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대학생 박은서씨에게는 요즘 ‘남는 시간’이 없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일정이 꽉 차기 때문이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을 피해 두세 명씩 만나느라 도리어 약속 횟수만 늘어났다.

“오붓하게 만나다 보니 친구들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왁자지껄 단체모임에서 실없는 소리나 했는데 두셋이 만나서는 속 깊은 이야기도 하거든요.”

대학생 한지윤씨에게 박은서씨의 모습은 낯설기까지 하다.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인 저에게 코로나19는 치명타예요. 코로나19만 아니면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라도 만나는데 원격 수업만 들으니 동기들을 만날 기회도 없어서 내내 집에만 있어요.”

한씨의 하루는 노트북 앞에서 시작해 노트북 앞에서 끝난다.

“수업 듣다가 유튜브 보다가 인터넷 검색 좀 하면 시간이 다 가요. 인스타그램도 안 하니 온종일 저 혼자만 보내는 셈이네요.”

코로나19는 두 대학생의 모습처럼 MZ세대를 심리적으로 분리시켜버렸다. 어떤 MZ세대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도 그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인관계를 넓히고 여가를 보내고 있지만 어떤 MZ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이 MZ세대는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됐고, 그 결과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고립에 취약한 20대 1인가구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보자. 올 1분기에 실시한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보면 전 국민의 우울감이 짙은 상황에서도, 특히 MZ세대의 우울과 불안 점수가 높게 나타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20대와 30대는 우울 측정 검사에서 6.7점을 나타냈는데 5.5점인 40대, 5.2점인 50대나 4.3점인 60대의 우울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 결과다. 총점이 27점인 이 검사에서 10점 이상을 받으면 ‘우울 위험군’으로 분류되는데 우울 위험군인 20대와 30대는 30%에 달했다. 약 20%인 40대나 50대, 14.4%인 60대의 우울 위험군보다 더 많았다.

이 조사 결과는 다른 심리측정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온다. 박용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등 연구진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봐도 20대의 우울감이 다른 세대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유독 MZ세대, 그중에서도 20대가 왜 코로나19 사태에 심리적으로 취약한 것일까. 최근 발표된 두 논문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대학생들의 원격 교육에 대한 이종만 동양미래대 경영정보학과 교수의 논문과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의 논문이다.

두 논문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대부분 대학생이 원격 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유튜브 사용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늘어났다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결론을 종합하자면 원격 교육을 받는 대학생들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유튜브를 더 자주 시청하게 되었으며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유튜브 시청이 늘어날수록 외로움은 더욱 커져 대학생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대학진학률이 70%를 넘는 상황에서 이 연구들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MZ세대 중 20대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MZ세대의 상당수는 1인가구였다. 통계청의 2020년 자료를 보면 MZ세대, 즉 20~30대 1인가구는 215만가구에 달한다. 전체 1인가구 수의 35%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전체 가구 수(2034만3000가구)의 10%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20대 1인가구의 삶의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20대 1인가구의 16.3%는 주택 이외의 거처, 그러니까 오피스텔이나 기숙사나 여관 같은 숙박업소에서 거주한다. 상당수(66.5%)는 월세살이이고 살고 있는 곳의 평균 넓이는 약 8.6평(28.6㎡)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30대 1인가구는 그나마 낫지만 20대 1인가구의 연 평균소득은 3500만원에 그친다. 미 캔자스대 사회학과 김창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그마저도 이 평균소득의 82.6%만 번다.

보통은 경제적 궁핍함에 주목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20대 1인가구의 사회적 삶 역시 풍족한 편은 아니다. 노혜진 KC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논문 ‘청년 1인가구의 사회적 관계’를 보면 MZ세대 1인가구가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짧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초에 1인가구의 일반적인 여가활동은 혼자 TV를 시청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인데 MZ세대 1인가구는 그 시간이 더 길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MZ세대, 그중에서도 20대 1인가구는 여러모로 취약한 계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측면에서 쉽게 고립될 수 있다. 보통은 이런 특성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스스로가 ‘아싸’라고 말하는 한지윤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것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루에 말 한마디 안 하는 날이 많아요. 가족이라도 함께 살거나 회사라도 다니면 모르겠는데 아무런 경험이 없다 보니 아는 사람도 없고 뭘 하며 살아야 할지도 몰라 하루 종일 아무 말 않고 집에만 있곤 해요.”

대개 가족과 함께 살거나 경제활동 경험이 있어 쌓인 인맥이 있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특별히 더 내성적이지 않아도 고립될 수 있는 것이 젊은 1인가구라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면서부터 이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박탈감과 비관론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는 모든 세대에 걸쳐 다양한 악영향을 끼쳤지만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아마 MZ세대일지도 모른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코로나19와 청년노동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로 구직이 어려워졌다고 답한 MZ세대는 91.7%에 달했다. 채용이 연기되거나 채용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제일 흔한 일이고 정식으로 직업을 구하기 전에 아르바이트할 기회조차 잃고 있다. 또 자격증 시험 일정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구직 정보를 구할 길도 막막하다.

이런 와중에 사회적 활동은 거의 멈춘 상태다. 경제적·심리적으로 부모로부터 갓 독립한 MZ세대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정립해간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이 기회를 앗아갔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했던 김정은씨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대구에 사는 김정은씨는 원래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대학 수업이 원격으로 전환되면서 독립이 미뤄졌다. 9월 새 학기가 되어서야 자취를 시작했지만 “굳이 자취를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대면 모임이 몇 번 있었고 동아리 추천도 받았지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사람 사귈 기회가 다 지나갔어요. 동기 몇몇이랑 밥 먹는 모임도 만들었는데 흐지부지되고 이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뿐이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어요.”

그는 이런 상황이 “암울하다”고 말했다.

“제가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예전 선배들처럼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암울한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도 이럴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암울해요.”

지금 MZ세대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박탈감’이다. 많은 MZ세대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박탈감에 시달리는데 그건 경제적인 부분에만 그치지 않는다. 김정은씨의 언니 김희은씨는 지난해 첫 해외여행을 떠나려다 포기했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첫 해외여행을 준비하던 친구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다 없던 일이 되었어요.”

박탈감은 쉽게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어린 MZ세대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은씨는 무기력감 때문에 “인터넷 중독이 되었다”고 말했다.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인터넷에는 늘 새로운 글이 올라오니까 계속 새로고침만 하게 되더라고요.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시간 지나는 것도 잊게 돼서 계속 유튜브만 보게 되고요.”

손영준·허만섭 교수의 논문에서는 실제로 대학생들의 유튜브·카카오톡·인스타그램 사용시간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조사했다. 유튜브 사용시간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1시간이나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2시간22분이었지만 이후에는 3시간23분을 기록했다. 대면 소통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시작한 유튜브 시청은 도리어 대면 소통을 방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원하는 콘텐츠만 골라서 시청할 수 있는 유튜브 플랫폼의 특성상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시청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면 소통이 단절되어가는 상황에서 MZ세대는 쉽게 비관론에 빠지게 된다. ‘코로나19와 청년노동 실태’ 조사에서 “나는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한 사람은 32.9%, 3명 중 1명에 그쳤다. “앞으로의 고용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10.9%밖에 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기약하려면

비관론에 빠진 젊은 MZ세대는 쉽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보건복지부의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 현황’을 보면 자살 시도자 중 20대는 6395명으로 전체 자살 시도자 2만2572명의 28.3%에 달했다. 4명 중 1명이 넘은 셈이다.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자살 시도자 수가 늘어난 것 역시 20대였다.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보인다. “지난 2주간 자살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답한 20대는 전체의 22.5%였다. 30대는 21.9%였는데, 2030의 경우 15.3%인 40대나 그보다 적은 50~60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비율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심각성마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대개 코로나19의 악영향에 대한 문제 제기는 경제적인 부분에 집중되기 마련이라 심리적인 문제는 부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울 위험군이 늘어나고 자살 시도자 역시 증가하는 상황에서 심리적인 문제는 더이상 경제적 문제에 뒤따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위축된 MZ세대의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는 실마리는 단지 코로나19 사태가 해소되는 데에 있지 않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코로나19 세대의 활발한 사회활동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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