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의 신생 노조 ‘올(ALL)바른노조’는 지난 8월 15일 메타버스 소셜미디어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photo ‘올(ALL)바른노조’
서울교통공사의 신생 노조 ‘올(ALL)바른노조’는 지난 8월 15일 메타버스 소셜미디어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photo ‘올(ALL)바른노조’

‘기존에 없던 노동운동’은 변화의 새바람이 될까,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까. IT, 제조업, 서비스업, 교육, 공공기관 등 거의 모든 일터에서 ‘MZ세대’가 주도하는 제3의 노동조합이 생겨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들 신생 노조는 연차가 5년도 안 된 20대 위원장을 임명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대 노조에 합류해 기성 노동권의 힘을 빌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운동의 문법도 확연히 다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SNS)에서 삽시간에 지지자들이 모여 조합이 결성되고, 조합 활동과 관련 없는 친목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난 10월 7~8일 트럭 시위를 주도한 스타벅스 파트너(직원)들처럼 철저한 익명성에 기반해서 활동하며 ‘조직’이 되기를 거부하는 느슨한 단체 성격의 노조도 생겨나고 있다.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것은 현장의 상황을 개선해줄 실질적인 해결책이며, 이와 무관한 정치적 구호나 활동에 대해서는 명백한 거리를 둔다. 탈위계, 탈조직, 탈정치가 그들의 키워드다.

공기업에도 신생 노조 바람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선택한 노동조합은 현재 대부분 ‘MZ 노조’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지난 2월 설립된 LG전자의 ‘사람중심 사무직노조’(유준환 위원장·30)가 대표적이다. 이를 시작으로 2030 위원장과 대다수의 젊은 사무직 조합원을 특징으로 하는 노조가 올해 연이어 만들어졌다. 현대차그룹의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이건우 위원장·27), 금호타이어의 ‘사무직노조’(김한엽 위원장·34) 등을 꼽을 수 있다. 사무직 중 비관리직급 노동자는 대부분 연차가 10년 이하인 사원~과장급에 해당하기 때문에 젊은 얼굴들이 대거 조합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공기업에서도 신생 노조 바람이 불고 있어 화제가 됐다. 지난 8월 15일 서울교통공사에서는 20대 직원인 송시영(29)씨를 위원장으로 ‘올(ALL)바른노동조합’ 출범식이 열렸다. 출범식은 메타버스 기반 소셜미디어에서 진행돼 눈길을 끌었는데 이 노조 조합원의 90% 이상이 2030세대다. 기존에 서울교통공사에는 2018년 설립된 민주노총 소속의 1노조와 한국노총 산하의 2노조가 있어 왔다.

‘올(ALL)바른노동조합’ 설립 취지는 기존 노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소통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젊은 직원들은 사측과 진지한 대화를 원했는데, 기존 노조의 대화 방식은 회사와 차분하게 앉아 타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다. 사측에서도 기존 노조의 투쟁만 생각하고, 대화를 시도하려는 젊은 직원들과의 소통을 꺼렸다. ‘올(ALL)바른노동조합’ 설립을 도운 김경락 노무사는 “사측에서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심정으로 노동자들과의 대화 자체를 어려워했던 것 같다”며 “평가 체계 등 노동 조건에 대한 의문을 터놓고 얘기할 창구를 법적 체계 안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젊은 직원들이 새롭게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젊은 노동자들의 단체는 ‘조직’으로서의 성격이 약하다. 효율적인 소통만 가능하다면 비대면, 익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초등교사노조’를 설립한 정온(28) 위원장은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의를 거쳐 조합을 설립한 이후 계속 줌(zoom)으로 회의를 진행해 왔다. 코로나19 사태도 있었지만 비대면으로도 충분히 많은 토의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지난 10월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이 인력난 해소와 근무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트럭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이 인력난 해소와 근무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트럭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투쟁보다 공정!

최근 스타벅스 직원들의 트럭 시위도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시작됐다. 트럭 시위를 주도한 사람은 ○○○ 위원장이 아니라 닉네임 ‘2021 스타벅스 코리아 트럭 시위 총대 총괄’이다. 이처럼 젊은 조합원들은 메타버스, 네이버 밴드, 익명 등록이 가능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각종 커뮤니티를 모두 소통의 장으로 활용한다. ‘파업도 메타버스에서 할 거냐’ ‘비대면으로 무슨 영양가 있는 회의를 하겠느냐’ 등 반감을 보이는 시선도 있지만, 젊은 노조 위원장들은 비대면 모임이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온 위원장은 “상위 노조에 가입할 것인지와 같이 중요한 문제도 네이버 밴드 등 소셜미디어에서 투표, 댓글 기능 등을 활용해 활발히 토론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신생 노조를 ‘2030 노조’라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양대 노조에 관심이 없거나 거부감을 보이던 직원들이 주로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이들의 나이와 연차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신생 노조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불만을 해결하는 게 노동조합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입장이다. 서울교통공사의 ‘올(ALL)바른노조’에 가입한 15년 차 기관사 김씨가 조합에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입사하자마자 민주노총 산하의 서울교통공사 노조에 가입했지만, 노조가 조합원의 이익은 뒷전으로 한다는 생각에 조합을 탈퇴했다. 무노조원으로 지내다가 신생 노조에 가입한 이유에 대해 그는 “신생 조합은 정말 직원들의 복지나 근로환경 등을 위해서만 일을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고 했다.

신생 노조의 2030 조합원들이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도 현장의 고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역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안전을 회사가 신경 써달라, 성과급 등 구성원의 처우를 결정지을 때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달라, 대체근무나 휴일근무 수당을 적법하게 챙겨달라, 업무 과중을 보완할 인력을 채용해달라, 교사에 대한 성추행 피해지원을 확대하고 예방책을 마련해달라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요구 사항들이다.

이들 신생 노조들은 실용과 공정을 표방하는 만큼 정치적 성격이 강했던 기존 노조와도 선을 긋는다.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민주노총 선 긋기는 신생 노조의 ‘탈정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월 5일 스타벅스 직원들이 트럭 시위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논평을 내고 “노동조합을 결성할 것을 권한다”면서 “트럭 시위로는 교섭할 수 없지만, 노조는 조직적으로 교섭할 수 있다”고 조언했었다. 또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스타벅스 파트너들은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 주최 측은 블라인드에 “트럭 시위를 당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변질시키지 마라”며 “트럭 시위는 노조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기자가 블라인드 채팅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스타벅스 파트너 A씨는 “내가 시위를 지지한 이유는 지금 스타벅스 직원들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서였다”며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때 노동운동에도 몸담았던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생 노조를 보면 (노동자 친화적인) 진보정권을 향해서도 필요한 얘기,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한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탈정치적 성향이 보인다”며 “보수든 진보든 정권 성향에 상관없이 노사민정이 모여 논의하고 분석하는 자리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신생 노조들이 ‘탈정치’를 표방하고 있지만 야권에서는 이들의 조합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새로운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진보정권, 진보정당 목소리에 공공연히 힘을 실어왔던 민주노총 등 기존 노조운동에 대한 반감을 이들 젊은 노조와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한다. 지난 10월 18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서울교통공사의 올(ALL)바른노조를 놓고 “참 젊은이들답다”며 “지금까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뭘 달라’는 식이었다면 MZ세대 노조는 우선적인 가치가 ‘공정’”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의 ‘올(ALL)바른노동조합’은 설립 직후인 지난 8월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과 간담회를 가졌고, 지난 10월 13일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도 만났다. 송시영 위원장은 “우리 조직은 노조가 정치집단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만들어진 만큼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단체교섭권도 없고, 조합원 수도 많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대중에 노출될 기회를 잡는 것이 조합에 더 이득일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 많다

그러나 지금의 2030 중심의 새로운 노동운동 움직임이 명실상부한 변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조합원 수를 늘리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서울교통공사 직원 1만6800여명 중 1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노조 가입원이 1만여명인 반면 제3노조인 ‘올(ALL)바른노조’는 지난 10월 25일 기준 조합원이 500명 정도다. 송 위원장은 “처음에 설립 논의가 나왔을 때 채팅방에 1000명 정도가 있었는데, 조합에 가입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눈치도 보이고 하니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교섭권 논의가 시작되는 12월 초까지 노조 위원들과 엄청 열심히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공기업에서도 아직 조직을 꾸리진 않았지만, 우리 노조가 표방하는 공정과 합리의 가치에 공감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지금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번 터지면 파급력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근로자들이 조합 운영을 맡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노동운동에 경험이 적은 ‘비전문가’들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다.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지난 4월 노조 설립 후 만들어진 산하 위원회에서 이건우 위원장에 대한 ‘자질’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노조위원 중 한 명이 20대인 이 위원장의 자질을 거론하면서 안정적인 노조 운영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지금은 좀 정신이 없지만 각종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노조를 확장해나갈 생각”이라며 “단순히 나이 때문이 아니라 신생 노조라면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우려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2030 중심의 노동운동이 “유의미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평한다. 윤동열 교수는 “1987년부터 시작된 학생운동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듯이, 젊은 세대가 노동운동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은 있겠지만,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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