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MZ세대는 분열돼 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양분돼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화적으로 단절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정 세대에는 서로 공유하는 문화적 경험이 있었다. 딱히 시청하지 않더라도 ‘대세’인 예능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있었고, 또래집단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영화든 노래든 또래집단이 듣고 보는 콘텐츠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웬만해서는 대화가 통할 만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 MZ세대는 좀 다르다. 친한 친구끼리도 완전히 다른 콘텐츠를 향유하는 일이 잦다. 건설회사에 재직 중인 28살 윤지희씨의 가족을 예로 들면 쉽게 알 수 있다.

윤지희씨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있다. 셋은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매일같이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대화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저는 요즘 이미 끝난 ‘강철부대’라는 TV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는데 그걸 보는 친구는 없어요. 대신 드라마 ‘라켓소년단’을 보는 친구는 있어요. 다른 한 친구는 원래 TV를 별로 보지 않아요.”

각자 다른 콘텐츠에 빠져 있는데도 대화는 가능하다.

“제가 좋아하는 출연자에 대해 한참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반응을 해줘요. 그런데 저를 따라 보겠다는 친구는 없네요. 저도 그래요. 드라마가 왜 재미있는지 친구가 말하면 들어주지만, 딱히 같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는 세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는 윤씨는 도쿄올림픽 기간 동안 ‘쿵야 세계관’에 빠져 있다. ‘쿵야’는 게임 캐릭터들인데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낸 김제덕 선수가 ‘주먹밥쿵야’라는 캐릭터와 닮았다 해서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밈(meme)이 만들어졌다. 양궁 김우진 선수는 심박수가 마치 수면상태일 때처럼 낮다는 뜻에서 ‘수면쿵야’, 배구 김연경 선수는 경기 중 자주 쓰는 욕설을 순화해 ‘식빵쿵야’로 부르는 식이다.

“동기들끼리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대화를 하는데 쿵야 세계관을 아는 사람이 저랑 다른 동기 하나, 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아예 일대일 채팅방에서 따로 올림픽 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지요. 저희가 빠지니 단체채팅방에서는 올림픽에 대한 얘기를 안 하더군요.”

윤씨의 사례는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문화적 경험을 하는 지금의 MZ세대를 잘 보여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TV를 일주일에 5일 이상 보는 50대는 93.4%, 60대는 96.9%였다. 그러나 MZ세대의 TV 이용 빈도는 낮았다. 주 5일 이상 TV를 보는 20대는 49.7%에 불과했다. 30대에서도 71.3%였다. 대신 스마트폰 이용 빈도는 매우 높았다. 20대 97.4%, 30대 99.0%였다.

이 통계 결과는 MZ세대가 이전 세대와 달리 더 이상 하나의 통일된 매체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신 MZ세대는 각자의 매체로 각자의 콘텐츠를 즐긴다. 유튜브, 틱톡, 여러 소셜미디어가 즐길 거리를 제공해준다.

콘텐츠의 ‘개인화’, 아는 사람만 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콘텐츠를 각자의 매체로 즐기는 ‘개인화’는 원래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것처럼 보였다. TV는 ‘대중매체’라는 말에 걸맞게 하나의 콘텐츠를 다수의 대중이 즐기는 형식으로 콘텐츠를 공급한다. 시청자에게는 선택할 기회가 적다. 그러나 유튜브는 보고 싶은 콘텐츠만 골라볼 수 있다. 보고 싶을 법한 콘텐츠를 알고리즘이 추천해주기도 한다. 유튜브에서는 시청자가 콘텐츠에 대해 의견을 남길 수 있고 제작자와 소통할 수 있다. 참여의 기회가 더 많고 불필요한 콘텐츠 소비 없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대중매체의 일방향성을 보완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기는 지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개인화된 콘텐츠가 소통, 공유, 참여 같은 가치를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묻는다면 마냥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는 어렵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가 ‘인물과 사상’에 실은 글 ‘SNS·모바일·유튜브 시대의 언론’에는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2001년에 이미 우려했던 바가 인용되어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의 예상치 않은, 선택하지 않은 대화 기회를 많이 잃고 있다.”

이를 테면 유튜브가 그렇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은 ‘피식대학’이다. 구독자만 138만명에 달한다. ‘B대면데이트’나 ‘한사랑산악회’ 같은 콘텐츠는 지상파 프로그램은 물론 광고 시장까지 진출했을 정도로 ‘대세’이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본 채널의 구독자만 170만명인 유튜버 ‘양띵’은 한국의 게임 유튜브 장르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 구독자 195만명의 유튜버 ‘올리버쌤’은 상당수의 영상이 100만~200만회의 시청 기록을 자랑하지만 ‘아는 사람만 안다’.

‘피식대학’을 보는 사람이 ‘올리버쌤’ 채널을 함께 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유튜브 채널은 수없이 많고 각자의 취향대로 콘텐츠를 골라보기 때문에 사실상 유튜브 구독 목록이 같은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보는 MZ세대에게 이제 콘텐츠는 각자 즐기는 것이 되었다. 대신 부분부분 아는 콘텐츠는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MZ세대는 밈으로 이야기한다?

OTT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직접 제작한 한국 드라마 ‘킹덤’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드라마다. 단 넷플릭스 가입자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자연히 ‘킹덤’을 시청한 MZ세대보다 시청하지 않은 MZ세대가 더 많다. 대신 ‘킹덤’이 어떤 내용인지는 대개 안다. ‘킹덤’에서 어떤 부분이 호평을 얻었는지 알기도 한다. ‘킹덤’을 가지고 여러 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례로 ‘킹덤’을 시청한 외국인 시청자들이 한국의 ‘갓’에 열광하는 소셜미디어 캡처 화면은 지금까지도 공유되고 있다. ‘킹덤’에 나온 좀비 모습은 ‘움짤’이 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MZ세대는 더 이상 전체 콘텐츠를 알지 않아도 된다. 밈으로도 충분히 콘텐츠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똥 밟았네’ 노래가 밈이 되어도 그 노래가 처음 등장했던 애니메이션 ‘포텐독’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가수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의 가사 ‘세상이 왜 이래’에 감명받아 패러디를 만들어내지만 굳이 노래를 찾아 듣지 않는다.

문제는 이 밈들이 어떤 MZ세대에게만 ‘유행’이 된다는 사실이다. 밈의 수명이 짧기도 하다. ‘펭수’는 2019년 신드롬까지 일어날 정도로 인기를 얻은 캐릭터였다. 펭수가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 구독자는 한때 200만명에 달했다. 펭수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만들어지고 파생 캐릭터 상품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그러나 그 인기가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펭수를 좋아하는 팬들은 많지만 밈이 될 정도의 인기는 몇 개월에 불과했다. ‘세상이 왜 이래’ 밈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밈이라는 것이 별 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2002년 첫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배우 김영철이 했던 대사 ‘사딸라(4달러)’는 밈이 되었다. 원래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극중에서 미군과 임금을 협상하는 장면이었는데 주인공이 무조건 ‘사딸라’를 외치던 장면만이 남아 밈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무엇인가를 ‘사달라’고 말해야 할 때 대신 ‘사딸라’를 외치는 식이다. 이때 ‘사딸라’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그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딸라’가 쓰일 뿐이다. 그러니 밈은 오래가기도 어렵다. 몇 번 반복되고 나면 그 유쾌함이나 기발함이 빛을 바랜다. 밈으로 이뤄진 MZ세대 문화가 오래, 넓게 공유되기 어려운 이유다.

다시 말해 MZ세대는 끊임없이 밈으로 대화하지만 그 밈은 계속해서 바뀐다. 사실 밈으로 대화하는 MZ세대도 일부분에 불과하다. 밈을 모른다고 해서 굳이 찾아 배울 필요는 없다. 예전에는 드라마 재방송을 보거나 TV 예능 프로그램을 녹화한 영상을 다시 보곤 했을지 모르지만, 요즘 밈은 쉽고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몰라도 ‘사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다. 가끔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더라도 일시적인 일에 불과하다. 오히려 밈을 반복적으로 오래 쓰는 MZ세대가 있다면 ‘촌스럽다’고 구박받을지도 모른다.

공유하는 문화적 기억이 없는 세대

마케팅 측면에서도 MZ세대 문화의 짧은 유통기한, 좁은 영역은 눈여겨볼 만하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등장하는 캐릭터 ‘최준’은 어떤 MZ세대에게는 특출한 유명인이지만, 그 존재를 모르는 MZ세대도 무척 많다. 그런 경우에는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광고일지라도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각자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MZ세대의 공통된 감성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MZ세대는 공유하는 문화적 기억이 사라져가는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MZ세대에게 몇몇 지배적인 문화적 기억이 남아 있다. 어릴 적 TV에서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주제가로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MZ세대의 다음 세대부터는 그런 ‘추억’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유하는 문화적 기억이 없다는 것은 양면적이다. 각자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도 분명히 있다. 소통의 창구가 단절되어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콘텐츠의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만약 서로 다른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면 이해하려는 노력은 헛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취존’, 즉 ‘취향 존중’이라는 단어가 MZ세대에게 중요한 표어처럼 작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MZ세대는 나의 콘텐츠를 굳이 이해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존중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흩어진 각자의 문화적 경험이 어떻게 하나의 세대문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관찰해볼 문제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