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정거장 STS-121의 창에서 촬영한 대한해협. 왼쪽 아래쪽에 일본 규슈 북서단, 가운데 이키 섬과 대마도, 오른쪽 위로 한반도 동남단이 보인다. ⓒphoto. 퍼블릭 도메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정거장 STS-121의 창에서 촬영한 대한해협. 왼쪽 아래쪽에 일본 규슈 북서단, 가운데 이키 섬과 대마도, 오른쪽 위로 한반도 동남단이 보인다. ⓒphoto. 퍼블릭 도메인

갓빠는 일본 전래 민담의 캐릭터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친숙한 존재다. 갓빠 전설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본의 공식 담론에서는, 즉 지자체 홈페이지 등의 관광 정보 같은 데서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한 가지 버전이 통용되고 있다.

“중국 황하에 살던 갓빠가 일족을 거느리고 야쯔시로에 와서 구마 강에 도착했다. 그 후 이들은 번영해서 9000 명에 이르렀는데, 그 두령을 ‘쿠센보(九千坊)’라고 불렀다. 이 갓빠들은 장난이 너무 심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에 화가 나서 규슈 일대의 원숭이에게 명령, 이들을 공격하게 했다. 여기에 갓빠도 항복해서 구루메(久留米)의 영주에게 허락 받아 치쿠고(筑後川) 강으로 이주, 스이텐구(水天宮)에서 일하게 되었다.”

앞선 연재에서 언급한 야쯔시로에서 전해져 내려온다는 얘기와는 상당히 다른 버전이다. 우선 너무나 분명한 실존인물이 나온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한자를 한국어 식으로 읽는다면 ‘가등청정’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 인물은 임진왜란 때 선봉이었던 일본 장군 중 한 사람이다. 물에 산다는 요괴 갓빠가 임진왜란 때 활동했던 존재라는 얘긴가?

또한 야쯔시로의 구전 버전에서는 가랏빠가 너무 장난이 심해 혼을 내주었더니, 여기서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를 허락해주어 ‘오래오래 되라이다’라는 축제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축제가 지금까지 열리고 있다. 갓빠가 결과적으로 현지인과 동화된 것으로 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반면 좀 더 공식적인 버전에서는 갓빠를 내쫓아서 특정 장소에 몰아넣어 버린 것으로 되어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갓빠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시선. (왼쪽)가등청정과 원숭이. 둘이 힘을 합쳐 골치덩이 갓빠를 몰아낸 것으로 전하는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 photo. 퍼블릭 도메인 (오른쪽)북규슈 모지시 소재 코산레이 신사에 있는 ‘복을 부르는 갓빠’(招福河童) 동상. 갓빠는 이처럼 복을 가져다 준다는 등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해지기도 한다. ⓒphoto. Ryuta Saito의 작품, Creative Commons,
갓빠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시선. (왼쪽)가등청정과 원숭이. 둘이 힘을 합쳐 골치덩이 갓빠를 몰아낸 것으로 전하는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 photo. 퍼블릭 도메인 (오른쪽)북규슈 모지시 소재 코산레이 신사에 있는 ‘복을 부르는 갓빠’(招福河童) 동상. 갓빠는 이처럼 복을 가져다 준다는 등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해지기도 한다. ⓒphoto. Ryuta Saito의 작품, Creative Commons,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유명한 20세기의 역사학자 E.H.카가 남긴 명언 중에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를 기록한 사람을 연구하라”는 말이 있다. 역사 기록을 남긴 사람도 인간인지라, 그가 속한 시대와 그 속에서 자신의 입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모든 역사 기록은 그런 점을 감안해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갓빠에 대해 상당히 다른 이 두 가지 이 버전을 다시 들여다보자. 이어서 최근 새로이 등장하는 버전도 소개하겠다. 갓빠라는,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깊게 시사하는 캐릭터를 둘러싼 일본인의 시선에 나타나는 변화에는, 일반적인 일본인의 한반도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대변해주는 점이 있다.

공식적인 버전의 갓빠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중엽 기쿠오까 센료(菊岡沾涼)라는 문인이 남긴 민담집에서다. 당시는 도쿠가와 가문이 최고의 통치자로서 숨막히는 쇄국정책 및 일본 국내에서의 차별 정책을 펼치고 있었을 때다. 기쿠오까 센료는 비주류로서, 한반도를 침공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던 인물이다.

기쿠오까의 버전이 왜 가등청정을 영웅으로 등장시키고, 갓빠가 황하에서 왔다고 못박으며, 갓빠를 몰아내어 멀리 떨어진 오지의 특정 건물에 가두어 두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 한반도를 정복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과의 혈연적 관련성을 부인해야 할 테다. 그리고 한반도 정벌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을 재조명해서 분위기를 띄워야 할 테다.

기쿠오까의 갓빠 이야기는 당대에는 거의 묻혀 있다가, 100년 이상이 지난 19세기 말부터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려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때다. 가등청정이 원숭이 떼를 몰고 갓빠를 물리치는 스토리는 다양한 그림으로 표현되고 이야기책에 실렸다.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국어 교과서에도 실리고,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서도 전국에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한 지역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입장이 다 같은 건 아니다. 특히 야쯔시로 사람들 중에는 이 ‘가등청정’ 버전의 갓빠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지 않았던 이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 같다. 야쯔시로는 지금까지도 묘켄신앙이 남아 있고 ‘이나리’ 신사가 ‘먹을 것을 보장해준 큰 신’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이곳 토박이들은 어릴 때부터 분명하게, 가등청정 버전이 아닌 갓빠, 아니 가랏빠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1954년 야쯔시로 포구에는 ‘가랏빠 도래비’가 세워졌다. 이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글을 작성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이 지역의 토박이였을 것이며,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글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쿠오까 센료의 ‘가토 키요마사’ 버전이 일본 전역에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굳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좀 더 가랏빠와 친근한 내용의 구비전승을 새롭게 써넣은 것이다.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 경제가 풍요로워지자 생긴 자신감에서였을까? 새로운 남한정부와 좀 더 유대가 강화되기를 기대하는 심리에서였을까? 하지만 비석에 새긴 글에도 여전히 가랏빠는 중국 ‘방면’에서 건너왔다고 하여 한반도와의 관계를 흐리고 있고, 장난치다가 붙잡혀 혼나는 아이처럼 묘사되어 있으며, 일본 원주민은 너그러운 관용의 태도를 가진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야쯔시로의 향토사가 오쿠노씨도 ‘오래오래 되라이다’가 한국어일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는 듯하다.

이런 태도에서 또 한 번 변모한 모습을 최근 온라인 담론 공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한 및 일본과의 관계의 역사를 새로 연구하자는 취지의 단체인 ‘하모닉 보덜리스 협회( ハーモニックボーダレス協会) 웹사이트에는 2020년 2월 업로드된 “오래오래 데라이다의 의미”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이 말이 경상남도 방언이라고 말하는 한국인 여성의 증언을 소개하는 동영상 클립이다.

전설상의 캐릭터 갓빠에 대해 변화하는 시선. (왼쪽)갓빠가 ‘중국 방면’에서 왔다고, 또 ‘오래오래 데라이다’라고 노래했다고 전하는 야쯔시로 소재 가랏빠도래비. (오른쪽)‘오래오래 데라이다’는 경상남도 사투리라고 증언하는 한국계 여성 가이드. ⓒphoto. ハーモニックボーダレス協会 자료 동영상 캡처
전설상의 캐릭터 갓빠에 대해 변화하는 시선. (왼쪽)갓빠가 ‘중국 방면’에서 왔다고, 또 ‘오래오래 데라이다’라고 노래했다고 전하는 야쯔시로 소재 가랏빠도래비. (오른쪽)‘오래오래 데라이다’는 경상남도 사투리라고 증언하는 한국계 여성 가이드. ⓒphoto. ハーモニックボーダレス協会 자료 동영상 캡처

요즘 일본에서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시아인(특히 동아시아인) 혐오, 또 유럽에서는 비유럽인 혐호가 드세지고 있는 등, 한때 관용적인듯했던 인간집단 사이에서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같은 지역이라 해도, 이해관계와 정서적 뿌리라는 측면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집단이 공존한다. 그런 이질성은 평상시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다가, 환경이 바뀌고 그에 따라 사회적 조건이 바뀌면서 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지면, 표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대세에 눌려 침묵하고 있던 사람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 사람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정서 변화는 이 시리즈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이 그런 다양성과 시대적 여건 변화의 맞물림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를 생동감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가락국인이 처음 규슈에 들어왔을 때 역시, 환영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반발하다가 소멸하거나 쫓겨나서 오지로 숨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옆 동네에 살면서도 가락국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세월이 흘러 태세가 바뀌면, 가락국인을 몰아내는 데 앞장 서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역사는 계속 흘러간다. 가락국인이 지나간 자리에 신라인과 백제인이 오고, 이들 또한 갈등과 동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와 함께 흔적을 남김은 물론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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