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중대부중 앞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 반대하는 근조 화환이 늘어서 있다. ⓒphoto 서울학부모연합
서울 동작구 중대부중 앞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 반대하는 근조 화환이 늘어서 있다. ⓒphoto 서울학부모연합

널찍하게 트인 교실에는 이동식 책상 여러 개가 붙어 있다. 삼삼오오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저마다 태블릿PC를 한 대씩 가지고 자유롭게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학교 전체에는 무선인터넷망이 깔려 있어 교사와 학생이 온·오프 학습을 넘나드는 ‘블렌디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교실에만 앉아 있지 않고, 옥상 정원이나 텃밭에서 자연을 관찰한다. 창문과 지붕에 붙은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는 복도 등에 붙은 계기판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에너지 교육을 체감할 수 있는 시설이다. 지역 주민들도 자유롭게 출입 가능한 학교는 공공시설 기능도 겸하고 있다. 주민들이 일일 강사로 초청되는 스마트 도서관은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는 마을회관이 된다. 학교와 지역이 공간적으로 연결되는 SOC(사회간접자본)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 정책인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예상 모습이다. 현재의 학교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인프라를 쌓는, 상당한 규모의 계획이 필요하다. 학교 공간과 구조는 물론 수업방법, 교수학습법 등 전반적인 교육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인 만큼 5년 동안 18조5000억원이 소요된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언급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저탄소 제로에너지를 지향하는 그린 학교 △미래형 교수학습을 하는 ICT 스마트교실 △학생 등 사용자가 참여하는 공간혁신 △지역사회와 학교를 연결하는 학교시설 복합화가 목표다.

교육 포장한 건설사업

야심 차게 내놓은 계획은 첫 삽을 떼자마자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대상 학교를 선정하자마자 학부모들의 철회 요청이 빗발친 것이다. 지난 7월 전국 484개교를 지정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 서울에서만 9개교가 지정 취소를 요청해 사업 대상에서 철회됐다. 교장이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서울 중대부중 등의 학교들도 철회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교장과 타협점을 찾고 있는 중이라 반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난항은 예견돼 있었다. 사업의 전신인 ‘학교공간혁신사업’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를 그대로 끌어안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어떤 식으로 꾸밀지 사전에 기획하는 단계가 부실하다는 지적, 사전기획·설계·공사 등을 담당하는 업체와의 계약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지적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채 똑같이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 9월에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공간혁신사업 관련 교육부 직원을 상대로 로비한 혐의로 제재를 받은 비영리기관이 올해도 서울·강원·경남 교육청과 계약을 맺고 2억원가량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따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기관은 학교공간혁신사업에서 30개 학교를 사전기획했는데, 그중 27개 학교의 기획을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작성해 비전문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반대 시위 현장에서 만난 서울학부모연합의 한 학부모는 “18조원이라는 돈이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이기보다 관계자들 주머니만 채워줄까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학교공간혁신,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교육부에서 주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건설사업이다. 학교에 완전히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고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수백 개의 건축사무소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사업은 크게 △사전기획 △설계 △공사로 구성되는데, 각 단계마다 용역 건설업체가 필요하다. 특히 사전기획을 맡은 건축사무소의 전문성이 사업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전기획은 학생,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어떤 공간을 만들지 결정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혼자 공부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학생의 요구 사항이나 ‘영상을 보면서 토의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하고 싶다’는 교사의 의견을 듣고 공간을 기획하는 식이다. 교육적인 요구를 건축으로 구현해내는 셈이다. 주로 경쟁 입찰이나 수의(학교와 직접 계약) 계약을 통해 업체에 발주한다.

그러나 학교공간혁신사업은 지난해 사전기획을 담당하는 용역업체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비영리기관인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이하 녹색환경연구원)에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 2월 교육부는 지난해 미래학교추진 부서의 팀장 등 교육부 공무원들이 녹색환경연구원으로부터 법인카드와 태블릿PC 등을 지원받았다는 명목으로 관계자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또 공간혁신사업 예산 지원계획 등 내부 문서를 녹색환경연구원 관계자들과 공유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직원 수 50명의 비영리법인인 녹색환경연구원은 지난해 해당 사업으로만 34억원 이상의 계약을 수주했다. 곽상도 전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세종·부산·충남 등 10개 교육청은 해당 기관에 개별 학교 사전기획, 연구용역 등의 업무를 맡겼다. 정식 건축사무소가 아닌 연구기관에서 개별 학교의 건축 기획을 도맡아 한 것은 드문 일이다.

이를 둘러싸고 전문성 의혹도 불거졌다. 지난 10월 5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해당 기관이 “30여개 학교의 사전기획에서 27개 보고서를 거의 같은 내용으로 채웠다”고 밝혔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특성이 다른데도 동일한 공간혁신 솔루션을 제안하거나 비슷한 학교 분석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녹색환경연구원에 수의계약을 제한하고 개별 학교 사전기획을 금지하는 등의 제재를 가했다.

그럼에도 녹색환경연구원은 올해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과 관련해 2억원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위한 기획업무 가이드라인 연구’ 명목으로 6350만원, 강원도교육청 담당인 개별 초등학교 공간혁신사업 사전기획 연구용역으로 2130만원, 경남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개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전 교육의 공동기획으로 약 1억4196만원을 받았다. 이외에도 교육부가 하반기 실시하는 학교시설 관련 정책연구 중 하나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제재받은 내용이 지금은 풀려서 해당 기관이 경쟁입찰에 참여하지 못하게 제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녹색환경연구원에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우리도 잘 모르니 공식 입장이 나오게 되면 답하겠다”고만 했다.

지난 2월 3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추진 계획 영상을 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3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추진 계획 영상을 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부진’ 사업인데 무작정 밀어붙이는 교육부

이렇다 보니 학교 현장에서도 “공사비가 ‘눈먼 돈’으로 쓰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학교공간혁신사업 대상 학교로 지정돼 지난해 사업을 진행한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공사비가 불투명하게 쓰이는 경우는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학교마다 경우가 다 다르겠지만, 공개입찰로 학교에 들어오는 건축사무소에서 (예산의) 절반 정도는 마음대로 쓴다고 보면 된다”며 “건축사무소가 워낙 많고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 보니, 관련 예산이 허투루 쓰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예산 운용의 불투명성, 건축사무소의 비전문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교육부는 졸속으로 사업을 밀어붙이고만 있는 상황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진행하면서 교장, 학부모 등과 협의가 없었던 점이 대표적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지난 10월 1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단순히 노후 건물 수를 기준으로 시도교육청별로 물량 배분안을 마련하고 사업 대상 학교를 일방적으로 ‘선정’했다”고 비판했다. 가장 심도 있게 진행되어야 할 사전기획이 3~4개월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강 의원은 “3~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하나의 업체가 10~15개 학교의 사전기획을 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졸속으로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선정된 학교조차도 해당 사업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서울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 선정된 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가 낡았는데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지원금을 준다고 하니 당연히 동의했다”며 “그런데 학부모들이 이렇게 반발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결국 실패로 끝난 학교공간혁신사업을 ‘복붙’해서 더 큰 규모로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학교공간혁신사업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2월 교육부는 ‘2020년 교육부 자체평가 결과보고서’에서 미래형 학교공간 조성 사업 결과에 대해 ‘부진’이라고 평가하며, ‘관리 과제 설정을 위한 부내 토론, 전문가·관계자 의견수렴 과정을 보완하고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적었다.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부실한 그대로인데, ‘그린’ ‘스마트’ 등 사업 분야를 늘리고 예산 규모만 6배 키운 것이다.

고교학점제 위해 밀어붙이는 건설사업

교장도, 학부모도 어떤 사업인지 모른 채 받아들이는 ‘미완의 사업’을 교육부가 추진하는 이유는 고교학점제 때문이다. 지난 2월 교육부가 배포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종합 추진계획안에는 추진 배경으로 ‘교육과정 개편(2022), 고교학점제 도입 등 학생의 요구와 선택을 반영한 교육활동 운영을 위해 종합적 인프라가 반영된 학교 모델이 시급’이라고 적혀 있다. 학생들이 교실마다, 학교마다 돌아다니며 다양한 과목을 선택적으로 이수하는 고교학점제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의 일차적 종결은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2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교학점제 맞춤형 공간을 마련해놓겠다는 계획이다. 자세한 공간혁신사업 설명 부분에는 ‘통합·분반 수업 및 온·오프라인 수업으로 진로와 적성에 따른 교과 선택 확대’ ‘과목 간 융합 수업, 학년 간 통합 수업 등 주제 중심 수업 활성화’ ‘과목 위주로 분리된 교실공간 연결’ 등이 사업 목적으로 쓰여 있다.

학부모들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서 교육 과정 개편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중대부중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선정에 반대하는 한 학부모는 “시설만 바꿔준다 하면 우리가 왜 반대를 하겠느냐”며 “건설을 앞세워 ‘미래 인재 양성’ 등 모호한 말로 교육과정을 바꾸려 하니 반대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교육 현장의 관계자들은 “관련 사업을 밀어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교육의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공간혁신이라고 해서 최근 신설되는 학교들은 공간만 예쁘게 짓는 경향이 있는데 교육적 효용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복도에 보기 좋게 그네를 설치했다가 안전사고가 많아서 철회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학부모연합에서 활동하는 한 학부모는 “기초교육 등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한 건 초등학생도 알 텐데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공간혁신을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학교 관계자들이 돈 나눠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도 든다”고 불만을 표했다.

조윤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