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경기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 태봉산 일원에 KF-5E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한 가운데 군 관계자가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11일 경기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 태봉산 일원에 KF-5E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한 가운데 군 관계자가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노후 기종인 F-5 전투기를 조종하던 공군 장교가 기체결함으로 추락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2000년 이후 12대나 추락한 노후 전투기 F-5와 F-4를 퇴역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다. 군사전문가들은 F-5 등 노후 전투기 퇴역이 단순히 ‘헌 기종을 새 기종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국방 전력을 교체하는 사업과 복합적으로 맞물린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리더십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지난 1월 11일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소속 고 심정민 소령(추서)이 조종하던 KF-5E 전투기가 화성시 인근 야산에 추락해 조종사 심 소령이 순직했다. 심 소령은 추락하기 직전 기체가 민가에 떨어져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는 것이 공군의 발표 내용이다. F-5 계열 전투기는 이번 사건을 포함해 2000년 이후에만 9건의 추락사고가 났고 조종사 12명이 순직했다. F-4까지 합치면 2000년 이후에만 17명의 조종사가 비행 중 사고로 순직했다.

문제는 F-5 계열 전투기가 아직도 총 80대 안팎이나 실전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F-4까지 합치면 100대에 육박한다. 현재 시제기가 출고된 KF-21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F-4는 물론 F-5도 이미 퇴역했어야 한다. 하지만 KF-21 사업이 늦어지면서 2015년 합동참모본부는 F-4와 F-5의 완전 퇴역 시기를 5년씩 연장한 바 있다. 이에 따라 F-4는 퇴역 시기가 2019년에서 2024년으로, F-5는 2025년에서 2030년으로 각각 연장됐다.

전투기는 특성상 급기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행을 할수록 기체 전체에 피로도가 쌓인다. 현재 군이 운용하는 F-4, F-5 역시 이를 감안해 대대적인 기골 보강을 거친 기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도가 너무 심해 이처럼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2010년 이후에는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사고가 났다. 이명박 정부 때 국방부 군구조개혁실장(준장)을 지낸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F-5는 1975년 이후 전력화된 사업이라 앞으로는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중요한 분기점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군이 F-5의 전력 규모를 유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첫 번째로 “전시의 문제”를 꼽았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초기에 적 수뇌부를 타격하는 이른바 ‘킬체인(Kill Chain) 작전’의 실행에 각 군의 전력이 필요한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핵심 전력이 항공기이기 때문이다. 양 위원은 “킬체인에는 선견(先見·먼저 본다), 선결(先決·먼저 결단한다), 선타(先打·먼저 때린다)의 3요소가 있는데, 선타의 핵심이 항공기”라고 설명했다.

이 중 ‘선견’의 경우 정찰기나 AWACS(조기경보기) 등 감시 정찰자산 관련 기체와 인공위성이 작전의 핵심이다. ‘선결’은 지휘 단계의 문제고, 마지막이 ‘선타’ 단계인데, 이 단계에서는 작전 실행에 항공기가 가장 유리하다는 것이 양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한반도 같은 작전 반경이 좁은 곳에서는 매 시, 분, 초마다 결심-공격, 결심-공격 하는 식으로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미사일은 미리 타격지점을 정해놓으면 중간에 변경이 어려운 반면 항공기는 매 시점마다 조종사가 문제를 판단하고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평시의 경우에도 전술기 규모를 유지할 필요성은 꾸준히 있다. 첫째는 스크램블(비상출격) 용도다. 군 당국은 북한 기체의 접근을 경계하기 위해 휴전선 근처에 가상의 선을 그어놨는데, 적성기가 이 선 근처에 접근할 경우 우리 기체가 출격해 적 기체에 대응하면서 비행해야 한다.

북한 항적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군은 우리 영공에 방공식별구역(KADIZ)이라는 가상의 선을 그어놓고 이를 지키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특히 중국과 러시아 기체들도 이 구역 인근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대응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공군이 운영 중인 전술기는 모두 430대 정도인데, 이 중 F-4, F-5 등 노후 기종 100대를 작전에서 한꺼번에 제외할 경우 이러한 전시대비 핵심 전력 유지나 방공식별구역 수호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F-4와 F-5의 퇴역 문제는 군의 차세대 전력 도입 사업과 맞물려 있다. 우리 군이 430대 내외의 전술기 유지가 필수적이라고 명시해 놓은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고가 기종의 도입은 모두 F-5의 퇴역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직결된다. 특히 최근 국내에 실전 배치된 5세대 전투기 F-35의 경우 한 대에 1000억원이 넘는 고가 기종이라 항공기 대수를 여럿 확보하기가 어렵다.

F-35 같은 고가 기종은 실제 도입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정권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결정의 연속이고 변수도 많다. F-35의 경우도 구매를 결심한 건 박근혜 전 대통령 때였지만 실제 도입이 된 건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이었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F-35 도입은 1990년대 중반 F-X 3차 사업 때부터 시작됐다. IMF 외환위기 전 국방력 강화를 위해 당시 최신 전투기인 F-15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는 당초 120대를 들여오기로 예정됐던 F-15K를 40대밖에 들여오지 못했다. 2차로 다음 정부 때도 20여대만을 들여왔다. 결국 끝까지 도입하지 못한 약 60대의 F-15K 대신 미국이 새로 개발한 최신예 F-35 기종을 들여오기로 하면서 F-35 도입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해군 안팎에서 항공모함 도입 여론이 조성되면서 당초 들여오려던 일반기종 F-35A가 아니라 함재기종인 F-35B 도입도 검토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추가 예산이 소요된다.

2018년 경기도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KF-5F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8년 경기도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KF-5F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군 조직 4분의1 사라져

공군이 100여대 내외의 F-4, F-5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100대가 모두 퇴역하면 공군 조직 4분의1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종만이 아니라 방공통제를 비롯한 지상관제, 정비, 군수 등 전술기와 관련된 작전과 후방지원 부문의 규모가 엄청나 전술기는 공군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예비역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일어난 F-5 계열 전투기의 사고와 최근 사고는 원인이 다르다고 한다. 이전 사고의 경우 사출장치 불량의 문제가 심각했던 반면, 현재는 사출장치가 아닌 다른 부분이 더 문제라는 설명이다. 앞서 F-5는 구형 사출장치 문제가 빈발하면서 한 차례 사출장치 개량 사업을 거쳤다. 고도가 너무 낮을 경우 조종석 사출이 제대로 되지 않던 과거의 문제를 보완했다고 한다.

하지만 F-5는 기체가 지나치게 노후화되면서 다른 계통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기체 엔진 계통에 문제가 생겨 일어난 사고로 알려진다. 한 소식통은 “퇴역 시기가 지난 기체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항전장비부터 안전 관련 문제들을 다 고쳤어야 했는데 사출장치만 고쳐서 무리하게 운용하니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고 했다.

KF-21 개발 무리하게 당기면 더 위험

이처럼 F-5 기종에서 사고가 빈발하면서 공군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전력 공백을 최대한 줄이면서 노후 기종을 퇴역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F-4, F-5 기종을 일시에 퇴역시킬 경우 발생하는 문제의 핵심은 앞서 지적했듯이 전력 공백이다. 휴전국가라는 특성상 일시적으로라도 전력 공백이 발생하는 사태가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F-4, F-5는 아직 우리 공군 전력의 20%를 차지한다. 430대 중 100여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시 퇴역 시 전력 공백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군의 판단이다.

우리나라가 자체 제작한 신형 전투기 KF-21 보라매 120대는 지난해 상반기에 시제기가 출고됐다. 현재 양산 예정 시점은 2026년부터 2032년까지인데, 실제로 실전 배치까지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군내외의 관측이다. 한 소식통은 “KF-21을 2028년에 실전 배치할 계획이지만 그대로 시행되는 건 절대 어렵다고 본다. 2030년 중반은 돼야 제대로 실전 배치가 완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KF-21의 개발 일정을 무리하게 단축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욱 위원은 “회전익기이기는 하지만 수리온의 경우도 괜히 일정을 당기다 문제가 생겼지 않나. 갑자기 개발 일정을 무리하게 당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홍규덕 교수도 “F-5는 아예 기종을 단종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결국 KF-21 보라매가 대안일 텐데, 이제 겨우 시제기가 나온 상황인데 너무 개발을 앞당기면 실험과정에서 불상사가 생길 위험이 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리더십의 결단 필요

다른 대안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중고 전투기를 빌리거나 사오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양욱 위원은 “조종사의 기량유지 등을 위해서 F-16 중고기를 미국에서 사오든지 아니면 KAI에 발주를 넣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항공우주(KAI)가 개발해 우리 정부가 말레이시아에 제안한 FA-50 기종도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FA-50은 애초에 경공격기로 설계된 기종이라 공대공 능력이 구형 F-5에 비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성능 업그레이드가 필요한데, 이 역시 예산이 필요하다.

양욱 위원은 “전투기 사업은 워낙 예산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국회와 국민의 쓴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우리 아들딸이 위험한 비행기를 타면 안 된다’는 식의 말의 상찬에 그칠 게 아니라, 실제로 조종사와 공군에 뭘 도와줘야 하는지, 예산을 해주면 어떻게 해낼 건지 등을 실질적으로 듣고 해결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군이 숙원사업이었던 KF-21 사업을 해낸 상황에서 추가적인 사업을 요청하기가 어려운 만큼, 그 위 단계인 정치권의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홍규덕 교수는 “결국 이렇게 아까운 젊은 조종사들이 희생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체제를 획득하는 사업을 빨리 할 수밖에 없다”며 “어렵게 키운 조종사가 순직하면 동료들에게 정신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크다. 또 같은 F-5 기종을 타는 조종사들은 얼마나 불안하겠나. FA-50이라도 도입해 임무를 분산시키는 등 유연성 있게 새 체제 도입을 앞당기고 임무를 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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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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