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친 말로 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한 20~30대를 일컫는 단어)의 대화 소재로 보통 좀 더 트렌디한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요즘은 MZ세대도 주식과 부동산 얘기로 열을 올린다. MZ세대의 모임에서도 누가 돈을 벌었고 잃었는지, 누가 집을 샀고 못 샀는지 이야깃거리가 쏟아진다. 분명 누군가 한 명쯤은 새로이 주식투자를 시작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급하게 대출금을 끌어 집을 샀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던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서 “나도 해야 할까?” 물어보면 “당연하지”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MZ세대는 최근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올랐다. 이미 2017년부터 2018년 초에 가상화폐 열풍이 불었을 때 가장 열정적이었던 세대가 바로 MZ세대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발표한 ‘2017 암호화폐 이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가상화폐에 투자해본 경험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당시 20대의 22.7%, 즉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투자 경험이 있었다. 지난해 급격히 상승했던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을 견인한 것도 MZ세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의 33.5%가 30대가 거래한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주택 매매 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40대보다 더 많은 수를 기록했다. MZ세대의 ‘패닉바잉(공황 구매)’이 이뤄졌다고 분석하는 전문가가 대다수다.

주식시장에서도 MZ세대는 큰손이 됐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진행된 ‘동학개미운동’을 대표하는 것은 삼성전자 주식이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는 215만명으로 그 전해에 비해 3.8배나 늘었다. 그런데 늘어난 소액주주 대부분은 MZ세대였다. 새로 주식을 산 158만명 중 47.2%가 MZ세대였다는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의 분석 결과가 있다.

가상화폐에 이어 부동산을 거쳐 주식시장에 이르기까지, 재테크 시장에서 MZ세대는 초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MZ세대는 필사적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MZ세대의 특성에 있다.

최초의 소셜미디어 네이티브 세대

MZ세대를 이야기할 때면 꼭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공정과 평등 문제다. 아닌 게 아니라 MZ세대는 유독 공정과 평등에 민감한 세대처럼 보인다. 최근 한 달간 언론에 보도된 MZ세대와 관련한 기사 제목만 봐도 그렇다. ‘공정성·투명성에 목매는 세대’ ‘보수·진보보다 공정에 민감한 MZ세대’ ‘주목되는 MZ세대 사원들의 성과급 공정성 요구’….

마치 MZ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더 정의로워 보이기도 한다. 평등에 대한 요구도 더 커 보인다. 과연 그럴까. 대답은 ‘아니다’. MZ세대는 더 정의로워서 공정과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키워드가 필요하다. 바로 ‘비교’다.

MZ세대의 재테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공정과 평등이라는 단어를 짚어봐야 하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소셜미디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MZ세대는 역사상 최초의 소셜미디어 네이티브(social media native) 세대, 소셜미디어를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한정해 얘기하더라도 MZ세대는 네이트온이나 MSN 같은 메신저를 비롯해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같은 초기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거쳐 성장한 세대다. 이들을 얘기하면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들에게 소셜미디어는 생활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이다. 여전히 대면(對面) 소통을 이어가려는 예전 세대와 달리 소셜미디어 네이티브들은 소셜미디어로 연결돼 있기만 해도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영민 숙명여대 인력개발정책학과 교수가 최근 10년간 발간된 ‘20대 청년’ 관련 연구 논문 530편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자. ‘20대 청년세대에 관한 연구 동향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도 발간된 연구 결과를 보면 530편의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된 20대 청년의 다섯 가지 특징 중 세 가지가 디지털 기술과 관련이 있었다. 특히 20대 청년들이 ‘온라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주장에 주목해 볼 만하다. 청년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온라인 환경 속 타인을 통해 확인하고, 자신과 같거나 다른 삶의 모습을 보며 다양한 가능성에 직접 도전한다”고 한다. 지난 10년간의 연구를 망라해 얘기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20대 청년의 이 특징은 MZ세대의 특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셜미디어 네이티브 세대로서 MZ세대는 늘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 딱히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삶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소셜미디어다. 실제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보고 보이는 것에 더 민감하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나’를 판단하게 만든다. 소셜미디어에 연결되면 다른 사람의 삶에 비춰 내 삶이 어떤지 가늠해보곤 한다.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면서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한다. 이렇게 보여지고 보이는 삶을 살다 보면 남과의 비교에 굉장히 익숙해진다. ‘비교’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비교를 체화하다

MZ세대는 비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행동을 결정한다.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MZ세대가 주식 계좌를 열면서 떠올리는 생각에는 ‘남’이 들어 있다. 공인회계사인 29살 윤슬기씨는 지난해 연말 엉겁결에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보는데 생전 재테크에 관심이 없을 것 같던 대학 선배가 주식투자로 쏠쏠하게 용돈 벌이를 했다는 글이 있더군요. 그 선배까지 재테크를 하는데 난 뭐하고 있었나 생각이 들어서 ‘수수료 무료’를 자랑하는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하고 우선 삼성전자 주식을 몇 주 샀어요.”

그는 삼성전자 주식을 산 날 인스타그램에 스마트폰 사진과 함께 “나도 이제 삼성의 주인”이라는 유머 섞인 글을 올렸다.

지난해 2월 딸을 낳은 34살 정은희씨도 윤씨와 비슷한 이유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정씨가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아파트를 산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다.

“제가 전세살이를 할 동안 집을 산 친구들은 몇억원이나 벌었어요. 저도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겠다 싶어서 신용대출까지 끌어 써 집을 샀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유들이 아이러니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MZ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과의 비교’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에 친척들이 하는 잔소리, 회사에서 상사가 던지는 핀잔 섞인 말을 “꼰대스럽다”고 배척하던 것이 MZ세대였다. ‘나’를 중시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간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MZ세대가 소셜미디어 네이티브 세대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소셜미디어에 접속되어 있는 MZ세대는 남과 비교하는 일을 체화(體化)해 살아가고 있다. 소셜미디어 자체가 끊임없이 남의 행동을 체크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매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을 보면서 결정할 때가 많다. 사소하게는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소셜미디어에서 보고 따라 구입하는 것부터, 여행을 가거나 휴가를 보내는 일처럼 사생활의 영역에도 소셜미디어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국 MZ세대는 ‘남과 같이’ 살고 싶어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거꾸로 다른 사람 역시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 ‘남과 같은 삶’에 맞추기 위해 MZ세대는 재테크를 한다.

상대적 박탈감에 민감

MZ세대가 누구보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MZ세대는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자신의 지위에 매우 민감하다. ‘벼락거지’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벼락거지란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갑자기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벼락거지가 되고 싶지 않은 MZ세대는 내가 갑자기 끌어내려지는 것도, 남이 부당하거나 손쉬운 이득을 얻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 문제는 공정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직원 2100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당시 반대 목소리를 크게 냈던 것이 MZ세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입시비리 문제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군 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이 있었을 때도 MZ세대는 크게 분노했다. 대리게임 논란에 휩싸였으면서도 국회의원에 당선된 류호정 정의당 의원에 대한 반감도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사태도 그렇다. MZ세대는 불공정한 사건 그 자체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 일로 인해 벌어질 결과, 누군가의 기회나 자산이 박탈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니 ‘박탈당하기 전에’ 행동을 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MZ세대의 재테크는 유행에 휩쓸려 시작하는 경솔한 것이 아니다. 몇 차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한 사건을 겪고 난 후 일종의 대처 방안이다. 사회의 불공정성을 목격한 후에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근로소득을 상회하는 수익을 거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재테크를 하지 않는 일은 마치 ‘저항하지 않는 일’과 같이 느껴진다.

즉 주식에, 부동산에 쏠리는 MZ세대의 재테크는 MZ세대 나름의 저항이다. 불공정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해도 개인적으로나마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MZ세대의 앞다툰 재테크를 단지 생각 없는 일로만 치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만 해도 지난해 8월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30대의 ‘패닉바잉’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평가절하했다. 패닉바잉이 MZ세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생존전략이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MZ세대에게 작은 규모의 행복주택을 권한다 한들 만족해할 리가 없다. MZ세대가 부동산에 갖는 불안감은 그저 가격이 올라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대로라면 남들과 같이 내 집 한 채 마련하는 일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남과 같이’ 살고 싶어 하는 MZ세대에게 “신중하게 생각하라”거나 “자제하길 바란다”는 말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가깝다. 아마 가상화폐나 부동산, 주식시장에서 그랬듯 MZ세대의 재테크는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될 것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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