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았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7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았다. ⓒphoto 뉴시스

방위사업청이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의 부적절한 복무행태를 발견하고도 지난 2월 감사 결과 발표 당시 이를 제외했고,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간조선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방위사업청의 ADD 감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16일 방위사업청은 ADD를 감사한 뒤 직원 5명을 면직 요구하고 형사고발했다. ADD는 방사청의 출연기관이고 국방부의 감독과 지휘를 받는다.

이번 감사 결과를 보면 강태원 부소장의 부적절한 복무 내용이 가장 눈에 띈다. 방사청 감사 결과에 따르면 강 부소장은 △지난해 11월 국방 분야 다른 기관장 8명과 업무협의 명목으로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집행했고 △전용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했으며 △2년간 의무근무일 499일 중 228일을 국내외 출장으로 자리를 지키지 않는 등(개인연가 제외) 복무 실태가 부적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의혹이 있다는 조사 내용이다. 방사청은 ADD가 “임원도 아닌 본부장급인 부소장에게 전용차량을 지급한다고 규정한 뒤 기사를 포함해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전용차량 하이패스 결제내역을 살펴본 결과 부소장이 주말에 전용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한 실적이 눈에 띈다는 점도 짚었다. 또 운전기사가 복귀한 시간과 차량 이용대장에 기재된 복귀시간 역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 방사청의 감사 내용이다.

하지만 방사청은 지난 2월 말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강 부소장 관련 사안은 발표 내용에서 뺐다. 또한 감사에서 강 부소장이 사적으로 차량을 이용한 내역을 숨기기 위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여기에 대한 후속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행법상 허위공문서 작성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끔 되어 있다. 강 부소장은 예비역 공군대령 출신으로, 영관급 이상 예비역들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 캠프인 국방안보포럼 출신이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 공직감사담당과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총리실 주도로 연말연시나 대통령 순방기간, 명절기간에는 특별 공직기강 점검을 원래 하는데 이번 점검도 그 일환이다. 저희도 소속기관을 대상으로 (점검을) 했는데 본부장급 이상만 대상으로 했다”며 “(강 부소장의 경우) 다른 5명의 직원처럼 개인 비리혐의는 아니어서 발표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적절한 복무실태 조사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허위공문서 작성에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하려면 추가 출입기록 등을 세세하게 떼어봐야 아는데 그 목적으로 이번에 감사를 갔던 건 아니다. 지금 소장 교체기라 새 소장이 오시면 조직관리 차원에서 전달하려 한다”고 해명했다.

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오른쪽)이 서욱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오른쪽)이 서욱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방사청이 밝혀낸 ADD의 도덕적 불감증

방사청 감사 결과를 보면 강 부소장 이외에도 ADD의 도덕적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방사청이 감사 결과를 토대로 고발한 5명의 ADD 직원은 ADD의 전 회계담당 직원 A씨, 문모 연구지원본부장, 전·현직 재무실장, 임모 회계팀장 등이다. 이 중 회계담당 A씨는 우리은행에 영향력을 발휘해 딸을 부정채용시켰고, 나머지 4명은 우리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선정한 후 자산운용을 부적절하게 하면서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식으로 최근 5년간 약 140억원의 이자손실을 ADD에 입힌 것으로 감사 결과 밝혀졌다.

방사청은 지난 1월 18일부터 2월 10일까지 우리은행 취업청탁 감사에 3명, 공직기강 점검에 6명 등 총 9명의 감사 직원들을 ADD에 보냈다. 앞서 ADD가 직원들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징계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경고처분’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자 방사청이 감사에 나선 것이다. ADD는 직원이 우리은행 채용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난해 10월 인터넷뉴스를 통해 접한 뒤 자체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조사 후 ADD는 해당 직원의 비리가 징계에 해당하나 3년의 징계시효가 종료됐다는 이유로 지난 1월 6일 경고처분하는 데 그쳤다.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사건은 당초 2017년 11월 검찰 수사도 받은 사안이다. 지난해 2월에는 최종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검찰 수사에서 우리은행이 부당채용한 38명 중 ADD 회계담당이었던 A씨의 딸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ADD까지 불똥이 튀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2017년 5월 ADD 직원인 ‘비위자(A씨)가 우리은행 직원 채용공고에 딸을 지원하게 했고, 이후 우리은행 국과연 지점장, 본점 상무에게 딸이 채용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돼 있다. 대법원은 “우리은행 충청지역본부장의 청탁에 의해 비위자 딸이 불합격권에서 합격자로 조작되어 합격했다”고 판결했다. 최초에는 합격권에 들지 못한 지원자(A씨 딸)가 청탁 명부에 따른 은행장의 지시로 합격권으로 올라갔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사청은 이번 감사에서 ADD 직원 자녀의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일반적인 징계시효는 3년이지만 금품 및 향응 수수의 경우는 5년을 적용해야 한다”며 우리은행 채용청탁 비위자를 ‘중징계(면직)’하라고 요구했고 형사고발했다. 방사청 공직기강담당관은 “비위자가 회계팀 등으로부터 유래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으로 우리은행에 본인의 딸 취업을 청탁하여 취업되게 한 사실은 금품 등에 해당하는 취업 제공으로 뇌물에 해당한다”고 보고했다. 뇌물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이 별도로 수사하고 있다.

방사청은 또 이번 감사에서 ADD 연구지원본부장, 전·현직 재무실장, 회계팀장 등 4명의 간부가 업무범위, 금리조건, 협약기간 등이 명시된 협약서(계약서) 체결 없이 우리은행에 암묵적으로 주거래 은행 역할을 하게 하면서 각종 혜택을 부여했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ADD 담당자들이 기업자유예금으로 연평균 3874억원을 우리은행 국과연 지점에 예탁해 운영하면서 현저히 낮은 이자율을 적용해 최근 5년간 약 140억원의 이자손실을 불러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거래 은행 협약도 체결하지 않은 채 재무실장과 회계팀장이 우리은행 지점장 등과 비공식적으로 협의해 이자율을 적용한 것이다. 방사청은 4명의 담당자 역시 배임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방위사업청이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대행 등을 감사한 결과.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방위사업청이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대행 등을 감사한 결과.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다시 논란된 ADD 직원 자녀 채용비리

ADD 회계담당자가 우리은행에 딸을 부정채용시키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로는 회계담당자의 매우 큰 재량권이 꼽힌다. 방사청은 “매년 최대 1조3494억원에 달하는 정기예금 수탁은행을 선정하면서 회계담당자가 개인적인 친분관계 등에 의해 특정 은행을 고려할 수 있고, 별도 평가 또는 공식 절차가 없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정기예금만 매년 1조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국가기관이 별다른 절차도 없이 담당자 재량으로 사실상의 주거래 은행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비리 발생의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2017년 ADD 회계팀 소속이었던 A씨는 전 공공연구노조 ADD지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ADD에서는 노조라고 주장하지만 국책기관에서는 노조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이 노조의 실제 명칭은 직장연합회이고, A씨는 이곳 회장을 지냈다.

ADD는 ‘천궁’ ‘현무’ 미사일 등 최첨단 국산 무기를 만드는 우리나라 대표 국방과학연구소다. 국산 무기 대부분은 이곳에서의 연구와 시험을 거친다. 전체 직원은 약 4000명이고, 석·박사급이 주를 이루는 연구원만도 2000명 규모다. 강대식 의원실 관계자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야 할 이런 연구소 내에 전방위적인 부패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청이 3월 15일 면직처분을 권고한 A씨 등 5명의 ADD 직원은 현재 결정에 불복하는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이와 별개로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도 수사 중이다. A씨가 위원장을 지냈던 공공연구노조 ADD지부는 A씨를 비롯한 직원 5명에 대해 방사청이 수사 의뢰 조치를 하자 ‘방사청의 보복감사’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강은호 방사청장은 본래 ADD 소장 자리에 ‘낙하산’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거론돼 왔었다. ADD 소장 공모를 앞두고 요건과 절차가 바뀌었는데, 소장 공모 조건으로 이전까지는 없었던 ‘방위사업청 고위공무원급 퇴직자’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5급 행정공무원 공채 출신인 강은호 청장은 청장이 되기 전 방사청 차장까지 지내고 퇴임했었다.

하지만 ADD가 노조를 중심으로 강 청장의 ADD 소장 임명을 격렬히 반대했고, 결국 소장 취임은 무산됐다. 그런데 그 후 강 청장은 ADD 소장 자리 대신 상급기관의 수장인 방사청장으로 ‘깜짝’ 영전을 했다. 그리고 취임 바로 다음 달인 지난 1월부터 ADD를 상대로 감사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ADD 노조는 강 청장의 사심이 담긴 ‘보복감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방사청은 이에 대해 “보복감사라는 관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일부 비리 혐의자들이 있어 감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대식 의원은 “ADD는 국방 분야 최고 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회계과 직원의 위법행위 등의 문제가 있고, 경영진은 본인 자리 욕심에만 사심이 가득해 기관 간 갈등을 초래하는 등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개혁 방안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