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 피해자 생사확인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9년 5월 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 피해자 생사확인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납북 피해자와 우리 가족들은 점점 소외돼 귀신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북한이 껄끄러워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는 우리를 잊으려고 애쓰고 있고요. 하지만 실체가 있습니다.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똑바로 몸뚱이 갖고 서 있는데 어떻게 없는 일이 됩니까?”

“종전선언은 그냥 묻어버리자는 단어”

지난 11월 16일 경기도 부천시 한 카페에서 40분쯤 얘기를 나누던 중 황인철(54)씨는 ‘종전선언’ 단어를 듣자마자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색이 벌겋게 변했다. 황씨는 1969년 12월 11일 대한항공(KAL)기 납북 사건으로 아버지를 뺏긴 납북 피해자 가족이다. 당시 황씨의 아버지 황원(당시 32세)씨는 출장차 서울 김포로 향하는 강릉발 비행기를 탔다가 북으로 끌려갔다. 승객들 사이에 숨어든 간첩 조창희가 공중에서 비행기를 납치해 승객 50명을 함경남도 정평군에 강제 착륙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 정부는 승객 중 39명을 돌려보냈지만, 황씨 아버지를 포함해 11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적극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대해 황씨는 “모든 것들을 그냥 묻어버리자는 단어”라며 “정부가 평화를 얘기하면서 우리의 희생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난 후 북한에 끌려가 강제 억류된 대한민국 국민은 현재 총 516명이다. 1960~1970년대 끌려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해상에서 어로활동을 하다가 잡혀간 어부들이 대다수다. 통일부에 따르면 전체 억류자 516명 중 어부가 457명, KAL기 피해자가 11명, 정찰과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해경·육군 납북자가 30명, 해외 등지에서 피랍된 ‘기타’ 민간인이 18명이다.

김태옥(89) 할머니는 북에 피랍된 이 ‘기타’ 민간인을 아들로 둔 경우다. 1977년 수학여행 중 전라남도 신안군 홍도에서 납치된 이민교씨가 아들로, ‘기타’ 민간인 18명에는 이민교씨를 비롯해 수학여행을 갔다가 잡혀간 고등학생들이 포함돼 있다. 1977년부터 이듬해까지 총 5명의 학생이 납북됐다. 김씨는 아흔이 다 돼 말을 온전히 하기 어려운 상태지만 지금은 환갑이 넘었을 아들을 평생 그리워했다. 김씨는 2019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필 편지를 써서 아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다 수학여행을 보낸 어미의 죄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납치된 것도 내 죄입니다. 좋습니다. 아들더러 그냥 북에서 살라고 하십시오. 하지만 아들의 얼굴만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김씨는 아직 대통령에게 대답을 듣지 못했다.

미송환된 11명의 KAL기 납북 피해자. ⓒphoto KAL기 납치 피해가족회
미송환된 11명의 KAL기 납북 피해자. ⓒphoto KAL기 납치 피해가족회

법적 효력 없다지만…

납북 피해자를 크게 분류하면 전시·전후 납북자와 국군포로로 나뉜다. 전시납북자는 전쟁 중 끌려가 북한에서 사망했거나 현재까지 억류돼 있는 민간인을 말하는데, 조사 시기와 주체에 따라 숫자가 크게 달라져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하다. 통일부에서는 10만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전후납북자와 국군포로는 비교적 정확하게 현황이 파악된다. 전투 중 인민군이나 중공군에 붙잡혔던 국군포로는 당초 5만~7만명 정도였지만 현재는 500여명이 생존해 있다고 알려졌다. 전후납북자는 정확히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불법적으로 끌려간 사람들을 뜻하는데 이들의 숫자가 516명에 이른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송환은 고사하고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자국민이 최소 1000여명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의 존재를 지켜오던 마지막 보루가 종전선언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평가가 많다. 전쟁을 정말 종전하면서 맺는 ‘평화협정’과는 다른 의미로, 평화협정 체결의 출발점으로서의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법으로 비준하지 않는 이상 기존의 정전협정과 같은 법적 효력도 갖지 못한다. 2019년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2단계 구상의 의미와 과제’에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의 의미와 한계가 비교적 자세히 드러나 있다. 논문에서 도경옥 연구원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성격의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는 아니며, 일각의 지적처럼 ‘종전’만을 분리해서 정치적 선언으로 채택하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한국 정부는 전쟁을 종식한다는 정치적 선언을 먼저 하고 그것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서 북한이 비핵화를 이룰 때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썼다.

문제는 법적 효력도 없는 종전선언이 몰고 올 파장이다. 전쟁 피해자에 대한 해결과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채 종전 관련 합의를 도출하는 행위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법 전문가인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모든 전쟁의 평화조약에는 포로와 민간인 송환에 대한 언급이 들어간다”며 “그래야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게 해결이 돼야 추가적으로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내전과 베트남전쟁 종결에 따른 파리평화협정(각각 1971년과 1973년에 체결)에도 포로와 억류된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조항이 있었다. 특히 1953년 7월 27일 조인한 6·25전쟁 정전협정에는 국군포로와 민간인 송환 문제가 명시돼 있다. 구체적으로 59조에는 ‘군사분계선 이북에 거주하는 전체 사민(私民·민간인)에 대해서는 그들이 귀향하기를 원한다면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며 협조한다’라고 되어 있고, 3조에는 ‘60일 이내 포로송환을 완료한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정전협정을 종전선언이 섣부르게 대체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을 요구할 우리의 법적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 조문이 보여주듯 지금 남북관계의 기초인 정전협정에는 납북자와 포로 문제가 명시돼 있다. 우리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들에 대해 정부가 목소리를 낼 최소한의 법적 근거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납북자와 국군포로에 대한 아무런 의제도 담지 않은 종전선언이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된다면 북한에 이들의 인권과 송환에 대해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신희석 박사는 “국가가 어떻게 합의하느냐에 따라 협상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종전선언이라는 명칭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며 “종전선언을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내용으로 규정한다면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납북자 의제가 빠진 종전선언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가 조율 중인 문안의 핵심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의 문안이나 논의될 의제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비공개 상태다.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으로서 두루뭉술하게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와 함께 국군포로나 납북피해자 가족 의제가 논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종전선언이 담게 될 의제와 관련해 “한·미 간 협의를 통해 북한에 제의하려는 의제를 조율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가 의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자님 생각에는 납북자 얘기도 들어가고, 국군포로 얘기도 들어가고, 이산가족 등이 다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현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그런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정치적 의미가 다분한 종전선언에서 다룰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다만 한·미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되는 종전선언 문안인 만큼 ‘정전협정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들어갈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월 11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종전선언의 형식, 내용에 관해 한·미 간 조율이 상당히 끝났다”고 전했다. ‘정전협정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종전선언의 향후 법적 활용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문안으로,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될 위험 등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납북자 의제가 빠진 종전선언의 위험성을 막아줄 유일한 안전핀인 셈이다. 미국 정가에서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대한 반대 기류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35명은 지난 12월 7일 북한의 비핵화 약속 없는 일방적인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 서한을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2018년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를 함께 걷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8년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를 함께 걷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전체제 위협의 빌미 제공할 수도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고 당장 정전협정을 법적으로 대체하지 않는다고 해도 섣불리 추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경고한다. 향후 정전협정 체제를 위협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선영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선언이라고 해도 이전에 법적 효력을 갖는 모든 절차가 완결돼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며 “예컨대 정전협정에서 명시한 국군포로를 다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2018년 9월 합의한 9·19군사합의서도 남북 정상회담으로 서로 선언에 의해서 하지 않았느냐”며 “법적 효력을 갖는 것들을 매듭짓거나, 매듭짓는다고 약속을 한 후에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게 선언”이라고 덧붙였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역시 “2018년 4월 27일 합의한 ‘판문점 선언’도 효력 없는 공동선언인데, 이후에 국회에서 비준하자는 얘기가 나왔다”며 “정부가 해놓고 나중에 국회에서 비준하고 의견을 수렴했다고 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착하는 ‘임기 내 종전선언 추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높다. 차두현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일단 상호 간의 긴장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아무 구속력 없는 종전선언을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미국 역시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납북자 외면해온 70년

당초 청와대는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4자(남·북·미·중)가 만나 종전선언을 논의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12월 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하면서 4자회담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앞으로 종전선언이 논의된다면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이뤄질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차 연구원은 “임기 말을 앞둔 정부가 다음 정부의 정책 옵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더욱이 효과성 여부가 불투명하고 국내적 숙의도 미흡한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납북 피해자 가족들은 지금까지 생사 확인이나 송환 노력에 손을 놓고 있던 정부가 느닷없이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는 입장이다. 납북 어부인 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시작한 납북자 송환 운동을 20년 넘게 벌여온 최성룡 납북가족협의회 이사장은 “그동안 모든 정부가 다 똑같았다”면서 납북자를 외면해온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 12월 7일 만난 최 이사장은 “위정자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보도된 기사를 적어온 메모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11월 10일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가 이석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과의 면담에서 “한국은 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관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내용이다. 메모를 보여주며 최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516명인데 일본은 납북자가 몇이나 되느냐”며 “우리 정부에서는 한국 납북자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년에 칠순을 앞둔 최 이사장은 1967년 아버지가 북에 피랍됐다. ‘풍복호’ 선주였던 아버지 최원모씨는 당시 어로활동을 하다가 북에 선박을 압류당한 채 승객들과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8명 중 5명은 돌아왔지만, 6·25전쟁 당시 대북 공작원으로 활동했던 최씨는 돌아오지 못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휘하의 켈로부대 소속이었던 최씨는 ‘좌익 분자를 살해한 것이 발각돼 억류됨’ ‘인민재판에 회부됨’이라고 적혀 있는 정부의 문서 기록을 마지막으로 신원 파악이 불가능해졌다. 다만 최씨는 전쟁 중 공로가 인정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유해 없는 위패가 놓여 있다.

최 이사장의 말처럼 납북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전쟁이 멈춘 후 68년 동안 모든 정부로부터 각기 다른 이유로 외면당해왔을지 모른다. 반공, 권위주의 시절에는 월북자 가족이라고 낙인찍혀 정보기관의 심한 감시에 시달렸고, 1987년 민주화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이유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1960년대 집중적으로 벌어졌던 어선 납북 피해자 가정을 찾아 인터뷰해온 북한인권연합 김소희 간사는 “한여름에 선풍기 하나만 사도 국정원 사람들이 ‘이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추궁했다고 한다”며 “경찰 조사 중에 ‘네 아버지 월북했지’라며 구타당한 가족도 있었다”고 전했다.

“노무현은 18번이나 납북자 문제 해결 촉구”

2000년대부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부터는 오히려 ‘납북자 지우기’가 시작됐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됐지만, 강제 실종자는 남북회담에서 여전히 꺼내들기 어려운 이슈로 남았다. 북한이 ‘강제 억류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데 맞서 남북관계를 망가뜨리면서까지 납북자 문제를 제기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에서 전후납북자들은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돼 이산가족 범주 안에 흡수돼 버렸다. 납북자 송환 운동의 구심점이 약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신희석 박사는 “사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 데탕트 기류가 시작된 순간부터 인권 문제가 힘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며 “이제 분위기가 좋아졌으니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말자면서 침묵시켜 버린 것”이라고 했다. “항상 우리 가족들은 ‘미운 오리새끼’였다”(최성룡 이사장)는 말처럼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부에서 납북자와 가족들을 외면해온 셈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에만 매달리며 납북 문제를 적극적으로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43개국이 공동제안하는 북한인권결의안에 3년째 참여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연말 유엔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인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군포로의 인권 탄압을 우려하는 내용이 들어갔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외면한 상태다. 이에 대해 최성룡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북한 지도자를 제일 많이 만났는데도 납북자 문제를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끼리 만났을 때를 포함해서 18번이나 정부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촉구했는데 그에 비해 참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가기관이 납북자 문제를 외면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앞서의 KAL기 납북 피해자 가족인 황인철씨는 2018년 인권위원회에 정부의 납북 피해자들 구제조치 촉구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2021년 1월에서야 ‘각하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1건당 걸리는 기간은 평균 133일로 알려져 있는데, 황씨는 900일이 지나서야 ‘각하’ 결정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인권위에서 다루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게 각하 이유의 전부였다. 황씨는 지난 6월 행정법원에 각하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다시 제기했지만, 결실을 보기 전에 어머니이자 납북 피해자 황원씨의 아내인 고 양석례씨는 세상을 떴다. 황씨는 “아버지가 그리워 아버지 옷을 집안에서 질질 끌고 다녔던 우리 엄마가 세상을 뜨셨다”며 “슬퍼하고 분노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에 다시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12월 11일은 KAL기 납치사건이 일어난 지 52년째 되는 날로, 이날 황씨는 매년 해오던 것처럼 임진각에서 아버지의 송환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인다.

취재하며 만난 납북자 피해가족,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과 관계가 개선되면 생사 확인이라도 용이해지지 않을까, 이산가족 상봉 인원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고 있었다. 다만 납북된 국민을 외면해온 지금과 같은 방식을 유지하면서 북한과 무조건 관계개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김소희 북한인권연합 간사는 “국가가 온당히 책임져야 하는 납북자 문제에 지금처럼 침묵한 상태에서 선언적 의미만 있는 종전선언을 왜 굳이 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든다”며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흐지부지 넘어가면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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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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