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1·2층에 있는 시민청 활짝라운지.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1·2층에 있는 시민청 활짝라운지.

오는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시민청(聽)’의 처리 방향이 관심이다. 시민청은 여비서 성(性)추행 의혹 끝에 자살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임 중이던 2013년,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1·2층을 비우고 ‘시민 소통 공간’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올해로 문을 연 지 8년째로 서울시청 시민청에 더해 2018년에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과 강북구 우이동의 경계인 삼양로 양옆으로 ‘삼각산시민청’ 1·2동도 문을 열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청 시민청은 서울시 산하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에서, 삼각산시민청은 ‘인사이트모션’이란 별도의 민간업체가 각각 위탁운영 중이다.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1·2층을 통째로 비우고 만든 시민청은 2013년 개관 당시부터 박원순 전 시장의 우군(友軍)이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위해 만든 아지트라는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진 지난해 2월부터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임시휴관과 부분개관을 반복하면서 1년 넘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있다.

삼각산시민청은 더 심각

지난 3월 15일 찾아간 서울시청 지하 1층의 시민청은 문을 걸어 잠그고 사전예약 및 현장예약자들에 한해서만 개방하고 있었다. 과거 노숙자들이 추위를 피하던 곳으로 주로 사용하던 중앙무대인 ‘활짝라운지’ 역시 텅 비어 있었고,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중 만든 ‘I·SEOUL· U’란 서울시 로고가 찍힌 벤치만 놓여 있었다.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시민청 가운데서 서울시 간행물 등을 주로 취급하는 ‘서울책방’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서울책방 뒤편에 있는 군기시(軍器寺)유적전시실도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군기시는 조선시대 무기를 제작하던 관청으로 서울시청 신청사 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코로나19 전만 해도 군기시 유적과 유물을 일반에 공개해왔다. 서울시청 시민청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군기시유적전시실을 폐쇄했는데, 아직 서울시에서 재개관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핵심요지 중 하나로, 지하철 1·2호선 시청역과 지하보도로도 곧장 연결되는 시민청이 1년 넘게 사실상 방치돼 있는 셈이다.

2018년 서울시청 시민청에 이어 두 번째 시민청으로 문을 연 삼각산시민청은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경전철 우이신설선 솔밭공원역을 기준으로 도봉구 쌍문동 쪽에는 삼각산시민청 1동, 강북구 우이동 쪽에는 2동이 들어서 있다. 같은 날 찾아간 삼각산시민청 1동은 ‘임시휴관’ 안내문을 내걸고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강북구 쪽에 있는 삼각산시민청 2동은 문을 열고 있었는데, 2층 워크숍룸과 3층 시민청갤러리 역시 작품 한 점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삼각산시민청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워크숍룸 최대 수용인원인 70명의 30%인 21명밖에 이용을 못 한다”고 했다.

삼각산시민청의 경우 입지 자체가 가급적 많은 시민이 활용하기에는 외진 곳에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청에서 삼각산시민청까지는 지하철 17개 정거장, 40분 이상이 소요된다. 건물도 왕복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1동과 2동으로 나뉘어 있어 공간 활용이 불편하다. 다중이용시설이지만 주차공간도 없다.

3월 한 달간 대관 현황을 알아 보니, 대관이 있는 날은 5일에 그쳤고 대관주체도 ‘삼각산시민청 공동운영단 수시사업회의’ ‘삼각산시민청 시민기획단 수시사업회의’ 등으로 내부용이 대부분이었다.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북한산 초입에 있는 외진 곳을 누가 이용하겠느냐”며 “차라리 경전철역을 낀 편의점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과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삼각산시민청 1·2동.
서울 도봉구 쌍문동과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삼각산시민청 1·2동.

시민청 내어주며 업무공간 태부족

자연히 활용도가 떨어지는 시민청이 오는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활용도만 놓고 보면 코로나19로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이 인건비와 전기요금 등 관리비만 축내고 있는 시민청은 당장이라도 문을 닫고 민원인을 위한 업무공간이나 민간에 임대운영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올해 서울시 예산에 따르면, 두 곳의 시민청 운영비(인건비 등)로 책정된 예산은 33억원으로, 서울시청 시민청과 삼각산시민청에는 각각 21억원과 11억원이 배정돼 있다.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민간위탁금 형태로 예산에서 교부되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시민청으로 인한 업무공간 부족으로 낭비되는 예산은 더 크다. 서울시청 본청의 경우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중이던 2012년 신청사 개청과 함께 구(舊)청사를 ‘서울도서관’으로 바꾸고, 2013년 신청사 지하 1·2층까지 시민청으로 내어주면서 업무공간 부족은 더 심해졌다. 이에 서울시는 본청 외에도 서소문청사, 서소문2청사, 무교로청사, 남산청사, 청계청사 등 5개의 별도 청사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도심의 민간 빌딩을 임차해 쓰고 있는 경우 막대한 빌딩 임차료 역시 고스란히 시민들 부담이다. 지난해 3월 입주한 서소문2청사(씨티스퀘어빌딩)의 경우 올해만 청사 임차료 및 관리비로 약 145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시청사가 이곳저곳 분산되면서 민원인들이 헛걸음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재임 중 시민청을 서울시 각 권역별로 확대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워왔다. 도봉구와 강북구에 들어선 삼각산시민청 1·2동 외에도 성북구 하월곡동, 송파구 문정동, 금천구 독산동, 강서구 마곡동 등지에 4곳을 추가 건립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울시 25개 자치구청과 자치구의회 등 대관 가능한 공공건물들이 곳곳에 넘쳐나는 상황에서, 시민청 추가 건립은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강남구 대치동 학여울역 세텍(SETEC)에 건립하려던 시민청은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시민청 확대는 아직 초기 검토 단계라서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키워드

#뉴스 인 뉴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