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차례 실패 끝에 6번째 발사 만에 사실상 성공한 북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 650㎏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5차례 실패 끝에 6번째 발사 만에 사실상 성공한 북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 650㎏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 정부가 금융기관 등을 상대로 고출력 EMP(전자기파·electro magnetic pulse) 공격이 있을 경우의 대비 태세를 일제히 점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EMP는 전자장비를 파괴하거나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전자기장을 순간적으로 내뿜는 것이다. 강력한 EMP는 금융기관 전산망을 일거에 파괴, 사회적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증권사, 은행 등 40여곳을 대상으로 EMP 공격이 일어날 때에 대비한 방어체계를 조사했다고 한다.

정부가 이렇게 이례적으로 EMP 대비 태세를 점검한 것은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와 관련 있다. 올 들어 미사일 장착용 소형 핵탄두일 가능성이 있는 구형 물체를 공개하고 핵탄두 운반수단인 스커드·노동·무수단 미사일과 ‘북극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잇따라 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탄두 미사일이 점차 현실화함에 따라 우선 우려되는 것이 핵EMP다. 핵EMP는 냉전 시절 미국·소련 등이 공중폭발 핵실험을 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이 확인됐다. 1962년 7월 태평양 존스턴섬 상공 400㎞ 고공에서 미국이 핵실험을 위해 수백㏏(1㏏은 TNT폭약 1000t 위력) 위력의 핵무기를 공중 폭발시킨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다. 당시 1445㎞나 떨어진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교통신호등 비정상 작동, 라디오 방송 중단, 통신망 두절, 전력회로 차단 등 이상한 사건들이 속출했다. 전기 및 전자장비들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700여㎞ 떨어진 곳에선 지하 케이블 등도 손상됐다.

보통 핵폭발 때는 강한 X선, 감마선 등이 발생하는데 이는 지상에서보다 고도 30~수백㎞ 고공에서 폭발할 때 훨씬 더 큰 EMP 피해를 초래하는 것으로 핵실험 결과 나타났다. EMP는 전류가 가동하는 모든 전자기기와 부품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반도체 등 각종 전자부품을 사용하는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의 사용이 크게 늘면서 고공 핵폭발 시 생기는 EMP의 파괴력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

서울서 계룡대까지 전력망·통신망 파괴

문제는 북한의 EMP 무기 개발이 가능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제임스 울시 전 미 CIA 국장은 2014년 미 의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러시아인이 2004년 ‘두뇌 유출’로 북한이 EMP 무기를 개발하도록 도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울시 전 국장은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EMP 공격에 필요한 주요 구성요소를 확보하는 데 러시아와 중국을 곧 따라잡을 것”이라고도 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미사일 발사 때 일정 고도에서 핵탄두를 폭발시키는 방법을 썼다고 언급한 것은 핵EMP 공격을 상정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상이나 수㎞ 이하 상공에서의 핵무기 폭발로 생기는 부수적인 효과 중 하나로 EMP 공격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핵EMP 파괴 효과만을 노려 수십㎞ 상공에서 미사일을 폭발시키는 시험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500㎞ 떨어진 곳으로 기습발사한 뒤 “특정 고도에서 핵탄두를 폭발시키는 사격 방법을 썼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뒤 공중폭발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는데 이 중 일부는 핵EMP 폭발을 상정한 가상 시험을 했을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핵EMP 무기가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한 대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IT 환경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북한에 비해 EMP 공격에 훨씬 취약하다. 북한 핵미사일 발사를 탐지할 이지스함 레이더, 그린파인 조기경보 레이더 등 우리의 ‘눈’인 레이더도 먹통이 될 수 있다. 한국군의 두뇌이자 중추신경인 지휘통제(C4I) 시스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시뮬레이션(모의실험)에 따르면 서울 상공 100㎞에서 100㏏의 핵폭탄이 폭발하면 그 피해는 말굽 형태로 남부로 확산돼 서울에서 계룡대까지의 모든 전력망과 통신망이 파괴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이와 관련 최근 ‘고고도 핵폭발에 의한 피해 유형과 방호대책’이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냉전 시절 미·소의 고고도 핵실험에 의한 EMP 피해 사례를 언급한 뒤 북한의 핵EMP 공격에 대해 우리 군 통신과 레이더, 민간 정보통신망, 전력 케이블, 인공위성 등이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수소폭탄 개발도 시간 문제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와 관련해 또 주목받는 것이 수소폭탄과 중성자탄이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때 북한은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주장했지만 핵실험의 위력으로 볼 때 수소폭탄은 아니고 수소폭탄 전 단계인 증폭 핵분열탄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북한의 수소폭탄 개발도 시간 문제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면 중성자탄도 갖게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성자탄은 무기나 건물은 상대적으로 덜 파괴하면서 사람 등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3세대 핵무기다. 수소폭탄 발화 과정에서 기폭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원자폭탄과 우라늄을 제거해 방사능 효과를 감소시키고 다량의 고속 중성자 방출 위주로 만든 핵무기다. 1963년 미국 사무엘 코헨이 핵무기 폭발 에너지 및 열에 강한 저항력을 갖고 있는 기갑부대 운용 병력을 살상하거나 해군 함대, 공군기지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개발했다. 이어 러시아(1977년), 프랑스(1980년), 중국(1999년 이전) 등도 중성자탄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특히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 있던 소련 및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기갑부대를 무력화하기 위해 중성자탄을 유럽에 배치했다. 1970년대엔 북한 기계화부대 무력화를 위해 중성자탄 탄두를 장착한 랜스 지대지미사일을 주한 미군에 배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2014년 2월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정밀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다종화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그 변종인 중성자탄 등 여러 종류의 핵을 만드는 것이라고 언급해 중성자탄 개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핵EMP 및 중성자탄에 대한 방호대책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군 소식통은 “기갑장비의 경우 현재 K-2전차에만 중성자탄 차폐장비가 설치돼 있을 뿐 K-21 신형 보병 전투장갑차나 차륜형 장갑차에는 그런 장비가 없어 유사시 북한의 중성자탄 공격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