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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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 힘이 없고 열의도 없어 보이고 진짜 대통령 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싶었어요.”

스타강사 김미경 ‘김미경tv’ 대표가 기억하는 5년 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모습이다.

다시 대권에 도전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돌변했다.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확 바뀐 목소리를 두고 말들이 많다. 안 후보는 스스로 복식호흡법을 터득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샤우팅’하듯 냅다 내지르는 안 후보의 연설을 보면 속성 벼락과외의 의심도 들고, 대선도 끝나기 전 ‘목이 가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된다.

19대 대선을 28일 앞둔 지난 4월 11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김미경 대표의 사무실을 찾았다. 양강 구도가 확실해진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연설을 분석하고, 두 후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어떤 부분인지, 대통령을 만드는 연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김 대표로부터 들어봤다.

“국민이 변했어요. 돈을 내고 토크쇼를 쫓아다니는 시대입니다. 말로부터 감동을 받고 생각을 바꾼 경험을 해본 거죠. 옛날처럼 대선후보의 이야기보다 옆집 아줌마 말을 듣고 대통령을 뽑는 시대가 아닙니다. 스피치에 대한 국민 관심이 엄청 높아졌어요. 대선주자들의 연설을 듣고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 수 있는 감별력이 생겼습니다. 그런 시대에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국민들 수준은 저만큼 높아졌는데 대선주자 연설을 보면 참 안타깝죠.”

김 대표는 제주도에서 강연을 하고 막 올라온 참이었다. 김 대표의 강연을 보면 말 한마디로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움직인다. 웃겼다 울렸다, 쥐었다 풀었다,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2시간이 20분처럼 후딱 지나간다. 토크쇼에 가 보면 그의 말에 눈물을 펑펑 쏟는 청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처럼 마이크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비법을 대선주자들이 알고 있다면 연설을 할 때마다 유권자의 지지표가 무더기로 쏟아질지도 모른다.

“안철수 후보가 이제야 마음을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소리는 기구에 불과합니다. 강력한 의지가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바뀝니다. 5년 전 안 후보에게 그 의지가 안 보였다면 이번엔 죽어도 간다는 결의가 느껴집니다.”

안 후보에 대한 김 대표의 분석을 들어보자. 안 후보는 입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가 처져 있는 모양이라 목소리가 내려앉으면 다른 사람보다 더 처져 보인다. 때문에 목소리 톤을 보통 사람의 두 배로 올리지 않으면 선동의 효과가 없다. 목소리가 굵어지면 사람을 빨아들이는 진공관이 두 배로 커진다. 안 후보의 변신을 보면서 놀리는 사람도 있고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지금 선동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목소리는 달라졌지만 손과 눈이 따로 놀고 있다. 소리와 몸이 0.1초씩 엇박자가 난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외치면서 손이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 따라가기 때문에 어설퍼보인다. 목소리로 힘을 보여준다면 손은 선동을 담당한다. 연설에서 손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재인 연설 vs 안철수 연설

김미경 ‘김미경tv’ 대표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김미경 ‘김미경tv’ 대표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안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잘하는 것은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내지른 후 사람들이 환호하고 함께할 시간을 준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쉬지 않고 한다. 선동하고 같이 움직이는 축제 같은 연설이 돼야 하는데 다음 말로 바로 넘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안방 스피치와 광장 스피치는 완전히 다릅니다. 광장 스피치는 설득이 아니라 선동을 해야 합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려면 로커가 돼야 합니다. 목소리도 몸짓도 오버해야 합니다. 문재인 후보는 목소리는 안정적이지만 선동 스피치가 안 돼요.”

문재인 후보의 연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고를 너무 자주 보는 것이다. 청중을 보는 것이 어색하니 습관적으로 원고를 들여다본다는 것. 문재인 후보의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보면 알 수 있다. 연설 첫머리 인사말 하는 20초 동안 원고를 보는 횟수가 10여차례에 이른다.

김 대표가 꼽는 문 후보의 장점은 눈이 따뜻하다는 것. 반면 몸을 너무 안 움직인다. 손과 몸을 크게 써줘야 하는데 단상 밑에서 손이 좀체로 안 올라온다는 것. 김 대표는 단상을 손 거치대가 아니라 파트너로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몸을 좌우로 틀 때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단상이다.

문 후보의 또 다른 단점은 말의 흐름이 너무 단조롭다는 것이다. 웅변처럼 목소리 끝만 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를 높여도 같은 규칙이 다섯 번 이상 반복되면 청중은 금방 싫증을 느낀다. 또 문 후보의 연설을 보면 한 단어 한 단어를 끊어 읽는 습관이 있다. 또박또박 책 읽듯 연설문을 읽는다고 잘 들리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원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원고에 기반한 연설을 하다 보니 책 읽는 듯한 연설이 나옵니다. 스피드도 같고 톤도 똑같고, 그러니 사람들이 눈 감고 연설을 듣는 겁니다. 중요한 부분은 느리고 강하게 들어가야 하지만, 때론 간절하고 조용한 말에 더 마음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오바마를 보세요. 눈물을 흘리게 하잖아요.”

김 대표는 “대선주자의 연설은 나를 팔아 표를 사는 세일즈”라고 말한다. 세일즈 고수 김 대표의 원 포인트 레슨이다. 첫째, ‘템포 조절’이다. 때론 발라드처럼 때론 록처럼 내용에 따라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똑같은 템포로 가면 다른 말을 해도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둘째, ‘일시정지’이다. 대중이 환호할 수 있도록 잠깐씩 멈춰야 한다. 연설은 연주다. 원고는 악보다. 빠르기가 있고 강약이 있고 쾅 하고 멈추라는 때가 있다. 그게 바로 공감이다. 한 번 공감을 이끌어내면 두 번째 말은 더 잘 먹힌다. 5단계, 6단계에서는 기립 박수가 나온다. 셋째, 타이밍이다. 공감 포인트를 놓치면 안 된다. 예측 가능해야 좋은 연설이다. 노래를 예상하면서 듣듯이 대중은 공감할 준비가 돼 있다. 그 감정을 끌고 가서 박수 칠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몸을 크게 움직여라. 손을 움직일 때 겨드랑이에 붙이면 안 된다. 마이크를 잡을 때도 겨드랑이에 붙이지 말고 마이크로 입을 가려서도 안 된다. 주먹 하나 정도는 떨어뜨려라.

광장 연설과 토론·인터뷰는 다르다. 토론이나 인터뷰는 감정의 흐름을 쉽게 들키는 반면 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광장에서는 손이 감정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면 작은 공간에서는 눈의 역할이 중요하다. “안 후보의 경우 시선을 한 곳에 두지 않고 다른 곳을 계속 보다 보니 불안해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문 후보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음악을 지휘한다는 생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만 해도 확 달라진다면서 연습을 강조한 김 대표의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말더듬이 영국 왕 조지6세의 연설처럼 국민들은 진심이 담긴 연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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