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물품. ⓒphoto 뉴시스
경찰이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물품. ⓒphoto 뉴시스

대출사기형: “OO캐피털입니다. 심사 결과 확인되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현재 이용하시는 고금리 대출 상품들 저금리 전환 가능하세요. 현재 이용하시는 고금리 대출이 얼마 정도 되시나요?”

수사기관 사칭형: “금융범죄 수사 중입니다. 사건 내용을 유출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과 연루된 불법 명의도용 사건이 검찰에 접수되어 연락드렸습니다.”

가상화폐 사칭형: “고객이 요청하신 대로 비트코인 포트폴리오 관리 사이트에 ** BTC가 입금되었습니다.” 이 말과 함께 고객 ID와 비밀번호를 안내하는 암호화폐 피싱.

국민의 눈물을 훔치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수법과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실제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도 전체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데, 경찰청이 2020년 12월 31일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 1만7040건(기관사칭형 3384건, 대출사기형 1만3656건) 정도에 불과하던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가 2020년에는 3만1681건(기관사칭형 7844건, 대출사기형 2만3837건)으로 약 1.8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살인, 강도, 절도 등 강력범죄의 경우 매년 감소 추세에 있으나 지능범죄, 조직사기범죄라 할 수 있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기 위해 경찰청,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에서는 지속적인 예방 노력(금융감독원에서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지킴이 등)과 단속을 하고 있으나 그 노력만큼이나 범죄도 국제화, 점조직화, 기업화, 첨단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관련자들을 보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관련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2의 김미영 팀장에게 당하는 국민이 없도록 하자!’ 이런 경각심 속에서도 단속을 강화하고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무리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주범을 잡기 어렵다면, 그리고 그 결과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 생활에 큰 불안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엄벌을 외치는 것은 국민 마음을 사기 가장 쉽지만, 반대로 가장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책이 될 수 있다.

현행법상 피해자 구제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있다. 동법은 전화 또는 인터넷 메신저 등 전기통신수단을 이용한 금융사기의 피해자가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 피해금을 신속히 돌려받을 수 있도록 채권 소멸절차와 피해금 환급절차 등을 마련하여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2011년 만들어졌다.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인하여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자의 경우, 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 또는 사기이용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에 대하여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 등 전기통신금융사기의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 제3호 및 제3조 제1항)

피해자 구제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이유

그런데 위와 같은 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피해자 구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위 피해구제절차를 통한 환급은 범죄에 이용된 계좌에 잔액이 남아 있을 경우에 가능하다. 만약 잔액이 남아 있지 않고 전부 인출된 경우에는 사기범을 상대로 별도의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계좌에 일부 잔액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여러 명이어서 피해금액 합계가 잔액보다 큰 경우에는 피해금액 전부를 환급받기는 어려워진다.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실질적인 총책이나 범죄수익자가 잡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사기이용계좌 명의인(계좌를 빌려준 사람) 또는 인출책 정도가 잡힌다. 그런데 이들의 상당수는 취업알선 사기나 대환대출 사기를 당해 본인의 계좌 정보를 제공한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보이스피싱 사기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 볼 수 있다. 결국 실질적으로 많은 범죄수익을 가져간 자는 잡지 못하고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형국이 된다. 이 경우 자력이 특히나 문제가 된다. 계좌를 빌려주거나 인출책을 맡은 자의 경우 당장 돈이 없어서 급하게 돈을 구하려다 직간접적으로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이 피해 보전을 해줄 만한 충분한 자력을 갖춘 경우를 찾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결국 사기이용계좌에 충분한 잔액이 남아 있지 않은 이상, 단순가담자들(사기이용계좌 명의인, 인출책 등)과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여 피해의 일부를 보전받는 것이 현실이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이렇게 일부라도 피해를 보전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잔액도 없고 범인도 잡지 못하여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과 같은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이용한 피싱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위와 같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조차 제대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금융회사’를 그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가상자산사업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암호화폐 지갑 주소’의 경우 사기이용계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이용한 피싱범죄의 경우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서 정하고 있는 피해자 구제 절차를 따를 수 없다. ‘암호화폐 관련 범죄 및 형사정책 연구(형사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연성진, 2017. 12.)’에서도 암호화폐 관련 범죄가 랜섬웨어를 이용한 협박,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등 관련 법률에 의한 절차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엄벌만이 답?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강화하는 것과는 별개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구제방안이 새로이 도출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경찰수사연수원과 (사)사기방지연구회에서 지난 11월 15일 개최한 사기방지 세미나에서 ‘구제기금’ 마련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별도의 구제기금을 마련하고(기금은 금융회사 등이 일부 부담하며 국가 예산을 반영하여 마련), 구제기금으로 일정한 피해를 구제하며(피해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하여 결정), 이와 발맞춰 보험제도를 활성화할 것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싱 범죄가 다변화하고 있는 반면 피해자 구제제도의 경우 여전히 미흡한 측면이 존재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적 기관이 운영하는 기금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금전 구제를 시도하는 것은 ‘엄벌’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훨씬 실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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