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부터 전국 모든 일반도로의 제한속도가 50㎞/h로 하향 조정됐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7일부터 전국 모든 일반도로의 제한속도가 50㎞/h로 하향 조정됐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7일부터 ‘안전속도 5030’이 전국으로 확대실시된 가운데, 자동차 전용도로를 제외한 서울 시내 일반도로 중 전일 평균 50㎞/h 이상 달릴 수 있는 도로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속도 5030’은 일반도로는 50㎞/h, 이면도로는 30㎞/h로 차량 속도를 제한하는 새 도로안전규정이다.

서울시가 교통정보시스템 토피스(TOPIS)를 통해 서울 시내 481개, 총연장 1436㎞ 주요 도로의 차량통행속도를 조사해 발표한 ‘2020 서울시 차량통행속도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 전용도로를 제외한 서울 시내 주요 일반도로 가운데 전일 양방향 평균 통행속도가 50㎞/h를 넘어서는 곳은 벌말로(57.6㎞/h) 단 한 곳에 그쳤다. 하지만 벌말로는 경기도 부천에서 김포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로 서울시 경내를 통과하는 구간이 516m에 불과하다. 서울 시내 도로로 부르기조차 힘든 도로로, 사실상 서울 시내 일반도로 중에는 평균 50㎞/h 이상 달릴 수 있는 도로가 한 곳도 없는 셈이다.

서울 시내 일반도로 중에서는 평균 통행속도가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을 포함한 이면도로 제한속도인 30㎞/h대를 넘어서는 곳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서울 시내 주요 일반도로 중 평균속도가 40㎞/h대에 속한 도로는 노들로

(41.6㎞/h) 한 곳에 그쳤다. 올림픽대로와 나란히 나 있는 노들로(노들길)는 국내 최초 유료 도시고속도로였다가, 2015년 전 구간이 일반도로화된 곳이다.

안전속도 5030을 시범실시해 온 서울 사대문 안 도심권 통행속도는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시는 지난 2018년 6월 종로의 통행속도를 50㎞/h로 낮춘 데 이어, 2019년부터 한양도성 안에서 안전속도 5030을 시범실시해 왔다. 그 결과 서울 도심의 양대 동서 간선인 종로와 을지로의 지난해 통행속도는 각각 19.9㎞/h와 22.8㎞/h에 그쳤다.

지난해 7월부터 1~2개 차선을 줄이는 ‘사람숲길’ 공사를 벌이고 있는 세종대로(옛 태평로 구간 포함)의 지난해 평균 통행속도 역시 23.2㎞/h에 불과했다. 사람숲길과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에 따른 영향이 본격 반영되는 올해는 평균 통행속도 하락현상이 더욱 분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부간선도로는 이면도로 수준

보행자 안전과는 무관한 서울 시내 자동차 전용도로 중에서도 전일 양방향 평균 통행속도가 채 50㎞/h가 안 되는 곳이 2곳이나 됐다. 보행자와 자전거, 오토바이, 저속전기차 등의 출입이 금지되는 서울 시내 자동차 전용도로의 최고 제한속도는 80㎞/h다.

서울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시내 자동차 전용도로 가운데 서부간선도로(30.4㎞/h)와 북부간선도로(45.5㎞/h)는 평균 통행속도가 일반도로 최고제한속도인 50㎞/h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중 성산대교 및 서해안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서부간선도로는 명색이 자동차 전용도로인데도 불구하고 평균 통행속도가 이면도로 수준인 30㎞/h대에 그쳤다.

내부순환로(56.7㎞/h), 올림픽대로(54.7㎞/h), 강변북로(52㎞/h), 우면산로(50.9㎞/h), 분당수서로(50.7㎞/h), 동부간선도로(50.4㎞/h) 등 서울 시내 다른 자동차 전용도로의 전일 양방향 평균 통행속도 역시 50㎞대에 그쳤다.

그나마 자동차 전용도로 중 체면을 유지한 곳은 강남순환로(81.9㎞/h) 한 곳이 유일했다. 2016년부터 순차 개통 중인 강남순환로는 서울 시내 도시고속도로 중 대부분 구간이 민자(民資)로 건설돼 유료통행을 실시한다. 통행료 부담으로 이용차량이 제한적이라 제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등 강남과 강북의 양대 동서 간선축을 연결하는 서울 시내 주요 한강교량의 차량통행속도도 채 50㎞/h가 안 됐다. 한강교량 대부분은 보행자의 출입이 가능해 일반도로 제한속도인 50㎞/h가 적용되지만, 사실상 자동차 전용도로처럼 쓰인다.

하지만 서울 시내 한강교량의 전일 양방향 평균 통행속도 역시 41.8㎞/h에 불과했다. 서울 시내 한강다리 19개(광진교 포함) 가운데 안전속도 5030 도입이 필요해 보이는 다리는 통행량이 비교적 적은 동작대교(56.9㎞/h)를 비롯해 올림픽대교(53.3㎞/h), 잠실대교(53.2㎞/h), 행주대교(51.3㎞/h), 원효대교(51.2㎞/h) 등 5개 다리에 불과했다.

코로나19로 통행량 줄어든 수치

서울시의 차량통행속도 보고서가 기준연도로 삼은 2020년은 코로나19로 서울 시내 주요 도로의 차량통행이 현저히 줄어든 시점이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서울시 전체의 승용차 통행속도는 24.1㎞/h로 전년(23.8㎞/h)에 비해 0.3㎞/h 개선된 상태다. 서울시는 보고서에서 “재택근무, 원격수업, 여행·외출 자제 등으로 서울시 전체 속도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서울 시내 양대 동서 간선축인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역시 평균 통행속도가 각각 54.7㎞/h와 52㎞/h로 2019년의 각각 54.2㎞/h와 49.1㎞/h에 비해 조금 개선된 상태다.

결국 정부의 공언처럼 오는 11월 코로나19 집단면역이 이뤄지면, 서울 시내 주요 도로가 다시 아수라장이 될 것은 뻔하다. 코로나19로 줄어든 교통량을 근거로 전국적으로 확대실시된 안전속도 5030은 적어도 제 속도를 못 내는 서울 시내 도로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옥상옥(屋上屋) 규제’인 셈이다.

특히 택시 등 영업용 차량 운전자들은 코로나19로 승객이 줄어든 판국에, 안전속도 5030이 생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택시는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워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 영업의 핵심이다. 안전속도 5030으로 택시의 속도가 버스나 지하철과 진배없어지면 존립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위반차량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예고한 단속 첫날부터 위반차량이 속출하는 등 영업용 차량을 중심으로 운전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은 만성정체로 출퇴근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도시경쟁력을 좀먹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곳에 안전속도 5030을 일괄 적용할 것이 아니라, 도로와 교량 등 원활한 차량소통을 위한 교통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박원순 전 시장 재임 9년간 서울시는 도로와 교량 등 인프라 투자를 경시하고 ‘보행권 강화’를 이유로 전임 시장들이 애써 늘려놓은 도로폭 줄이기에만 몰두해 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급증한 자전거 우선도로 역시 자전거가 차량과 섞여 달리는 통에 혼잡한 서울 시내 교통현실에는 맞지 않고 사고위험만 높인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한 택시기사는 “CCTV 앞에서 급하게 속도를 줄이면 추돌 사고위험만 더욱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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