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합친 말로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20~30대를 아우르는 말
 ⓒ일러스트 허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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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은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쳤지만 MZ세대에게는 특히 그렇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부터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계속해 우울감을 가장 많이 호소하는 세대가 MZ세대다. 특히 20대는 조사 초기에는 가장 덜 우울한 연령층으로 꼽혔었지만 이후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 지금은 30대와 더불어 가장 우울한 연령층이 되었다. 우울감은 심각할 경우 극단적인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살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도 MZ세대에게서 가장 높았다.

이 조사 결과가 알려지자 MZ세대의 정신적 문제를 주목하는 눈이 많아졌다. 더욱 좁아진 취업문, 캠퍼스를 거닐지도 못하는 대학 생활 같은 모습들이 MZ세대의 우울감을 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마치 MZ세대는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아 움직임이 멈춘 듯 가라앉아 보였다.

그러나 MZ세대는 정체돼 있는 게 아니라 분명 변화를 겪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 방향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강화되는 필터버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20학번 정은영(가명)씨는 처음 가본 대학 캠퍼스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도 비대면으로 치렀어요.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동기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죠.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처음 대면 수업을 하게 되어 학교에 갔는데 썰렁한 기분이 들더군요. 북적이는 캠퍼스, 활발한 대화 같은 건 없었어요. 강의실은 조용했고, 처음 가본 과방에는 하필이면 아무도 없었어요. 강의실에서 비대면으로만 인사했던 동기와 한 자리 건너 앉아 ‘안녕’ 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했어요.”

수업을 다녀와서 정씨는 며칠간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렇게 황량한 모습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지방에서 상경해 혼자 살고 있어서 누군가 위로해줄 사람도 없었지요.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어요. 수십 개의 댓글을 읽으며 대신 위안을 삼았어요.”

정씨는 비대면 수업을 하는 지난 1년 내내 노트북을 끼고 살았다.

“인터넷 사용량이 굉장히 늘었어요. 수업도 비대면으로 하는 데다가 사람 만나기도 자유롭지 않으니까요. 어느 순간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을 인터넷을 하고 살고 있었어요.”

정씨의 경험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소영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가 MZ세대를 상대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19는 MZ세대에게 고립감, 우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이는 인터넷 중독에까지 이르게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매년 조사하는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를 보면 MZ세대의 주(週)당 인터넷 이용시간과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2019년과 비교했을 때 2020년에 최소 1시간에서 최대 3시간까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눈에 띄는 것은 유튜브 같은 동영상 앱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간도 큰 폭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MZ세대의 주당 동영상 앱 서비스 이용시간은 2019년 4.7~5.6시간에서 6.5~8시간으로 늘었다.

문제는 이 늘어난 시간들이 MZ세대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MZ세대들이 접속하는 인터넷 환경은 개인화되어 있다. ‘개인화’란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듯이 사용자 각자의 취향에 맞게 꾸려진 인터넷 환경을 말한다. 유튜브만 해도 사용자가 그간 보아왔던 동영상, 인터넷 사용 기록 등이 반영되어 서로 다른 동영상을 추천받게 된다.

이 개인화된 서비스는 ‘필터버블’이라는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필터버블은 ‘확증편향’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데 확증편향이 판단의 영역이라면 필터버블은 제공받는 정보의 영역에 가깝다. 다시 말해 각자의 취향에 맞게 걸러진 정보만을 제공받는, 그래서 더 취향이 강화되는 현상을 필터버블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필터버블은 단순히 포털 서비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인터넷 사용자가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 그곳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성향 등이 어우러져 ‘나만의 온라인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전까지는 그래도 MZ세대에게는 필터버블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부 활동이 활발한 MZ세대에게는 필터버블이 일어나더라도 교류를 통해 약화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그 기회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대신 필터를 강화시킬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는 MZ세대의 필터버블을 강화시켰다.

필터버블이 강화시키는 혐오

코로나19로 강화된 필터버블에는 특징이 있다. 원래 필터버블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필터’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긴 하지만,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필터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모든 대유행 전염병의 특성이기도 하다. 대유행 전염병은 언제 유행이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비관적인 감정, 지속되는 유행에 지친 우울감 등을 불러일으킨다. 이 감정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이다.

여러 사회조사들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비난과 두려움, 나아가 혐오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한국인사이트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 바를 보면 인종, 지역, 성 지향성에 대한 혐오 표현들이 코로나19의 유행에 따라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인종 차별적인 혐오 표현들, 단지 ‘짱깨’ 같은 단어뿐 아니라 ‘중국인을 출입금지 시켜야 한다’거나 ‘중국(인)은 미개하다’ ‘조선족 때문에 범죄율이 높다’ 같은 부정적인 표현들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은 종교 때문이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이 때문에 1차 대유행 시기 지역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 발언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성소수자 집결지 등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유행했던 것과 관련해서는 성소수자 차별 표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코로나19 같은 대유행 전염병은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찾으려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유행의 원인에 따라 달라지는 혐오 발언은 거꾸로 원인을 찾아 그 책임을 돌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습성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혐오 발언들에 대한 조사 결과는 혐오의 대상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책임을 돌릴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그 대상은 달라진다. 중국인이었다가 신천지 교인이었다가 성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사람들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비난할 대상을 만들고 시기에 따라 옮기는 모습이 확인되었다’고 언급했다.

코로나19로 강해진 혐오는 일종의 원형(原型)이 되었다. 기존의 혐오와는 또 다르다. 기존에도 혐오는 점차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감정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한국인사이트연구소의 조사에서도 여성 혐오나 장애인 혐오와 관련된 표현은 코로나19와 상관없이 꾸준히 이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에 혐오는 일상처럼 자리 잡았다. 한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을 떠넘길 대상을 찾고 그에 대한 혐오 표현을 꺼내놓는다.

혐오는 복제된다

한 조사 결과를 보자.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조사한 ‘코로나19를 통해 본 대한민국 시민사회와 혐오’를 보면 혐오·차별 발언에 대해 ‘어느 정도 사실에 입각한 표현이기 때문에 써도 된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 대상이 중국인이든, 코로나19 확진자든 심지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혐오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MZ세대가 많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20대의 경우 거의 모든 혐오 표현에 대해 “사실이니까 써도 된다”고 말한 사람이 가장 많은 연령층에 속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앞서 이야기한 ‘필터버블’을 짚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MZ세대의 필터버블은 단순히 정보를 걸러내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어떤 MZ세대의 필터버블은 마치 또래집단에 속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을 좌우할 수 있는 주요한 것이다. 소셜미디어 사용량이 늘어나고, 자주 출입하는 커뮤니티가 생길수록 MZ세대의 사고방식부터 언어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필터에 맞추어 변화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런 상황을 가속화했다. 이전까지는 필터버블에 갇힌 MZ세대가 일부에 불과했다면, 코로나19로 급증한 인터넷 사용량은 자신만의 필터를 가지고 있지 않던 MZ세대까지 필터를 갖추게 만들었다. 한 건설사에 재직 중인 30살 최성환씨가 그런 사례다.

“지난해부터 재택근무를 자주 했는데 감시하는 눈이 없다 보니까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이 점점 늘어나더군요.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들어갈까 말까 했던 커뮤니티에 매일같이 드나들게 되고, 그곳에서 사용하는 언어 같은 것을 익혀버렸어요. 여자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커뮤니티 용어를 썼는데 여자친구가 예리하게 지적하더라고요.”

온라인에서는 혐오와 혐오 표현이 만연한 상태다. 일종의 유희거리이기도 하다. 이 유희거리를 자주 접하는 MZ세대가 혐오를 ‘복제’하기 시작한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다. MZ세대는 스스로에게 맞게 구성된 온라인 환경에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감정들을 흡수하고 쏟아낸다.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나 표시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의 논문 ‘감염병과 혐오의 팬데믹 속 언론의 자화상’을 보면 혐오 표현을 접하는 사람은 또 다른 혐오 표현 사용자가 되어 복제해 퍼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가 단순히 MZ세대의 우울감만을 증가시켰다는 분석은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MZ세대는 코로나19로 변화했다. 예전보다 더 개인적이고 더 비관적으로, 코로나19는 MZ세대를 혐오의 주체가 되도록 만들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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