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합친 말로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20~30대를 아우르는 말

모든 MZ세대에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MZ세대에게 ‘스터디카페’는 집처럼 익숙한 장소다. 대개 건물의 2, 3층에 있어 깨닫지 못할 뿐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라면 꼭 한 곳씩 있는 것이 스터디카페다. 지난 5월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스터디카페는 전국적으로 4만824곳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동(洞)은 모두 2079개니 말 그대로 골목마다 스터디카페가 있는 셈이다.

스터디카페에 들어가보자. 보통 스터디카페는 무인으로 운영한다. 대신 들어가면 좌석을 선택하고 이용요금을 결제할 수 있는 패널을 마주하게 된다. 원하는 좌석을 선택하고 요금을 지불하면 스터디카페를 이용할 준비가 끝난다.

스터디카페의 좌석 배치는 곳곳마다 다르지만 여러 형태의 좌석이 혼합돼 있다는 점은 같다. 낮은 칸막이가 놓여 있는 개방적인 큰 테이블에 마련된 좌석도 있다. 옆 사람의 책을 흘낏 쳐다보기는 어렵지만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책상 하나를 다 쓰도록 만들어 놓은 좌석도 있고, 폭이 좁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진 좌석도 있다. 아예 사방이 벽으로 막혀 문을 닫으면 고립되어 공부할 수 있는 독서실 같은 좌석도 있다. 노트북을 사용할 사람은 키보드 소음을 마음껏 내도 되는 ‘노트북 존’에 가면 된다.

거의 모든 스터디카페에는 음료와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 상당수가 무료로 제공된다. 문서를 복사·인쇄할 수 있는 복합기도 설치되어 있고 여럿이서 회의할 수 있는 ‘스터디룸’이 갖춰진 곳도 있다.

좌석이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터디카페가 ‘카페’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많은 스터디카페에는 ‘백색소음기’가 달려 있다. ‘백색소음’이란 적당한 정도의 소음으로 큰 소음과 달리 집중력을 향상시켜주거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색소음기는 이런 백색소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기계인데, 백색소음기 덕분에 스터디카페는 독서실처럼 조용하지 않다.

절간처럼 조용한 독서실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나 공부 거리를 가지고 방문하는 곳이라는 점은 같다. 그러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스터디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셔도 되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도 되지만, 대부분의 독서실은 매우 조용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독서실의 칸막이는 옆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다.

동네마다 있었던 독서실이 사설 학습 공간이라면, 공공 학습 공간으로는 도서관이 있다. 그런데 도서관의 열람실이 사설 독서실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점은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이다. 열람실에서는 문 여닫는 소리마저 성가셔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박현구 전남대학교 교수 등이 대학 내 열람실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한 대학생의 반응을 살펴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열람실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설문 대상자의 1.7%에 불과했다. 논문 ‘대학 독서실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특성과 사용자 의식 분석’을 보면 응답자의 3분의1이 넘는 사람은 소음 때문에 혈압이 상승하거나 소화불량, 수면장애까지 얻는다고 답했다. 독서실만큼 조용한 곳이 도서관의 열람실이다.

사실 이 모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이 인적 드문 절이었다. 꼭 사찰이 아니더라도 ‘절간같이’ 조용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했던 것이 보통 선비들의 모습이었다.

사찰에서 모든 유혹을 끊고 공부하는 일이 중요했던 이유는 선비들이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 매우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과거시험은 매우 경쟁률 높은 시험이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든 유생 중에 33명만을 뽑아 그중에서도 순위를 갈랐다.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는 유학의 모든 경전을 술술 외워야만 했다. 예를 들면 ‘술의 폐단을 논하라’는 질문에 술에 관련된 고사(故事)와 경구(警句)를 줄줄 읊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이 모범 답안이었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 것이다.

이 흐름은 600년을 이어져 현대 한국에서도 재현된다. 한국 사회에서 줄줄 외워 쓰는 시험은 거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열쇠였다. 행정 공무원도, 교사도, 대학생도 심지어 회사원도 시험으로 뽑아 왔다. 대부분의 시험범위는 국어에서 영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데 한두 문제의 실수가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경쟁적이다.

그렇다 보니 미래를 준비하는 데는 ‘절간처럼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다. 한국의 독서실에서는 간식을 먹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반복되면 신경질적인 ‘조용히 해주세요’ 메모가 전달되곤 했다.

혼자에서 여럿으로, 공부의 변화

그런데 MZ세대에 들어서 변화가 시작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험의 힘이 점점 약해졌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는 중간·기말고사의 비중이 줄어들고 ‘조별 과제’의 비중이 늘어났다. 단순히 문제를 읽고 푸는 일보다 과제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시험의 단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일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치렀던 사법고시가 있다. 사법고시는 단지 시험의 결과로만 법조인을 선발했다. 평소에 법조인이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나 역량 같은 것은 시험에서 충분히 풀어내기 어려웠다.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배경에는 이 같은 비판이 있었다. 로스쿨 역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변화는 일어났다. 예비 법조인들이 인턴십을 거치고 역량을 쌓아가는 데에도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당장 취직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상식 문제를 달달 외우기만 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됐다. 동료와 협업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시험해보는 기업들이 많아진 만큼 친구, 선후배와 함께 의견을 나누며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결과에서 과정으로 공부의 형태가 옮겨가면서 마냥 조용하기만 한 독서실은 ‘공부’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독서실만큼 조용한 도서관 열람실도 마찬가지다. 결국 MZ세대는 카페로 나오기 시작했다.

카페가 선호되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적당한 소음이 있으면서도 개인 공간이 확보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토론을 벌여도 괜찮다. 이어폰을 꽂고 조용히 공부를 즐긴다 해서 주목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지나치게 개방적일 뿐이다.

발 빠른 사업가들은 카페와 독서실을 결합한 ‘스터디카페’를 만들었다. 현재의 스터디카페가 있기 전 ‘스터디룸’을 제공하는 형태의 업장도 있긴 했다. 개인적인 공부를 한다기보다 친구·동료와 만나 토의를 하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한국의 학교 현장에는 모여서 자유롭게 토의를 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혼자 하는 공부에서 같이 하는 공부로, 공부의 형태는 바뀌는데 공부할 곳은 부족했던 것이다. 조용한 곳에서 내용을 달달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조금 더 느슨하게, 동료들과 함께할 수도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MZ세대는 스터디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의 형태가 변화했다는 것은 평가 항목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험의 결과만 보는 평가에서는 평가자의 역량, 인성 같은 요소가 배제돼 있었다. 그러나 과정을 보는 평가에서는 보다 정성적(定性的)인 평가가 이뤄진다. 요구하는 인간형도 달라진다.

한정적인 변화, 지지부진한 현실

MZ세대는 달라진 평가 항목, 즉 달라진 ‘인재상’ 요구에 맞춰 자신을 다듬어 왔다. 대학에서는 토론을 통해 과제를 설정하고 팀원들과 힘을 합쳐 과제를 해결하고 역할을 나누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런 공부 형태가 MZ세대의 미래에도 적용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MZ세대는 학창 시절을 거칠수록 평가받을 때 혁신적이고 협력적인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아왔다. 특히 MZ세대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MZ세대가 맞이한 실제 사회는 그 같은 인간형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곳이었다. 전북지역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A씨의 채용 과정에서는 창의적인 발상을 많이 요구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합격해 들어온 회사 분위기는 경직돼 있고 수직적이었어요. 회사 들어가기 전까지는 좀 더 발랄한 20대 시절을 보냈는데,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기성세대가 겪었을 법한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게 되더군요.”

이 괴리는 MZ세대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변화의 범위는 한정적이다. 배워온 것과 막상 하는 일의 차이는 크다. 경기도의 한 IT 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B씨는 “차라리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효율적으로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고 업무 지시가 잘 전달되는 회사를 만들겠다, 그런 회사에 적합한 인재상을 찾는다고 말하면 좋겠어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을 찾는 것처럼 포장하고는 막상 하는 일은 그렇지 않네요.”

지난 3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자. 기업 조직문화를 위계형·공동체형·혁신형·시장형으로 나누었을 때 직장인들은 어떤 조직문화를 선호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위계형을 선호하는 직장인이 36%로 가장 많았다. 공동체형이나 혁신형처럼 새로운 형태의 업무 환경은 이상적일 뿐, 효율성과 명확성을 더 중시하는 현실이 고려된 결과다.

어쩌면 MZ세대에게 이런 괴리는 다소 일상적일지도 모른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지만 실제로는 자립하기 어려운 현실, 신념과 세계관을 갖출 것을 요구받지만 막상 펼쳐낼 곳이 없는 현실 같은 것들은 MZ세대가 늘 겪는 일이다.

그러니 MZ세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순응적이고, 혁신을 추구할 것 같다가도 현실에 안주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공부와 현실 사이의 차이를 절감하는 것이 MZ세대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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