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직원들이 검사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직원들이 검사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손 소독하고 (검진) 설문지 작성해주세요.”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온종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790번을 반복하자 진이 쑥 빠졌다.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선별진료소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일 체험을 하는 동안 진료소에는 총 790명이 다녀갔다. 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세워진 임시선별진료소라 매연과 흙먼지를 마시며 일을 해서 그런지, 일이 끝나자 목에서 칼칼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오늘과 같은 중노동을 마치고 퇴근하는 의료진들은 내일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진료소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9시. 10분 전 도착했을 때 이미 텐트 밖에는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줄잡아 30~40명 서 있었다. 부랴부랴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진료소 안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박스 2개와 2개 사이를 천막으로 이어 마련한 33㎡(10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기자는 진료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손 소독제를 뿌리고 거리두기 수칙을 지키도록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이름, 주민번호, 연락처 등을 적는 검진 설문지 작성이 늦어지거나 접수하러 가는 동선이 꼬여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돕는 일이었다.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에 들어오는 검사자들에게 손 소독을 안내하고 있는 직원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에 들어오는 검사자들에게 손 소독을 안내하고 있는 직원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동료 직원과 틈틈이 얘기를 나눠 보려 했지만, 도무지 짬이 나질 않았다. 대화는커녕 계속해서 밀려드는 검사자들로 인해 앉아 있을 틈도 없었다. 정신없이 안내를 도운 지 2시간이 지나자 검사자 수를 카운팅하는 검진 설문지 위 숫자가 30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곳 선별진료소 오전 총괄을 맡은 정배현 용산구 보건소 주무관은 “이번 주에 오신 기자님은 그래도 상황이 좀 나은 편”이라며 “1500명씩 검사를 받으러 오던 지난주는 진짜 바빴다”며 웃었다. 11시가 지나서야 긴 줄이 사라졌다. 한숨 돌리며 좀 앉으려는데 계속 들어오는 검사자들 때문에 그마저도 3분을 넘기지 못했다.

의료진은 교대 없이 7시간 꼬박 일해

의료진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의료진들은 창문에 부착된 고무장갑에 팔만 끼운 자세를 계속 유지한 상태로 서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 비인두도말(PCR) 검사를 하는 의료진들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간 채 창문을 두고 서서 비대면으로 검사를 진행한다. 팔이 고정된 자세로 앞에 선 검사자 콧속으로 검사 장비를 넣고 검체를 채취하는 일이다. 오전에 3시간 가까이 검사를 계속한 한 의료진은 연신 스트레칭을 하며 어깨를 풀었다. “마스크 내리고 코만 보여주세요” “앞으로 가까이 좀 와주세요”를 수백 번 반복하는 동안 목소리가 점점 기계적으로 바뀌어갔다.

콧속 깊숙이 면봉을 찌르는 검사를 무서워하는 어린이들을 달래는 것도 의료진의 몫이다. 엄마 손을 붙잡고 검사를 받으러 온 형제를 달래느라 이날 의료진은 진땀을 뺐다. 대여섯 살쯤 되는 형이 검사를 받으면서 울음을 터뜨리자 검사를 앞둔 동생이 공포에 질린 울음을 터뜨렸다. 허둥지둥 컨테이너 박스 밖으로 나온 의료진은 행정직원의 도움으로 아이 머리를 붙잡고 겨우 검사를 끝냈다. 오전 근무가 끝나고 창문 밖에서 보이는 지친 얼굴의 의료진에게 “힘드시죠”라고 말하자 말없이 웃어 보였다.

오전·오후·야간에 걸쳐 교대하는 구청 직원들과 달리 의료진들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7시간을 꼬박 일해야 한다. 코로나19 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의료인의 수가 한정된 탓이다. 이곳 선별진료소는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온 간호사, 임상병리사 4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 모두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겠다고 자원해서 온 사람들이다. 코로나19 4차 유행이 시작된 지난 7월 중순부터 진료소 운영시간이 3시간 늘어났지만, 도저히 이들이 연장 근무를 할 상황이 아니어서 서울시 소속 의료진들이 파견을 나와 일하고 있다.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중인 시민의 모습.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중인 시민의 모습.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3일 서울 용산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사실 오전 업무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할 만한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고비는 1시가 지난 오후부터 찾아왔다. 본격적인 더위도 이때부터였다. 최고 기온이 36도였던 지난주에 비해 이날은 폭염이 한풀 꺾였는데도 방호복 안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에어컨 한 대와 대형 선풍기 등 냉방시설 네 대가 돌아가는 진료소 안은 31도를 찍었다. 부직포로 된 긴팔 가운을 입고 위생모자, 페이스실드, 위생장갑까지 착용한 터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갑갑했다. 전신 보호복에 덧신까지 신어야 하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일하는 건 생각만 해도 힘들었다. 정배현 주무관은 “요즘 같은 날씨에는 레벨-D 방호복을 입기 어렵다”며 “(긴팔 가운 방호복도) 통풍이 안 되긴 마찬가지지만, 죄다 비닐로 된 레벨-D 방호복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에어컨 틀어도 내부는 31도

오후에 다시 진료소 문을 여는 시간인 오후 1시가 다가오자 잔디광장을 둘러싸고 다시 50명 이상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딸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검사를 받으러 온 여성, 미열이 느껴져 검사를 받으러 온 식당 직원 등 문을 열자마자 검사자들이 밀려들었다. 오전보다 한층 더 혼잡해진 탓에 일손이 부족한 접수 업무를 맡게 됐다. 검사자가 설문지에 적은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검사 번호에 맞게 검체 도구를 건네주는 일이었다.

“윤정씨! 이게 3이야, 5야? 전화번호는 꼭 한 번씩 다시 확인해야 돼, 알겠어?”

사람이 뒤에 잔뜩 밀린 데다 숫자 하나라도 잘못되면 큰 착오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접수 창구 직원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옆에 검진 설문지가 쌓여갈 때마다 조급한 마음에 눈앞이 하얘졌다.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로 2시간을 일하다 보니 검사자 수는 613명을 지나고 있었다. 어깨가 결리고 머리까지 지끈지끈했다.

서울 용산역 앞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 검사를 위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용산역 앞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 검사를 위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날 오후 3시쯤은 소나기가 왔는데, 천막과 천막 사이를 연결한 틈으로 빗물이 고였다가 한꺼번에 주르륵 쏟아져내렸다. 보건소 마당이나 안쪽에 마련된 선별진료소가 아니라 임시로 마련된 진료소는 이처럼 환경이 열악하다. 이곳 용산역 임시선별진료소는 역 앞 차도 한복판에 있는 잔디광장에 급히 꾸려졌다. 컨테이너 박스 2개 사이에 천막을 길게 이어붙여 진료 공간을 마련했다. 비대면으로 일하는 의료진들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일하고, 행정 지원 인력은 천막 밑에서 일하거나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가 창문을 통해 검사자들을 안내한다. 화장실도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간이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흙바닥 위에 매트만 깐 바닥은 워낙 울퉁불퉁한 탓에 서 있어도, 의자를 놓고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팠다. 서울시 내에 마련된 56곳 임시선별검사소가 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을 견디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상황이 나아진 편이다. 7월 말까지만 해도 텐트 내부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의료진이 일하는 컨테이너 박스 외에는 여분의 내부 공간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이 오래 지속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박승일 용산구 자치행정과장은 “지난해 12월 처음 진료소 문을 열었을 때는 서울시가 초기에 요청한 대로 3개월까지만 운영할 생각이었다”며 “모든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시작한 데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씩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간식을 가지고 진료소를 찾은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상황이 자꾸 길어져 여기 계신 (직원) 분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달라 말하기도 미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노고에 고마워하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정작 의료진들은 잠깐 간식 먹을 짬도 내지 못했다. 의료진들은 퇴근한 후에야 간식거리를 챙겨 집으로 갔다. 이날 오후 9시까지 용산구 선별진료소에는 993명의 검사자가 다녀갔고, 전국에서 총 9만2569명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최전선에는 이렇게 체력의 한계까지 버티고 일하는 의료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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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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