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컴퓨터 공학자‧아마추어 역사학자인 토마스 레스만의 세계지도를 기반으로 터키의 유저 에르달이 작성한 서기 800년의 유라시아 지도. 이 시기 발해가 한강유역에서 요하, 만주, 연해주 일대에 걸치는 너른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Credit: Erdall at Turkish Wikipedia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아마추어 역사학자인 토마스 레스만의 세계지도를 기반으로 터키의 유저 에르달이 작성한 서기 800년의 유라시아 지도. 이 시기 발해가 한강유역에서 요하, 만주, 연해주 일대에 걸치는 너른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Credit: Erdall at Turkish Wikipedia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건국해 서기 698년부터 926년까지 존재했던 나라다. 가야와 마찬가지로 자체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역사가 전반적으로 불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미스터리로 간주되는 부분은 바로 발해의 멸망과정이다.

한창 때는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강 이북에서부터 만주와 연해주 전체를 차지했던 큰 나라였다. 멸망하기 30년쯤 전에는 거란족의 요주를 공략해 상당한 지역을 뺏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926년 거란족이 수도를 공격한지 단 3일 만에 와해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0년대, 이에 대한 좀 특이한 설명이 나왔다. 일본 아오모리 현의 토와다 화산을 조사하던 학자들이, 백두산 폭발 때 날아온 화산재의 층이 두텁게 덥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토와다 화산은 915년 폭발했기 때문에 백두산이 그 이후 거대 폭발한 것이 확실했다. 1200 킬로미터나 떨어진 아오모리까지 그 정도로 화산재를 날릴 정도의 분화였다면, 발해를 멸망시키기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 나왔다.

(왼쪽) 백두산 밀레니엄 분출 영향권 지도. 밀레니엄 분화에서 분출된 어마어마한 양의 화산재가 편서풍과 계절풍의 영향으로 주로 동쪽 및 동북쪽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다른 지역에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고, 일본 혼슈 북부 아오모리 현 및 홋카이도 거의 대부분이 큰 영향을 받았다. (오른쪽) 발해의 중심지는 모두 그 분화 영향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출처: (왼쪽) 퍼블릭 도메인, (오른쪽) 정석배(2016), 《발해의 북방경계에 대한 일고찰》 게재 지도 위에 백두산 화산재 영향권 표시.
(왼쪽) 백두산 밀레니엄 분출 영향권 지도. 밀레니엄 분화에서 분출된 어마어마한 양의 화산재가 편서풍과 계절풍의 영향으로 주로 동쪽 및 동북쪽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다른 지역에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고, 일본 혼슈 북부 아오모리 현 및 홋카이도 거의 대부분이 큰 영향을 받았다. (오른쪽) 발해의 중심지는 모두 그 분화 영향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출처: (왼쪽) 퍼블릭 도메인, (오른쪽) 정석배(2016), 《발해의 북방경계에 대한 일고찰》 게재 지도 위에 백두산 화산재 영향권 표시.

이 가설은 백두산 폭발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한동안 긴장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화산학자들 중에는 기록과 맞지 않는다 하여 이 가설이 잘못된 거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2017년 나왔다. 북한에 직접 들어가 3년 동안 백두산을 탐사하고 나온 서구 연구팀의 대표 학자 영국의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박사가, 백두산의 탄화목을 분석한 결과 대분화는 정확히 946년에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발해 멸망보다 20년 후의 일이다.

이후 발해 멸망 백두산 폭발 원인설은 쑥 들어가버렸다. 애석하게도 그와 함께, 백두산 등 거대 환경요인이 역사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 발해의 멸망에 대해서도, 인류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인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요인만을 중시하는 종전 역사학의 논조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연재 전체를 통해서, 충분하고 공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잘 이해되지 않는 역사를 이해하는 데 과거 환경 상황을 복원한 데이터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 바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자.

아래 왼쪽 그래프는 해당 시기를 전후한 지구 기후변화와 지각활동 수준을 개략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오른쪽 그래프는 2016년 중국과학원 발행 학술지에 게재된 것으로, 지난 8000년 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구자기장 밀도의 변화를 표시한 것이다. 과거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두 가지 거시적 환경변화 기준, 기온 변화와 지구자기장 변화다.

(왼쪽) 발해 존속기를 전후한 시기의 지구 기후변화 및 개략적 지각활동 수준을 표시한 그래프. 500년대 후반에서 600년대에 걸쳐 급격히 한랭해지는 시기에 화산활동도 활발해져, 이는 고구려의 멸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여전히 한랭하나 지구자기장이 안정됐던 시기에 발해가 출범했으며, 다시 지구자기장이 약해지고 백두산 분화가 활발해지자 멸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른쪽) 중국과학원 발행 학술지에 게재된 지난 8천년 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를 표시한 그래프. 가운데 초록색 선이 동아시아 평균치다. 붉은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이 백두산 대폭발기인데, 이 시기에 지구자기장이 급격히 약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800년대 말 900년대 초에 특히 급격한 지구자기장 약화가 있었으며, 이 시기 마지막에 백두산 밀레니엄 대분화가 있었다. 출처: (왼쪽) Cliff Harris & Randy Mann의 기후변화 역사 그래프 일부에 한글로 필요 내용 표시. Credit: www.LongRangeWeather.com. (오른쪽) Shuhui Cai 외 2016, “Archaeointensity results spanning the past 6 kiloyears from eastern China and implications for extreme behaviors of the geomagnetic field” 게재 그래프를 단순화하고 백두산 대폭발기 표시
(왼쪽) 발해 존속기를 전후한 시기의 지구 기후변화 및 개략적 지각활동 수준을 표시한 그래프. 500년대 후반에서 600년대에 걸쳐 급격히 한랭해지는 시기에 화산활동도 활발해져, 이는 고구려의 멸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여전히 한랭하나 지구자기장이 안정됐던 시기에 발해가 출범했으며, 다시 지구자기장이 약해지고 백두산 분화가 활발해지자 멸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른쪽) 중국과학원 발행 학술지에 게재된 지난 8천년 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를 표시한 그래프. 가운데 초록색 선이 동아시아 평균치다. 붉은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이 백두산 대폭발기인데, 이 시기에 지구자기장이 급격히 약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800년대 말 900년대 초에 특히 급격한 지구자기장 약화가 있었으며, 이 시기 마지막에 백두산 밀레니엄 대분화가 있었다. 출처: (왼쪽) Cliff Harris & Randy Mann의 기후변화 역사 그래프 일부에 한글로 필요 내용 표시. Credit: www.LongRangeWeather.com. (오른쪽) Shuhui Cai 외 2016, “Archaeointensity results spanning the past 6 kiloyears from eastern China and implications for extreme behaviors of the geomagnetic field” 게재 그래프를 단순화하고 백두산 대폭발기 표시

먼저 왼쪽 그래프에서, 서기 500년대 중반부터 600년대 초까지 지구 전체적으로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화산 폭발이 잦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해가 존속했던 기간은 한랭기의 최저점이기도 했다. 좀 안정되는가 싶었던 지구자기장은 다시 800년대 중반부터 900년대 초까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약화되었다.

이 사실은 2017년 백두산에 관한 북한ㆍ서구 공동연구팀의 현지조사 보고와 일치한다. 서기 500년대부터 900년대까지 약 400년 동안, 백두산은 줄 이어 상당한 규모의 폭발활동을 했다. 이 시기엔 전세계적으로 지구자기장이 약해져 화산폭발이 심했었다. 당연히 백두산도 많이 동요했고, 지하 마그마 방이 꽉 찼기 때문에 강력한 폭발로 연결됐다.

이 대폭발기는 오른쪽 그래프에서 빨간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특히 800년대 후반부터 900년대 초까지는 곤두박질치듯이 밀도가 약해지고 있다. 보통은 지구자기장이 약해져 외부 우주 전자파 유입이 많아지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구 내부에서 철 성분의 운동이 격해지며 자기에너지를 분출, 다시 지구자기장이 강화된다. 하지만 그래프상 이렇게 수직선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지구자기장 밀도가 낮아졌다면, 미처 강화될 새도 없이 더욱 더 심각하게 외부 전자파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좀처럼 뚫리지 않는 속성을 지녔던 백두산 지하 마그마 통로도, 엄청난 힘으로 계속 밀고 올라오는 마그마로 인해 뻥 뚫리고 말았을 것이다. 마치 굳게 봉쇄됐던 튼튼한 문에 엄청난 힘을 가하면 문 자체가 부서지며 열리듯이, 백두산은 이 과정에서 위쪽 절반이 다 파괴되어 날아갔다.

이 과정이 발해인들의 삶에는 어떤 상황으로 작용했을지 추론해보자. 그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지구자기장 약화 및 불안정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 과학자들은 지구자기장이 약화되어 외부 우주에서 전자파가 쏟아져 들어와도 전자 기기 등에는 영향을 주지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지표면의 전자기기를 교란시키고 지구 내부 깊숙한 곳의 금속성물질을 일거에 움직이는 이 거대 전자파의 물결이 인체에 아무런 작용이 없다는 게 말이 될까?

최근 들어 이 부분에 대해 실제 사례 조사에 입각한 과학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네덜란드에서 발행하는 과학학술지 ‘첨단 우주 연구’(Advances in Space Research)에 실린 논문에서 엘친 바바예프 박사는 지구자기장이 불안정해지고 약화되면 인체의 면역력이 약화되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면서 공격성이 커진다고 밝히고 있다. 2021년 12월 현재 스위스 기반 지구과학 학술지 ‘대기’(Atmosphere)는 “태양-지구 자기 활동이 지구환경 및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준비 중이다.

이렇게 지구자기장이 약해지면 일단 식량 생산이 줄어들고,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에 사람들의 심리까지 교란된다. 치열한 갈등과 정복 진출 같은 것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 유라시아 철기 제작 선구자들의 속도 빠른 동진(東進), 근대 유럽의 식민지 개척…. 인류 역사에서 눈에 띄게 커다란 규모의 공격적 행동이 있었던 시기엔 반드시 급격한 지구자기장 약화에 따른 지각활동 격화가 있었다.

화산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는 지구자기장이 불안정해지며 약화됐던 시기로서, 반드시 지구 전체적으로 커다란 갈등과 격돌의 사건들이 발생했다. 출처: 이진아
화산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는 지구자기장이 불안정해지며 약화됐던 시기로서, 반드시 지구 전체적으로 커다란 갈등과 격돌의 사건들이 발생했다. 출처: 이진아

서기 500년에서 600년도 중반에 걸친 급격한 기온 저하와 지구자기장 약화는 위도가 높은 데다가 백두산 분화의 영향을 바로 받는 고구려에게 치명적이었을 테다. 668년 고구려가 내분과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패망한 후 지구자기장이 다시 강화되면서 안정되는 시기가 왔다. 동아시아 최강을 자랑했던 고구려의 후예들은 심기일전해서 고구려를 잇는 새로운 나라, 발해를 만들었다.

하지만 평온했던 시기도 잠시, 다시 서기 800년대 후반부터 900년대 초까지, 그래프 상으로 수직선으로 보일만큼 빠른 속도로 지구자기장이 약해졌다. 8만 년 이상의 축적으로 지하 마그마 방이 꽉 차 있었던 백두산은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한랭기에 화산재 영향까지 더해져, 기온도 사정없이 내려갔다.

이때 화산 분출물은 주로 가벼운 돌멩이와 화산재여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갔다. 백두산을 영토 가운데 두고 있었던 발해에 그 영향이 없었을 리가 없다. 용맹스러운 발해인들은 좀 더 식량이 많이 나고 안정된 땅을 찾아 있는 힘을 다해서 영토를 확장해갔을 테다. 그러나 그런 죽기살기식 전력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견디다 못한 발해의 지배계급들은 918년 건국된, 역시 고구려의 후예를 표방한 고려로 줄줄이 투항했다. 남아 있던 민초들은 속절없이, 계속되는 백두산의 크고 작은 분화 속에서 살아야 했다. 몇 년 후 거란족이 전력을 모아 쳐들어왔을 때는 그에 대항할 힘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발해는 백두산 밀레니엄 분화 이전에 연이어 있었던 분화 때문에 멸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니, 발해는 백두산 대분화 시기에 건국되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성공적인 장기 존속이 불가능한 조건을 안고 있었다.

그런 악조건의 영향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국면이 지나고 나면 이 조건은 오히려 축복으로, 더 오랜 기간, 더 포괄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역사는 그 기복에 맞물려 흘러간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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