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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3호]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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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아리랑 고개 넘어 마지막 답사 떠난 96세 지리학자

황은순  기자 hwang@chosun.com 2021-11-12 오후 4:08:15

photo 영상미디어
아흔 살을 앞둔 한 재미 지리학자가 ‘아리랑’ 연구에 빠져 중앙아시아 답사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2013년 8월이었다. 지난 11월 8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한 이정면(96) 유타대 종신 명예교수였다. 인터뷰를 청해 만난 당시 89세의 노학자는 자료가 담긴 묵직한 백팩을 메고 나타나 “1937년 소련에 의해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발자취대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타슈켄트까지 6000㎞를 따라가면서 고려인들을 만나고 숨은 아리랑 역사를 찾아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노학자는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다”면서 건장함을 과시했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가능할까 싶었다.
   
   반신반의했던 노학자의 도전은 2014년 9월 실행에 옮겨졌다. 여행사가 나이 때문에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일정이 축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첫발을 뗀 13박14일 시베리아 답사는 2015년 9월 중앙아시아 답사, 10월 사할린~시베리아 답사까지 3차에 걸쳐 10만㎞ 대장정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물은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이지출판사)라는 1차 답사기와 ‘Colors of Arirang’(이지출판사·2017)으로 엮어졌다.
   
   책을 낸 이후로도 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18만 고려인 강제 이주와 아리랑의 애환’이라는 책을 집필 중이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몇 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던 그는 일주일 전 갑자기 쓰러지기 전까지도 집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할 일이 너무 많아 124세까지 살아도 부족하다”던 그는 미완의 원고를 남기고 생의 고개를 넘어 돌아올 수 없는 그만의 대장정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을라 여사와 2남1녀가 있다.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장례는 현지에서 유타한인회장으로 치러진다.
   
   그는 1925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 경희대 교수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대와 미 캘리포니아대를 거쳐 1972년 유타대학에 자리 잡았다. 학자로서 조국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늘 ‘마음의 빚’으로 여겼다. 20여년 연구 끝에 ‘고대 한·일 관계사의 진실’에 대한 책을 낸 것도 빚갚음의 하나였다. 유타대에서 정년퇴직을 한 이후 그는 운명처럼 ‘아리랑’ 연구에 빠졌다.
   
   한국에 들어와 정선, 밀양, 진도를 훑고 다닌 후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지출판사·2007)을 펴내고 2009년 ‘Arirang: Song of Korea’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을 냈다. 해외에 ‘아리랑’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영문판을 본 유엔 주재 북한 참사관이 “좋은 책을 썼는데 북한 ‘아리랑’이 빠져서 아쉽다”면서 연락을 해왔다. 참사관의 초청으로 그는 2011년 10월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 고려호텔에 10일간 머물면서 북한 학자들을 만나 한반도 ‘아리랑’의 퍼즐을 맞췄다. 북한 학자들과 의기투합, “남북한 아리랑을 체계화해서 아리랑학을 만들자” “남북 아리랑 심포지엄을 추진하자”는 약속과 함께 북한을 다시 방문하려던 계획은 그 후 남북 관계 경색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서용순 이지출판 대표는 2007년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 출판을 계기로 아리랑 2차 답사에 동행하는 등 고인의 작업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한 달여 전 마지막 통화에서 “나 지금 원고 쓰고 있어. 빨리 써서 한국에 가져갈 거야”라면서 책 출판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서 대표는 “묻혀 있던 자료를 엄청나게 찾아내셨다. 10권 분량의 대기획을 계획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건강비결을 ‘하심(下心), 마음 내려놓기’라고 말하곤 했다. 꼼꼼하고 메모광이었던 그는 일과 만난 사람을 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고려인의 ‘아리랑’에 대한 숨은 애환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것은 내 일이다”를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그는 귀한 자료를 우리의 숙제로 남겨놓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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