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심리서비스법’ 추진에 반대하는  한 청년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2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심리서비스법’ 추진에 반대하는 한 청년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심리상담사 자격을 심리학 전공자로 제한하는 법률개정을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면서 관련 업계에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미술치료나 놀이치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담치료를 해왔던 유관단체들은 “상담은 어느 특정한 학문 분야로 제한할 수 없다”며 세를 모으고 있다. 지난 5월 26일 기준 청와대 ‘보건복지부 추진 심리서비스 법률안 폐기 요청’ 청원에는 2만1275명의 인원이 동의 서명을 했다. 해당 글의 청원인은 “그동안 각 대학과 대학원에서 상담심리 혹은 심리와 관련한 학과를 졸업하여 현업에 종사 중인 분들과 현재 학업에 열중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오직 ‘심리학과’ 졸업자로 면허를 주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내용은 지난 5월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왔는데, 청원 하루 만에 동의 인원이 1만명을 넘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한국심리학회에 정책연구 용역을 맡겨 심리상담사 자격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심리학회가 주축이 돼 수행한 정책연구 용역 결과인 ‘심리서비스 법률 1안’을 보면 심리상담 업계에서 통용되던 기존의 다양한 자격증을 ‘심리사’로 통합해 자격증이 아닌 면허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골자로 되어 있다. ‘심리사’라는 직업을 신설하되 자격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하는 면허제로 운영한다는 것인데, 특히 심리사의 자격조건을 ‘심리학과’ 졸업자로 한정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법률1안 제7조에 있는 ‘심리사 면허 자격 취득 요건’이다. 심리사가 되려는 사람은 국가시험에 합격한 뒤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시험에 응시하는 이들의 조건을 ‘심리학을 전공해 학사·석사학위를 취득했거나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로 한정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상담심리 관련 학회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상담학회, 한국미술치료학회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미술치료학회 창립 멤버인 정현희 동의대 보육·가정상담학과 명예교수는 심리학 전공자로 심리사의 자격을 제한한 데 대해 “상담(심리치료)은 어느 특정 학문의 분야라기보다 다양한 학문 분야가 각자의 학문적, 심리치료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정신건강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며 “일례로 실제 심리치료 현장에서 아동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언어보다 놀이나 미술활동을 통한 치료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민간 학회의 의견”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정부가 심리학회에 용역 맡긴 게 발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연구결과보고서는 심리학회가 작년 12월에 돌린 것으로 복지부 검토를 거치지 않은 보고서”라며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물밑에 있던 학회 간 갈등 상황이 첨예하다”고 말했다. 상담심리 분야의 민간 자격증 난립은 2018년과 2019년 국정감사에서 2년 연속으로 복지부가 지적받은 사항이고, 당시 이 문제를 지적한 의원실과 연관된 학회가 심리학회라 그쪽에 연구용역을 줬을 뿐이라는 게 이 복지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은 복지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비판이다. 무엇보다 연구용역을 이익단체 중 하나인 한국심리학회에 발주했다는 점에서 객관성에 의구심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한국심리학회는 국내 대학교·대학원 심리학과 교수들이 주축이다. 반면 이에 맞서는 상담심리치료사들의 주축은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예술치료학회, 한국미술치료학회 등이다. 현재 상담심리 분야에 수많은 학회가 있고 이들이 저마다의 민간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이 같은 현장의 상황을 무시했거나 잘 모른 채 특정 학과의 이익을 대변하는 학회에 정책연구 용역을 맡긴 것이 논란의 단초라는 지적이다.

특히 업계에서 양대 학회로 꼽히는 한국상담심리학회와 한국상담학회는 1급 전문상담사, 2급 전문상담사 등 세분화된 상담사 자격과 기준을 갖추고 있다. 이들이 이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 같은 자격을 갖추기 위해 교육받고 있는 이들의 숫자가 상당한 상황에서 ‘심리학과 전공자’로 새로운 자격조건을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극단적으로는 이들이 대학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하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당장 생계 걸린 문제” 반발

특히 이와 같은 법률안이 현실화할 경우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격렬한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양대 심리상담 관련 학과 재학생인 이세정씨는 “심리상담 시장에는 심리학 외에도 상담학, 가족학, 예술치료학 전공자들이 포함돼 있다”며 “복지부가 이 같은 법안을 추진하면서 논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데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심리상담 분야 전공 교수 1570명도 해당 법률안을 폐기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복지부에 전달했다.

복지부가 이 같은 민간 자격증의 법제화 방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민간 자격증이 난립하는 가운데 일부 무자격 상담사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방문한 이를 성추행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업계에서도 상담사들의 자격과 단속이 강화되는 등 규제가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현재의 심리서비스법 가안에 반대하는 이들도 대부분 심리상담 분야 자격 관리를 법제화하자는 기본 취지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이미 현장에서 심리학과 출신 외에도 상담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이 상당한 현실을 무시하고 심리학과 출신으로만 상담 자격을 제한하는 법안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현희 교수는 “자격증 남발과 무분별한 센터 설립을 막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면서도 “심리학 학위만이 남발되는 자격증과 무분별한 센터 설립을 막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세정씨도 “현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과 심리상담 분야 관련 대학생, 나아가 내담자(來談者)인 국민이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리학회가 수행한 연구용역은 제정 필요성에 대한 기초연구로 최종 법률안에는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며 “심리학회의 연구 결과 역시 ‘원 오브 뎀(one of them)’일 뿐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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