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악’이라고 쓴 표지판이 가라쿠니다케의 정상에 있다. 사진 출처: Tsuda의 작품. Flickr Creative License 이미지
‘한국악’이라고 쓴 표지판이 가라쿠니다케의 정상에 있다. 사진 출처: Tsuda의 작품. Flickr Creative License 이미지

일본 규슈 남쪽 깊숙한 곳에 ‘한국악(韓国岳)’이라고 쓴 표지판이 붙어 있는 산이 있다. 규슈 북쪽 도시 후쿠오카로부터 직선 거리로 200km 정도 내려온 남쪽 깊숙한 산지, 얼핏 보아 한국하고 별 인연이 없어 보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 언제부터인지 원주민들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 전부터, 그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을 ‘가라쿠니다케’라고 부른다. ‘가락국산’이라는 의미다. (일본에서는 ‘한국(韓国)’이라고 쓰고, ‘칸코쿠’라고 읽지만, 이 단어가 고문헌에서 나올 때는 ‘가라쿠니’, 즉 ‘가락국’이라고 읽는다. 과거에는 그렇게 읽었다는 얘기다. 그 이유 또한 흥미로운 포인트다. 지금 우리나라의 공식명칭인 ‘한국’이 어쩌면 과거 어느 시점에서 가락국 혹은 가야를 칭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 시사하기 때문이다.)

(왼쪽) 가라쿠니다케 위치. 출처: Google map.  https://www.google.com/maps/place/Mount+Karakuni/@32.7913666,125.8820249,5.79z/data=!4m5!3m4!1s0x353f10a33534b835:0x5f2adbc7430e4178!8m2!3d31.9341701!4d130.8615319?hl=en (오른쪽) 에비노 고원 쪽에서 본 가라쿠니다케. 출처: 663highland의 작품. Wikimedia Commons Creative Licens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bino_Plateau03n4592.jpg
(왼쪽) 가라쿠니다케 위치. 출처: Google map. https://www.google.com/maps/place/Mount+Karakuni/@32.7913666,125.8820249,5.79z/data=!4m5!3m4!1s0x353f10a33534b835:0x5f2adbc7430e4178!8m2!3d31.9341701!4d130.8615319?hl=en (오른쪽) 에비노 고원 쪽에서 본 가라쿠니다케. 출처: 663highland의 작품. Wikimedia Commons Creative Licens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bino_Plateau03n4592.jpg

왜 규슈 남부 깊숙한 곳의 산이, 이전부터 쭉 가락국산이라고 불려왔고, 또 그런 이름의 표지판이 지금까지 붙어 있는 것일까? 현지 가이드와 온라인 미디어 등을 통해 제일 많이 접할 수 있는 설명은, 오래 전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이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 고국 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얼른 들어서는 수긍이 갈만한 얘기다. 먼 타지에서 살게 된 사람의 무리가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터전에 옛 고향의 이름을 붙이는 예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 미국의 뉴욕도,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인들이 처음 정착했을 때 자국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이름을 따서 뉴암스테르담이라고 했고, 그 후 영국인이 이곳을 차지하고 영국 요크셔의 중심도시인 요크를 생각하며 ‘새로운 요크’라는 의미로 뉴요크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라쿠니다케의 경우, 실제로 현지에 가보면 그런 설명이 의아해진다. 우선 이곳에 아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지형이 험하다.

요즘에야 한국에서 가라쿠니다케까지 관광코스가 잘 형성되어 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규슈 제일 남쪽 카고시마로 간 후, U턴 방향으로 차를 타고 가라쿠니다케까지 북상하는 코스다. 거의 산정상 부근까지 차로 가서, 정상까지 두어 시간 트레킹을 하면 된다.

그 옛날엔 이렇게 남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쯔시로가 있는 서북쪽으로 접근하는 길에 비해 훨씬 더 길고 경사가 가파른 험한 산지이기 때문이다. 서북쪽엔 중간에 에비노 고원까지 경사가 완만하고, 거기서 가라쿠니다케까지는 거리가 짧은 편이다.

가락국 사람들이었다면 분명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움직였을 테고, 야쯔시로에서 가라쿠니다케는 구마가와라는 강으로 이어져 있긴 하다. 하지만 에비노 고원을 지나면서 상류 약 5km는 엄청난 경사의 급류로 요즘처럼 래프팅을 한다 해도 쉽지 않은 코스다. 큰 배로 바다와 큰 강을 움직였던 가락국 사람들이 즐겨 다녔을 만한 길은 아니다. 또한 이 일대는 활화산 지대로, 아직도 유황 불길이 치솟고 가스가 빠진 땅이 푹푹 꺼지는 곳이 여기저기 있어 위험하다.

(왼쪽) 기리시마 화산군의 지형도. 가운데의 최고봉이 가라쿠니다케. 출처: 퍼블릭 도메인, (가운데) 에비노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사이노가와라 협곡은 곳곳에서 유황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활화산 지형이다. (오른쪽) 사이노가와라 협곡에 “이 부근은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지대로 지하에 공동이 있어 밟으면 함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출처: 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왼쪽) 기리시마 화산군의 지형도. 가운데의 최고봉이 가라쿠니다케. 출처: 퍼블릭 도메인, (가운데) 에비노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사이노가와라 협곡은 곳곳에서 유황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활화산 지형이다. (오른쪽) 사이노가와라 협곡에 “이 부근은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지대로 지하에 공동이 있어 밟으면 함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출처: 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철광석도 나지 않고 석회암 지대도 없어, 별로 경제적 이득도 없는 활화산에, 가락국인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굳이 올라갈 이유는 없어 보인다. 어찌어찌 정상에 올라갔다 하더라도, 거기서 고향인 가락국이 더 그리워졌을 것 같지도 않다. 높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있어 400km 이상 떨어진 한반도는 물론 가까운 야쯔시로도 보이지 않는다. 화산지대로 현무암투성이인 산이나 주변의 경관이, 삼림이 무성했던 고향인 가락국의 산을 연상시켰을 리도 없다.

그런데 왜 이 산에, 그렇게나 뜬금없이, 가라쿠니다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걸까?

아주 간단하게 접근하면 의외로 답이 나온다. 거기가 가락국이었으니까 가락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거라는 시각이다. 뒷받침해줄 만한 근거들이 있다. 일단 묘켄에 관련된 지난 기사들에서도 보았던 ‘묘켄궁’의 소재 지도다. 이번엔 규슈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왼쪽) 규슈에 있어서 묘켄 사원과 가라쿠니다케의 위치. 원본 지도 구글맵에 일본 국토교통성 홈페이지 게재 지도를 참조하여 하천 표시. (오른쪽) 가라쿠니다케에 오르는 길목인 사이노가와라 협곡 화산지대에서 마주한 묘켄 석상을 스케치하고 있는 이종기.  출처: 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왼쪽) 규슈에 있어서 묘켄 사원과 가라쿠니다케의 위치. 원본 지도 구글맵에 일본 국토교통성 홈페이지 게재 지도를 참조하여 하천 표시. (오른쪽) 가라쿠니다케에 오르는 길목인 사이노가와라 협곡 화산지대에서 마주한 묘켄 석상을 스케치하고 있는 이종기. 출처: 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위 왼쪽 지도는 구글에서 ‘myoken shrine(묘켄 사원)’이라고 검색했을 때 나온 결과에, 일본 국토교통성에서 만든 하천 지도를 보고 이 사원들이 연결되는 하천 부분만 표시한 것이다. 가라쿠니다케를 삥 둘러싸고, 바닷가나 강으로 이어지는 곳에 다수의 묘켄 사원, 즉 묘겐궁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선 기사들에서 보았듯이, 여러 가지 정황과 문헌 근거를 종합해보면, 묘켄궁과 이나리 신사의 존재는 일본 열도에 있어서 가락국의 아주 직접적인 영향력을 웅변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엘리트층 수준에서 가락국과 일본이 서로 왕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락국이 일본 특정지역 사회 전체를 통치했을 정도의 영향력 말이다. 따라서 그 일대가 다 가락국 땅이었으니까, 그 산도 가락국산이라고 불렀던 게 아닐까 하는 추정이 아주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또 하나의 근거는 이종기의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지에서 알게 된 조력자의 차를 타고 야쯔시로 방면에서 가라쿠니다케에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에비노 고원을 조금 지난 지점에서의 일이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화산 지형의 협곡 어귀에서, “왠지 모를 강한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 석상에 마주치게 된다. “왼손엔 벼이삭을 쥐고, 오른손엔, 옛 항해자의 휴대품으로 보이는 질그릇 물병을 든 여인상이었다.”

벼 이삭과 항해자의 휴대품—지난 기사 ‘벼와 연꽃, 철제 농기구_ 가락국이 섬나라에 가져간 선물들’의 내용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석상이 묘켄의 상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거북배를 타고 쿠로시오 조류의 흐름을 뚫고 규슈로 건너와 앞선 농법과 농기구를 전해주어서, 지금까지도 ‘모치우케노오카미(保食大神)’, 즉 ‘먹을 것을 보장해주는 큰 신’으로 숭앙 받고 있는 존재, 묘켄 말이다. 가락국 왕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그녀의 석상이 서 있다는 것은 가라쿠니다케에 오르는 이 길목도 그 옛날에는 가락국 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에 한 가지 근거를 더 보태준다.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긴다. 지도를 보면 규슈를 비롯, 일본 전역에 묘켄궁이 산재해 있는데, 즉 가락국 땅이 여기저기 많았을 텐데, 왜 하필 지금의 가라쿠니다케에만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사실 가라쿠니다케는 그리 특별한 산이 아니다. 표준고도 기준으로 규슈 안에서 21번째니까, 높아서 유명할 리도 없고, 그리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접근성이 좋아 사람들이 즐겨 찾았을 산은 더더욱 아니다. 만일 이 시리즈의 추정대로 규슈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가락국 근거지가 있었다면, 이곳에만 특별히 ‘가락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을 이유는 딱히 찾아보기 어렵다.

한 가닥 마음이 가는 추론의 방향이 있다. 가락국 흥망성쇠의 파노라마에 있어서 한 흐름을 암시해주는 추론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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