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가끔 통계자료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 문해력에 대한 자료가 그렇다.

얼마 전, ‘사흘’을 ‘4일’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논란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진 적이 있었다. ‘사흘’을 모르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논란부터 시작해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어휘력과 문해력이 낮은 것 같다는 주장들이 제기되면서 한국 성인의 문해력이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자료가 떠돌았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최근에 실시한 2018년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보면 한국 성인들의 문해력은 OECD 평균인 266점보다 높은 273점이었다. 그중에서도 16~24세 그룹은 세계에서 4번째, 25~34세 그룹은 5번째로 문해력이 좋았다.

이 자료만 보자면 요즘 MZ세대를 두고 종종 문해력이 낮다는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 불합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OECD의 통계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 번째 힌트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지난 1년 평균 독서량은 7.5~8권으로 많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성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연령에 관계없이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고 답한 성인은 47.9%에 달했다. 이를 고려해보면 평균 독서량으로 도출된 수치는 말 그대로 ‘평균’일 뿐,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사이의 간격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책을 비롯해 다양한 텍스트를 많이 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간격 또한 클 것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하나는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다. 이 평가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것이지만 바로 위 세대인 MZ세대의 문해력을 짐작할 수 있는 참고자료는 된다. PISA 항목 중에서는 ‘읽기’가 있는데 이 항목에서 한국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곤 한다.

OECD 중 가장 낮은 디지털 문해력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점수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2006년에만 하더라도 평균 556점이었던 읽기 점수는 3년에 한 번 평가를 치를 때마다 낮아져 2018년에 평균 514점이 되었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디지털 문해력’과 관련된 조사다. OECD가 가입국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가짜뉴스와 거짓정보를 잘 다룰 수 있는지 평가해본 결과를 보자.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수 있는지 평가했을 때 한국 학생들의 점수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디지털 문해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받았는지를 볼 때도 OECD 평균에 못 미쳐 낙제 점수를 받았다. 이는 평가 대상이 된 학생들뿐 아니라 한국 학생들 전체, 나아가 한국 성인들까지도 결코 높지 않은 디지털 문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세 가지 자료가 의미하는 바를 종합해 보면 ‘문해력의 위기’가 헛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읽기 능력은 확실히 위기에 다가가고 있다. 읽는 사람은 적은데 그마저도 읽기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접하는 정보량은 방대하다고 할 정도이지만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MZ세대가 실제 읽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자. 100일 전 아들을 낳은 30살 강가람씨는 육아 정보를 유튜브를 통해 얻는다. 육아와 관련된 서적은 한 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책은 예전 이야기잖아요. 솔직히 저자들도 믿을 만한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유튜버들은 유명한 사람이 많거든요. 유튜브에 나오는 정보도 최신 정보니까요.”

그는 이전부터 책이나 영화에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많이 시청했다.

“솔직히 말하면 책 읽어주는 채널들을 보고 구입한 도서들은 거의 없긴 해요. 그래도 유튜브를 보는 것만으로도 독서에 갈음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영화를 다 볼 수가 없으니까 인기 있는 영화가 왜 인기 있는지 살펴본 적도 있어요.”

강씨에게 그중 기억에 남는 책이나 영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줌(ZOOM)으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던 강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잠시만요”라고 대답한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이야기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27살 김연희씨는 시간이 남을 때면 스마트폰을 켜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읽곤 한다. 뉴스 읽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지만 김씨는 자신의 ‘읽기’에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제목 한 번 읽고 휘리릭 스크롤하면서 순식간에 글을 넘기는 편이에요. 특히 좀 분량이 길다 싶으면 읽다가 스크롤해서 휙휙 넘겨요.” 꼭 뉴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 긴 글이 나올 때면 마음먹고 읽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읽기도 싫을 때가 많아요.”

그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읽는’ 텍스트는 웹툰이다. 포털사이트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웹툰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공개되는 웹툰도 자주 본다.

“웹툰이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는 매력적이고 훌륭한 장르지만 저의 읽기를 방해한다고 해야 하나? 그림과 곁들여 짧은 글이 없으면, 글자로만 꾸려진 긴 글을 만나면 ‘읽지’ 않아요.”

강씨와 김씨뿐 아니라 많은 MZ세대가 그렇다. MZ세대는 많이 읽는다. 그러나 이 ‘읽기’는 ‘눈으로 보기’에 가깝다. 특히 대부분의 ‘읽기’가 스마트폰이나 PC 화면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텍스트를 정독하거나 천천히 읽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읽는’ 대상은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읽다가 지루해지면 창을 꺼버리면 되고, 읽기 싫은 것은 넘길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면 앞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책과 다르다.

이런 특징이 원래는 디지털 읽기의 장점이었다. 10~15년 전만 해도 링크를 타고 이어지는 텍스트가 마치 뇌의 흐름과 같다는 점에 주목한 낙관적인 해석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학교에서 억지로라도 전통적 읽기를 시행하는 10대나 디지털 읽기의 비중이 유튜브 등에만 쏠린 기성세대와 달리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고 웹페이지 탐색이 자유로운 MZ세대의 읽기는 대부분 디지털 읽기에 치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MZ세대의 많이 읽지만 실제는 ‘보기’에 가까운 ‘읽기’, 즉 ‘보는 읽기’가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지고 있다.

‘보는 읽기’가 이끄는 ‘집단적 독백’

MZ세대가 가장 많이 읽는 텍스트가 디지털 텍스트라면 그중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텍스트가 주를 이룰 것이다. 글과 그에 따른 댓글, 이어지는 대화로 이뤄지는 이 디지털 텍스트들은 얼핏 보기에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읽기와 쓰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

‘보는 읽기’는 대개 선택적으로 이뤄진다. 마음먹는다면 끝없이 텍스트를 이어갈 수도 있는 디지털 공간의 특성상 읽는 사람은 적당히 발췌해 읽는 습관을 기르게 된다. 날이 갈수록 ‘보는 읽기’에 익숙해지는 MZ세대를 떠올려보자. MZ세대는 예전과 달리 모든 정보를 다 읽고 나서 필요한 것을 추려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취합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있다. MZ세대 신입사원의 교육을 수년째 담당하고 있는 한 통신사의 인사팀 부장 A씨의 설명이다.

“20대 2년 차 사원에게 보고서를 읽고 보완할 점을 정리해서 제출해달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정말 하루 종일 그 보고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몇 장 되지도 않는 보고서를 읽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물어보니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힘들다고 대답하더군요.”

또 ‘보는 읽기’는 때로 ‘집단적 독백’ 상황을 만들어낸다. 논란이 이는 사건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고 가정해보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해도 대다수의 댓글은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것에 그친다. 그 댓글에 대한 다른 의견이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때는 디지털 읽기가 상호작용을 이어가며 더욱 활발하고 확장된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읽기가 익숙해질수록 MZ세대들은 집단적 독백에 익숙해지고 있다.

집단적 독백이 은연중에 자주 일어나는 곳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다. 이야기가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야말로 읽기는 보기로 대체되고 흘려 읽기, 부분 읽기, 읽고 이해하지 않기가 습관처럼 일어난다. 마주 앉아 얼굴을 보며 하던 예전의 대화와는 다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MZ세대의 ‘보는 읽기’는 더러 빈약한 소통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보는 읽기’가 단지 그 사람의 문해력을 떨어트리는 것에 그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보는 읽기’가 익숙해질수록 소통은 원활히 이뤄지기 힘들다. 읽고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내놓아야 하는데 읽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소통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MZ세대의 많은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제대로 읽고 있는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를 점검할 시점이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읽기, 그러니까 종이책을 붙잡고 줄글을 짚어가며 읽는 방법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읽기는 디지털 읽기와 달리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소통을 확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읽기를 무작정 늘리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없다. 이 시점에서는 새로운 읽기 방법을 찾아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읽기 교육은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전통적 읽기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 읽기로 전환할 무렵, 그러니까 학교 생활을 마치고 사회인이 될 무렵에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고 ‘보는 읽기’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MZ세대의 읽기가 위기에 달한 이유다.

읽기가 단지 독해 능력을 기르는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개인과 사회의 소통 문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이제는 새로운 읽기 방법을 배울 차례다. 그것은 읽기의 전환기에 놓인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는 읽기’를 벗어난다면 좀 더 나은 소통이 이뤄질 수도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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