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지질탐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의 수자원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풍부한 물에 감탄해왔다. 산업화가 집약적으로 행해져 환경이 크게 손상된 가운데서도, 여전히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시원하고 풍부한 물의 풍광은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휴식을 제공한다. ⓒphoto Pixabay
1960년대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지질탐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의 수자원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풍부한 물에 감탄해왔다. 산업화가 집약적으로 행해져 환경이 크게 손상된 가운데서도, 여전히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시원하고 풍부한 물의 풍광은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휴식을 제공한다. ⓒphoto Pixabay

2000년대 초 어떤 공영광고, 특이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한국은 유엔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입니다.” 물을 아껴 쓰자는 거니까 좋은 말이긴 한데, 좀 이상하다. 유엔이 각 국가별로 물 공급량도 지정해준다는 얘긴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던 사람으로서 그런 슬로건이 나온 배경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1990년대는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한층 도약했던 때다. 지구환경문제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사막화’였다. 기후변화로 인해 수자원이 고갈되고 녹지가 사라져 사막처럼 되는 지역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사막화 진행 정도가 아주 빠른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옆 나라 중국이다. 거대한 중국 대륙 사막화의 영향을 받아 그 동쪽 끝에 붙어 있는 한반도도 조만간 사막화를 겪을 것이고 따라서 물이 부족해지리라는 선진국 학자들의 예측이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유엔 지구환경보고서에 관련 논문들이 실렸고, 그게 한국의 관련 전문가와 정책수립자들을 긴장시켰을 테다.

그로부터 거의 30년 가까이 지나는 현재, 한반도는 여전히 사막화와는 별 관계없는 지역인 것처럼 보인다. 물 부족으로 온 사회가 고통받는 건 이곳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왜 한반도는 사막화되어 가는 중국 대륙 바로 옆에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수자원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건, 2019년 나온 북한‧서구선진국 합동 백두산 연구 결과에서였다. 한반도 전역‧만주평원 전체 및 산둥반도 등 중국 동해안에서도 한반도에 가까운 일부 지역은 지구상에서도 가장 질이 좋고 양이 풍부한 수자원의 혜택을 받는 곳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왼쪽) 카리브해 소재 몬트세라트 화산의 컴퓨터 단층 촬영(CT) 그림의 일부. (오른쪽) 백두산도 마찬가지 CT 기법으로 심층 지질구조까지 파악, 폭발 직전의 모습을 그림과 같이 상세히 밝혀냈다. 출처: (왼쪽) “Why China’s largest volcano is so unusual?” 화면 캡쳐에 한글 설명어 입력. (오른쪽) Kayla Iacovino et al. “Quantifying gas emissions from the “Millennium Eruption” of Paektu volcano,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China” (2016) 게재 도면 문자 부분 한글 번역.
(왼쪽) 카리브해 소재 몬트세라트 화산의 컴퓨터 단층 촬영(CT) 그림의 일부. (오른쪽) 백두산도 마찬가지 CT 기법으로 심층 지질구조까지 파악, 폭발 직전의 모습을 그림과 같이 상세히 밝혀냈다. 출처: (왼쪽) “Why China’s largest volcano is so unusual?” 화면 캡쳐에 한글 설명어 입력. (오른쪽) Kayla Iacovino et al. “Quantifying gas emissions from the “Millennium Eruption” of Paektu volcano,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China” (2016) 게재 도면 문자 부분 한글 번역.

상기 백두산 연구를 통해 백두산의 지질구조가 상당히 선명해졌다. 북한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현지 조사를 충분히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첨단 지질구조 탐사 기술 덕분이 컸다. CT 촬영, 즉 컴퓨터 단층 촬영이라는, 의료 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을 지질구조 탐사에 적용한 것이다.

여러 지점에서 전파를 땅 속으로 쏘아 그것이 흡수되거나 반사되는 정도를 컴퓨터로 재구성하여 땅 속 깊은 곳까지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기법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형의 화산이었던 백두산의 지질구조도 확실하게 밝혀질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인근 일대의 지질학적 구조도 밝혀졌는데, 그 중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부분을 다음의 그림으로 표현해본다.

(왼쪽) 한반도 일대 심층 지하수 대역의 생성 구조를 횡단면으로 본 그림. (오른쪽) 한반도 일대 심층 지하수 대역의 외연을 위에서 본 지질학적 지도에 표시한 그림. 출처: “Why China’s largest volcano is so unusual?” 화면 캡쳐를 기반으로 이진아 작성.
(왼쪽) 한반도 일대 심층 지하수 대역의 생성 구조를 횡단면으로 본 그림. (오른쪽) 한반도 일대 심층 지하수 대역의 외연을 위에서 본 지질학적 지도에 표시한 그림. 출처: “Why China’s largest volcano is so unusual?” 화면 캡쳐를 기반으로 이진아 작성.

일본 열도의 동쪽, 그러니까 위 왼쪽 그림의 제일 오른쪽 해수면 부근은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이라는 지판들이 부딪치는 곳이다. 더 무거운 태평양판이 꺾이면서 유라시아판 밑으로 들어가고, 그로 인해 생긴 부서진 틈으로 바닷물이 들어가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뜨거운 지각물질을 들어올리기 때문에 화산이 분화한다. 일본형 화산이다.

태평양판의 위 표면 부분은 스펀지처럼 무수히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 퇴적암이다. 이 암석층이 바닷물을 흡수하면서 아주 천천히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 들어가 맨틀 경계면에 이르면, 또 한 번 꺾이면서 평평하게 맨틀 상층부로 자리잡는다. 여기서 뜨거운 열과 압력을 받아 암석 성분이 녹아 뭉쳐지면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던 물이 배출된다.

태평양으로부터 스펀지 같은 암석을 통해 계속해서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물 중 일부는 또 한 번 꺾인 지판 표면에 생긴 틈을 타고 지표면 쪽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백두산 밑에 다량 존재하는 규장질의 암석을 수화(水化)시켜서 수정과 같은 구조로 만들면서 올라가, 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마그마로 분출된다는 얘기는 앞 기사에서 했다.

대부분의 물은 남아서 맨틀 밑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 지하 깊숙이 자리잡은 태평양판의 표면 위에 고인다. 위 오른쪽 그림에서 밝은 파란색 선으로 표시된 것과 같은 심층 지하수 대역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심층 지하수 대역은 다른 지판경계면 일대에서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백두산 인근의 그것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물의 저장량이 많아서, 지구상의 바닷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물이 지표면까지 올라가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뀌는 과정은 아직까지 세부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심층 지하수가 지표면의 물과 대기권의 수분을 포함한 지구상 물과 순환 과정을 이룬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따라서 심층 지하수가 특별히 풍부한 곳에선 지표수 역시 풍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 일대가 항상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 부분이 좀 더 정확히 밝혀지면, 한반도와 만주지방에 지표수가 특히 풍부할 뿐 아니라, 그 물 맛이 유독 좋다는 세간의 평에 실질적 근거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반도를 중심에 둔 이 지역의 육지 부분 지하에 백두산과 같은 규장질의 암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뜨거운 지하수 및 그 수증기와 규장질의 암석의 속도 느린 상호작용으로, 육각수에 가까운 물이 생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한반도와 만주지방이 경제 협력을 통해 이 지역에 풍부한 지하수를 개발,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인근 국가에 판매한다면 크게 수출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제언을 내놓은 걸 본 적이 있다. 그런 미래의 시장 전략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현재 이 지역의 질 좋고 양 많은 지하수가 사람들의 건강은 물론 농작물의 질적‧양적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환경 조건에 맞는 생존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거론되는 사례 중 하나가 북극에서 바이킹과 이누이트족의 역사 이야기다. 서기 12세기 온난기에 그린란드를 침략, 상당한 규모의 정주지를 이룩했던 바이킹족은 불과 200년을 채 지나지 않아 기온이 급강하는 한랭기가 오자 빠른 속도로 쇠망해버렸다. 혹한의 환경 속에서 유럽 스타일의 생활양식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곳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은 극심한 환경변화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전통적 생활방식의 노하우로,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흔들림없이 살아오고 있다. 그림 출처: 퍼블릭 도메인
환경 조건에 맞는 생존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거론되는 사례 중 하나가 북극에서 바이킹과 이누이트족의 역사 이야기다. 서기 12세기 온난기에 그린란드를 침략, 상당한 규모의 정주지를 이룩했던 바이킹족은 불과 200년을 채 지나지 않아 기온이 급강하는 한랭기가 오자 빠른 속도로 쇠망해버렸다. 혹한의 환경 속에서 유럽 스타일의 생활양식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곳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은 극심한 환경변화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전통적 생활방식의 노하우로,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흔들림없이 살아오고 있다. 그림 출처: 퍼블릭 도메인

지금까지 다소 길게 백두산 연구와 관련해서 밝혀진 한반도의 심층 생태학적 조건에 대해 소개해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렇게 최근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집중적 관심으로 밝혀낸 백두산 관련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인 한반도의 환경 조건에 대해 객관적인 이해가 확산됐으면 해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삶의 터전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애정의 수준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지구상 어디든지, 어떤 시대에서도, 환경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길 기대해서다. 현재의 환경 상황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를 토대로 제대로 된 미래 생존 전략 방향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역사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기사부터는 가야의 역사를 미시적‧거시적 환경변화라는 렌즈를 통해서 총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 “여뀌처럼 좁은 땅”에서 출발해 세계를 휘어잡았던 그 흥망성쇠의 파노라마는 인간과 환경이 어떤 관계 맺음 속에서 노력해왔던 결과일까?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