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UAE에서 개최된 국제 방산전시회 IDEX에 참가한 구본상 LIG 회장(당시 LIG넥스원 대표이사·가운데)이 홍보부스를 방문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UAE 왕세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photo LIG넥스원
2011년 UAE에서 개최된 국제 방산전시회 IDEX에 참가한 구본상 LIG 회장(당시 LIG넥스원 대표이사·가운데)이 홍보부스를 방문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UAE 왕세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photo LIG넥스원

“올해 사상 최대 방산 수출이 확실시된다는데 얼마를 기록하게 될까?”

최근 굵직굵직한 방산 수출 소식이 잇따르면서 군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얘기다. 지난 11월 4조원대 천궁Ⅱ 요격미사일 UAE 수출 임박 소식에 이어 지난 12월 13일 1조원 규모의 K9 자주포 호주 수출 성사가 발표되자 방산 수출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수년간 우리 방산 수출은 연간 20억~30억달러 수준에서 정체돼 있었다. 하지만 올들어 잇따라 대박이 터졌거나 터질 것이 확실시되면서 방산 수출액이 50억달러를 넘어 60억~7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 13일 호주 캔버라에서 호주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강은호 방위사업청장과 토니 프레이저 호주 획득관리단(CASG) 청장이 한·호주 방위산업 및 방산물자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동시에 호주 CASG는 한화디펜스와 K9 자주포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K9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 기타 지원 장비 등을 도입하는 이번 사업에는 총 1조원가량의 예산이 편성됐다. 호주 수출 K9에는 덩치가 큰 거미라는 뜻의 ‘헌츠맨(Huntsman)’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한화디펜스는 호주에 5조원 규모의 ‘레드백’ 장갑차 수출도 추진 중이어서 이번 K9 수출 성공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K9의 호주 진출은 영연방 정보 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국가에 대한 첫 수출이자,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주요 무기체계를 호주에 수출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한화디펜스는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에 자주포 생산시설을 건립해 현지에서 자주포 생산 및 납품을 진행할 예정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00~2017년 세계 자주포 수출시장에서 K-9 자주포 물량은 48%를 차지, 세계 최강 자주포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 PzH 2000을 압도했다. K9은 2001년부터 터키와 폴란드, 핀란드, 인도,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 6개국에 수출돼 전 세계에서 600여문이 운용 중이다. 한국군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에서 운용 중인 K9은 1700여문에 달한다. 호주는 세계 7번째 K9 수출국이며 K9 수출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K9 수출 성공에는 수출국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는 ‘맞춤형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K9은 이집트에서도 호주 사업을 훨씬 능가하는 규모의 수출 협상이 막바지에 있고, 영국 등 수출도 추진되고 있어 방산 수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11월 UAE 국방부의 이례적인 트윗으로 공개된 35억달러 규모의 국산 요격미사일 천궁Ⅱ 수출은 12월 중순 현재까지 공식 계약 마지막 단계에 있다. 정통한 소식통은 “천궁Ⅱ의 UAE 수출은 현재 가격협상까지 끝나 행정적인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UAE 사정에 따라 좀 유동적이긴 하지만 올해 내 또는 내년 1월 중엔 정식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궁Ⅱ 수출은 세계 무기시장의 큰손인 중동지역에 본격적인 수출 교두보를 확보하고 한동안 답보상태에 있던 대규모 방산 수출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초기 ‘적폐청산’ 논란 때문에 위기를 맞았던 UAE와의 관계가 회복돼 대규모 무기 수출까지 성사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35억달러는 그동안 우리 방산이 기록한 연간 최고 수출액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 1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협정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은호 방위사업청장, 문 대통령, 모리슨 총리, 토니 프레이저 호주 획득관리단(CASG) 청장. ⓒphoto 연합
지난 1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협정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은호 방위사업청장, 문 대통령, 모리슨 총리, 토니 프레이저 호주 획득관리단(CASG) 청장. ⓒphoto 연합

군 주변에선 최근 잇단 방산 수출 성사에는 방위사업청 등 정부·군 당국의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와 발로 뛴 해당 업체 오너 및 CEO들의 노력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강은호 방사청장은 지난 1년간 방산 수출을 최우선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수출 대상국들을 직접 방문하며 ‘광폭 방산 세일즈’를 해왔다고 한다.

강 청장은 UAE 천궁Ⅱ 수출의 경우 지난 3월 UAE 현지에 출장을 가 한·UAE 공동 고위군사위에 참석했고 지난 11월 두바이 에어쇼에선 UAE 고위관계자들을 잇따라 면담해 UAE의 ‘천궁Ⅱ 계약 임박’ 공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집트 K9 수출 성사를 위해서도 지난 5월과 9월 두 차례나 현지 출장을 다녀왔다.

호주 K9 수출의 경우 지난 9월 호주 국방장관·방사청장 양자회담에 참석하는 등 지원사격을 해왔다. 강 청장은 K9 호주 수출 계약이 발표된 뒤 기자회견에서 “올해 외국과의 방산 협력 규모가 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방산 수입을 훨씬 더 초과하고 있다”며 “상당히 기록적인 협력의 규모를 자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청장은 “우리나라에서 획득예산 규모로 볼 때 50억달러 정도를 넘으면, 외국과 방산 협력 규모가 국외로부터 도입하는 수입을 초과하게 된다”며 “100억달러가 넘으면 국내의 방산업체에 정부가 투자한 투자액 전체를 해외에서 벌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우리 방산 수출이 50억달러는 확실히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안보실이 중심이 돼서 컨트롤 역할을 잘해주고 있고 국방부에서는 장관께서도 외국과 방산 협력을 직접 진두지휘하시고, 유관 기관 간의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며 “더불어 우리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산업체의 기술 능력, 그리고 제작 능력, 이것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UAE 천궁Ⅱ 수출 대박을 터뜨리게 된 LIG넥스원은 구본상 회장과 김지찬 대표 등이 발로 뛴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6년 LIG넥스원에 합류하며 방위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구 회장은 회사 직원들이 중동 등 해외사무소에 파견을 가거나 장기출장을 떠날 때면 별도로 자리를 마련하며 ‘인내심’을 강조해왔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구 회장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혹은 작은 성과를 얻더라도 일희일비하지 말자’며 ‘(해외 수출대상국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다 보면 분명히 기회는 온다’고 당부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LIG넥스원에 따르면 구 회장은 UAE등 중동을 비롯 미국,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등에 사무소를 열고 새로운 도전을 독려해왔다고 한다. 천궁Ⅱ 수주 소식을 들은 구 회장은 기뻐하면서도 “다른 수출 상황도 면밀히 점검해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특히 중동과 콜롬비아에 강한 네트워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LIG넥스원은 중동 외에도 동남아시아, 미국, 남미, 인도 등에서 활발한 수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수출은 계약체결 이전에 상대국에서 기업오너 경영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기 때문에 방산에서 오너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한화 방산그룹의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 어성철 한화시스템 대표 등도 방산 수출 성사를 위해 열심히 뛴 CEO들로 꼽힌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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