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핵추진 잠수함이 지난 3월 북극해에서 두께 1.5m의 얼음을 깨고 부상하고 있다. 당시 러 핵잠수함 3척이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북극 얼음을 깨고 부상해 주목을 받았다. ⓒphoto 러시아 국방부 유튜브 캡처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이 지난 3월 북극해에서 두께 1.5m의 얼음을 깨고 부상하고 있다. 당시 러 핵잠수함 3척이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북극 얼음을 깨고 부상해 주목을 받았다. ⓒphoto 러시아 국방부 유튜브 캡처

지난 3월 26일 러시아의 핵(원자력)추진 잠수함 3척이 거의 동시에 두께 1.5m의 두꺼운 북극 얼음을 깨고 떠올랐다. 이들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전략잠수함(SSBN)들이었다. 이들은 불과 300m 이내 범위 내에서 근접해 부상했다.

니콜라이 예브메노프 러시아 해군 사령관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3척의 핵잠수함이 반경 300m 이내 해역에서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1.5m 두께의 얼음을 깨면서 수면 위로 상승했다”고 훈련 성과를 보고했다. 로이터통신 등 해외 언론도 “무려 3척의 러시아 해군 SSBN이 불과 300m의 범위 내에서 동시에 부상한 것은 과거 북극해에서 미국과 구소련 잠수함이 얼음 위로 부상 훈련을 하다가 각종 피해를 받은 사례를 고려할 때 매우 전문적이고 숙련된 북극해 수중작전 능력을 보인 것”이라며 “3척이 수중에서 통신이 거의 되지 않는 상황하에 일정한 간격으로 불과 300m 얼음판에 일시에 부상을 성공시킨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당시 북극해에서 이뤄진 ‘움카-2021’ 훈련 영상도 공개했다. 영상에는 얼음을 깨고 불쑥 솟아난 핵잠수함들의 모습과 전투기가 극지를 비행하며 공중급유를 받는 모습, 소총으로 무장한 채 스노모빌을 타고 이동하는 병사의 작전 모습 등이 담겼다. ‘움카-2021’ 훈련은 초속 30m의 강풍이 부는 섭씨 영하 25~30도의 가혹한 북극 기상 조건 속에서 이뤄졌다. 훈련에는 600여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참여했다. 또 전투기를 포함한 200종의 각종 무기와 군사 장비가 투입돼 극지에서의 작전수행 능력을 점검했다고 한다.

북극 얼음을 뚫고 부상한 러시아 핵잠수함은 델타4급 2척과 보레이급 1척이었다. 델타4급 핵잠수함은 최대 사거리 8300㎞인 ‘시네바’ SLBM 16기를 탑재하고 있다. 길이 167.4m, 폭 11.7m로 수중배수량은 1만8200t이다. 보레이급은 최신형 탄도미사일 탑재 핵잠수함으로 신형 SLBM인 ‘불라바’ 16기를 탑재하고 있다. 불라바는 6~10개의 다탄두(MIRV)를 장착하고 있다. 길이 170m, 폭 13.5m로 수중 배수량이 2만4000t에 달하는 초대형 잠수함이다.

두꺼운 북극 얼음을 뚫고 부상하는 훈련은 1만~2만t이 넘는 대형 핵잠수함이라도 위험하다. 부상 중에 잠수함 선체가 얼음에 긁혀 손상을 입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얼음을 뚫지 못하고 그 반동으로 바다 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실제로 1988년 구소련의 K-475 핵잠수함이 얼음 부상 훈련을 하다가 선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2003년엔 미 해군 코네티컷 SLBM 탑재 핵잠수함이 북극해에서 얼음 부상 훈련을 하다가 방향타가 손상되기도 했다.

북극 바다를 항해 중인 러시아 원자력추진 쇄빙선 ‘승리 50주년 기념호’. ⓒphoto 연합
북극 바다를 항해 중인 러시아 원자력추진 쇄빙선 ‘승리 50주년 기념호’. ⓒphoto 연합

북극 얼음을 뚫고 기습하는 훈련

그럼에도 이런 훈련을 하는 이유는 군사적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북극은 미·러 미사일이 상대방을 최단 경로로 공격할 수 있는 곳이다. 잠수함이 얼음을 뚫고 튀어나와 갑자기 미사일을 쏘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을 뚫고 기습 공격을 할 수 있다. 또 북극 얼음 아래에 잠수함이 숨어 있으면 해상초계기 등에 장착된 신형 장비로도 탐지하기 어렵다. 얼음 때문에 해상초계기나 헬기에서 소노부이(음향탐지장비)를 떨어뜨려 잠수함 소리를 잡아낼 수도 없다. 북극해의 수온과 염도 등 때문에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도 북극해가 잠수함 천혜의 은신처로 꼽히는 이유다.

미국도 러시아에 질세라 핵잠수함들의 북극해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미 해군은 2020년 ICE 연례 훈련에서 시울프급 핵잠수함(배수량 7000t급)과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6000t급)이 동시에 부상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2018년 미 해군과 영국 해군 핵잠수함 간 연합훈련에 이어 이뤄졌다. 이 훈련에 대해 미군 관계자는 “러시아의 북극해 선점에 대비한 대응훈련”이라고 말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이 같은 미국과 러시아의 북극해 잠수함 얼음 부상 훈련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대국에 북극해에서의 전쟁 억제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구온난화에 의해 북극해의 전략적 가치가 자원 개발, 대체 해상교통로 출현,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점차 증대되고 있어 향후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극해에서의 미·러 경쟁은 잠수함뿐 아니다. 지난해 9월 미국 알래스카주의 아일슨 공군기지를 떠난 B-1B 장거리 전략폭격기 1대가 북극을 가로질렀다. 같은 달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 아크티카호는 모항인 무르만스크를 떠나 북극으로 향했다. 아크티카호의 첫 북극권 항해였다. 아크티카호는 3만3000t급으로 세계 최대의 쇄빙선이다. 러시아는 4척의 원자력 쇄빙선을 비롯, 41척 이상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쇄빙 함대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도 주목

미국과 러시아 외에 중국까지 북극해 경쟁에 뛰어든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중국은 뜬금없이 ‘근북극국가(near-Arctic)’를 선언하고, 제2의 일대일로로 불리는 ‘빙상 실크로드’ 구상도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은 위도가 지중해와 비슷해 북극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북극과 가까운 나라라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은 미·러 등의 견제를 덜 받기 위해 민간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만든 쇄빙선 ‘쉐룽1호’를 도입한 데 이어 원자력 추진 쇄빙선 ‘쉐룽2호’ 건조를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에 따라 북극항로가 조기에 열릴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강대국들의 북극해, 북극항로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빙하가 사라지면서 수에즈·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않고 기존 항로 거리를 30% 정도 줄일 수 있는 북극항로가 ‘제3의 항로’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북극 빙하는 40%나 줄었고, 2017년 8월엔 사상 처음으로 화물선이 쇄빙선의 도움 없이 북극항로를 완주하기도 했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 송승종 대전대 교수, 권태환 국방외교협회 회장(예비역 육군준장), 정재호 박사 등이 ‘해양안보’(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발간) 최신호에 기고한 ‘북극해 일대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강대국 경쟁’ 논문에 따르면 탈냉전 시대에 들어 ‘평화와 협력의 공간’으로 인식되던 북극이 군사안보 측면이 강조되는 새로운 전략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지구의 생태환경 위협과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병존하는 ‘북극의 역설’이 글로벌 국제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북극권이 전 세계 미개발 원유의 13~25%, 천연가스의 30~45%가 매장된 자원의 보고라는 점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적극적인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 교수 등은 논문을 통해 “미·중 충돌로 남방 해상수송로가 차단되는 상황에 대비한 북극항로 개척이 필요하다”며 “북극해를 지향한 중국의 팽창 정책이 한반도에 미치는 전략적 영향에 대한 평가와 대비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또 아라온호에 이어 제2쇄빙선 도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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