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그린 스마트 교육을 시행 중인 서울 중구 창덕여자중학교를 방문해 테크매니저로부터 스마트 교육에 활용하는 태블릿PC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그린 스마트 교육을 시행 중인 서울 중구 창덕여자중학교를 방문해 테크매니저로부터 스마트 교육에 활용하는 태블릿PC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지난 9월 15일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을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형 BYOD 스마트기기 휴대 학습, 가방 쏙!’(가칭) 사업을 재검토하고, 현장교사의 의견을 들어 대책을 마련하라!”는 긴 제목을 가진 3쪽에 달하는 보도자료였다. 내년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서울특별시 내 학생 전원에게 무상으로 태블릿PC를 제공해서 ‘미래 교육’을 시행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사업을 재검토하라는 요구였다.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은 지난 7월 9일 제2기 교육감 임기 3주년을 기념하여 ‘교육의 디지털 전환’을 선언하며 미래교육체제 전환을 위한 학습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서울형 BYOD 가방 쏙’ 사업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3년간 서울시내 중학교 1학년 학생과 모든 교원을 대상으로 학교별로 통일된 스마트기기 1대씩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일단 내년에는 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8만8000대의 태블릿PC를 보급한다는 것이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이다.

600억 들여 8만8000대 태블릿PC 보급

전교조 서울지부의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그 근거가 매우 타당하다. 일단 휴대폰을 아침마다 수거하거나, 자유로운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는 학교가 대다수인 현실에서 스마트기기를 지급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실제 모든 학생에게 스마트기기를 보급하면 과연 수업시간에 더 집중을 할 수 있을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또한 스마트기기는 교사의 교육과정 구현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해당 매체가 필요한지 여부는 전적으로 교사의 전문성에 기반한 선택이다. 수업별, 과목별, 성취도별 차이 없이 모두에게 종이와 칠판 대신 태블릿PC를 강요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산 낭비도 당연히 문제로 지적된다. 혁신미래학교 예산으로 이미 1인 1기기를 가진 중학교에도 또 새로 기기를 신청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고 한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기기 구입을 ‘선심성’으로 규정하고 시민의 세금을 낭비하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예산 낭비에 대한 논란은 반복적이다. 올해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신입생에게 지급하는 입학준비금 30만원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와 협력하여 서울 관내 국·공·사립 중·고(고등기술)·특수 등 각종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학준비금 명목으로 총 416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 중 교육청 부담은 50%이다. 지난 5월에는 학교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의 결식 우려를 없애겠다며 560억원의 예산을 들여 편의점에서 사용 가능한 제로페이 모바일 쿠폰도 지급했다. 나중에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제한된 쓰임새 때문에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전문가 자문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제품만 구매 가능해서 도시락, 제철과일 등 10개 군의 식품 중 나트륨 기준(평균 1067㎎)을 초과하는 식품은 살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성인 기준으로 제조된 도시락은 구매 불가능한 제품이 많았고, 김밥은 가능하지만 삼각김밥은 불가능했다. 떠먹는 요구르트는 가능하고 마시는 요구르트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우스꽝스러웠다. 과거에는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를 놓고 다투기라도 했지만 이제는 1000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어려움 없이 집행된다. 넉넉해진, 아니 넘쳐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덕이다.

학생은 줄고 교육청 예산은 계속 증가

교육 예산을 낭비할 가능성은 내년이 더 크다. 내년 교육 예산은 올해보다 16.8%(12조원) 늘어난 83조원인데 이 중 17개 시·도 교육청 배정 예산이 21%(11조1000억원) 증가하여 64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올해 총 교육 예산의 90%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교육 예산의 증가는 저출산 영향으로 6~21세의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2010년 995만명에 달하던 학령인구는 2021년 현재 764만명으로 줄었다. 내년에 학령인구는 20만명 더 줄어들 전망이다. 학생수의 변동과도 상관없이 시·도 교육청의 예산이 증가하는 이유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내국세의 20.79%를 시·도 교육청 예산으로 자동 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교육 예산의 대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차지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란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을 설치·경영하는 데 필요한 재원으로서,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 전출 제외)로 구성되어 있다. 시·도 교육청 예산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교부율도 조정되어 2019년 20.46%, 2021년 20.79%로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1972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후진국이었지만, 교육만큼은 최우선으로 투자하자는 취지였다. 당시는 초등학교만 의무교육을 간신히 실시하던 시절이었고 유아 교육이나 대학 교육은 소수에게만 가능했었다. 중학교 교육은 1987년 제정된 현행헌법에서 의무교육화되었고, 고등학교는 이번 정부가 무상교육 정책을 실시하기로 하여 사실상 의무화되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지급 대상도 논란이다. 현재 초·중·고 교육은 모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직접적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유아 교육은 대부분의 아동들이 참여하지만 의무교육화되지 않아 보조금으로만 지급된다. 또 대학은 진학률이 70%에 이르지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초·중·고등학교는 돈이 남고, 유아 교육과 대학 교육은 예산 부족으로 허덕인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7월 17일 그린 스마트 스쿨 시범학교인 서울 강서구 공항고등학교에서 열린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추진계획 발표회에서 현장 브리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7월 17일 그린 스마트 스쿨 시범학교인 서울 강서구 공항고등학교에서 열린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추진계획 발표회에서 현장 브리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9 교육청 이월 불용액만 6조6000억

교육부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따르면 2019년 결산 결과 시·도 교육청이 사용하지 못하고 남긴 이월액 및 불용액은 6조6000억원에 달한다. 남은 돈이 이 정도니까 서울시 교육청의 1000억원 예산 낭비는 당연하다. 남겨서 욕먹는 것보다는 쓰고 욕먹는 게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대통령 선거가 관심이지만 내년 6월에는 시·도지사와 시·도교육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도 있다. 때맞춰 시·도 교육청 예산이 11조원이나 증액된다니 현직 교육감들은 표정관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 같다. 아무런 노력 없이도 사용가능한 어마어마한 예산이 배정되기 때문이다.

시·도 교육청의 예산 낭비는 감사원에 의해서도 지적되었다. 2020년 발간된 지방 교육재정 효율성 및 건전성 제고 실태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통해서다. 2014년에서 2018년까지 17개의 시·도 교육청의 매월 수입·지출, 월말 잔액, 정기예금 등 현금 흐름을 점검·분석한 결과 월별수입(당월수입+전월잔액)의 연평균값은 2014년 8.9조원에서 2018년 15.0조원으로 68.5%(6.1조원) 대폭 증가한 반면, 월별지출의 연평균값은 2014년 4.7조원에서 2018년 6.0조원으로 27.6%(1.3조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지출증가가 수입증가에 미치지 못하면서 월말잔액(당월수입+전월잔액-당월지출)의 연평균값은 2018년 9.0조원으로 2014년(4.2조원)에 비하여 2배 이상(114.3%·4.8조원) 증가하였다. 2018년의 경우 매월 최소한 5.3조원의 자금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감사원은 이 돈으로 부채인 지방교육채 2조원에 대한 상환과 재정 칸막이로 작용해 ‘한쪽에선 부족하고, 한쪽에서는 남는’ 불합리한 결과에 대한 과감한 개선을 제안했다. 시·도 교육청이 어떻게 수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감사원이 지적한 ‘한쪽에선 부족하고, 한쪽에서는 남는’ 불합리한 예산은 OECD 통계와 비교하면 자명해진다. 2010~2016년 우리나라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를 학교급별로 구분하여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초·중·고교) 분야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2011년까지만 해도 OECD 가입국 평균치보다 낮았으나 2012년에 평균을 추월한 후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고등교육(대학교) 분야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7년 내내 OECD 가입국 평균치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초등학교 1만1029달러, 중·고등학교 1만2370달러였으나 대학교는 1만486달러에 그쳤다. OECD 평균은 초등학교 8470달러, 중·고등학교 9968달러, 대학교 1만5556달러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대학 교육에 초·중·고등학교 교육보다 1인당 교육비를 적게 쓰는 나라다. OECD 평균은 1인당 교육비를 중·고등학교 교육보다 대학 교육에 50% 이상 사용했지만, 한국은 15%나 적게 사용하였다. 대학 등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재원 비율은 0.6%로 OECD 평균(0.9%)에도 미치지 못한다. 20.79%를 초·중·고등학교가 다 사용하지도 못하니 유아 교육과 대학 교육이 나눠 쓰라는 것이 감사원 감사 결과의 메시지다.

초·중·고 예산 느는데 사교육비는 증가

초·중·고등학교에 대한 예산 투자가 늘어나면 사교육비라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교육비 부담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현재 사교육비 지출 총액은 21조원에 달하는데 1인당 사교육비 월 지출액은 2007년 22만2000원에서 2019년은 32만1000원으로 50% 가까이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정부의 교육 예산은 40조원에서 75조원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세금으로 투자되는 교육 예산이 늘어나는데 가계 부담이 줄기는커녕 동시에 증가하는 ‘쌍끌이 지출’이 일어난 것이다.

초·중·고 교육과 정부재정과 가계지출이 이렇게 늘어났는데 그 성과를 평가할 방법은 막막하다. 전국 단위의 학생들 성취도평가를 더 이상 실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OECD에서 실시하는 읽기, 수학, 과학 평가인 PISA 순위로 외국 학생들과의 비교를 해볼 뿐이다. 한국 학생들의 상대적 성취도는 OECD 회원국 사이에서는 최근 10년간 큰 변화가 없지만 전체 참가국과 비교해보면 하락세다. 특히 읽기 부분이 그렇다.

읽기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책이 필요할까 아니면 스마트기기가 필요할까? 읽기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을 위해서 서울시 교육청이 중학교 신입생에게 스마트기기 구매 대신 오히려 같은 액수인 1인당 70만원어치의 도서상품권을 지급했으면 예산 낭비 논란은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13~19세 청소년은 연평균 13.1권의 책을 읽어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독서율이 높다.) 물론 중학교 내내 읽어야 할 책의 리스트와 그 이유를 같이 제공했으면 박수도 받았을 것이다. 그게 교육에 기대하는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텅 빈 스마트기기를 지급하는 것보다 2000년 된 종이책이 학생들을 더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을 아는 데는 1원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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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명지대 교수·청소년지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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