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차두현 외교안보센터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1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차두현 외교안보센터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임기 말 북·미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 정권의 바람과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양측의 대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북한은 제재를 완화해 달라며 서로 기싸움을 벌이는 지금의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북·미 간 대화의 판이 마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고위급 실무 회담 정도는 이뤄질 수 있겠지만, 양측이 어떤 협상을 타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향후 북·미 관계를 전망한 것이다. 아산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이자 선임연구원인 차 센터장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국방현안팀장 등을 지냈다. 북한과 한·미 동맹 관련 실무를 경험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차 센터장과의 대면,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난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와 이에 따른 한·미, 북·미 관계 전망 등을 들어봤다.

그는 무엇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설명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노선에 대해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굉장히 열받는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적 이익은 중국에서 빼먹으면서 안전은 미국에서 보장해주길 바란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이 ‘비열한 친구’로 느껴지지 않겠나.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우리에게 친한 척하며 이득을 취하려고만 하는데, 대체 뭐지?’ 싶을 거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미국 중심의 질서를 지지한다는 명확한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이러한 ‘균형 외교’ 리스크를 상당 부분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앞으로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의 약속을 번복하면 미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에 신뢰를 잃는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미국에서는 ‘회담에서 립서비스만 하고 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중국에서는 압박을 통해 확실히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대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 담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벌써 이번 한·미 합의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 중요성’ 합의에 대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정 장관은 지난 5월 25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대만 관련 공동성명이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내용”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차 센터장은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라며, 한·미가 중국에 공동으로 행동한다는 약속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했다.

“만약 정말로 한·미가 대만 문제에 대한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합의를 내렸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오판을 내린 거다. ‘회담에서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안이한 태도다. 혹은 (한·미의 대만 합의에 대해) 의도적으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고 해도 문제다. 일단 미국부터 기만당했다고 여길 가능성이 있다.”

“한·미 동맹 확인은 큰 성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한·미 동맹 강화를 확인했다는 것과, 남북 관계와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는 점을 꼽는다. 이와 관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문구가 포함된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 우리가 북한과 협력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정책적 공간, 여유가 그만큼 생겼다”며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차 센터장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북·미가 대화로 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적어도 올해까지, 길게는 2년까지 북한과 미국은 지금처럼 지루한 눈치 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회담에서도 미국은 먼저 양보할 마음이 없다고 공언한 거나 마찬가지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포함한 기존 북·미 간 합의를 토대로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싱가포르 공동성명이야말로 ‘원론적’인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보겠다든가, 대북 제재에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등 구체적 논의는 없지 않았나.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을 비판한 바이든 행정부에서 협상을 서두르는 것은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는다.”

대북 제재에 이어 코로나19까지 덮쳐 막대한 피해를 보았을 북한이지만, 역시 협상 테이블에 먼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설명도 했다. 차 센터장은 “적어도 올해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티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며 간부들을 다그치고 청년들의 정신 개조를 강화하는 등 현재의 움직임을 보면, 북한은 일단 자기들끼리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부 결집을 다지는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이끌기 위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차 센터장은 “한·미가 우선 긴밀히 공조해야 하고, 공동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북한 인권’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만 예외로 둘 리 없다. 미국은 앞으로 현 수준의 제재를 유지하고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협상에 나설 것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북한 인권에 침묵으로 일관하면, 이번 회담에서 한 말들은 식언이 된다.”

차 센터장은 몇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한·미 동맹 쪽이 맞는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대북 제재나 중국 견제 동조 등 한·미가 이견을 보여왔던 부분을 정리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나아갔다”며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차 센터장은 “공동성명의 많은 부분이 앞으로 중국에 대해 한·미가 행동을 같이한다는 암시”라며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병에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행사에 두 대통령이 참석한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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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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