼 식사하면 지구 2.3개 필요

국내도 주요 축산 소비 국가라는 점에서 이 같은 논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육 가축 두수(개 제외)는 2007년 1억5779만두에서 2018년 2억6069만두로 늘어나는 등 증가 추이를 보였다. 1인당 육류소비량(소·돼지·닭)은 2018년 기준 총 53.9㎏으로 1980년 11.3㎏에서 5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OECD 평균 1인당 육류소비량인 68.8㎏엔 못 미치지만, 돼지 소비량은 30㎏ 수준으로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노르웨이 비영리 단체 EAT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식습관’을 통해 한국의 1인당 음식 소비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지구가 감내할 수 있는 1인당 붉은고기 소비량은 하루 0~28g인데 한국은 이에 3배에 달하는 소비량을 보인다는 분석에서다. 전 세계인이 2050년까지 지금의 한국인처럼 음식을 소비하면 지구 2.3개는 있어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내용이다. 중국의 음식 소비 습관에 따른 필요 지구 개수 1.77개, 일본 1.86개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와 관련한 국내 정부의 노력이 없던 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는 2004년 환경 관리·보호를 목적으로 가축분뇨의 관리·이용대책을 수립하던 당시 ‘양분 총량제’ ‘가축 사육 두수 총량제’ 등의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 적용하곤 제대로 시행조차 못 했다. 농림부가 2015년 온실가스 감축 유도와 윤리적 소비 선택권 제공을 위해 도입한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 대상엔 아직 축산물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축산업 종사자들의 반발로 정부가 이와 관련한 제도를 입안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들 제도와 관련한 자료나 연구가 부족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환경부가 매년 내놓은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910만t을 기록했는데, 이 중 축산업 발생 비중이 1.2%에 그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해외 분석과 달리 비중이 1% 안팎으로 잡히는 건 축산업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소극적으로 집계해서다. 가축의 사육, 도살, 운송 등 간접 요인 등을 배제했다”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역점 정책으로 삼는 그린뉴딜 정책안엔 농축산업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2050 탄소중립추진전략,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 등에 ‘자연·생태의 탄소 흡수 기능 강화’ ‘친환경 농수산업 경영 및 저탄소 유통 추진’ ‘스마트팜 및 스마트축사 설치’ 등을 적시한 것이 전부다.

한국 뉴딜정책에서의 재논의 필요

국내의 이런 대응은 해외와 비교해 굉장히 소극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16년 네덜란드 영양센터는 지구온난화를 우려해 국민들에게 일주일에 육류를 2회 이상 섭취하지 말라는 권고안을 내리기도 했다. 2018년 네덜란드 교육부는 더 나아가 부처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기본식단을 채식으로 제공하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육류는 희망자에게만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영국 보건부도 비슷한 시기에 육류 섭취를 하루에 70g 이하로 줄일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앞서의 이의철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센터장은 “국내는 가축 사료나 쇠고기 일부를 국외에서 수입하다 보니 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순 있다”면서도 “하지만 국내 축산 소비는 국외, 그리고 다시 국내에 영향을 미친다. 일찍이 해외에서 거론한 축산업 문제에 우리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스쿨 ‘식량의 미래’ 프로그램 연구진인 마르코 스프링만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 국가는 온실가스 배출과 자원소모가 막대한 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육류와 유제품을 줄이는 명료한 권고안을 내놓기를 주저하고 있다. 식단의 선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증거는 산처럼 쌓이고 있다. 국가의 공식 식이 지침은 이런 과학적 결과와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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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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