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라는 카피가 담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탈모 공약 관련 영상. ⓒphoto 민주당 선대위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라는 카피가 담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탈모 공약 관련 영상. ⓒphoto 민주당 선대위

국가 차원에서 별도로 집계하지 않지만 남성의 20%가량이 탈모를 앓는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잠재적인 국내 탈모 인구는 대략 1000만명으로 추산된다. 물론 이들이 모두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할 정도로 증상이 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간 20만명 정도가 꾸준히 탈모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고 있다. 외모를 가꾸는 데 관심이 많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그 숫자가 매년 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지점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파고들었다.

이재명 후보는 인터넷 탈모 커뮤니티를 찾아 “탈모 치료제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겠다”라는 정책제안을 내놓았다. 탈모증 치료를 위해 시행하는 모발이식에 빗대어 “이재명은 뽑는 게 아니라 심는 것”이라는 파격적인 문구를 담은 영상을 공유한 건 덤이다. 온라인에서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정책제안 수준에 머무르던 탈모 건강보험 적용은 재정 규모 추산을 거쳐 정식 공약으로 채택되는 수순을 밟게 됐다. 겉보기에는 모두 행복한 전개 같지만 문제는 건강보험 적용에 있어서 ‘탈모증’이 그리 높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돼 있다. 제한된 금액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암이나 난치병 같은 중증질환 치료제에 재정을 배분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이다. 탈모처럼 외양이 나빠지는 것 외에 별다른 생리적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질환은 뒤 순위가 되는 게 맞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재명의 ‘모(毛)퓰리즘’에 열광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렴하게 탈모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형 탈모증 원인은 ‘강력남성호르몬’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 꽤 많은 수의 여성도 탈모를 겪는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보다 더 길고 윤기 있게 자라는 건 여성호르몬의 작용 덕분이다. 그런데 여성도 나이가 들수록 여성호르몬 수치가 감소한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게 과거 중년층 여성들의 상징과 같은 헤어스타일인 ‘파마머리’다.

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최대한 풍성하게 보이는 머리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 비슷하게 선택한 스타일인 것일 뿐, 특정 연령대가 되면 갑자기 미적 감각이 바뀌어 파마머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여성형 탈모가 마땅한 치료법이 없고, 자연스러운 호르몬 감퇴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면 남성형 탈모는 이와 정반대의 이유로 생긴다.

남성에게 흔히 생기는 남성형 탈모는 남성호르몬의 작용으로 발생한다. 인체 내에서 남성호르몬 일부는 강력남성호르몬(DHT)의 형태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 강력남성호르몬이 앞머리와 정수리 부위의 모낭(毛囊)에 작용하면 모낭이 굵은 머리카락을 생성하는 능력을 점차 잃게 된다. 이런 현상이 수년 이상 지속되면, 모낭에서 머리카락을 아예 생성하지 못하는 ‘탈모증’이 발생한다.

이렇게만 보면 이론적으로 모든 남성이 탈모를 겪을 것 같지만, 모낭이 강력남성호르몬에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같은 양의 남성호르몬에 노출되어도 탈모 정도가 달라지니, 결국 유전의 영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탈모가 진행되는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탈모의 추가적인 진행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 이유다.

이때 복용하는 게 흔히 ‘프로페시아’라고 불리는 먹는 탈모약이다. 이 약은 체내에서 남성호르몬이 강력남성호르몬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탈모가 진행되는 것을 늦추거나 막는다.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모공은 약의 복용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되기도 하는데, 이미 죽은 모공을 되살리긴 어렵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복용하는 게 좋다. 문제는 약값이 그리 저렴하지 않다는 데 있다.

최근에는 저렴한 약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일반적인 탈모 환자는 월 4만원 정도의 약값을 평생 부담해야만 한다. 보험적용이 되는 고혈압약(월 1만6000원), 당뇨병약(월 2만원)과 비교하면 개인이 부담하는 금액이 많으니, 이를 줄이려고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외 직구부터 ‘약 쪼개기’까지

가장 대표적인 비용 절감 방법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명목으로 약을 처방받아 이를 쪼개 먹는 방식이다. 전립선 비대증 역시 강력남성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다. 단 탈모와는 달리 전립선 비대증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그런데 전립선 비대증과 탈모증이 동일한 원인에 따라 발생한다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생긴다. 적당히 의사와 모의해 ‘명목상’으로 전립선 비대증이라고 진단만 받으면 같은 성분의 약이라도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훨씬 고용량으로 더욱 싸게 처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쓰이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는 5㎎이지만 탈모약은 1㎎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4분의1 조각으로 쪼개서 복용하면 탈모 치료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있다. 전립선 비대증약이 월 2만원 정도인 걸 고려하면 약을 쪼개는 약간의 불편을 감내하는 대신 탈모 치료비는 월 5000원 정도로 낮아진다.

이러니 전립선 비대증 진단을 잘 내주는 의원은 ‘탈모 성지’로 암암리에 전수되고, 인근의 특정 약국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4분의1로 정교하게 잘라주기까지 한다.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굳이 약을 그렇게 잘라 먹을 이유가 없으니 엄연히 불법이지만 이미 정교한 생태계가 구축되어 십수년 이상 굴러가는 중이다.

이런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인도 등에서 만들어진 탈모 치료제를 ‘해외 직구’ 형태로 불법적으로 국내에 들여오는 경우도 생긴다. 개발도상국에서 불법적으로 생산된 것이라 약의 유효성이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지만 주머니 사정이 아쉬운 학생들 위주로 이런 시도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연간 적발 건수만 수천 건에 달한다.

탈모 환자들의 이런 절박성과 별개로 모(毛)퓰리즘이란 비판은 여전히 타당하다. 탈모보다 우선순위 높은 위중한 질병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지만 탈모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매달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내지만 당장 내가 겪는 고통은 해소되지 못하니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중병을 앓는 노년에 받는 건강보험 혜택이 훨씬 크더라도, 당장 손에 잡히는 건강보험의 효능감이 없다면 사람들은 이런 포퓰리즘에도 쉽사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탈모인들의 불만을 잠재울 방법을 찾는 게 더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박한슬 약사·‘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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