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뜰’ 지중화 약속해놓고 환경영향평가 무시
정부·지자체 상대 소송전… 민원 넣은 주민 분양해지 압박
경기 성남시 대장동 사업부지 내 퍼스트힐 푸르지오 아파트 건물 너머로 345kV(킬로볼트) 송전탑이 존치해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 성남시 대장동 사업부지 내 퍼스트힐 푸르지오 아파트 건물 너머로 345kV(킬로볼트) 송전탑이 존치해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을 주도한 사업시행자 ‘성남의뜰’이 사업 초기 정부·지자체와 협의한 환경영향평가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업 완료가 어려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성남의뜰은 2018년 환경영향평가 당시 대장동 사업부지 북측에 있는 송전선로 및 철탑의 전자파 노출 위험 감축 계획안을 수립·이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성남의뜰은 현재까지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제기된 관련 주민 민원 및 정부·지자체 제재에 대해 법적 소송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민원을 넣은 일부 주민을 상대로는 분양계약해지 압박까지 이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소송 장기화 등으로 오는 12월 예정된 전체 사업에 대한 준공 승인이 연기되거나 취소될 경우 사업 미완에 따른 피해는 주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장동 안팎에선 “인허가권을 가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성과주의’가 낳은 문제”라며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공익환수 사업’이란 수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송전선로와 철탑으로 둘러싸인 대장동 사업부지 일부 전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송전선로와 철탑으로 둘러싸인 대장동 사업부지 일부 전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아파트 둘러싼 345kV 송전탑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개발사업을 주도하는 시행사는 착공에 앞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보통 평가는 시행사와 용역계약을 맺은 환경컨설팅업체의 심사와 유관기관과의 협의 등을 거쳐 이뤄진다. 시행사는 최종평가서에 담긴 내용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대한 관리·감독은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이 도맡는다.

2014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재선 후 민관합작 방식으로 재추진된 성남시 대장동 개발의 경우 사업시행자로 선정된 ‘성남의뜰’이 이 절차를 밟았다. 성남의뜰은 2016년 환경영향평가서를 접수한 후 한국전력공사 등 유관기관 협의를 거쳐 2018년 2월 최종평가서를 작성했다. 평가서엔 다양한 환경 영향 요인 분석이 담겼는데, 눈여겨볼 점은 ‘전파장해’이다. 당시 대장동 개발 사업부지의 남측과 북측엔 각각 345kV(킬로볼트)의 송전선로 및 철탑이 위치했고 이에 따른 전자파 노출 위험이 적지 않았다. 이에 성남의뜰은 전자파 저감방안으로 ‘송전선로 지중화’ ‘토지이용계획 반영(이격거리 확보 및 녹지 조성)’을 거론하며 이를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여기서 송전선로 지중화는 전력 설비를 땅에 묻거나 설치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성남의뜰은 한국전력과의 사전협의를 통해 지중화 작업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사업지 북측의 경우 지중화 작업에 약 72개월이 소요될 것이란 분석도 마쳤다. 비용은 시행자가 부담한다는 내용도 평가서에 담겼다.

성남의뜰은 보고서에서 “본 사업과의 개발 시기 등의 연계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별도의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개발계획의 변경이 없도록 케이블 헤드 부지 및 지중케이블 관로의 규모 등을 개발계획에 사전확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송전선로 지중화 이행 방안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성남의뜰은 사업 기간 내내 북측 송전선로 및 철탑 지중화 작업과 관련한 계획안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완공된 일부 아파트 단지가 대형 송전탑 및 케이블과 맞닿아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육안으로도 아파트 단지와 송전탑과의 거리가 100m도 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부 가구 거실에선 송전탑이 그대로 보일 정도다.

자료 : 구글어스
자료 : 구글어스

관련 민원이 빗발치는 대표적인 곳은 사업부지 북측에 위치한 퍼스트힐 푸르지오 단지다. 이곳 주민들은 송전탑 존치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 누전에 따른 화재 등을 우려한다. 지난 6월에 입주한 장모(41)씨는 “영유아 아이들이 많은 세대에선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기반시설도 송전탑에 대한 고려 없이 그대로 지었는데 송전탑 아래를 뚫고 지나는 서판교터널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성남의뜰이 분양 과정에서 송전탑 존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입주자모집공고, 분양안내자료 등에서 작은 글씨로 송전탑과 관련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재한 것이 전부였다. ‘청약 및 계약 전 사업부지 현장을 방문하시어 주변 혐오시설 유무, 도로, 소음, 조망, 일조 진입로 등 주위 환경을 확인하시기 바라며, 현장여건 미확인으로 발생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추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도시개발구역 밖 북측 송전선로는 지중화되지 않고 존치될 예정입니다’ ‘일부 세대는 송전탑 조망이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유의…’.

예비 입주세대 총 504가구(971명)로 구성된 퍼스트힐 푸르지오 예비입주자협의회 관계자는 “성남의뜰에선 조감도나 모델하우스에까지 송전탑을 표시했고 여기에 다 동의하고 사인하지 않았냐는 입장인데, 이로 인한 피해 우려나 환경영향평가 내용 등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으니 일반인들인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라고 말했다.

고소·고발에 분양계약해지 압박까지

2018년 분양 이후 이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지자 성남의뜰은 시정 방안 마련보다 각종 법적 조치로 맞대응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 기관인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이하 환경청)은 성남의뜰에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 미이행에 대한 이행조치명령’을 성남시를 통해 2019년 12월과 2020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내려보냈지만, 성남의뜰은 모두 따르지 않았다. 2020년 6월 환경청이 환경영향평가법 위반으로 1차 과태료 부과를 통지하자, 성남의뜰은 7월 관할 법원에 오히려 이의를 제기했다. 해당 사건 재판은 비송사건절차법에 따라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후 성남의뜰은 2020년 8월 환경청의 이행조치 명령을 전달하는 성남시를 상대로 ‘이행조치명령 취소 행정심판’을 제기하며 본격 소송전에 나섰다. 해당 심판이 그해 12월에 기각되자 성남의뜰은 올해 1월 수원지방법원에 성남시를 상대로 한 이행조치명령 취소 행정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소송대리인으론 국내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했다. 이 소송 또한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성남시의회의 이기인 의원은 이를 두고 “시와 시가 출자한 회사가 혈세로 벌이는 소송”이라 지적했다.

성남의뜰은 성남시에 관련 민원을 제기한 주민들을 상대로도 고소·고발을 이어갔다. 지난해 3월 성남의뜰이 자산관리회사이자 지분 참여사인 화천대유자산관리와 함께 예비입주자 협의회 관계자를 강요미수, 공무집행방해, 무고 혐의로 수원지방검찰청에 고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성남의뜰과 화천대유는 고발장에 “이 관계자가 시를 협박해 관련 의무가 없는데도 시행사가 송전탑 지중화 작업을 강요하도록 하며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내용의 주장을 담았다. 두 회사는 해당 고발이 2020년 12월 기각되자 올 2월 재항고했다. 재항고 역시 지난 3월 모두 기각됐다.

화천대유는 이 과정에서 일부 주민을 상대로 분양계약해지를 압박하기도 했다. 2020년 3월 시행 위탁사인 하나자산신탁에 ‘주택공급계약상의 의무준수’를 주민에게 통지하도록 요청했는데, 해당 요청 서면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수많은 민원을 제기하면서 “송전탑의 고압선로를 지중화해달라,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라는 취지로 집단민원을 선동하고 제기하였는 바 (중략) 집단민원제기 목적은 송전탑을 지중화함으로써 자신들이 분양받은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한 재산증식의 목적입니다. (중략) 주택공급계약상의 의무를 준수해줄 것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내용을 넘겨 받은 주민은 소송대리인을 선임해 답변에 응해야만 했다.

화천대유는 고문직에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검,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이경재 변호사 등 법조계 고위직 인사를 앉힌 뒤 수억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들에게 자문을 구한 일이 결국 이런 송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예비입주자협의회 관계자는 “결국 이들을 등에 업고 정부, 지자체, 주민들을 압살한 것”이라며 “어떻게 이것을 공영개발, 공공개발이라 일컬을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성남시가 한국전력공사에 자문을 요청한 회신서에 따르면, 성남의뜰이 이행하지 않는 북측 송전선로 및 철탑 지중화 사업비용은 344억7000만원으로 추산된다. 매년 수천억원을 기록하는 성남의뜰과 화천대유 순이익, 주요 임원들의 급여 등을 고려하면 지중화에 필요한 344억여원은 성남의뜰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예비입주자협의회 측 의견이다.

성남의뜰 “송전탑 전자파, 가전제품 수준”

앞으로의 문제는 성남의뜰과 환경청·성남시 간 소송이 전체 사업 준공승인에 미칠 영향이다. 성남의뜰은 올해 12월 시로부터 준공승인을 받아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되지 않거나 행정소송이 길어질 경우 준공승인이 연기 혹은 취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 될 거란 평이 나온다.

김원중 건국대 겸임교수(부동산학 박사)는 “원칙대로라면 준공승인이 나지 않을 경우 분양 자체가 불가하다. 이미 이뤄진 분양이 무효가 되는 것”이라며 “시를 상대로 한 입주 예정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라고 평했다. 그는 또 “당초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성남시가 환경영향평가 내용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남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이 경우 주민들 재산권 행사에 제한이 생길 수 있으며 시행사가 갖던 공원 등 기반시설 유지·관리 권한을 용역업체로 인계하지 못해 상당한 주민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와 공사 측은 소송 결과부터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 측은 “시행사 측에서 준공승인 신청을 아직 안 했고 소송이 진행 중이기에 준공승인 여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긴 어렵다. 환경청과 다시 협의, 검토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공사 측은 “북측 송전탑이 엄밀히 말하면 사업지구 밖에 위치하고 있어 당장의 판단이 애매한 부분도 있다”며 “시행자 쪽에선 환경청에서 내린 조치가 자신들이 정말 이행해야 하는지를 두고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성남의뜰 측에선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고 있지만, 환경청이 1차 이행명령을 내렸을 당시 전달한 서면 답변을 통해 어느 정도 입장을 유추할 수 있다. 당시 성남의뜰은 서면을 통해 ‘사업기간 장기화 등에 따라 본 도시개발사업과의 개발 시기 등의 연계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이설 및 지중화 계획은 반영되지 않음’이라며 ‘타 사업지구 사례조사를 참고해 90m를 이격하여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였음’이라고 했다. 또 입주자모집공고문, 분양안내자료 등에서 송전선로는 존치됨을 알렸는데, 이에 대한 민원을 지금에 와서 제기하는 것은 분양받은 주택의 재산가치 증대를 위한 목적이 다분한 것으로 사료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성남의뜰은 여기에 ‘송전탑 인근 전자파를 자체적으로 측정한 결과,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인 세탁기, 냉장고 전자파 수준이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성과에만 몰두한 이재명식 정책의 폐해”

정치권 등에선 이런 잡음이 나온 배경과 이 지사의 정책 추진 방식을 따로 떼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재명 지사는 자기 업적을 더 중요시하며 큰 꿈을 꿔왔던 ‘성과주의’ 인물이다.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그가 일부 사업자에게 특혜를 줬거나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그의 성과주의적 정책 추진 방식이 대장동 사업을 단기간에 완성해 5503억원을 환수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만든 건 확실해 보인다. 여기서 발생할 위험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지금의 주민 피해나 불투명한 자금흐름 등이 그 일례다.” 그는 또 “단군 이래 최대의 성과이자 최대의 공공개발이라 자랑하기엔 안팎으로 문제가 많다”라고 평했다.

20년 넘게 검찰에 몸담았던 임무영 변호사는 자산관리회사이자 전략적투자자(SI) 성격으로 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결국 재무적투자자(FI)들이 빠져나가면 화천대유만이 남아서 사업을 지휘하게 되는데, 이런 회사는 보통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며 사업을 총괄한다. ‘대관업무를 통해 사업 인허가를 원활히 받아내는 일’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일’이다. 대장동 사업에선 이 모든 걸 성남시와 공사가 보장해줬고 화천대유는 여기서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컨트롤타워는 사라졌고 자연스레 갖가지 피해가 주민들 쪽에서 발생한 거라 본다.”

1년 전부터 거론된 화천대유 의혹

사실 대장동 주민들 입장에선 최근 터져나오는 일련의 의혹이 새롭지는 않다. 피해 우려가 컸던 주민들은 일찍이 화천대유의 공공성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다. 성남의뜰은 사업 진행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으로 사업이 마무리되면 해산 절차를 밟기 마련인데, 주민들은 성남의뜰 해산 후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 이행을 업무 수탁사인 화천대유가 도맡게 될 것을 가장 염려했다. 공공성이나 지배구조 측면에서 부적합한 면이 많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민들이 지난해부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협의 내용 이행을 책임지길 바란다며 성남시에 제기한 민원 내용엔 화천대유에 대한 지적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화천대유는 한 개인(김만배)이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1인 소유의 사기업입니다. 환경문제가 발생하여 막대한 복구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의무를 실행할 의지와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천대유는 2019년 당기에 대표이사에게 자본금의 10배 상당의 대여금(26.8억원)을 대여해 주었습니다. 합법적인 절차와 적법한 회계처리로 간주될 수 있으나 (중략) 만약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면 회사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사료됩니다.’

‘성남시 담당 공무원들이 사업시행자와의 유착관계가 합리적으로 의심….’

일각에선 성남시가 개발계획 변경 등의 고시로 송전탑 지중화 의무를 이미 면제해준 것 아니냐는 특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정쟁의 소재로 등장한 대장동 게이트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아닌 대장동 주민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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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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