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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0호]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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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배 타고 가야로 온 아유타국 공주... 신화의 미장센에 깔린 역사적 사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10-27 오전 8:08:13

▲ 1951년에 출간된 수로왕 관련 유적 그림. 구지봉, 수로왕릉, 허왕후릉, 봉황대, 초선대 등의 모습을 담고 있다. photo. 뉴시스
우리 역사서로서 제목을 제대로 달고 가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기록은 단 하나뿐이다. 이 조차도 가야 전체의 역사가 아니라 전기 가야연맹의 대표국가인 가락국, 즉 금관가야에 대한 내용만 담고 있다. 1281년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펴낸 ‘삼국유사’ 안에 포함된 ‘가락국기’라는 기록이다.
   
   가락국기는 물론이고 삼국유사 전체가 어느 정도 역사기록보다는 민담집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담겨 있는 내용 중에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황당무계해 보이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당부분이 아이들을 위한 동화 버전으로 만들어져 사랑을 받아오긴 했지만, 신뢰할 만한 역사기록으로서 진지한 탐구 및 분석 대상으로서는 어느 정도 열외에 놓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특징은 삼국유사의 편찬을 주도한 일연의 편집 방침에서 오는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같은 고려조에 편찬된 ‘삼국사기’가 국가 체제에 기반한 현세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한 것이라면, 삼국유사는 역사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간다는, 이른바 신이사관(神異史觀)에 입각해서 편찬된 것이라는 얘기다.
   
   
▲ (왼쪽)경북 군위 인각사에 보관되어 있는, 현대에 그려진 일연의 초상. (오른쪽)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는 ‘삼국유사’ 규장각본. 16세기 초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보 30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왼쪽) Creative Commons License, huh ho 작품,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ED%8C%8C%EC%9D%BC:BHST_Ingaksa_Guksajeon_Ilyeon-1.jpg(오른쪽) 퍼블릭 도메인

   당시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침입으로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고 삼별초가 치열한 항쟁을 계속하고 있었을 때다. 팔만대장경에 담긴 5272만 개라는 천문학적 수의 글자를 한 글자마다 세 번씩 절을 하고 새겼을 정도로, 고려인들은 온 영혼과 육신의 힘을 다해 국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뜻을 모아 편찬된 게 삼국유사다. 나라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원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정신력이 고취될 수 있도록 하는 염원의 작업이었을 테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만연해 있었던 절망적 분위기에서 절대자에 의지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부흥시키려는 의도 또한 강력히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다 보니 일반 역사기록보다 현저하게 초(超)현실적인 느낌의 콘텐츠가 많아진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런 특성은 삼국유사에 담긴 내용이 오랫 동안, 신뢰할 만한 역사기록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삼국유사가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부강국 반열에서 밀려나 어느새 약소국이 되어버려야 했던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자주적인 정신을 담고 있는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삼국유사는 묘한 특성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전해도 신화로 간주되기도 했고, 또 신화인 것처럼 보이는 서술 속에 엄청난 역사적 사실을 숨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가락국기는 그런 특성을 갖는 기록의 대표적 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유타국’ 출신 공주가 가락국 수로왕을 찾아와서 청혼한 얘기는 옛 이야기로도 인기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20세기 말부터 여러 가지 연구에 의해, 이것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일로 인정받고 있다.
   
   
▲ 허황옥 공주가 붉은 돛을 단 배를 타고 항해해서 가락국으로 오는 이미지를 담은 종이 판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기록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실재임을 최초로 고증했던 포운 이종기 선생의 1990년 작이다. 사진 제공: 이진아

   여기서는 아유타국의 황옥 공주가 수로왕을 찾아 배를 타고 왔던 이야기 그 자체보다, 그런 줄거리의 배경적 요소, 즉 미장센(mis-en-Scene)을 살펴보고자 한다. 뜻밖에 그 상황에 대해 말해주는 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인데…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모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하늘의 상제(上帝)를 뵈었는데, 상제께서는, 가락국의 왕 수로를 하늘이 내려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사람이다… 너는…그곳으로 떠나라'하셨습니다.”
   
   "공주가 멀리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 스스로 오셨으니 이 몸에는 매우 다행한 일이오."
   
   왕은 드디어 그와 혼인해서 함께 두 밤을 지내고 또 하루 낮을 지냈다…
   
   (공주를) 수행한 신하 두 사람과 그 아내, 데리고 온 노비까지 합해서 20여 명인데, 가지고 온 금수능라(錦繡綾羅)와 의상필단(衣裳疋緞), 금은주옥(金銀珠玉)과 구슬로 만든 패물들은 이루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들이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내는 데 뱃사공이 모두 15명이라 이들에게 각각 쌀 10석과 베 30필씩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만일 가락국이 별 볼 일 없는 국가였다면, 이 대목은 그야말로 황당한 판타지처럼 간주되어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가락국이 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명성을 떨칠 정도의 부강국이었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바닷길로 비교적 원활하게 교류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부분들이 눈에 띈다.
   
   첫째, 당시 정보 네트워크의 파워와 함께 가락국 및 수로왕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 삼국유사에서 다른 곳의 기록에 의하면 공주가 2만5000리의 바닷길을 왔다고 한다. 아무리 옛날 기록이라 해도 이런 구체적인 숫자가 전혀 근거 없이 나오는 건 아닐 테다. 이 거리는 현대의 단위로 환산했을 때 약 1만 킬로미터다.
   
   구글 지도 데이터에 의하면, 현재 아요디아 인근 도시인 럭나우에서 김해까지의 직선거리는 4614㎞이다. 하지만 고대에 배를 타고 오는 길은 훨씬 길어진다. 이 연재 앞 기사에서 봤던 대로 철기 제작인의 동진 경로에 준해서 보자. 갠지스 강을 따라 내려와 동남아시아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고, 대만에서부터는 쿠로시오 해류 및 그 지류인 쓰시마 난류를 타고 왔다고 보면, 그 항해노선의 총 연장은 약 1만 킬로미터가 된다. 서기 1~2세기 즈음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던 거리 단위로 말하면 딱 2만5천리다.
   
   
▲ 고대의 항법과 해류의 움직임을 고려한 황옥공주의 ‘2만5천리’ 뱃길 노정에 대한 추정. 구글 지도 데이터에 의하면, 현재 아요디아 인근 도시인 럭나우에서 김해까지의 직선거리는 4614㎞이다. 갠지스 강을 따라 내려와 동남아시아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고, 대만에서부터는 쿠로시오 해류 및 그 지류인 쓰시마 난류를 타고 왔다고 보면, 그 항해노선의 총 연장은 약 1만 ㎞가 된다. 지도 작성: 이진아

   공주의 고향인 아유타국의 소재에 대한 논란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 연재에서는 위와 같은 계산에 의거해서, 현재 갠지스 강 중류의 아요디아에서 그리 크게 벗어난 곳은 아니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황옥공주는 그렇게 먼 곳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수로왕도 공주도 서로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의 최근 동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 남쪽을 잇는 해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의 정보 네트워크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가락국이 강성한 나라였고 수로왕의 명성이 대단했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두 번째로, 아유타국에서 온 배는 각종 사치품을 싣고 있었고, 가락국에서 돌아가는 배에는 쌀과 실용적인 직물이 실렸다. 지난 기사들에서 여러 번 나왔지만, 이 정도의 원거리 항해를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절박한 니즈에 등 떠밀리고 있기도 했을 테다. 만일 기후변동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 혹은 거기서 파생된 인간 집단간 분쟁의 결과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이 갑자기 부족해졌다면 그런 생필품이 풍부하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 목숨을 건 항해를 불사할 사람들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럽다.
   
   고대의 한반도는 역사를 통해 항상 곡식이 풍부한 사회였던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다음 회차의 기사에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하려 한다. 그보다 앞서 가락국기에 실려, 오랫동안 황당한 얘기로 묵살되어 왔던 역사적 실재의 모습을 좀 더 들여다보자.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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