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8일 신동욱 양명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출제오류 관련 집행정지 신청 심문기일을 마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8일 신동욱 양명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출제오류 관련 집행정지 신청 심문기일을 마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출발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법원이 생명과학II의 20번 문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수험생의 손을 들어줬다. 제시된 지문의 서술에 오류가 있는 것은 명백하다. 수능을 출제한 교육과정평가원도 오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는 문항에서는 그런 정도의 오류가 ‘치명적’이 아니어서 ‘이상 없다’는 것이 옹색한 변명이다.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 오류 논란 탓에 문과생들에게 심각하게 불리할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출제 원칙을 어긴 ‘킬러’ 문항

문제의 20번은 수능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출제한 전형적인 ‘킬러’ 문항이다. 평가원이 킬러 문항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교육부의 집요한 요구에 따라 스스로 강조해왔던 ‘교육과정 내 출제’라는 대(大)원칙을 무시해버렸다. 평가원이 수능의 가장 중요한 출제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해버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풀이 과정에서도 교육과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평가원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교육과정 내 출제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2017년에는 연세대를 비롯한 3개 대학에 총장 징계를 요구하고, 35명의 입학정원을 정지해버릴 정도였다. 2년 연속 교육부의 강력한 지시를 무시한 것이 공교육정상화법의 중대한 위반에 해당한다고 우겼다. 당시 법원도 교육부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20번 킬러 문항은 부모에게 물려받는 ‘유전형’과 실제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멘델의 유전법칙에 관한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성립하도록 만들어주는 하디·바인베르크 평형만 다루도록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멘델의 유전법칙에도 예외가 흔하게 발견된다. 유전의 과정에서 유전자의 교차·결실·멸절·중복·삭제 등의 다양한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20번 문항에서 날개의 길이를 결정하는 유전자의 표현형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수능에 제시된 지문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적용되지 않는 비(非)멘델 집단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지문에 주어진 정보만을 근거로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을 적용하면 날개의 길이에 대한 합리적인 표현형 분포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집단 I에서는 BB* 유전형에 의해 짧은 날개를 갖게 된 개체의 수가 집단 전체의 개체수보다 더 많아지고, B*B* 유전형을 가진 개체의 수도 음수(陰數)가 되어버린다. 집단 I에서 짧은 날개의 표현형 분포에 대한 중요한 추가 정보가 누락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누락이 치명적이 아니라는 평가원의 주장은 용납하기 어렵다. 오히려 긴 날개를 가진 개체의 수가 멘델 집단의 경우와 똑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마저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추가 정보가 주어지면 긴 날개(BB)를 가진 개체의 수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 II에서는 그런 특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납득하기 어렵다.

수험생의 ‘학업 성취 수준’ 변별에는 짧은 날개의 표현형에 대한 개체수 분포를 확인해볼 필요가 없다는 평가원의 주장은 황당한 억지다. 계산을 해보지 않는다고 지문의 불완전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수험생이 반드시 출제자가 의도했던 과정을 따라서 문항을 풀어야 할 이유도 없다.

킬러 문항의 교육적 가치도 의심스럽다. 멘델 법칙이 적용되는 유전형과 적용되지 않는 유전형을 무의미하게 뒤죽박죽으로 섞어놓은 킬러 문항은 수험생들에게 어떠한 통찰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생명과학이 아니라 산수 성취 수준을 평가하는 문항에 더 가깝다.

전문학술단체들의 의견도 실망스럽다. 지문의 오류를 정확하게 지적한 한국유전학회는 정답에 대한 판단을 포기해버렸다. 과학교육학 분야의 학술단체들이 지문의 오류조차 분명하게 지적하지 못했다. 평가원과의 이해충돌이 원인이었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길이 막혀버린 수능 출제

소위 조국 사태로 수시 전형의 불공정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수능에 대한 관심이 감당하기 어렵게 증폭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출제위원의 구성을 다양화하고, 검토위원장을 별도로 임명하는 등 그동안 기울인 노력이 공염불이 되고 있다. 올해 수능에 대한 이의신청이 무려 1014건에 이른다. 작년의 2배를 훌쩍 넘어섰다.

수능의 미래가 몹시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육부가 강요하고 있는 ‘교육과정 내 출제’와 ‘EBS 교육 내용 반영’ 원칙이 수능 출제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교육부가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학습 부담 경감’도 출제자에게 허용되는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다.

주어진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할 수 있는 객관식 문항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 번 사용한 기출 문제는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모든 수험생들이 기출 문제를 통째로 암기해버린 상황에서 새로운 유형의 객관식 문항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실 객관식 문항의 출제 오류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도 없다. 간단한 오탈자를 모두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사고(思考)의 폭을 극도로 제한시켜야만 하는 객관식 문항에서는 출제자·검토자가 예상하지 못한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평가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수능의 난이도에 대한 논란도 심각하다. 출제자가 예상하는 난이도는 의미가 없다.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난이도는 오로지 실제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증적인 통계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한 출제위원장의 난이도 예측은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물수능·불수능 논란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선택과목의 성적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표준변환점수도 환상일 뿐이다. 전혀 다른 음식인 ‘사과’와 ‘꽁치’의 맛과 영양을 비교하겠다는 시도는 처음부터 무의미한 것이었다. 더욱이 저득점자들이 고득점자의 성적을 좌지우지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더 이상 숨겨서는 안 되는 비정상이다.

5지 선다형의 객관식 문제로 모든 수험생의 ‘학업 성취 수준’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비교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초·중등교육 전체와 대학입시까지 모두 틀어쥐겠다는 것은 다양화·다원화를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다. 획일화된 수능의 폐해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부모 찬스’라는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 담그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입은 대학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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