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민주권 선대위 상견례 겸 첫 회의에서 문재인 후보가 추미애 당 대표 겸 상임 선대위원장(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4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민주권 선대위 상견례 겸 첫 회의에서 문재인 후보가 추미애 당 대표 겸 상임 선대위원장(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연합

5월 9일 대선 승리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급등하면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양강(兩强)구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시기만 해도 10% 안팎 지지율로 4~5위권에 머물렀던 안 후보의 약진에 문 후보는 당 경선 승리에 대한 ‘컨벤션 효과’도 누리지 못하고 대세론도 깨진 상태다.

민주당과 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대세론이 깨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안 후보에 대한 전면적 공세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4일 안 후보가 국민의당 후보로 확정됐을 때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상승한다고 해도 문 후보 대세론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2~3일 사이 당내 분위기가 급변했다.

문 후보 선대위 민병두 총괄본부장은 4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할 때이며 겸손하고 국민을 섬기는 출발이어야 한다”고 썼다. “동계훈련과 스프링캠프 때 대세론이 있었다면 잊어버려야 하며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서 “그런 모습을 보여야 국민이 신뢰하고 함께 통합의 길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민 본부장은 “모두가 ‘문지기’ 된 심정으로 절박하게 나가자”고도 했다. 민 본부장은 최근까지도 안 후보 돌풍은 적폐청산을 원하는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심각하게 판단하지 않았지만 이날 달라진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날 추미애 당 대표 또한 선대위 첫 회의에서 “그동안 우리가 혹시라도 대세론에 안주했다면 또는 정권교체 당위론에 안주했다면 이제는 그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자 한다”며 “진짜 대선레이스는 바로 오늘부터라는 각오를 가슴에 새기면서 남은 29일 동안 국민 뜻을 받들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기필코 정권교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다. 송영길 총괄본부장도 “국민들이 저희에게 ‘정신차려라’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남은 29일 동안 국민에게 간절히 호소해서 정권을 맡길 그런 자격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삐걱거리는 ‘용광로 선대위’

문 후보 캠프 실무진 내에서도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안 후보 지지율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당과 캠프 간 선대위 인선 문제를 놓고 잡음이 불거지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문 후보는 당과 캠프가 하나로 뭉치는 ‘용광로 선대위’를 표방했지만 4월 7일 확정된 선대위 인선에 문 후보 캠프가 반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문 후보 임종석 비서실장은 언론을 통해 “당이 통합선대위가 되도록 원만한 합의를 해달라는 후보의 요청에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한마디 의논 없이 배치된 인사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했다.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이재명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특별한 연락도 받지 못한 채, 선대위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자 반발이 계속됐던 것이다. 선대위 일부 주요 직책을 두고도 당과 캠프 측의 입장이 달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후보를 도왔던 박영선 의원은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발표가 됐지만 당 지도부에 “선대위에서 직책을 맡을 생각이 없으며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과 캠프 간의 내분이 어느 정도 봉합된 뒤에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전면적인 검증 공세가 시작됐다.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안 후보의 딸 안설희씨의 재산과 안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의 서울대 임용 과정이다. 안 후보 측은 안설희씨에 대해서는 재산 등을 구두로 공개하고 후보 등록 시점에 증빙 서류까지 공개할 수 있다며 전면전에 나섰다. 김 교수의 서울대 임용 과정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문 후보 측이 황당한 ‘네거티브’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 후보 측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연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문 후보 측은 한편에서는 중도층을 겨냥한 행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사드 배치에 관한 입장 변화가 대표적이다. 문 후보는 작년 12월 15일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사드 배치 문제는 진행을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이 옳다”고 했다. 지난 3월 7일 기자들과 만나서는 “정부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9일 가진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문 후보는 “사드 배치는 주권적 결정 사항”이라고 했다. 4월 10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계속 핵 도발을 하면 사드 배치가 강행될 수 있다”고 했다. 4월 11일 경남 지역을 방문해서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문 후보 측 김경수 대변인은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북이 핵을 고집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강력하게 경고해야 한다”며 “변화된 안보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흔들리는 非文 의원들

안철수 후보의 약진이 시작되면서 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당내에서는 문 후보와 친문(親文) 진영에 반감을 가진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를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추가 탈당이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강 구도가 대선 때까지 고착화될 경우, 비문 의원들이 실제로 탈당을 감행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계파가 다르다고 해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소속됐던 당을 버리고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당으로 간다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비문 중진 의원은 “문 후보와 친문 진영이 당내에서 앞으로 얼마나 포용적 행보를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패권적 행태를 지속하면 일부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탈당할 수 있는 의원들이 있다”고 했다.

문 후보의 위기는 외연 확장의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경선 과정에서 2위를 한 안희정 충남지사가 중도·보수층의 지지까지 받으며 외연을 넓히고 당 지지율까지 올려놨지만 문 후보가 이를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면서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상승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문 후보와 비교해 진보 성향이 더 강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층 일부도 이탈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4월 5일 기자들과 만나 “문 후보의 대선 승리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홍준표·유승민 후보가 거의 언급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자구도로 가고 있다”며 “만만치 않다. 문 후보가 천장에 눌려 있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했었다.

문 후보 측은 경선 과정에서 핵심 지지층을 최대한 지키는 전략으로 일관했었다. 그것이 중도·보수층 일부의 지지를 받는 2위 후보 안희정 충남지사와의 경쟁에서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문 후보 지지자들의 ‘문자폭탄’ 등 과열된 경쟁의식이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러면서 중도·보수층의 관심이 더욱 멀어져갔다. 문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안철수 후보와의 양자구도는 전혀 상정하지 않았었는데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져 당황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아직 한 달 가까이 선거가 남았기 때문에 호남의 지지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고 중도층의 관심을 받을 만한 정책을 제시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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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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