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보쌈집을 운영하는 정찬훈씨 부부가 지난 12월 22일 손님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보쌈집을 운영하는 정찬훈씨 부부가 지난 12월 22일 손님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화장실에는 따듯한 물 안 나와요. 여기서 손 씻으세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보쌈집을 운영하는 정찬훈(56)·김영자(54)씨 부부. 점심 식사를 하러 온 인근 공사장 인부가 손 씻으러 화장실을 가려고 하자 “따듯한 물로 씻으라”며 주방 개수대를 내줬다. 지난 12월 22일 낮 12시, 점심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한창 바빠야 할 시간이었지만 50석 규모 가게 안에는 5팀이 전부였다. 점심에 8000원짜리 보쌈정식과 김치찌개를 주로 하는 이 가게의 이날 점심 손님은 고작 20명, 매출은 20만원 남짓이었다. 본래 저녁에는 2만~3만원짜리 보쌈 메뉴를 많이 팔았지만 요즘 저녁 장사는 하나마나다. 정 사장은 “어제 저녁에는 두 팀밖에 안 왔다”며 “손님이 안 와도 불 켜두고 재료는 준비해야 하니, 최근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된 이후 저녁에는 아예 장사를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고 말했다.

정 사장이 이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는 13년째다. 청와대와 직선거리로 300여m 떨어져 있어 점심을 먹으러 오는 경찰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한창 장사가 잘될 때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까지 총 3개 층에서 직원 대여섯 명을 고용해 영업했다. 한때는 식당 건물을 아예 매입할까 고민할 정도였다. 식당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하루에만 500명 가까운 경찰들이 교대해가며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퍼지자 경찰들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과거엔 청와대 직원들도 단체회식을 하러 자주 왔지만, 코로나 이후 청와대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코로나 이후 정씨는 가게 운영과 생활비를 위해 은행에서 8000만원의 대출을 받아야 했다.

정 사장 부부의 유일한 희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딸과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이다. 코로나로 장사가 어려워지자 자녀들은 더 이상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알바로 용돈을 번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정 사장은 20대에 서울로 올라와 중국집을 운영하며 장사를 시작해 IMF 사태도 뚫고 나갔다. 그는 “IMF 때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별 문제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한때는 식당 하면 ‘50%는 남는다’는 말도 있었지만, 요즘은 물가가 올라 20%가 될까 말까 해요. 정부에서 한 번에 100만원, 200만원 주지 말고 도시가스나 전기세를 감면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영업자, 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

주간조선은 정찬훈 사장과 같은 우리 주변의 ‘자영업자’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한때 “한국에서 모든 직업의 종착점은 치킨집”이라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명예퇴직, 정년퇴직 또는 사업에 실패한 이들이 치킨집으로 대표되는 자영업 현장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2020년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지기 시작한 이후 식당과 카페, 술집 등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들은 방역 전쟁의 최전선에서 맨몸으로 총알을 받아내는 신세가 됐다. 정부는 확진자가 늘어나면 밤 9시 또는 10시에 일터의 문을 닫으라 명령했고, 방역 정책을 따르던 많은 자영업자들은 아예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 1년6개월 동안 소상공인·자영업 점포 45만개가 폐업했고, 이들이 떠안은 빚이 66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2690만명 중 자영업자는 657만명으로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약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가족까지 감안하면 최소 10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자영업에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흔히 한국을 ‘자영업 공화국’이라고 부르지만, 코로나 국면에서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별다른 힘이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동네 사장님들은 가장 약한 존재로 전락했다. 먹고살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함께 방역의 책임까지 떠안은 우리 동네 사장님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작된 이후 정부의 반복되는 ‘조였다 풀었다’ 정책에 울고 웃은 이들을 주간조선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다.

지난 12월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정부 방역지침에 반발한 자영업자단체 총궐기가 열리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월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정부 방역지침에 반발한 자영업자단체 총궐기가 열리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거리로 뛰쳐나온 자영업자들

지난해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당시 일일 확진자수는 평균 30여명 안팎. 대통령의 자신감과는 별개로, 그때만 해도 전염병이 2년 가까이 이어지며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생활고가 심해지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호프집이나 중국집 등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들도 무너져내렸다. 올해 9월 서울 마포에서 23년째 호프집을 운영하다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A(57)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가 운영하던 호프집은 마포·공덕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명할 정도로 장사가 잘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버티기 힘든 상황에 이르자 A씨는 숨지기 전 남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살던 원룸을 빼고 지인들에게 돈까지 빌렸다. 숨진 A씨의 사정이 알려지자 유력 정치인들이 가게 앞을 찾아가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극심한 압박을 받던 자영업자들은 올해 초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 잠시 희망을 품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70%가 넘어가자 정부는 지난 11월 1일부터 ‘위드코로나’로 방역 정책을 전환했다. 식당과 카페 등의 영업시간 제한을 풀었고, 수도권에선 최대 10명까지 모일 수 있게 했다. 모처럼 식당과 호프집에는 밤늦게까지 손님들이 들어찼다. 일상을 회복하는 줄 알았지만, 잠깐이었다. 12월 들어 일일 확진자 수가 7000명대, 위중증 환자가 1000명대로 치솟으며 매일 ‘역대 최다’를 갈아치웠다. 결국 정부는 지난 12월 18일 위드코로나 정책을 철회했다.

지난 12월 22일 오후 3시, 보쌈집 정 사장을 만나고 나와 1㎞ 남짓 걸어가자 광화문 앞 인도에선 자영업자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지난 12월 18일부터 정부가 위드코로나를 철회하고 방역패스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강화하자 이에 반발한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집회 장소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으로 공지됐지만 광화문광장 공사로 시민열린마당은 현재 폐쇄된 상태다. 이들은 펜스가 쳐진 시민열린마당 앞 인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를 주도한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영업비대위) 등 자영업자 단체는 이날 집회 인원을 299명으로 신고했다. 정부 지침상 50인 이상 299명 이하 집회에도 방역패스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경찰이 집회 참석자들의 QR체크와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해 펜스 안 집회장소로 들여보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 나왔다”

집회 인원이 300여명이 넘어가자 경찰은 추가로 들어오려는 이들을 통제했다. 들어가게 해달라는 이들 수십여 명과 들어올 수 없다는 경찰이 펜스를 사이에 두고 충돌했다. “방역패스를 중단하라”고 외치기 위해 모인 자영업자들이 방역패스에 가로막혀 펜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자영업자 다 죽는다. 정치방역 중단하라. 방역패스 중단하라”고 외쳤다. 이날 집회 현장을 찾은 한 유력 정치인이 입구에 서 있다가 보좌진이 경찰 측과 소통해 ‘뒷문’을 열고 입장했다. 그는 무대에 올라가 정부 비판과 함께 실질적 보상 등을 약속했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서울 동대문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최모(45)씨는 이날 집회 장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펜스 밖에서 멀뚱멀뚱 서 있었다. 최씨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서 왔는데, 그럴 수도 없게 됐다”며 “확진자들이 술집이나 카페에서 옮았다는 정확한 통계가 있나. 왜 장사하는 사람들만 통제하는지 근거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서 자영업자단체는 △방역패스 철회 △영업제한 철폐 △소상공인 지원금 확대 △손실보상법 시행령 개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등을 요구했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대회사에서 “오늘 말한 것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모든 힘을 다 모아 적극적으로 강력 대응할 것”이라며 “(거리두기 시한인) 1월 2일 방역 강화를 예정대로 종료하지 않으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자영업자들은 매일매일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위스키바를 운영하는 조명동(37) 사장은 지난해 5월 가게를 열었다. IT회사에 다니던 조 사장은 자기 가게를 차려 직접 주조한 술로 손님을 응대하는 일을 하고 싶어 위스키바를 열었다. 가게 특성상 2차나 3차로 오는 손님들이 주 타깃층인 만큼 영업시간이 제한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업종 중 하나다. 원래 영업시간은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였지만 요즘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밖에 하지 못한다. 조 사장은 “(영업제한 시각이) 오후 9시와 10시가 1시간 차이여도 장사하는 입장에선 차이가 크다”면서 “우리 가게는 8시나 9시쯤 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불법적으로 몰래 영업할 수도 있겠지만 간이 작아서 그러지는 못한다”며 웃었다.

조 사장은 지난 11월 1일부터 40여일 진행된 위드코로나 당시를 회상하며 “모처럼 너무 바쁘고 정신도 없었다”면서 “정말 힘들었는데, 그날 매출 보면 ‘그래 이게 정상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12월 18일 거리두기가 강화되자 매출은 위드코로나 때에 비해 70%나 줄었다. 조 사장은 “정부에선 위중증 환자를 수용할 곳이 없어지니 부랴부랴 거리두기를 강화하는데, 결국 미리 준비를 안 해놓은 것 아닌가”라며 “확진자수 증가를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10명 중 4명 “폐업 고려”

대학가 근처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한 편이다.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인근 대학로는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들과 대학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연말이면 학기를 마친 대학생들이 술판을 벌였을 거리지만, 12월 21일 혜화동 젊음의 거리에는 임대라고 써 붙인 상가가 더 눈에 띄었다. 혜화역 인근에서 10년째 치킨집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코로나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상권 중 하나가 대학로”라면서 “연극 보러 오는 사람들도 없어졌고 학생들도 학교에 안 오니 유동인구 자체가 줄었다”고 했다. 박씨도 내년 초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지난 9월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열 명 중 네 명(39.4%)은 폐업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후보들도 저마다 자영업자 지원 정책을 공약하고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소상공인의 임대료와 인건비를 대출금에서 탕감해줄 것과 국가가 소상공인의 부채를 매입하는 채무조정, 신용등급을 일괄적으로 높여주는 ‘신용 대사면’ 등을 공약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대통령 직속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를 설치하고,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50조원 규모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지난 12월 17일 “이 결정을 (거리두기 강화) 내림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리 소상공인, 자영업자 여러분께서 겪게 될 그런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4조3000억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매출이 감소한 320만명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100만원의 방역 지원금과 체온측정기, 전자출입명부 단말기 등 방역 물품 구입에 최대 10만원의 현물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분위기다. “100만원으로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파업을 할 수도 없는 자영업자들은 ‘소심한’ 수준의 반발로 맞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코자총) 회원들은 ‘정치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가게 앞에 붙여 정부의 방역 지침에 규탄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코자총 소속 자영업자들은 또 12월 27~28일 양일간 저녁 5시부터 9시까지 불을 끄고 영업하는 ‘소등 시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은 앞서 지난 9월 1000여대의 차량이 서울 양화대교 북단에 집결해 시속 20~30㎞ 속도로 서행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역대 최악의 불황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동네 사장님들이 영업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앞서 보쌈집 정 사장은 “다른 기술이 있다면 당장 장사를 접었겠지만 이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나마 기대를 갖는 건 “내년에는 좀 낫지 않을까” “올해보다 더 힘들기야 할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다. 자영업자들은 힘든 걸 뻔히 알면서도 “얼마나 힘드냐”고 묻는 기자에게 박카스를 내주곤 했다. 그들은 허탈한 웃음을 보이며 “별수 있겠냐”고, “버틸 때까지 버텨야 하지 않겠냐”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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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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