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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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가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마치 평론가가 소설을 쓰는 것과도 같다. 평론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소설을 직접 쓴다 하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사회와 현실에 대해 비판도 하고 여러 대안도 제시해왔지만, 막상 정치로써 문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겠느냐는 다른 영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평생 교직생활과 시민운동에 몸담아온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에게 ‘시민단체 활동가의 정치 참여’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는 정치와 시민운동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잘라 말했다.

‘시민운동 1세대’인 이 교수는 1989년 7월 창립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1990년부터 합류한 원년 멤버다. 이 교수는 과거 경실련에서 주장했던 금융실명제, 한국은행 정치적 독립, 토지공개념 등 경제민주화 관련 제도 도입을 꾸준히 요구해왔고, 관련 사업을 이끌었다. 1999년 경실련을 탈퇴하고는 동료 시민운동가들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시민행동)’을 창립했다. 예산 감시 활동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지금도 시민행동의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31년 시민운동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필상 교수를 지난 8월 30일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났다.

1990년대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할 무렵, 이 교수와 함께했던 활동가들은 대부분 정계로 들어섰다. 참여연대 고 박원순은 민주당에 입당해 서울시장을 지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수호씨는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다가 2017년 대선 때 정의당 심상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고문단으로 참여했다. 여성평우회와 여성단체연합 대표를 지낸 지은희씨는 노무현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반면 이 교수는 정치와 거리두기를 해왔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서 30년간 재직하고 정년퇴임을 한 후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로 일하는 지금까지 특정 정권 활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

그는 “대안을 연구하고 그 내용을 대중적으로 홍보하는 성격의 시민운동과, 정책적인 실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그렇다 보니 활동가들의 정치 참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이 정치할 때)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민운동을 할 때는 분명히 갖고 있었던 소신이나 철학을 버리고 진영 논리나 이념에 따라 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활동가 출신 정치인이 있느냐고 묻자 “글쎄… 잘 모르겠네요”라고 답을 흐렸다.

이 교수가 경실련에서 활동하던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 교수에 의하면 대선 운동이 한창이던 1997년 주요 대선주자의 캠프에서 이 교수에게 ‘텔레비전에서 캠프 경제 정책을 홍보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당시 시민단체(경실련) 정책연구위원장이었는데, 특정 후보의 정책을 텔레비전에 나가서 홍보해준다는 것은 시민운동을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번 대선이 치러질 때마다 비슷한 일이 있었고, 한 대통령 당선인은 이 교수에게 직접 전화해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아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한다. 모두 거절했다. 김대중 정부가 꾸려질 때 경실련에서 함께 지냈던 동료 활동가들이 대거 정권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경실련을 탈퇴했다. 그는 “많은 활동가가 정계, 관계로 가면서 나름 ‘하던 일을 실천에 옮겨야지’ 등의 결심을 했다”면서도 “하지만 운동과 실천은 다르다”고 못 박았다.

이 교수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국민이 시민단체가 정치권과 유착하는 모습을 계속 목격하며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시민단체가 정계나 관계 진출의 교두보가 되고, 특정 정파와 연계돼 있다는 불신이 커지면서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며 “비판을 해도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시민단체는 국민의 참여와 지원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다”며 “과거에는 ‘우리 사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 등으로 국민적 지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투명한 회계처리도 논란

시민단체의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불투명한 회계처리 역시 국민의 불신을 키운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지난해 윤미향 의원이 대표로 있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부실 회계 장부’가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환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교수는 “돈과 회계에 관련해 시민단체는 (활동과 비교하면)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돈을 투명하게 써야 한다는 의식도 높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 부처에서 시민단체가 자의적으로 후원금을 운용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데, 그러한 감시와 관리가 소홀한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199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시민운동가로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도 인연이 있다. 당시 ‘참여연대 박원순, 경실련 이필상’이라 할 만큼 규모가 큰 시민단체를 대표해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런 박 전 시장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 시민운동의 역사를 쓴 사람”이라는 평가를 했다.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새로운 기부문화를 창출했고, 희망제작소와 참여연대 등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체제 연구에도 힘썼다는 평이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시민단체를 벗어난 이후부터는 평가가 조금 달라졌다. 이 교수는 “서울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낙후지역 지원, 도심 재개발 등 일부 사업에만 몰입해 틀 안에 갇혀 있었던 측면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서울이 수도로서 어떤 모습이 돼야 한다는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 미래지향적인 고민이 부족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과거 시민단체의 전성기가 지나고 계속 시민운동의 위상이 하락하는 현상에는 시민운동 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측면도 있다. 이 교수는 “소셜미디어(SNS),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 다양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인터넷의 장이 마련되면서 운동의 형태가 조금 바뀌었다”며 “개인, 소규모 그룹을 중심으로 더욱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각양각색의 운동을 벌이는 게 아주 쉬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단체 중심의 시민운동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활동가들이 이끄는 단체 중심의 운동은 인터넷에서 펼쳐지는 운동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기능이 있다. 개인과 단체가 함께 발전해나가야 시민운동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다. 시민운동은 결국 우리 사회와 나라 발전을 위한 것이니 국민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단체도 열심히 운동하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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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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