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박상훈
일러스트 박상훈

경기도 광주시는 넓을 광(廣)을 쓴다. 뜻 그대로 너른 땅이지만 인구는 40만명이 채 못 된다. 산지가 70%라 개발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도 이곳에서 살기 위해 이주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광주 태전지구에는 새로운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이곳 주민들은 서울이나 성남의 높은 집값 탓에 광주로 모여든 젊은층이다. 태전지구가 위치한 광남2동 주민의 평균 나이는 36세다. 매우 젊은 동네가 탄생했다.

자급자족 도시가 되기 위해 인구 50만명에 도달하겠다는 게 광주시의 의지다. 그래서 곳곳에서 아파트를 짓고 있다. 광주시가 아파트 단지를 늘리는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게 민간공원 특례사업이다. 광주에 있는 중앙공원, 송정공원, 쌍령공원, 양벌공원, 궁평공원 등 5곳은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를 이미 정했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공원 내 30% 미만의 토지에 대해서는 개발을 허용하는 대신 기부채납 형식을 통해 공원을 조성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제도를 이해하려면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9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어 관련법이 만들어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에 20년의 말미를 줬다. 원래 공원은 도시계획시설의 일부로 별도의 절차를 거쳐 지정한다. 그리고 일단 지정이 되면 예산을 투입해 토지를 수용하고 공원조성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도시의 공원이 점점 중요해지자 공원이 될 만한 부지들이 자꾸 도시계획시설 지정에 포획됐다. 재산권 행사가 어려워진 토지 소유주들이 격분한 것은 당연한 일. 헌재가 토지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에 대한 위헌 판결이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공원조성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부지는 2020년 7월 1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공원 자격을 잃게 됐다. 이런 ‘도시공원 일몰제’가 적용되는 지역이 전국에 4421곳이나 됐다.

표류하는 경기도 광주 중앙공원 사업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지자체가 직접 부지를 매입해 공원으로 만드는 거다. 하지만 이는 서울 등 일부 부유한 지자체만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떨어진다. 재산권에 도움이 되는 개발이 보다 중요했고 공원은 재원을 투입하는 순서에서 매번 밀렸다. 2020년 일몰제 시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자체들은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그렇게 20년을 허비했다.

해제가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도입한 게 민간공원 특례사업이다. 재정 형편상 일몰제 대상의 모든 공원부지 매입은 불가능하니 민간의 힘을 빌려 공원은 지키고 아파트까지 건설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겠다는 복안이었다. 일몰제로 부지가 사유지로 되돌아갈 경우 난개발이 우려되니 미연에 방지한다는 좋은 명분도 있었다.

경기도 의정부의 직동·추동공원은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적용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적지 않은 곳에서 개발에 방점을 찍다 보니 다툼이 생기고 지역 사회에 생채기를 냈다. 광주시도 그랬다. 첫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지정한 경안동 중앙공원은 2018년 12월 우선협상자를 정했지만 2년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중앙공원 사업은 44만8587㎡의 대지 위에 이루어진다. 이곳은 나무들로 채워진 구릉 같은 곳인데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약 1.5㎞나 되니 꽤나 넓은 곳이다. 광주의 오래된 도심과 새로 지어진 경강선 경기광주역을 한 번에 아우르는 위치다. 광주시의 ‘2030 도시기본계획수립안’에 따르면 중앙공원이 포함된 경안동은 개발 주축 지역의 교차점이 되는 장소다.

이 사업은 여러 가지 쟁점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무엇 하나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진행 중이다. 2020년 2월 24일, 공모 차점자인 가원개발이 낸 우선협상자 선정 취소 요구 진정에 대해 국민권익위는 광주시에 “중앙공원 민간공원 특례사업 우선협상자 선정을 취소할 것”을 시정 권고하는 사건이 생겼다. 권익위는 사업자 선정 과정을 문제 삼았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파크개발의 공사비 세부 내역이 법령과 공모지침을 어긴 점, 공원조성비가 고득점을 받기 위해 과도하게 부풀려진 점 등을 들어 공정성이 위배됐다고 결론 내렸다. 동원건설과 태영건설 등이 지분을 가진 지파크개발이 제안한 공원조성비는 2595억원이다. 당시 이 액수 자체가 꽤나 커 화제가 됐다. 권익위는 다른 지역의 민간공원 특례사업과 비교해 공원조성비가 면적당 매우 높게 나타났는데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인 공원조성비의 고득점을 위해 과다하게 책정한 것으로 봤다.

가원개발은 광주시를 상대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처분 취소 소송도 제기했다. 행정재판부 항소심은 지난해 12월 최종적으로 광주시의 손을 들어줬다. 똑같은 내용을 두고 법원과 권익위의 해석이 다르게 내려진 셈이다. 광주시는 권익위의 권고보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사업을 진행했다. 익명의 한 토지보상 전문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행정기관의 재량권을 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심사기준 등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이 옳다 혹은 그르다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다 혹은 없다처럼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따진다. 법원의 판결이 광주시가 옳다고 말해준 건 아니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 사업과 관련해 비용의 과소계상 문제도 제기된다. 한 회계법인이 비공원시설의 공사비 축소 의혹을 제기하면서 생긴 일이다. 협약서의 사업 수지는 토지매입비를 공시지가의 2.6배로 계상하고 아파트의 공사비를 3.3㎡당 306만원으로 축소했다는 게 이 회계법인의 주장이다. 이대로 계산하면 오히려 10% 넘는 손실을 보게 되며 약 862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했다. 게다가 애초 2140가구를 제안했지만 환경영향평가 결과 1690가구로 축소됐다.

광주시는 지파크개발에 사업추진 의지를 명확히 밝히는 서류와 공사착수이행 확약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직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수익으로 공원을 짓는 사업인데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건 공원 사업에는 위기다. 중앙공원이 위치한 경안동을 지역구로 둔 이미영 광주시의회 의원은 “가구수마저 줄었는데, 수익이 나서 약 2600억원의 공원시설비를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파트를 지어서 그 수익으로 명품 공원으로 만들어 준다면 다행이지만, 다른 곳보다 단가를 적게 잡고 지으면 수익이 줄어들 건데 공원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선정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1위 업체든 2위 업체든 중앙공원이 좋은 공원으로 만들어져 빨리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런 논란들이 마무리가 안 된다. 지역에서는 중앙공원 사업을 두고 ‘올해 안에 착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광주시청 관계자는 “현재 토지보상 작업도 60% 정도 마무리했다. 사업 진행을 위해 여러 갈래의 일들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 공사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3일 광주광역시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앙공원 1지구 토지소유주 비상대책위원회가 광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적정가 토지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3일 광주광역시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앙공원 1지구 토지소유주 비상대책위원회가 광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적정가 토지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변경안, 원점, 소송 등이 한곳에 모여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지자체인 광주광역시에서는 도시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24곳의 실시계획 인가 고시를 완료했다. 하지만 최근 광주시 스스로 ‘중대 결정’을 언급할 정도로 사업이 꼬였다. 앞선 24곳 중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추진하는 곳은 9곳 10개 지구이다. 그중 가장 관심이 높았던 곳은 광주광역시의 허파라고 불리는 중앙공원 1지구인데 이곳이 대혼란에 빠졌다. 광주광역시·시행사·언론·시민단체 등이 처리방식을 두고 모두 플레이어로 뛰는 중이다.

지난 2월 16일, 광주시는 ‘중앙공원 1지구 특례사업 계획 변경안’에 대해서 재검토를 지시했다. 중앙공원 1지구의 전체 사업 대상 면적은 243만5027㎡로 매머드급 공사다. 이 중 비공원면적을 7.85%로 최소화해 공원 면적을 최대한 지켜낸 게 광주시의 자랑거리였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아파트를 지을 부지가 좁으니 수익성이 낮다는 뜻이 된다. 대신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비쌌다. 시행사이자 특수목적법인(SPC)인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 제시한 원래 계획대로라면 사업비 2조1000억원을 들여 지상 11~27층 규모에 33·40·50평형대 아파트 2370가구를 건설해야 했다. 평(3.3㎡)당 분양가는 34평형 1500만원대, 40~50평형대는 2046만원이 제시됐다.

계획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나서면서 일그러졌다. HUG는 2019년 7월 중앙공원이 있는 광주 서구와 남구, 광산구를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고분양가 관리지역이 되면 최근 분양한 아파트와 비교해 평균 분양가와 최고 분양가를 기존 분양가의 105% 이내에서만 책정할 수 있다. 계산해 보면 중앙공원 1지구에 들어설 아파트는 3.3㎡당 약 1350만~1500만원 정도가 한계다. 2000만원이 넘는 분양가는 승인을 받기 어려워졌다.

그러자 약 8개월간의 논의 끝에 올해 1월 광주광역시와 시행사가 만든 변경안이 등장했다. 최초안보다 가구수가 증가한 게 문제였다. 2000만원을 넘던 3.3㎡당 분양가는 1898만원으로 낮아졌지만 2370가구가 들어서려던 게 변경안에서 2827가구로 바뀌었다. 용적률도 199.8%에서 214.33%로 높아졌다. 분양가 하락으로 생긴 수익성 악화는 가구수로 보전됐다. 하지만 발표 이후 특혜 논란이 일어났고 여론을 의식한 이용섭 광주시장이 원점 재논의를 지시하면서 오히려 공원과 아파트를 둘러싼 잡음이 한층 커졌다.

시공권은 곧 이권이다. 여러 기업이 지분을 가진 SPC(빛고을중앙공원개발) 내에서도 갈등이 생겼다. 지분 30%를 보유한 한양과 나머지 70%의 비한양 그룹 간에 이견이 생겼고 한양 측이 맡고 있던 SPC 대표이사가 주주총회로 교체됐다. 한양은 광주시와 SPC를 상대로 광주지법에 시공자 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 광주시의회 의원은 “이용섭 시장이 민간공원 특례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런데도 사업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요즘 부동산 문제에 여론이 민감하다 보니 고분양가 지적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난개발 막겠다더니 난개발하는 게 문제”

과거 제주 초등학생들의 단골 소풍지이자 제주시의 도시숲인 오등봉(오드싱오름)도 민간공원 특례사업 갈등의 한가운데 있다. 높이 206m의 완만한 오름인 이곳은 지금은 어른이 된 제주도민들이 유년기를 보낸 장소다. 제주도는 이곳에 아파트를 품은 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76만4863㎡ 부지 중 9만1151㎡에 2025년까지 816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429가구 규모의 공동주택을 짓고 나머지 부지는 공원시설이 된다. 이미 사업자 선정까지 끝났지만 이곳의 개발은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제주도의회 관계자는 “원래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해제 뒤 난개발을 막기 위한 게 목적인데 오히려 오름 위에 아파트를 지어 난개발을 하겠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오등봉 문제는 중층적이다. 제주도가 섬이라서 갖는 문제들이 있다. 상하수도 문제, 용수공급 문제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다.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오면 그만큼 용량이 더 필요하지만 속 시원한 대책이 나오지 못했다. 생태 경관자원에 짓는 아파트는 환경문제와도 맞닿는다. 게다가 지역언론은 제주자치도가 오등봉공원 민간특례 사업자의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아파트 분양가를 올려줄 수 있다는 녹취를 공개했다. 부동의(不同意) 여론이 커지자 지난 4월 29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오등봉 민간공원 특례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 내용 동의안에 결론을 내리지 않고 심사를 보류했다. 함께 개발되고 있는 제주시 중부공원 사업 역시 함께 보류했다.

“민간공원 특례는 기본적으로 공원 사업”

경기도 광주시, 광주광역시, 제주도의 공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원인은 다양해도 갈등과 다툼, 송사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건 닮았다. 지난 3월 30일 전남 순천시의 삼산·봉화산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사업대상자 선정 과정이 부당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다. 주민들이 공익 감사를 청구해서 생긴 일이다. 4월 22일에는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허석 순천시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대전시는 법원의 판결로 취소한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다시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대전지법이 월평공원 갈마지구 내 민간 특례사업을 취소한 대전시 처분이 부당하다며 사업자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반대 여론으로 139만1599㎡ 부지에 공원과 아파트를 조성하는 사업을 취소했는데 당시 대전시는 취소 근거로 교통처리대책 미해결과 생태 및 경관 개선대책 미흡 등을 들었다. 사업자 측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서 “보완책을 찾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시는 월평공원 외에 매봉공원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항소심에서 패한 바 있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공원을 둘러싼 문제는 왜 이렇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는 걸까. 정창용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추진 전략을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한다. 일단 공정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게 필요하다. 민간기업에 비공원 수익시설 개발 권한을 주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사업계획서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수천억원이 넘는 사업에서 검토가 미흡하면 민간기업에 적정한 수준을 넘어 과도한 수익을 안길 수 있다. 규모나 분양가의 적정성 등에 대한 검토가 명확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공원시설에 대한 정밀한 검토과정을 통해 협상이 진행돼야 한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비공원시설이 중심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공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공원과 아파트는 보전과 개발,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장이다. 다만 적지 않은 곳에서 우린 원칙의 부재를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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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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