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통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2년 조직된 유럽평의회 산하 ‘효과적 사법을 위한 유럽위원회(CEPEJ)’가 사법체계 개선을 위해 2년 주기로 발간하는 ‘유럽 사법체계 평가 보고서(European judicial system CEPEJ Evaluation Report)’엔 대다수 유럽국 검찰이 수사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47개 유럽평의회 회원국들의 사법 관련 예산과 변호사·판사·검사의 역할, 업무량, 효율성 등과 관련한 분석을 담고 있다.

2018년 기준 검찰의 책임과 역할을 요약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체 47개국 중 검찰이 직접수사를 진행하는 곳은 32개국(68%)이며, 경찰 조사를 지휘·감독하는 곳은 38개국(8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포르투갈, 헝가리, 벨기에, 폴란드 등 주요국 검찰은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모두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수사지휘권은 없어도 수사권은 유지했다.

이들 국가는 형사소송법에 검찰 수사권을 다음과 같이 적시하기도 했다. ‘검사는 직접 언제든 모든 수사행위에 참여할 수 있다’(그리스), ‘검사는 공소 제기를 위하여 수사를 지휘하거나 직접 수행하여야 한다’(헝가리), ‘검사는 모든 종류의 수사를 스스로 수행한다’(독일)….

OECD 회원국들의 검찰 체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2019년 대검 미래기획단장 시절 직접 조사해 정리한 ‘OECD 35개국 검찰의 수사·수사지휘 규정’에 따르면 검찰의 수사권을 유지한 나라는 총 27개국,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유지한 나라는 28개국이다. 이 중 수사권·수사지휘권을 모두 유지한 곳은 26개국이다.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6개국은 법규상에 검찰의 수사·수사지휘권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그 역할은 묵시적으로 유지했다.

김웅 의원은 “수사권은 검찰의 공소 유지와 전문성을 고려해, 수사지휘권은 경찰 조직의 수사 견제를 위해 유지했다”라고 말했다. 국내 검찰의 직접수사에 따른 폐단은 수사지휘권 폐지가 아니라 검찰 내부에서 수사와 기소 주체를 분리하는 식으로 개선해야 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세계적 추세가 이런데 중수청 설립이 강행되면 국제 공조수사에 어려움이 커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2018년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던 김종민 변호사는 “대다수 국가가 주요 범죄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맡기고 있다”며 “만약 국내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면 국제 공조에 나설 수사 주체가 사라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선 인터폴(Interpol·국제형사경찰기구), 유로폴(Europol·유럽형사경찰기구), 유로저스트(Eurojust·유럽사법기구) 등을 조직해 경찰은 경찰끼리, 검찰은 검찰끼리 사법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다국적기업 에어버스 항공기 리베이트 의혹이나 1970년대 록히드 사건 등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공조 체계 덕분이었다. 검수완박은 향후 국내 기업·인사가 연루된 국제 범죄 수사에서 국내 유관기관을 배제시킬 우려가 크다.

김 변호사는 “중수청은 정권 초기 검찰개혁위 내 여권 성향의 위원들 입에서도 안 나오던 이야기”라며 “검찰 제도는 국가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4년 동안 논의도 없다 갑자기 밀어붙이는 식의 졸속으로 정비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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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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