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요즘에는 거의 모든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이 존재한다. 여성이면 ‘김치녀’, 학생이면 ‘급식충’이나 ‘잼민이’다. ‘김치녀’는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2010년대 초반부터 쓰인 단어다. ‘급식충’은 급식을 먹는 청소년 학생 집단을 일컫는 말인데, 접미사 ‘충’은 대개 ‘맘충’ ‘틀딱충’처럼 집단을 비하할 때 붙는 표현이다. ‘맘충’은 아이를 기르는 여성을, ‘틀딱’은 노인 집단을 비하하는 단어다. ‘똥꼬충’은 남성 성소수자, ‘개독교인’은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누가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걸까.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혐오차별 국민인식 조사’ 보고서를 보자. 조사 당시 ‘일 년 동안 혐오 표현을 사용한 적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20대는 14.0%, 30대는 11.9%였다. 한 자릿수에 그치는 다른 연령대의 사용률과 차이가 난다. 서울시에서 지난해 펴낸 ‘2020년도 청년 인권의식 및 혐오 표현 실태조사’ 보고서를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 년 사이 혐오 표현을 사용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사람은 15.9%에 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서는 사용률이 더 높다.

지난해 발표한 ‘혐오 표현 대응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혐오 표현을 사용한 적 있는 20대는 38.9%, 30대는 20.4%에 달했다. 40대만 되어도 13.3%로 사용률이 떨어지는 데 비해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옳지 않아도 혐오 표현을 쓴다

특이할 만한 것은 혐오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MZ세대가, 그 표현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서 혐오 표현이 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는 MZ세대는 10명 중 7명이 넘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여러 혐오 표현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도 대부분 동의하며, ‘혐오 표현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국가인권위의 조사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로 꼽힌 것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를 보면 혐오 표현 대상이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 즉 혐오 표현을 쓸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제일 많았고, ‘대상자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사용했다는 응답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혐오 표현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혐오를 ‘표현’하기 위해 쓴다는 얘기다.

‘충’이라는 접미사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A씨의 사례가 그렇다. 대학생인 A씨는 중·고등학생을 ‘급식충’이라고 종종 부른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데, 과외를 하다 보면 정말 ‘급식충’이라는 말이 딱 맞는 학생들을 만나게 돼요. 급식충이라는 말이 좋지 않다는 건 저도 알죠. 앞에서 대놓고 쓰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 외의 다른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요.”

노인을 비하하는 ‘틀딱’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틀니를 딱딱거린다’를 줄인 말이다. 틀딱이라는 단어는, 틀니에서 연상되듯이 노인들의 무력함을 내포하는 동시에 거슬리게 딱딱거린다는 의성어로 노인들의 행동을 비하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만약 어떤 노인이 공공장소에서 다소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고 그 행동을 비난하고 싶다면 ‘틀딱’이라는 표현 말고는 마땅히 찾을 만한 단어가 없다. ‘맘충’ 역시 마찬가지다. ‘맘충’은 ‘극성 엄마’와 다르다. ‘개념이 없다’는 표현으로도 대체 가능하지만 이 표현에는 ‘맘충’과 같은 강력한 비난이 담겨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혐오 표현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매력’이다.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다는 점이다.

MZ세대는 이 대체 불가능한 표현을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쓴다. MZ세대의 혐오 표현은 어떤 특정한 집단에 집중되지 않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의 ‘코로나19를 통해 본 대한민국 시민사회와 혐오’ 보고서를 보면 MZ세대는 거의 모든 혐오 표현에 관대하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나 조선족을 향한 혐오 표현에 대해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에 써도 된다’고 응답한 MZ세대는 적게는 33%, 많게는 43%에 달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뚜렷이 높은 수치다.

다른 집단을 이해할 기회가 없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은 매우 다양한데 ‘짱깨’라는 표현은 식상할 정도다. ‘착짱죽짱’은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라는 말로 중국인의 행동을 비난할 때 자주 쓰인다. ‘흑형’이라는 단어는 피부색으로 사람을 결정하는 전형적인 혐오 표현인데 혐오 표현이라는 인식이 옅어 매우 자주 쓰이는 단어다.

MZ세대는 또 특정 연령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에 관대한 경향을 보였다. MZ세대 중 20대는 4명 중 1명꼴로 연령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을 ‘써도 된다’고 응답했다. ‘틀딱충’이나 ‘급식충’ 같은 단어가 실제 그들을 대변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MZ세대 내에서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혐오와 노인 혐오가 동시에 일어난다.

최근 접미사 ‘린이’를 둘러싸고 펼쳐졌던 갑론을박은 그 일부분이다. ‘린이’는 어린이에서 따온 신조어 접미사로 ‘주린이’는 ‘주식’과 ‘어린이’를 합쳐 주식 투자를 갓 시작한 사람을 일컫는 식이다. 일반적으로는 ‘주린이’ ‘헬린이(헬스)’처럼 초심자를 부를 때 쓰이지만 종종 혐오의 뜻이 담길 때가 있다. 어색하고 어설프며 갓 시작했기 때문에 능숙한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가리킬 때 ‘린이’라는 말을 종종 쓰기 때문이다.

노키즈존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린아이의 출입을 아예 금지하는 노키즈존 설치에 찬성하는 비율이 MZ세대에서 더욱 높게 나타난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19년 조사 결과가 암시하는 바가 있다. MZ세대는 아동에 대해 최소한 배타적이고 때로 차별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동시에 노인 세대에 대해서도 강한 혐오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MZ세대의 혐오는 어느 한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MZ세대가 다른 집단과 드물게 소통한다는 점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보통 MZ세대는 사회활동이 활발한 세대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러 집단과 접촉할 기회를 갖는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의 MZ세대는 좀 다르다.

MZ세대가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10대 청소년 시기는 입시에 몰두하는 시기다. 진학 준비생으로서 MZ세대는 ‘시민교육’을 받을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시민교육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자질을 길러주는 교육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권리·역할에 대한 교육이나 다른 집단에 대한 이해와 소통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을 받은 MZ세대는 드물 것이다. 입시가 끝나고 나서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정규직으로 취업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 힘든 사회에서 정규직 취업을 위해 20대를 바치는 MZ세대에게 다른 집단을 이해하라는 주문은 그저 이상적인 말일 수밖에 없다.

대신 MZ세대는 몇 가지 단어로만 다른 집단을 이해한다.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특징이 단어, 즉 표현으로 굳어진다. 이 맥락에서 보면 혐오 표현은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노인을 예로 들면, 참견하기 좋아하고 공공질서를 쉽게 어기는 노인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MZ세대는 ‘왜’에 대한 질문 대신 노인 집단에 대한 표현을 만든다. ‘틀딱’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노인은 ‘틀딱’이 된다. 한번 노인을 틀딱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틀딱’에 속하지 않는 노인은 ‘별개의 것’이 된다. 다시 말해 틀딱이라고 말하기 힘든 노인은 쉽게 잊힌다. 틀딱스럽지 않은 모습을 본다고 해서 노인 집단 전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는 않는다. 단지 예외일 뿐이다. 그러다가 틀딱이라고 비난할 만한 모습을 본다면 ‘틀딱’에 대한 인식은 강화된다.

표현이 만들어내는 혐오

그런데 이 ‘강화’는 개인적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혐오 표현이 생겨나고 강화되는 과정은 다 함께 모였을 때 더 잘 일어난다. 특히 대부분의 혐오 표현은 온라인에서 형성되고 그곳에서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사람들이 경험한 혐오 표현은 대개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를 보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경험한 혐오 표현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온라인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상을 직접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상을 직접 마주치지 않기 때문에 혐오 표현을 쓸 때 죄책감이 덜하다. 양방향 소통은 표현을 쉽게 모방하게 만든다.

그리고 집단적으로 강화된 혐오 표현은 집단 기억을 만든다. 처음에는 ‘짱깨’에 불과했던 중국인이 ‘착짱죽짱’으로 발전되는 과정이 바로 그렇다. 본래는 중국인에 대한 호오(好惡)가 없던 사람도 ‘착짱죽짱’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면서 예외는 잊어버리고 ‘착짱죽짱’을 강화하는 과정을 거쳐 이를 내면화하는 단계를 밟는다. 단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집단적인 혐오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가 집단적인 혐오까지 발생시키는 이 과정을 이해한다면 MZ세대가 왜 광범위하게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혐오가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 더욱 견고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미 그 조짐이 보이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19는 대면 소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대신 온라인 등 비대면 소통을 증가시켰다. 그런데 비대면 소통은 지극히 자의(自意)적이다. 원하는 부분만 집중해 볼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정보는 쉽게 걸러낼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혐오 표현들을 강화하기에 좋은 시스템이다.

더욱이 코로나19는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코로나19 이후 국민의 일상 변화 조사’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안이나 두려움, 짜증이나 화, 분노나 혐오 감정이 증가했다는 사람이 과반을 훌쩍 넘어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다. 이 상황에서는 부정적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혐오 표현은 그에 해답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비대면 소통에 더 익숙하고 혐오 표현을 더 자주 접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혐오 표현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되었다고 느낀다면 아마 착각은 아닐 것이다. 혐오는 이제 MZ세대에게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