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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90호] 2022.01.03

20년 기다린 20분 시위… 지하철 점거 장애인들의 호소

조윤정  기자 wastrada0721@chosun.com 2021-12-31 오후 2:01:02

▲ 지난 12월 29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hoto 조윤정
지난 12월 29일 8시13분, 서울 성북구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승강장에서 일어난 장애인 시위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목에 걸린 스피커에서는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시민들은 짜증 섞인 비명과 고함을 질렀다. 한 남성은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해서 지각이다’라고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분에 못 이겨 “이 xxx들 다 치워! 다 버리란 말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남성은 피켓을 들고 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 얼굴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창피한 줄 알라’면서 어깨를 툭툭 치다가 교통공사 직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날 ‘전장연’은 오전 8시12분께부터 8시35분까지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휠체어를 걸쳐놓고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4호선 충무로역 방면 열차는 22분 지연됐다. 이후 장애인들은 열차에 탑승해 혜화역에서 내렸고, 승강장 내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의 ‘지하철 점거’는 한 시간쯤 지나 끝났다. 이 사태로 시민들의 불만은 폭주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지난 12월 29일 시위 직후 “관련 민원이 80건 넘게 들어왔다”며 “역마다 운행 중단이 되면 금방 회복이 안 되기 때문에 (정상화까지) 오전 내내 4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날 장애인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우리도 같이 출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장연은 올해 13차례의 지하철 시위를 벌였다. 그때그때 세부적인 안건 내용은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 서울시내 저상버스 100% 도입 등이 핵심이다. ‘시민을 볼모로 잡느냐’ ‘왜 꼭 시위를 출근길에 해야 하느냐’는 시민의 원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전장연은 “우리는 20년을 기다렸다”고 답한다.
   
   2022년 새해는 당초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지하철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해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 사고가 일어난 이후 20년간 서울시는 지하철역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해왔다. 1역사 1동선은 지상에 있는 출입구에서 열차에 탑승하는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로만 연결되는 동선이 한 개 이상 있다는 뜻이다. 즉 역무원의 도움이 필요한 휠체어 리프트 말고 엘리베이터만 사용해서 열차를 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 마지노선이 2022년이다. 지난 2015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발표하고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1년 12월 기준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가 아직 설치되지 않은 역은 전체 283곳 중 22곳이다. 이 중 공사 중인 3호선 충무로역, 4호선 명동역 등 10개 역을 제외한 12개 역은 설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설계가 진행 중인 역도 있지만,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에 몇몇 역의 설계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2022년에도 설계가 시작되지 않으면 착공부터 공사 완료까지는 차일피일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장연은 “서울시가 약속을 했음에도, 서울시 공무원과 수차례 면담을 해서 약속을 받아냈음에도 결국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결국 20년간 교통약자에게 공수표만 남발한 것”이라고 반발에 나선 것이다.
   
   
   ‘살인기계’ 대신 승강기를
   
   서울시교통공사 설명에 따르면, 2022년에도 설계조차 어려운 역은 최소 6개 역이다. 7호선 고속터미널역, 8호선 복정역, 5호선 상일동역은 승강기를 설계할 수는 있지만,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다. 5호선 까치산역과 6호선 대흥역, 2호선 신설동역은 역사 구조상 승강기 도입 자체가 어렵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설계비 예산이 포함 안 된 3개 역사에 대해서는 서울시의회에 예산을 다시 신청했다”며 “현재 예산을 심의 중이니 결과가 나와봐야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엘리베이터 미설치 역사에도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돼 있어 장애인들이 계단을 따라 이동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휠체어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부른다. 2000년대 리프트가 본격 도입된 이후 실제 추락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2001년 경기 시흥시 오이도역의 추락사고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시초가 됐다. 아들 집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3급 장애인 할머니가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다가 7m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5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통과됐고, 리프트 안전 기준이나 점검 사항이 개선됐지만 사고가 사라지진 않았다. 지난 2017년에는 신길역 계단을 내려가려던 지체장애인이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가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호출 버튼이 지나치게 계단 가까이 있었다는 사유가 인정됐고 리프트는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용할 때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이동권을 제한한다.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리프트가 고장 나면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나면 고칠 때까지 기다리거나, 가까운 다른 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대합실까지를 한 번에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호선 까치산역에는 1995년 만든 휠체어리프트가 장애인들의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까치산역 역무원은 “리프트가 고장 나면 (장애인 승객들은) 그냥 기다리거나 가까운 화곡역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며 “휠체어 이용객의 연락처를 등록해놓고 고장 나면 ‘오지 마시라’고 문자를 보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에게는 악플도 관심”
   
   사실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는 장애인들의 시위에는 여러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붙는다. 열차 내 혹은 승강장 내 시위는 불법일 뿐더러 집회 및 시위를 신고하지 않고 갑자기 벌이는 ‘게릴라 시위’인 경우가 많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구조상 거의 불가능한 역사를 빼면 1역사 1동선이 99%에 가깝게 완료된 상황”이며 “그래도 예산을 신청하거나 구조 변경을 생각하는 등 노력은 하겠지만, 시민에게 열차 운행이 지연된다고 알려줘야 하니 미리 시위를 예고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활동가들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지난 12월 29일 혜화역 기자회견을 마치고 올라오던 한 장애인 활동가는 “이해가 가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악플(악성 댓글)도 관심이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또 언제 사회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겠느냐고요.”
   
   서울지하철 교통약자를 위한 환승 지도를 만든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대표는 “버스나 장애인 콜택시 등 다른 대체 수단이 미진하기 때문에 휠체어 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지하철 의존도가 높다”며 “해외보다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가 잘 갖춰져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 교통수단 중 지하철이 분담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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