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만 총통 선거 때 국민당 후보직을 맞교대한 홍슈주 전 주석(앞줄 왼쪽)과 주리룬 현 주석(오른쪽). ⓒphoto RFA
2016년 대만 총통 선거 때 국민당 후보직을 맞교대한 홍슈주 전 주석(앞줄 왼쪽)과 주리룬 현 주석(오른쪽). ⓒphoto RFA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후보교체론의 불씨가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지난 1월 4~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는 26%의 지지를 얻어 이재명 후보(36%)에 10%포인트 차로 밀렸다. 지난 1월 7~8일 TBS·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도 윤 후보는 35.2%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쳐 이재명 후보(37.6%)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밀렸다. 지난 1월 10~11일 YTN·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39.2%로 이 후보(36.9%)를 앞섰지만 여전히 오차범위 안이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윤석열 후보와 맞붙었던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제외하고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지금까지도 윤 후보 측과 일정 거리를 두면서 관망세로 있는 것도 후보교체론을 좀처럼 불식시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선거 전 후보교체는 아직 국내에서는 전례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정치지형과 거의 흡사한 대만에서는 2016년 총통 선거 때 실제로 후보교체가 단행된 바 있다.

국민당, 2016년 후보교체에도 패배

2016년 대만 총통 선거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국민당은 총통 후보로 지명한 홍슈주(洪秀柱) 후보를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두고 주리룬(朱立倫) 현 국민당 주석으로 전격 교체했다. 국민당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로 나선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에 맞설 카드로 같은 여성 정치인인 홍슈주를 내세웠다. 정작 홍슈주가 차이잉원에게 현격히 밀리는 지지율이 나오자 후보선출 3개월 만에 전당대회를 열어 후보지명을 철회하고 신베이(新北)시 시장을 지낸 주리룬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국민당의 전례를 보면 선거 전 후보교체가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민당은 당시 선거에서 후보교체라는 초강수를 뒀음에도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2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에게 6%포인트 차로 석패한 차이잉원은 2016년 총통 선거 때 재수에 나선 상황이었다. 결국 차이잉원은 2016년 대선에서 56.1%의 표를 획득해 31%의 표를 얻는 데 그친 국민당 주리룬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경기 전 선수교체라는 극약처방이 전혀 먹혀들지 않은 셈이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주목받는 것은 후보단일화의 중요성이었다. 2016년 총통 선거에서는 국민당 출신의 범(汎)보수계열로 분류되는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가 독자출마를 감행해 12.8%를 득표하며 국민당 주리룬의 표를 적지 않게 잠식했다. 물론 당시 선거에서 국민당 주리룬(31%)과 친민당 쑹추위(12.8%)의 표를 합산해도 민진당 차이잉원(56.1%)에 크게 못 미쳤지만, 국민당으로서는 만일 후보단일화가 성사됐더라면 좀 더 근접한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당시 선거에서 12.8%를 득표하며 국민당의 표를 갉아먹은 쑹추위는 중국 본토 출신 외성인(外省人)으로 초대 민선 대만성장(省長)을 지내고 국민당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뒤를 이을 국민당 차세대 주자로 지명도가 높았다. 하지만 막상 2000년 총통 선거 때 리덩후이 전 총통이 대중적 인기가 없는 롄잔(連戰) 부총통을 국민당 총통 후보로 지명하면서, 쑹추위는 당시 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감행해 보수 분열의 씨앗이 됐다.

실제로 2000년 총통 선거 때도 무소속 쑹추위는 36.8%를 득표하며 국민당 롄잔(23.1%)를 압도했으나 보수표 분산 덕분에 39.3%를 얻은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이 어부지리로 총통에 당선돼 대만 최초 정권교체를 이룬 바 있다. 당시 선거에서 대만독립론자인 리덩후이 전 총통이 의도적으로 같은 대만독립론자인 민진당 천수이볜을 지지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 리덩후이 전 총통은 선거 이듬해 대만단결연맹을 창당해 국민당에서 제명됐고 이후로는 민진당에 가까운 행보를 걸었다.

마치 한국의 1997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38.7%)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19.2%)의 분열로 새정치국민회의(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로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과 40.3%의 득표율로 당선됐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후에도 쑹추위는 10%가 안 되는 한 자릿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2012년, 2016년, 2020년 총통 선거에 세 번 연속 독자출마를 감행해 끝까지 완주하면서 항상 대만 선거판의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가장 최근인 2020년 총통 선거 때도 쑹추위는 친민당 후보로 출마해 4.26%의 표를 가져가며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38.61%)의 표를 잠식했다. 2020년 총통 선거 직전 국민당 후보 경선에서 가오슝(高雄)시장을 지낸 한궈위 후보에 패한 대만 최대 갑부 궈타이밍(郭台銘) 홍하이정밀 회장은 쑹추위 지지에 나서기도 했다. 대만의 보수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당으로서는 2000년 총통 선거 때 쑹추위와의 분열이 20년 넘게 두고두고 우환거리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대만과 비슷한 집권 주기,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주기로 정권을 주고받는 대만과 한국을 비교한다면 국민의힘으로서는 국민당이 2016년 사용했다가 별다른 효과를 못 본 후보교체보다는 후보단일화를 통한 보수진영의 표 분산부터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한국 대선에서 후보단일화는 1997년 대선 때의 ‘DJP(김대중+김종필)연합’ 이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200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2012년)처럼 빠지지 않는 상수(常數)다.

지난 2017년 대선 때도 보수진영은 자유한국당 홍준표(24%), 국민의당 안철수(21.4%), 바른정당 유승민(6.8%) 등 세 갈래로 분산되면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41.1%)의 당선을 가능케 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표를 합산하면 50%가 훌쩍 넘는다. 결국 오는 3·9대선 역시 범(汎)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에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하면, 현재 지지율 추이만 놓고 봤을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돼 5년 더 정권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한국의 민주당과 대만의 민진당은 각각 지난 1998년과 2000년 첫 집권한 이래 거의 흡사한 집권 주기를 이어가고 있다. 2016년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첫 집권에 성공하며 8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이듬해인 2017년에는 한국에서도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돼 보수정권(이명박·박근혜)으로부터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탈(脫)원전 등 4개 사안을 놓고 대만에서 실시한 국민투표에서도 국민당은 민진당에 완패했다.

대만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민주당과 민진당, 국민의힘과 국민당 간의 거의 유사한 집권주기만 놓고 봤을 때 202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재선된 관계로 한국에서 민주당이 집권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오는 3·9대선은 한국과 대만의 집권주기가 또다시 일치할지 아닐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키워드

#포커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