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가 지난해 12월 23일 광주 동구 광주지법 앞에서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가 지난해 12월 23일 광주 동구 광주지법 앞에서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교과서 P. 86에 근거해서 [최근 정치권의 윤석렬 X파일의 장모와 처, 이준석의 병역비리 등의 쟁점을 염두에 두며]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근거해서 7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교과서 P. 86에 근거해서 [최근 정치권의 윤석렬 X파일의 장모와 처, 이준석의 병역비리 등의 쟁점을 염두에 두며]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플라톤의 <국가>에 근거해서 7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전북의 한 고등학교 도덕 과목 시험에 출제된 문제다. 출제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이 매우 심하게 드러난 사례다. 윤석열 X파일, 이준석의 병역비리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사실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온갖 유언비어와 추측이 난무하는 이슈를 염두에 두고 답을 기술하라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오늘날의 학생을 가르치는 자들은 오직 자신의 정치적 견해, 편향성을 드러내는 데만 급급하고 학생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제대로 된 가치관, 국가관을 가지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선동되지만 학생을 가르친다는 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바야흐로 자기만족에만 빠지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플라톤이 이야기한 ‘정의란 무엇이고 그것이 인간 삶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앞서, 우리 학생들은 일부 어른들의 편향된 시각으로 정의된 ‘정의’를 강요받는다. 권력자들이 충분히 철학하지 아니하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상과 시선을 심는 한 우리나라의 불행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학생이라면 이런 답을 출제자에게 주고 싶다. 교원이라는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인 ‘정치적 중립’을 망각한 채, 학생들에게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서술하라는 교사.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을까?

교원에게도 일정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다. 교원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선언한 우리 헌법의 정신, 그리고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령의 취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되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 대법원도 ‘헌법에 의하여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인 교원이 감수하여야 하는 한계’라며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2. 4. 19. 선고 2010도6388 판결)

정당 가입은 불가, 정치단체는 가능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서도 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정당법에서도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아울러 사립학교 교원의 경우 공무원은 아니나 사립학교법 제55조에 따라 국립학교, 공립학교 교원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 따라서 교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 4월 23일 정당외의 정치단체의 결성과 가입제한은 위헌으로 결정되었고(2018헌마551), 이에 초중등교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사 등)의 경우 정당만 가입이 불가능하고 다른 정치단체 참여는 가능해졌다. 정치단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여, 교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이종석·이은애·이선애 헌법재판관이 반대의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교원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반대하는 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경우, 교육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및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으므로 이는 제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만 가입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정리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선거 국면에서 특정 정당, 특정인 지지 또는 반대는 금지

정당 가입 이외에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행위도 금지된다.(국가공무원법 제65조) 예컨대 ‘1.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것, 2. 서명 운동을 기도(企圖)·주재(主宰)하거나 권유하는 것, 3. 문서나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 4. 기부금을 모집 또는 모집하게 하거나 공공자금을 이용 또는 이용하게 하는 것, 5. 타인에게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에 가입하게 하거나 가입하지 아니하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것’ 등이다.

위와 같은 규정을 위반한 교원은 단순한 징계를 넘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이를 정치운동죄라고 하는데,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3년 이하의 징역과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만약 동 죄로 실형, 자격상실 등을 받는 경우 당연퇴직 사유에 해당한다.

선거 국면이 아니라면?

그런데 선거 국면이 아닌 경우 법률의 공백이 발생한다. 교육기본법에 교원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별도의 형사처벌 법규는 두고 있지 않다. 아울러 사립학교법 제58조에서도 ‘정치운동을 하거나 집단적으로 수업을 거부하거나 어느 정당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선동하였을 때’ 직권면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마찬가지로 별도의 처벌 법규는 두고 있지 않다.

결국 선거 국면이 아닌 이상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어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기 위해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한다고 하더라도 ‘형사처벌’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 경우 면직이나 징계는 가능할 수 있는데, 이때에도 단순히 개인적인 편견을 드러낸 경우라면 징계가 어려울 수 있다. 지난 2019년 11월 곽상도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2019년 국가공무원법, 공직선거법 위반 등 정치운동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교원은 292명이었으나, 실제 정치 중립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교원 가운데 징계받은 경우는 8.2%(24명)에 그쳤다.

이번 전북의 한 고교 시험문제 출제 사례에서 보듯이 일부 교원들이 수업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견해를 강요하거나 정치적 구호를 외치게 하는 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처벌규정을 신설하여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이 꼭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교원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화할 경우,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생길 뿐만 아니라, 교육의 위축 또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학생들의 교육기본권 보장 측면을 고려하면, 교원의 정치적 행위를 어디까지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 위반에 대한 제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정재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