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9월 29일 보도한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 발사장면. ⓒphoto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9월 29일 보도한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 발사장면. ⓒphoto 뉴시스

“국방과학 부문에서 세계 병기 분야에서 개념조차 없던 초강력 다연발 공격무기인 초대형 방사포를 개발·완성하고… 중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비롯한 첨단 핵전술무기들도 연이어 개발함으로써 믿음직한 군사기술적 강세를 틀어쥐었다.”

지난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차 당대회 보고를 통해 언급한 내용이다. 당시 김정은이 말한 중장거리 순항미사일은 처음 공식 언급된 것으로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첫 등장한 정체불명의 이동식 발사차량으로 추정됐다. 김정은 발언이 현실화하는 데엔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 9월 13일 북한이 최대사거리 1500㎞에 달하는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사진까지 공개했기 때문이다. 북 장거리 순항미사일은 수십㎞ 이상 비교적 높은 고도까지 상승한 뒤 낙하하는 탄도미사일에 대한 대응체계로 돼 있는 기존 한·미·일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유사시 장거리 순항미사일로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는 물론 주일미군 기지의 사드레이더, 한반도 유사시 증원전력이 출동하는 주일 미 해·공군 기지(유엔사 후방기지) 등을 파괴할 수 있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거리 순항미사일 외에도 지난 1월 8차 당대회 때 김정은의 사업총화보고는 한·미 양국군을 깜짝 놀라게 한 신무기들의 ‘천기누설’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9월 29일 북한이 공개한 ‘화성-8형’ 극초음속 미사일의 경우도 그렇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신형 탄도로켓들에 적용할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를 비롯한 각종 전투적 사명의 탄두 개발연구를 끝내고 시험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보통 최대속도가 마하5(음속의 5배) 이상에 달해 현존 기술로는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한 무기다. 지난 1월 국내 무기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극초음속 무기를 실제 선보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거리 순항미사일처럼 8개월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북한은 이번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에서 최대 속도 마하3 정도를 기록, 앞으로 여러 차례의 추가 시험이 필요한 초기 단계임을 보여줬다. 정부 기관의 한 소식통은 “마하3은 지난 9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문재인 대통령 참관하에 첫 공개한 우리 ‘항모 킬러’ 초음속 순항미사일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아직 극초음속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북한이 예상보다 빨리 초고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어 놀랍다”고 전했다. 북한이 실제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성공하면 한반도 내의 한·미 미사일 방어망은 물론 일본 내 미·일 미사일 방어망도 무력화된다. 북한은 이 밖에 지난 9월 이후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KN-23 미사일)과, KN-06보다 훨씬 사거리가 길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대공미사일을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위력한 새 무기체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신무기들을 속속 등장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등장할 신무기들은 지난 1월 김정은의 ‘천기누설’ 보고를 꼼꼼히 살펴보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듯하다.

지난 1월 8차 당대회 보고에서 김정은은 “국방과학연구 부문에서 다탄두 개별유도(MIRV) 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MIRV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서 여러 개의 탄두로 서로 다른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ICBM 한 발로 미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북한이 다탄두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서로 다른 목표물이 아닌, 1개의 목표물만 타격하는 MRV 기술만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돼왔다. MIRV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은 MD(미사일방어)망으로 북한 ICBM을 요격하기 더 어려워진다.

김정은은 또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 단계에 있으며 각종 전자무기들, 무인 타격장비들과 정찰탐지 수단들, 군사 정찰위성 설계를 완성했다”고도 했다.

대북 제재 속 신무기 개발 비결은

핵추진 잠수함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불린다는 점에서 지난 1월에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존재다. 김정은이 ‘설계연구’ 단계라고 언급함에 따라 실제 핵추진 잠수함이 등장하는 데엔 5~6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언젠가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 대상이다. 무인 타격장비는 미국의 MQ-9 ‘리퍼’ 무인공격기 같은 무인 정찰 및 공격무기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리퍼는 이라크전 및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알 카에다 지도자 등을 암살한 무기로도 유명하다. 중국·러시아도 다양한 무인공격기들을 이미 개발했기 때문에 ‘북한판 리퍼’ 개발도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정찰위성은 북한 매체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장거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은하3호보다 훨씬 큰 대형 로켓(은하9호 등)으로 발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면 북한이 경제난과 대북 제재 국면 속에서도 이렇게 끊임없이 신무기 개발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우선 북한은 국가 역량을 무기개발 및 생산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북한에서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지시는 무조건 이행해야 할 초법적인 사안으로 간주돼 왔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제 및 농업 분야의 경우 국제사회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에 김정은 입장에선 성과를 비교적 쉽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신무기 개발 및 과시에 ‘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신무기 개발 성공에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ADD) 과학기술자를 우대했던 것처럼 과학기술자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는 김정은의 리더십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화성-14·15형 ICBM에 사용된 백두산 엔진이 지상 연소시험에 성공하자 김정은은 공을 세운 과학기술자를 직접 업어주는 이른바 ‘어부바 사건’이 있었다. 북한 내 ‘최고 존엄’의 위상을 감안할 때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김정은은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과학기술자들을 대거 평양으로 초청해 시가행진 등 대대적인 격려행사를 열어주기도 했다. 반면 미사일 시험발사 등에 실패한 경우에도 과학기술자들을 숙청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의 경우 8번 시험발사 중 7번이나 실패했지만 관련 과학기술자들을 숙청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군의 한 소식통은 “김정은의 과학기술자에 대한 극진한 예우가 놀라운 북한 신무기 성공의 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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