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조금 다른 인류사]  수로왕은 가야가 아니라 ‘가락국’의 개국시조였다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사회/르포
[2691호] 2022.01.10
관련 연재물

[조금 다른 인류사]수로왕은 가야가 아니라 ‘가락국’의 개국시조였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2-01-13 오후 4:13:30

▲ 가야의 국가 상징이었던 거북과 뱀에 대한 상상도. (왼쪽) 왕실 문장의 기본 패턴, (오른쪽) 가야의 뱃머리 장식. 그림: 정민우
가야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출발해보자. 무대를 좁혀 보면 낙동강 하구다. 이곳엔 한반도에 인간 정주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사람들이 살아왔다. 높은 산기슭의 기름진 평야, 그 평야와 나지막한 바다가 만나는 곳에 형성되는 풍요로운 갯벌— 원시적인 수렵채취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천혜의 보금자리였다. 거대한 패총이 그 말없는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곳에 언제부터 ‘국가’라고 부를 만한 사회체가 나타났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가야’라는 이름을 가진 정치‧경제‧사회 공동체가 시작된 건 기원전 350년 무렵일 거라는 추정을 지난 기사에서 했었다. 철과 철기를 제작해서 사용할 줄 아는 남방 계통, 즉 인도 및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한반도 남해안 일대에 도착해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이 물결은 그보다 200년 앞서 급작스러운 기후변화 한랭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됐다. 인도 땅에서 쓸 만한 목재가 소진되고 식량이 귀해지자, 기원전 500년 무렵엔 그곳의 제철인들이 지금의 캄보디아와 타이 일대에 진출했다. 기원전 350년 무렵부터 지구자기장 교란이 심해져 이 지역에서 화산, 지진 등이 빈발하자 다시 안정된 땅을 찾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으로, 그리고 대만을 거쳐 한반도에 이른 것이다.
   
   
▲ (왼쪽) 아시아 각 지역 제철이 시작된 시기에 있어서의 기후 및 지구자기장 변화 상황 (오른쪽) 그런 거시적 환경변화에 따라 제철인이 살 길을 찾아 이동한 경로. 한반도 동남부 낙동강 하구, 가야인의 터전에는 기원전 350년 경 남방계 제철인이 도착했고, 기원전 150년 경 북방계 제철인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주요 제철기지를 ‘가야’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듯하다. 사진 출처: (왼쪽) Randy Mann & Cliff Harris의 기후변화 그래프(2017)를 기반으로 작성, (오른쪽) Wikimedia Commons 백지도를 기반으로, 최근 연구 결과들을 통합하여 작성.

   이들은 아마도 터키에서부터, 그리고 인도에서부터는 분명히 제철 중심지를 ‘가야’라고 불렀다. 그 동쪽으로 향하는 흐름의 마지막 지점인 낙동강 하류 유역에도 ‘가야’라는 명칭이 부여됐다. 그때까지 한반도 남부지방에 없었던 첨단 아이템인 철기를 갖고 상륙한 이들은 당연히 지배계급에 통합됐을 것이며, 그와 함께 갖고 온 그들의 다른 문화적 자산들도 도입했을 것이다.
   
   그 흔적이 옛 가야 터전이었던 지금의 부산 강서구 흥국사에 전해지는 ‘사왕석’이다. 구불구불 솟구쳐 올라가는 두 마리의 뱀이 머리에 터번을 두른 듯한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상승하는 한 쌍의 뱀은 힌두 문화권에서 우주의 근원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숭상되어 왔다. 반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용이나 거북을 신성시하긴 해도, 뱀을 신성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왕석은 인도 문화 영향의 흔적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기원전 2세기 어느 시점에서 만주평원 부여국에서 연해주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또 다른 스타일의 제철인들이 낙동강 하류의 지배권에 참여한다. 김해의 구지봉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라는 노래를 불렀고, 그로 인해 수로왕을 영접했다는 애기가 전해진다.
   
   
▲ 가락국의 상징, 뱀과 거북. (왼쪽) 부산 강서구 흥국사에 보존된 뱀과 인물 석판 부조. 인도 문화의 영향이 역력하다. (가운데) 상향하는 한 쌍의 뱀과 거북의 상징을 조합해서 상상한 가락국의 로고. (오른쪽) 경북 고령군 지산동 대가야 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제 방울에는 거북 모양을 비롯, 가락국 건국설화의 내용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들이 새겨져 있다. 출처: (왼쪽) KNN 다큐멘터리 “허황옥 3일의 과학” 유튜브 화면 캡쳐의 일부. https://www.youtube.com/watch?v=zmq_zzUBKKQ, (가운데) 정민우 그림, (오른쪽) KBS 뉴스 화면 캡쳐의 일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62200

   현재 가야사의 주류 담론에서는 그 시점을 서기 47년으로 본다. 가락국 역사가 담긴 우리 역사서 ‘삼국유사’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가야 역사의 시작인 것으로 암묵적으로 간주해왔다.
   
   이 연재에선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다르게 본다. 첫째, 수로왕은 가락국의 개국시조이지, 가야의 개국시조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둘째, 가야의 시작은 기원전 350년이며 가락국의 시작은 기원전 100년대 중 어느 시점이었다고 본다.
   
   고대 해양국의 특성으로 보아 가야는 애초부터 소국의 연맹체였을 가능성이 크다. 남방으로부터 철기 문화를 기꺼이 흡수하며 유대를 형성한 소국들이다. 여기에 가락국이라는 새로운 소국을 이끌게 된 수로왕과 인근 지역 지도자가 된 그 동료들이 가담한 것이다.
   
   당시 가락국의 위치는 낙동강 하구 중에서도 제일 끝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그 이전 온난기에는 바다였다가 한랭기를 300년 이상 거치면서 새롭게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랭기에는 물의 용적이 줄어들어 해수면과 하수면이 많이 낮아지고, 산에 식생이 빈약해져 토양 침식으로 하상이 높아지므로 저지대에 새로운 땅이 형성된다. 한반도 남해안, 특히 낙동강 하구처럼 수심이 얕은 바닷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의 김해평야 역시 가야시대만 해도 바다였다. 조선시대에 해당되는 500년간의 혹심한 한랭기 동안 하구에 퇴적물이 쌓이고 하수면과 해수면이 낮아진데다가 일제강점기 동안 간척사업이 더해져 넓은 평야가 형성됐다.)
   
   이때 낙동강 하류에 새롭게 형성된 땅이 지금의 김해시 일대다. 비옥한 땅이 새로 생겼는데, 사람들이 그대로 뒀을 리 없다. 조금씩 인간이 길들인 면적이 넓어져갔을 테고, 백두산 분화 여파를 피해 수로왕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인구도 꽤 불어나 있었을 테다.
   
   국가 경영에 노련한 부여국 출신 수로왕과 그의 동료 5명은 그런 땅에서 첫 지도자들이 됐을 것이다. 주민들로 봐서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비옥한 땅을 노리고 식량을 약탈해가는 주변지역 주민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강한 무력을 갖춘 새 지도자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6명의 준수한 부여국 출신 장정들은 그렇게 새로운 땅에서 첫 지도자들이 되어, 기왕에 있었던 가야연맹체의 새 멤버가 됐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새롭게 땅이 만들어지거나 혹은 없어져서 지배권 판도가 바뀌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많이 발견된다. 다음 회 기사에서 좀 더 자세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
   
   김수로왕 가문의 상징은 ‘거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북을 불러 수로왕을 맞이했다는 설화도 있고, 2019년 발굴된 대가야 고분에서 나온 토제 방울에도 거북의 형상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원주민의 뱀과 이주민 출신 지도자들의 거북. 여기서 연상되는 게 있다. ‘묘켄’이 “거북의 등을 타고 뱀의 인도를 받아 바다를 건너왔다”고 말하는 일본의 고(古)기록이다. 묘켄이 일본 고대국가 야마다이국의 개국 시조 히미코와 동일인물로서 가락국 왕실 출신이라는 점은 지난 기사 ‘“거북을 타고 뱀의 인도를 받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2652호)에서 고증한 바 있다.
   
   이것은 가락국 사람들이 타고 온 배의 뱃머리가 거북과 뱀으로 장식되어 있었던 과거 사실이 신화화된 것이리라고 추정했다. 바닷가에 닿은 거대한 배 앞머리에 엄청난 크기로 뱀과 거북이 새겨져 있었다면, 처음 보는 그 위용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그렇게 전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인도도 가야도 세계사 굴지의 뛰어난 해양국가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시 인도에선 뱀, 용, 큰 새 등으로 뱃머리를 장식했다. 인도만이 아니라 고대사회의 모든 대규모 선박에는 뱃머리에 자신들에게 중요한 신적(神的) 이미지를 새겨 넣어 항해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 달라는 기원을 담았다.
   
   가야가 예외일 이유는 없다. 일본 규슈에서 전해지는 거북과 뱀의 인도를 받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 및 구전은 가야의 뱃머리 장식에 대해 강력한 시사를 준다. 이 두 동물은 뱃머리 장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야 국가 전체의 상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는 가야의 토기들 중에도 표면에 거북과 뱀이 새겨져 있는 것들이 꽤 있다.
   
   
▲ 영국 왕실의 상징인 문장(紋章)은 지배계급, 즉 왕가의 세력 프레임이 변화해온 역사를 담고 있다. 12세기 리처드 사자왕이 처음 자신의 상징을 방패와 깃발에 새겨 넣은 이래, 혼인, 정복, 평화적 병합 등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협력 집단의 로고가 통합되어 현재의 모습이 완성된 것이다. 그림 출처: 퍼블릭 도메인 이미지 편집

   국가가 성장하고 지배 계급의 구성이 바뀌면 로고도 변한다. 영국 왕실 문장(紋章, coat of arms) 변천사의 예를 보자. 12세기 사자왕 리처드가 군기와 방패에 사자 문양을 그려 넣은 이래, 다른 왕실이나 귀족 가문과 결합할 때마다 그 가문의 문장을 통합하며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되어갔다.
   
   가야의 뱃머리를 장식했던 뱀과 거북도 그런 지배계급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350년, 이 지역에서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등장하면서 ‘가야’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했던 집단이 숭상하던 상징적 동물은 뱀이었는데, 그로부터 약 200년 후 부여국 출신의 수로왕이 합세하면서 가락국에선 거북이라는 상징이 더해졌다고 말이다.
   
   이런 사회 변화는 폭력적 정복에 의한 지배계급 교체이기보다는, 서로 필요에 의해 협력하는 평화적인 융합 과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협 어부바 콘텐츠 공모전
마감을 하며
대선판의 군소 후보들 정장열 편집장

마감날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돌연 선거운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정의당 선대위는 “심상정 후보는 현 선거 상황을 심...

주간조선 대학생 기사 공모
주간조선 칼럼마당
기업소식
네이버 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