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대는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농로를 한참 따라갔다. 백연리의 푸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섰다. 들판에 넓게 펼쳐진 논을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농번기인 6월 모가 빽빽이 심겨 있는 논 옆으로 좁고 긴 논두렁길이 이어졌다. 드문드문 세워진 전봇대와 비닐하우스 하나, 가축 축사 한 군데를 제외하고 인공 구조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멀리 보이는 산 정상쯤에 도라산 전망대가 보였다. 이 초록 일색의 들판에 문산~도라산 고속도로의 나들목이 세워질 예정이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서부터 파주시 장단면의 도라산역까지를 잇는 10.75㎞ 길이의 신설 고속도로다. 월롱면의 LG디스플레이 산업단지에 있는 산단 분기점에서 서울~문산 고속도로와 이어진다. 서울과 도라산역을 잇는 길인데, 앞으로 개성까지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되면 서울부터 개성 너머 평양까지 직선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정부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가 서울~평양 간 직교역로의 시작 단계라고 보고 추진 중이다. 건설 시행 주체인 국토교통부는 이 사업의 취지를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를 대비해 교통시설을 확충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작성해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를 얻어냈다. 지난 6월 17일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도 끝났으니 이제 국토부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 본안에 환경부가 동의하기만 하면 착공에 들어간다. 한국도로공사는 착공 예정일을 올해 12월로 보고 있다.

총공사비 5634억원

국토부가 예상하는 총 공사 비용은 5634억원이다. 해당 고속도로를 통해 당장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는 ‘0원’이다. 북한과 관계가 악화하거나 교류협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사용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2018년 예비타당성 조사도 면제돼 고속도로를 통한 경제적 가치를 가늠해볼 기회도 없었다. 면제 사유는 ‘남북 교류협력사업’이다. 서울과 평양을 잇는 도로가 이미 공사 예정지 인근에 2개나 있는데 왜 도로를 지어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자유로와 국도 1호는 바로는 아니지만 서울과 평양을 연결할 수 있다. 1998년 현대 정주영 회장이 소 1000마리를 이끌고 북쪽으로 건너간 통일대교가 있는데 평화대교(가칭)를 또 건설해야 한다는 것도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경제성도 마땅치 않은 도로를 현 정권의 핵심사업이란 이유로 추진하며 치러야 할 또 다른 대가는 우리나라 대표 습지인 장단반도 일대의 생태계 파괴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100여개의 전국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극구 반대하는 이유다.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한 이상돈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나라 대표 습지인 장단반도를 지나가 이 지역 습지 및 생태계 훼손이 불가피하다”며 “포유류 서식지 훼손, 로드킬 동물 발생, 임진강에 도래하는 법정보호종에 대한 서식지 훼손이 우려된다”고 자문했다.

지난 6월 16일 찾은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일대. 이 지역 텃새인  백로를 금방 만날 수 있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16일 찾은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일대. 이 지역 텃새인 백로를 금방 만날 수 있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환경부도 노선 변경 제의

환경부도 처음에는 국토부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노선 변경을 제의했으나 지금은 조건부 동의로 돌아선 상황이다. 지난해 8월 국토부에 다시 회신한 내용을 보면 “민통선 지역의 생태적 보전가치를 감안하여 기개발지를 활용한 노선 선정이 바람직하지만, 승인기관이 남북협력 사업의 특수성 등으로 노선 변경이 곤란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환경영향 최소화 및 갈등 해결을 위한 추가대책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며 한걸음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환경부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하는 정우용 사무관은 지난 6월 18일 주간조선과 통화에서 “기존 개발 지역을 지나게 되면 생활환경이 크게 양분된다”며 “생태적 우려는 해당 노선이 더 크지만, 생활환경을 고려해 노선을 양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환경부가 노선에 동의한 이상 국토부가 예상하는 대로 올해 12월에 착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도로공사 측은 이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6월 17일 DMZ 생태관광지원센터 공연장에서 열린 주민설명회는 순탄치 않았다. 설명회가 열리는 공연장 바로 앞에서 환경단체들이 큰 소리를 내며 설명회 주최에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파주 어촌계, 임진강지키기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는 설명회를 진행하는 동시에 스피커로 성명서를 읽으며 설명회를 방해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역시 고속도로가 관통하게 될 장단반도의 생태계다. 고속도로가 동쪽으로 지나고 나들목이 세워질 계획인 장단반도는 그야말로 생태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장단반도는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각종 멸종위기 철새들이 찾아오는 ‘새들의 고향’이다. 여름 철새인 뜸부기가 날아오고, 겨울에는 재두루미와 독수리 등이 월동하러 이곳을 찾는다. 모두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귀한 새들이다. 이외에도 한국 토종 개구리이자 세계자연보호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취약(VU)등급인 금개구리도 장단반도 전역에 걸쳐 관찰된 바 있다. 도라산역 고속도로 종점인 장단반도 북쪽에서는 국토교통부의 자료조사 결과 삵의 배설물이 7~8차례 발견됐다.

주민설명회 바로 전날인 6월 16일 장단반도를 찾았을 때 노현기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야생동물 볼 생각은 말라”고 미리 일러뒀다. 겨울 철새는 일찌감치 날아갔고, 여름 철새인 뜸부기는 기온이 더 올라가는 7~8월에야 한반도를 찾는다고 한다. 금개구리나 구렁이, 삵 등은 주로 밤에 활동할 뿐 아니라, 몇 날 며칠을 같은 자리에서 잠복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경계심이 크기 때문에 더 보기 어렵다고 노 위원장은 설명했다. 고속도로가 지어질 부지를 확인할 목적으로 노 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장단반도를 방문했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진입하려면 사전에 군 허가를 받아야 한다. 통일대교를 건너 임진강을 지나면 장단반도로 진입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한국도로공사가 환경부에 보낸 계획노선 위치도. 빨간 실선이 고속도로 계획 노선이다. 빨간 점선으로 표시된 구간이 생기면 평양까지 고속도로가 이어진다. ⓒ자료 : 국토부
지난해 7월 한국도로공사가 환경부에 보낸 계획노선 위치도. 빨간 실선이 고속도로 계획 노선이다. 빨간 점선으로 표시된 구간이 생기면 평양까지 고속도로가 이어진다. ⓒ자료 : 국토부

멸종위기종 등 야생동물 서식지

‘동물 볼 생각은 말라’고 했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5분에 한 번꼴로 백로를 볼 수 있었다. 하천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흰색 중백로다. 백로류는 이곳에 자리를 잡고 번식하는 텃새다. 이날 본 백로들은 논 가에서 먹이 사냥을 하기도 하고, 논두렁길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기도 했다. 노 의장은 “저렇게 논두렁길에 서 있는 애들은 잠시 사냥을 멈추고 휴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기가 큰 백로 한 마리와 새끼로 보이는 두 마리는 논에서 먹잇감을 찾다가 차가 가까이 오자 곧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목을 빳빳이 들고 날아갈 준비를 하면서 차가 지나갈 때까지 주시했다. 다른 논에서는 황로 한 마리가 개구리를 건져 올리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고라니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차 앞을 지나가기도 했고, 흰뺨검둥오리 세 마리가 풀숲에 숨어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12월 공사가 시작되면 야생동물이 여기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공사로 인한 날림먼지, 하천 오염, 건설폐기물 등으로 야생동물 서식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한국도로공사는 2019년 7월 발간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초안) 요약서’에서 ‘계획 미수립 시 현 상태의 환경질 및 자연환경 유지할 수 있음’이라며 공사의 환경 영향을 예상했다.

고속도로 건설 같은 대규모 개발산업에 대한 환경단체의 반발은 이전에도 있었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과 비슷한 사례가 ‘도롱뇽 소송’으로 유명한 천성산 터널 건설이다. 2003년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가기 위해 천성산 터널 착공이 시작됐으나, 지율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와 환경단체가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6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지율 스님 등 환경단체는 터널 공사가 도롱뇽 서식지를 심각하게 파괴한다며 도롱뇽을 원고로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스님의 100일 단식 소동을 거쳐 대법원까지 올라간 해당 소송은 “환경이익이 침해된다는 개연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천성산을 지나는 원효터널이 개통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주변 습지에 심각한 영향을 줬다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역시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에 난항을 겪은 사패산 터널도 마찬가지다.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과 양주시 장흥면을 잇는 이 터널은 2001년 공사가 시작됐지만 2007년에 이르러서야 완공됐다. 이 두 경우는 환경단체가 중대한 국가건설사업에 발목을 잡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토부가 든 첫 번째 사유는?

전문가들은 문산~도라산 고속도로가 지어지는 장단반도의 생태적 가치는 이전의 사업들보다 훨씬 크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부처인 환경부부터 국토교통부에 ‘노선을 바꾸라’고 제안했다는 것이 가장 큰 방증이다. 주간조선이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환경부는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에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알림을 보내 “임진강 횡단 및 장단반도 습지 편측을 지상으로 통과하는 사업 추진 시 멸종위기종 서식지 훼손 및 생태계 단절 등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며 노선 변경을 요구했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국도 77호선 등 기존에 개발된 도로를 활용하는 방안이나, 임진강 동측으로 장단반도를 거치지 않는 노선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는 내용이다. 해당 노선이 어려우면 장단반도를 지나는 하저터널을 건설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노선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회신했다. 남북협력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현 정부 임기 내 착공해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 의원이 확보한 자료 중 국토부가 지난해 7월 환경부에 보낸 의견서에는 왜 노선을 바꿀 수 없는지 적혀 있다. 국토부가 첫 번째로 든 사유는 ‘대외 여건’으로, 해당 고속도로가 ‘4·27 판문점 선언 이행 및 남북협력을 상징하는 핵심사업’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기존에 개발된 국도 77호선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노선을 변경할 경우, 사업자를 재선정하고 절차를 처음부터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사가 1.5년 이상 지연돼 남북협력 의지 퇴색이 우려된다고도 썼다. 지난 6월 17일 주민설명회에서 고속도로 건설의 취지를 설명한 한국도로공사 건설처 김아름 차장은 “당장 도로에 대한 수요가 있어서 짓는 것이냐”는 질문에 “미리 (서울과 도라산역) 연결을 해놓으면 앞으로 북한과 관계를 고려해서 이을 수 있다”며 “교통 상황이 혼잡한 지역 등 수요가 있는 지역뿐 아니라 낙후된 지역에도 고속도로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존 도로를 활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자유로와 통일로는 예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민들이 오가거나

관광 목적으로밖에 쓸 수 없다”며 “큰 간선도로를 만들어 물류가 이동하는 길을 만들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민설명회로 끝?

장단반도 인근 주민들은 입장이 갈린다. 장단면 농지를 소유한 주민들은 대체로 개발을 환영하는 눈치다. 백연리와 내포리 등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는 농지 소유자들은 “착공이 언제고 보상금은 언제 받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웃 여럿이 모여 설명회를 찾은 주민들 중 한 명은 “찬성하는 이유가 보상금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남북이 연결되고 여기 길이 뚫어진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느냐”고 말했다. 지나가던 주민 한 명은 설명회장 앞에서 큰 목소리로 시위를 벌이는 환경단체를 가리키며 “저 사람들은 밥 안 먹고 사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임진강 개발에 영향을 받는 파주 어촌계 주민들은 ‘임진강 오염시키고 어민들 쫓아내는 사업을 멈추라’며 반대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공사가 시작되면 농사에 영향을 줄까 우려하는 농민도 있었다. 고곡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한 노인은 “지금 농사짓는 지역은 전국 학교 급식에 공급하는 쌀을 짓는 친환경 단지인데 공사가 시작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

시민단체는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생태적 가치가 큰 해당 지역의 생태 훼손이 국가적 손실인 만큼, 주민들만 모여서 진행하는 설명회로는 국민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현기 임진강지키기대책위원장은 “국토부가 절차만 흉내 내는 구시대적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지역주민, 시민환경단체와 논의하라는 환경부의 조건을 받아들여 협의체를 운영하는 동안이라도 행정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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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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