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의 일출. 전북 군산대학교가 실시한 ‘새만금 드론 항공촬영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photo 뉴시스
새만금의 일출. 전북 군산대학교가 실시한 ‘새만금 드론 항공촬영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photo 뉴시스

“동남아 근로자 한 명을 더 데려오려 해도 공항이 필수입니다.”

늘 어려움에 시달리는 전라북도 기업들에 ‘새만금 신공항’은 새로운 희망이다. 현재 전북 기업들 중 99.7%는 종업원 50명 미만의 중소기업. 김동창(66) 전북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이들 기업에 새로운 공항이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설명하곤 한다. 새만금에 들어설 이른바 ‘환황해권 경제 시대’의 공항은 국제 비즈니스-물류의 핵심 인프라다. 중소기업 생태계를 받쳐줄 대기업 유치를 위해서도 신공항이 절박하다는 호소이다. 그는 “공항 구상이 늦었지만 탄탄대로일 거라 믿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시민단체 반대로 속을 태우고 있다”고 했다.

새만금 국제공항은 지역 숙원이었다. 전북은 50년 항공 오지(奧地)였다. 가깝다는 청주공항·무안공항도 전주에서 2시간 걸린다. 1992년 개항한 군산공항은 미 공군 활주로를 쓴다. 그래서 제약이 많다.

염원하던 공항을 향한 활로가 최근 열렸다. 정부가 2019년 군산공항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준 것이다. 국토부는 군산공항 서편의 3.4㎢ 부지에 신공항 터를 잡았다. 활주로 길이가 2.5㎞로, 2028년 개항 목표다. 올해 말 기본계획 고시가 예고됐다. 총사업비 7800억원 중 설계비 200억원이 내년 정부 예산안에 계상됐다.

신공항은 미군기지 확장인가

이랬던 사업이 지난 5월 복병을 만났다. 환경단체 등 40여 지역단체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란 연대를 이뤘다. 그중 다수는 새만금 사업 자체를 반대해왔다. 새만금호 해수유통을 요구했던 단체도 여럿이다. 이 단체들이 전북도청과 전주지방환경청, 군산 주민설명회장, 세종 국토부 청사 등을 돌며 시위와 천막농성, 기자회견을 이어왔다. 신공항은 새만금 마지막 갯벌 생태계를 파괴하고, 탄소중립에 역행하며, 토건자본의 배만 불릴 적자 시설이란 주장이다.

새만금 땅은 갯벌을 없애 만든다. 방조제 공사가 두 차례 중단됐지만 소송에서 대법원은 끝내 2006년 사업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시민단체는 수질악화를 이유로 새만금에 해수를 유통하자고 주장해왔다. 정부는 작년 말 “우선 2023년까지 하루 두 차례로 해수유통을 늘리고 만경강·동진강에 쏟던 수질개선 투자를 호수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만경강·동진강의 수질은 지난 10년간 3급수와 2급수 수준으로 좋아졌다. 환경기초시설을 더 짓고 주변 축사를 대단위로 매입하면서다. 해수유통을 늘리자 환경단체가 새로 떠올린 게 신공항 백지화였다.

시민단체는 “새만금 마지막 갯벌을 후손에 물려주자”며 공항 경제성을 따진다. 신공항은 늘 경제성 앞에서 좌절했다. 경제성의 척도는 이용객 수다. 전북은 인구가 180만명으로 줄었다. 매년 1만명 넘는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빈약한 산업 인프라와 터덕대는 기업 유치, 양질의 일터를 찾는 청년 유출이 악순환의 고리를 이뤘다. 기업인들은 “공항이 오면 달라진다”고 확신한다.

새만금엔 벌써 항구와 내부 간선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리는 2023년이면 새만금~전주 고속도로가 개통된다. 새만금에서 서해안, 호남, 순천~완주, 익산~장수 고속도로에 30분 안에 진입한다. 호남선·장항선을 이어 새만금~전국을 묶는 철도도 놓일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새만금은 “배후 대도시가 없어 개발이 어렵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만금은 대한민국의 배꼽으로, 바다 가까이 중국 대도시들을 마주하고 있다. 김동창 전북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거리에 현수막도 걸고 1인 시위도 하고 싶지만, 찬반 대립을 키울 수 있어 견딘다”고 했다.

공항 반대 단체들은 지난 10월 하순 새로운 주장을 꺼냈다. ‘신공항은 미군기지 확장’이란 구호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빌미가 나왔다. 한경애 환경부 장관은 신공항을 두고 ‘기존 공항에서 일정 부분 더 커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공항 권역 확대로 이해될 수 있으나, 반대 단체들은 즉각 “신공항이 제2 미군 공항임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신공항 활주로가 군산공항에서 직선으로 불과 1.3㎞ 떨어져 기존 활주로와 같은 높이로 닦이며, 두 활주로 사이 유도로가 놓인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들은 “이는 미군의 요구”라며 “생태를 착취하며 미 제국주의 확장에 기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1월 중순 기독교 일부 단체는 아예 ‘중국과의 긴장 고조’ ‘한반도 평화 위협’ ‘전쟁 말고 평화’라는 주장에 집중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비상시에 국내 공항 어디든 이용할 수 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미국 관리 아래 미국 및 외국의 공용 선박·항공기는 한국의 항구나 비행장을 무상 출입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김동창 부회장은 “신공항은 우리 하늘길을 여는 우리 사업”이라며 “6·25가 또 터지면 미군이 언제든 우리 공항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을 거스르는 반미 구호는 국내의 숱한 시위에서 터져 나왔다. 주장은 사실에 충실할 때 힘을 지닌다.

만약 간척이 없었다면 ‘곡창 전북’은 가능했을까.<br></div>전북 서해안은 어떤 모습일까. 고려대 홍금수 교수가 지난 세기 전북 해안선의 확장 과정을 몇 장의 지도로 소개했다. (‘전라북도 연해지역의 간척과 경관 변화’ 134~229쪽)<br>1971년 농촌진흥청에서 발간된 토양도 등을 바탕으로 그렸다. 간척 이전 군산은 여러 섬이 모인 얕은 바다였다. 지금의 김제-옥구-부안의 지평선들은 그대로 수평선이었다. 간척은 생존을 건 바다와의 싸움이었다.
만약 간척이 없었다면 ‘곡창 전북’은 가능했을까.
전북 서해안은 어떤 모습일까. 고려대 홍금수 교수가 지난 세기 전북 해안선의 확장 과정을 몇 장의 지도로 소개했다. (‘전라북도 연해지역의 간척과 경관 변화’ 134~229쪽)
1971년 농촌진흥청에서 발간된 토양도 등을 바탕으로 그렸다. 간척 이전 군산은 여러 섬이 모인 얕은 바다였다. 지금의 김제-옥구-부안의 지평선들은 그대로 수평선이었다. 간척은 생존을 건 바다와의 싸움이었다.

“새만금은 가장 긴 학살의 둑”

새만금 사업 반대 운동은 시화호 오염에서 물꼬를 텄다. 1996년 까만 물감을 푼 듯한 시화호 사진이 보도되자 환경단체들은 “새만금호도 제2 시화호가 될 것”이라고 외쳤다. 사업을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사업 주체들을 ‘한탕식 성과 위주의 정치인과 개발업자들, 무사안일의 공무원’들로 몰았다. 2003년 봄 문규현 신부 일행의 부안~서울 삼보일배 메시지는 ‘근원적’이었다. ‘새만금 갯벌의 죽음은 탐욕과 물질지상주의가 생명 위에 군림하면서 저지른 죄악’이라는 뜻을 전했다. 그때의 문 신부가 한 달 뒤 터진 부안사태 현장과 제주 강정마을, 4대강 사업 반대 현장, 광화문 촛불집회들을 돌아 새만금 신공항 반대 단체 공동대표를 맡았다.

어느 시인은 새만금 방조제를 “가장 긴 학살의 둑”으로 표현했다. 그랬던가. 새만금은 탐욕이 낳은 학살의 현장인가. ‘곡창 전북’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바다를 상대로 한 끝없는 싸움, 간척의 결실이었다. 1970년대까지 ‘식량자급’에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었다. 한국은 지금도 쌀을 뺀 곡물 자급률이 3.4%다. 수요 곡물의 79%가 외국산이다.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다.

새만금의 용도는 1980년대 첫 기본계획을 세울 때 100% 농지였다. 하지만 이 나라 기획·관리자들은 더 큰 번영을 위해 그 일부를 산업·도시용지로 바꾸려 했다. 1991년 11월 28일 부안 새만금 1호 방조제 입구에서 사업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이 세기와 새 세기를 잇는 이 역사(役事)는 국토와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룩하려는 시대정신의 표상”이라며 “새로운 국토 위에 산업화와 농수산업의 발전, 도시와 농어촌이 조화를 이루는 살기 좋은 고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새만금 사업은 선거 공약으로 예고됐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공약이었다. 많은 국책사업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시작된다. 물론 공약이 당락에 준 영향은 미미했다. 전북에서 그의 득표율은 14.13%였고, 김대중 후보는 83.46%였다. 이후 모든 대선에서 여야 유력 후보 모두 ‘획기적인 새만금 투자’를 전북 첫 공약으로 내놓았다. 표는 늘 민주당 후보에 집중됐다. 17대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최근엔 갯벌을 오히려 복원하는 추세”라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유세에서 “환황해권 중심지로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새만금 확실하게 밀겠다”고 돌아섰다. 결국 전북에서 91.58%를 득표했다.

새만금 사업의 원래 목표는 내부 개발까지 2004년에 끝낸다는 것이었다. 그게 세대를 건너 7번째 대통령 임기 말을 지나고 있다. 10년 전 종합개발계획(마스터플랜)으로는 작년까지 전체 용지의 72.7%를 개발하고, 신항만 중 4선석과 고속도로도 완성했어야 했다. 그러나 작년 말 매립률은 42.6%에 불과하다. 매립을 맡으려 한 민간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새 기본계획에선 용지 및 기반시설 사업을 공공이 선도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기간도 2030년에서 2050년으로 늘렸다.

매립률 42.6% 불과, 사업 완성 2050년으로

국가는 신뢰를 잃었다. 사업이 거듭 중단되고 물어뜯기면서 추진 동력도 약해졌다. 사업을 처음 멈춘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는 야당 대표로 1991년 노태우 대통령과의 담판에서 이 사업을 실현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8년 1월 초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 사업을 시화호, 경부고속철도와 함께 ‘김영삼 정권 3대 부실사업’으로 못 박았다.

이는 전국 환경단체들이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결속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듬해 5월 공사를 멈춘 뒤 2년간 민관 공동조사를 했다. 환경단체들은 수질·경제성·갯벌 가치·해양생태계 영향 등 쟁점을 발굴해 악성 사업으로 몰았다. 사업을 지지하면 ‘죄인’이 되는 분위기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첫해 새만금 찬반 격돌에 부안사태까지 겪으며 흔들렸다. 대통령이 헷갈리니 장관끼리도 부딪쳤다. 시위 등 대결은 더 격화됐다.

‘새만금은 전북의 사업’이라는 이미지도 씌워졌다. 사업 반대 여론에 전북도민이 맞서면서다. 문규현 신부의 삼보일배 이후 환경단체들이 더 거세게 정부를 흔들자 도민들은 서울 여의도로 올라가 시위를 벌였다. 도지사와 도의원들이 삭발했다. 매년 한정된 국가 예산을 서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가 경합하면서 새만금 투자는 ‘편애’로 비쳤다. 새만금공항 대신 무안공항을 이용하라고 인접 전남에선 다그쳤다.

전북도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전북은 일자리에 목말라하면서도 ‘반자본 구호’에 쉽게 휩쓸렸다. 2016년 LG CNS가 3800억원을 들여 새만금에 입주하려다 포기한 게 대표적 사례다. 지능형 첨단온실 설비로 세계시장에 나아가겠다는 기업이었다.(네덜란드 프리바는 이 분야에서 연간 400조원의 세계시장을 석권하며 네덜란드를 세계 2위 농업수출국으로 만든 바 있다.) 그러나 농민단체는 이를 ‘대기업의 탐욕’으로 못 박았다. 설비 실증농장에서 과잉 생산된 파프리카와 토마토가 농가를 파탄 낸다는 것이었다. LG는 이 모두를 수출하겠다고 했으나 농민단체는 LG 불매운동까지 예고했다. 전북도의회 역시 “농민의 생존을 빼앗으려는 탐욕”이라며 LG 저지를 결의했다.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 건설 추진 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6월 21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앞에서 출범식을 갖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 건설 추진 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6월 21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앞에서 출범식을 갖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세계 최대 신재생 발전단지’의 허실

부(富)에 대한 바른 생각이 바른 사람을 만든다. ‘이윤 추구’는 3선 임기를 채워가는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교육관에서도 탐욕으로 몰린다. 그는 삼성그룹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취약계층 중학생들에게 시키는 공부를 “기업 이미지를 각인하려는 것”이라며 가로막았다. 그는 “삼성전자에 전북 학생들을 취업시키지 말라고 지시해 놓았다”고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삼성의 급선무는 교육 자선이 아니라 삼성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고 했다.

전북 환경단체들은 “새만금호 해수유통과 함께 그간 생존 터전을 잃은 어가들에 수산 기반을 돌려주자”고 주장해왔다. 그동안 어민들도 극심한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겪어왔다. 지난 30년 동안 전국 어가 인구가 80.2% 줄었는데 전북도 비슷한 감소율(79.5%)이다. ‘잡는 어업’은 이제 ‘기르는 어업’으로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새만금에 공항을 세우면서 논란이 큰 사업도 벌이고 있다. ‘세계 최대 신재생에너지 발전단지’다. 새만금호와 노는 땅 일부에 태양광 2.4GW와 풍력 등 발전소를 짓는 사업이다. ‘스마트 그린산단’을 조성해 이곳에 이른바 ‘RE100’ 기업을 집적한다는 계획이다. RE100은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선언이지만 태양광발전은 간헐성이 커 가동률이 15%에 그친다. 발전단가도 원자력의 3배에 육박한다. 전국 송전망을 깔거나 조 단위 이상 거액을 들여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갖춰야 하는데 외부 송전은 2026년 이후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 산단을 견인할 기업으로 RE100에 참여한 SK 계열사들을 유치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생겼다. SK하이닉스는 작년 경기 이천에 이어 올해 충북 청주에 LNG 열병합발전소를 착공하려다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있는 상태다.

안정된 전력은 산업의 생명줄이다. 선진 여러 나라뿐 아니라 중국까지 원자력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 나서는데 한국은 요지부동 ‘탈핵’이다. 그러면서 원전 해외 세일에 나서는 이중성을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새만금을 탈원전 시험장의 하나로 삼았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다음 정권, 스마트 그린산단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새만금에 태양광 등 발전단지 계획을 세우며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가 구상되기도 했지만 물거품이 됐다. 태양광 소재 업체인 OCI는 군산에서 말레이시아로 떠났고, 익산 넥솔론도 도산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풍력발전 설비 공장도 세웠으나 이 역시 문을 닫았다. 새만금 태양광 설비의 75%가 중국산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이곳 재생에너지 단지는 중국 배만 불린다는 비판도 나왔다. 새만금공항은 간절하지만 재생에너지 사업엔 고개를 젓는 이들이 지역에도 적지 않다.

1970년대 이후 강남개발과 한강종합개발이 바꾼 것은 서울의 면모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것은 대표주자 서울이 두 사업을 통해 세계 일류도시로 발돋움하며 생산성을 높인 덕이기도 하다. 도시는 온갖 첨단 지식·정보가 모여 섞이고 경쟁하고 협력해 새 문명을 열어간다. 서울은 한류 문명의 진원이다. 강남 농지와 한강은 파괴된 게 아니라 새 생태계로 업그레이드됐다. 도시는 1인당 에너지도 교외보다 적게 든다.

한 세대 전 산골 전북 무주 심곡리 입구엔 허물어져 가는 집 몇 채가 있었다. 무주리조트 공사가 진행되면서 흙탕물이 금강 상류 남대천을 덮쳤다. 환경운동가들은 반딧불이의 중간숙주인 다슬기가 집단 폐사한다며 시위를 키웠다. 완공된 리조트와 스키장, 골프장은 이곳을 산악레저타운으로 변모시켰다. 동계유니버시아드를 치르고, 태권도 공원을 유치해 국제 산악도시가 됐다. 올해 25년째인 반딧불이축제는 전국 환경축제의 모델이다. 남대천은 친수 공간으로 거듭났고 무주사과, 머루와인은 특산품이 돼 소득을 높였다. 새만금 유역도 마찬가지다. 끈질긴 투자로 만경강이 맑아져 11월에 또 황새가 날아들었다.

새만금 개발은 늘 적은 예산에 허덕였다. 오랜 ‘희망고문’이었다. 국책사업 최장기 기록을 혼자 갈아치우며 민주화 이후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받아들였다. 갈등의 진앙이자 격전장, 중간숙주였다. 한 세대 위가 꿈꾸었던 식량 기지는 일자리 기지로 선회했다. 실행계획이 방만한 것도 있었고 적기 투자가 안 돼 바꾼 것도 있다. 말잔치에, 용두사미가 되곤 했다. 5년 단임 대통령들로 재신임을 묻지 않으니 책임질 일도 없었다. 자신들의 이념과 세력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지도자가 통찰하지 못하면 모든 일이 선악으로 갈라져 충돌한다. 정의와 선(善)만 좇으면 재앙이 커진다. 과오를 부인하는 게 타락이고 선택을 미루는 게 무능이다. 새만금 착공 30년을 돌이키면 그 많은 간난을 헤쳐온 이 나라 선대들이 절로 고마워진다. 모르는 세계인들과 매일 경쟁하는 시대다. 희망이 동력이다. 새만금에서 장밋빛 희망을 다시 피워낼 날이 올 것인가.

김창곤 군장대 석좌교수·전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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