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페이퍼스’가 모나코에 럭셔리 아파트를 매입한 사실을 폭로한 푸틴 대통령의 과거 정부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 ⓒphoto Proekt.media
‘판도라 페이퍼스’가 모나코에 럭셔리 아파트를 매입한 사실을 폭로한 푸틴 대통령의 과거 정부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 ⓒphoto Proekt.media

유럽, 남미, 중동 등의 일부 정치지도자들과 부호들이 조세회피처를 통해 불법적인 탈세 등을 저지르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사실을 담은 ‘판도라 페이퍼스’ 문건이 지난 10월 4일 공개됐다. 국제탐사보도기자협회(ICIJ)가 공개한 문건에는 전·현직 주요 정치인 336명의 탈법적인 축재행태가 포함되어 있다.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스위스와 버진아일랜드 등의 회사를 통해 미국·영국 등에 1억달러 상당의 부동산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패척결을 외치던 체코의 바비시 총리는 프랑스 남부에 호화주택을 매입하기 위해 유령회사를 만들어 2200만달러를 투자한 사실이 폭로되며 10월 9일 총선에서 패배했다. 재산을 빼돌린 사실이 폭로된 칠레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 있는 사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부(情婦)였던 한 여인이 딸과 함께 모나코의 럭셔리 아파트를 매입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청소원에 불과했던 이 여성이 1억달러의 자산가가 된 사실이 밝혀지자 새삼 러시아 절대권력자 푸틴의 여성편력이 국제적 주목을 끌고 있다.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의 딸. 푸틴이 아버지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photo 인스타그램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의 딸. 푸틴이 아버지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photo 인스타그램

푸틴, 내연녀와 사이에 딸?

서구 언론들은 판도라 페이퍼스에 드러난 푸틴 정부의 모나코 럭셔리 아파트 매입 경위를 일제히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2003년 9월 국제적 조세피난처인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스타 카지노 아래 출입금지 지역에 있는 아파트 한 채가 360만유로에 비밀리에 거래되었다. 4층에 위치한 럭셔리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은 차량 2대를 둘 수 있는 주차장과 창고, 그리고 몬테카를로 스타 콤플렉스의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아파트 발코니에서는 모나코의 눈부신 해안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 해안은 한여름에는 호화요트로 가득 차 장관을 이룬다. 이 아파트는 관광객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보안도 철저하다.

이 아파트의 새 주인이 누구인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판도라 페이퍼스 덕분에 언론들은 이 아파트의 실구매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2003년 28세였던 러시아 여성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현재 46세)였다.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크리보노기흐가 푸틴의 정부였다는 사실은 지난해 11월 러시아의 한 언론인에 의해 폭로되었다. 러시아의 저널리스트인 로만 바다닌은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프로엑트’에 ‘루이자 로조바’(17)라는 가명으로 모나코와 프랑스 파리 등에서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는 소녀가 크리보노기흐와 푸틴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고 보도했다.

루이자가 태어나던 2003년, 푸틴은 전처 류드밀라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프로엑트는 루이자의 출생증명서에는 아버지가 없으며 본명이 ‘엘리자베타 블라디미로브나 크리보노기흐’라고 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름 가운데 부성이 ‘블라디미로브나’라고 되어 있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내연녀 총재산 1억3500만달러?

프로엑트는 루이자가 인스타그램에 유력한 가문들과의 교류, 호화로운 파티, 전용 제트기 여행 등의 사진을 올린 사실을 보도했다. 프로엑트는 안면인식전문가인 영국 브래포드대학 비주얼컴퓨팅센터의 하산 우가일 소장을 인용, 루이자와 푸틴의 얼굴이 70% 정도 닮았다는 점도 파헤쳤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우리는 그 두 사람이 친인척 관계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루이자는 당시 이 보도를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며 자신은 런던이나 뉴욕에서 살기를 꿈꾼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하지만 루이자는 이 보도가 나오자마자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들을 삭제했다.

그녀의 어머니인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의 인스타그램도 모나코의 아름다운 풍광, 해변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광경 등으로 가득 찼었는데 프로엑트 보도 이후 모두 삭제되었다.

루이자의 어머니인 크리보노기흐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섯 가족이 주방과 욕실을 공유하는 커뮤널 아파트에서 자랐다. 커뮤널 아파트는 소련 공산당이 대도시 주택난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건설한 것으로, 비좁고 가족들의 사생활이 침해되는 등 분쟁이 많아 사람들이 기피하는 주거지이다. 크리보노기흐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상점에서 청소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1990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푸틴을 만나 그의 정부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푸틴은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 장교 시절 결혼한 스튜어디스 출신의 부인 류드밀라와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크리보노기흐는 푸틴 덕분에 러시아은행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 부동산과 에로쇼 공연장 등을 보유하는 등 총재산이 무려 1억3500만달러에 달한다고 프로엑트는 보도했다. 그녀는 푸틴과 함께 비행기를 탔던 기록도 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의 친구들이 모여 사는 최고급 주택 지역에 살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이에 대해 크렘린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런 여자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하며 푸틴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프로엑트 창립자이기도 한 언론인 로만 바다닌은 푸틴의 정부를 파헤친 대가로 ‘외국 스파이’로 낙인찍혔으며 사이트도 폐쇄되고 말았다.

크리보노기흐가 푸틴의 정부이며 거액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주장은 지난해 8월 독극물 테러를 당한 뒤 독일에서 치료받던 반정부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 측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나발니가 이끄는 팀이 올해 1월 크리보노기흐 모녀가 소유한 다양한 국내외 부동산들을 푸틴의 친지들과 국영기업들이 임차하는 방식으로 빼돌려졌다고 유튜브로 보도한 것이다.

“예쁘게 생긴 청소부였던 크리보노기흐는 하루아침에 믿을 수 없는 부자가 되었다. 청소부로 일하던 크리보노기흐에게 어떻게 그처럼 엄청난 행운이 떨어졌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답은 이것이다. 프로엑트에 따르면 크리보노기흐는 1990년대에 푸틴을 만나 엘리자베타라는 딸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푸틴의 친구들을 통해 럭셔리 아파트 여러 채를 받았다.… 크리보노기흐가 푸틴의 딸을 낳은 다음에는 러시아은행 3% 지분 등 엄청난 재산 목록이 그녀 앞으로 등록되었다. 그중에는 118피트짜리 요트 알도가호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푸틴의 친구들이 나라 전체를 도둑질한 사례의 하나일 뿐이며, 푸틴에게 감사의 선물로 푸틴의 내연녀와 그 딸을 지원한 것이다.”

나발니가 이렇게 일갈한 이 유튜브는 조회수가 1억까지 올랐지만 러시아 언론들은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나발니는 러시아에서 이 유튜브가 공개된 직후 귀국했는데 다시 구속되었다.

푸틴이 막강한 정보기관들을 통해 10월 초에 판도라 페이퍼스에 크리보노기흐 모녀의 은닉재산에 관한 사실이 폭로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푸틴은 폭로 일주일 전 TV연설에서 “기자들이 엘리트들의 더러운 속옷이나 파고드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미디어들이 나라의 “실제 삶의 모습”을 취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판도라 페이퍼스에는 크리보노기흐가 어떻게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400만달러짜리 럭셔리 아파트의 실소유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럭셔리 아파트 매입 과정 낱낱이

문제의 아파트 공식 매입자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역외회사인 브록빌개발사였다. 브록빌사는 파나마에 등록된 세프턴증권사와 라드너투자회사 소유였다. 브록빌의 경영책임자는 영국인 이어먼 맥그리거(71). 맥그리거는 프랑스어·이탈리아어에도 능통하며, 1998년에 모나코 군주 레이니어 공(公)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던 인물이다.

판도라 페이퍼스가 폭로한 맥그리거의 고객 중에는 러시아의 억만장자인 겐나디 티모셴코가 있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티모셴코의 재산은 220억달러에 달한다. 맥그리거는 티모셴코 가족의 재산을 지난 20년간 관리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전용 제트기와 티모셴코의 부인 이름을 딴 40m 길이의 호화요트 레나호도 있다.

티모셴코와 푸틴은 1990년대부터 친구였다. 당시 티모셴코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석유매매업을 했으며 푸틴은 앞날이 창창한 정치인이었다. 1991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외위원장을 했던 푸틴은 티모셴코에게 석유수출허가권을 내주었다. 티모셴코는 스위스에 러시아 석유수출회사인 군보르(Gunvor)를 설립했다.

이 회사 가치는 수십억달러에 달했다. 군보르의 석유 수출로 누가 돈을 벌게 되는가를 두고 의문이 일었다. 2007년 모스크바의 정치분석가인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는 푸틴이 이 회사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군보르사 측은 푸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푸틴도 티모셴코의 성공은 “내가 전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2014년 미 오바마 행정부가 티모셴코와 ‘러시아 지도부의 측근 인사들’에 제재를 가한 적이 있었다. 이들 모두 ‘러시아의 고위 정부관리’라고 표현된 푸틴을 대신해 활동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당시 미국의 판단이었다.

미국 재무부는 “에너지 분야에서 티모셴코의 활동은 푸틴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푸틴은 군보르에 투자했으며, 군보르의 자금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판도라 페이퍼스에는 가난한 푸틴의 부모에게 집을 임대했던 집주인 아들이자 푸틴의 소싯적 친구인 페트르 콜빈도 등장한다. 콜빈은 도살장에서 일하다가 2001년에 푸틴이 대통령이 된 다음 국영기업과 손잡고 사업을 벌여 대성공을 거둔다. 티모셴코처럼 영국인 맥그리거가 운영하는 무어스롤랜드사의 고객인 그는 해외 은행에 5억5000만달러를 예금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푸틴 대통령의 현 정부로 알려진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 알리나 카바예바. ⓒphoto TASS
푸틴 대통령의 현 정부로 알려진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 알리나 카바예바. ⓒphoto TASS

“모나코는 바다에 떠 있는 모스크바”

푸틴의 측근 인사들이 모나코를 비밀스러운 재정운용의 허브로 이용하는 이유로는 푸틴이 모나코의 군주인 알버트 공과 친밀하다는 사실이 꼽히기도 한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지난 20년 동안 모나코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급증했다”며 “모나코는 바다에 떠 있는 모스크바가 되었다”고 변호사 도미니크 아나스타시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부유한 러시아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따뜻한 기후와 면세(免稅)에 끌린다”며 “아무도 돈의 출처를 묻지 않는다. 점검하는 문화 자체가 없다. 세금신고를 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구 언론들은 2003년에 딸 출산을 기념하여 모나코에 럭셔리 아파트를 사줄 정도로 뜨거웠던 푸틴과 크리보노기흐의 관계가 정리된 이유도 궁금해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푸틴이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인 알리나 카바예바(38)와 밀회를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파경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알리나 카바예바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리듬체조 선수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그녀는 타타르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를 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여 동메달, 2004년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은퇴 직후인 2007년 정계로 진출하여 푸틴을 지지하는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 2008년 4월 ‘모스콥스키 코레스폰덴트’라는 신문이 처음으로 카바예바가 푸틴의 정부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이 신문은 즉각 폐간되었고 편집장은 해고되었다. 푸틴은 당시에도 연례기자회견에서 “나는 누군가가 내 사생활에 간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한다. 성적인 환상에 빠져서 코를 훌쩍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고드는 놈들이 있다”며 분노했다.

카바예바는 2013년 스위스의 고급 병원에서 딸을 출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 해에 푸틴은 본처인 류드밀라와 이혼했다. 카바예바는 2019년에는 모스크바의 최고급 병원에서 비밀리에 아들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카바예바는 지금까지 푸틴과의 사이에 4명의 아이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확인은 되지 않는다. 푸틴은 전처 류드밀라와의 사이에 두 딸이 있다는 사실도 공개한 적이 없다. 큰딸 마리아 보론초바(36)는 유전학자, 둘째인 카테리나 티호노바(34)는 수학자이다.

카바예바는 2015년부터는 의원직을 사임하고 이즈베스티야, 채널원 등을 거느린 친정부 성향의 거대 미디어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 미디어그룹은 푸틴의 친구인 유리 코발츄크가 운영하는 것이다. 카바예바의 공식 연봉은 무려 1100만달러나 된다. 카바예바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남자를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며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을 정도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반정부 지도자 나발니는 푸틴이 전 내연녀인 크리보노기흐에게 준 선물은 카바예바에게 준 것에 비하면 ‘사소한’ 수준이라며 “푸틴이 나랏돈을 훔쳐서 내연녀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나발니는 “카바예바는 공과 리본을 들고 점프를 하는 데는 세계 최고일지 몰라도 푸틴과의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신문·방송사를 관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나발니는 푸틴이 카바예바와 크리보노기흐의 어머니들에게도 가즈프롬을 통해 지원한다고 비판했다. 카바예바의 아버지인 카바예프는 러시아 정부의 중앙아시아 관련 사업의 실력자로 알려지고 있다.

나발니는 유튜브를 통해 “푸틴의 사생활에는 관심 없다.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는 원한다면 가족을 스무 개라도 거느릴 수 있다. 문제는 뇌물과 부패로 그 대가가 지불된다는 점이다”라며 “우리나라에는 거지가 2000만명이나 있다. 그런데 푸틴은 내연녀들에게 호화요트를 사주고 있다”고 개탄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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