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photo 뉴시스 / (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photo 연합
(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photo 뉴시스 / (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photo 연합

5·9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따라다니는 대표적 네거티브 프레임은 ‘불안한 안보관’과 ‘박지원 상왕(上王)론’이다. 누구 할 것 없이 이 두 가지 프레임을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핵심 요인”으로 손꼽는다. 먼저 문재인 후보의 안보관부터 짚어 보자. 문 후보의 안보관은 검증의 잣대인 동시에 보수 진영이 ‘좌우 구도’로 이번 선거를 유도하는 공격 포인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안보 이슈가 논란이 될수록 문재인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문 후보는 사드배치 문제 등 이번 대선의 주요 안보 이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 “안보관이 불안한 후보”로 지목됐다. 문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안보 현안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 사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사전 승인 의혹이다. 2007년 11월 유엔에 상정된 북한인권결의안 처리를 앞두고 노무현 정부가 북한 정권에 이 문제를 사전 논의했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당시 문 후보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이 논란의 시발점은 지난해 10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펴낸 회고록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 외교부 장관을 지낸 그는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2007년 11월 중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 처리될 때 사전에 북한의 의견을 물어 기권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사안이 다시 주목받게 된 건 지난 4월 19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보수 진영 후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의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은 송민순씨의 회고록을 토대로 당시 ‘기권’ 결정에 문재인 후보가 관여했고 북한에 사전 승인을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북한에 물었다면 (문재인 후보는)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북한 측에 인권결의안 문제를 문의한 적이 없다. 기권을 통보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안보정책조정회의에 앞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기권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송민순씨는 문 후보의 해명을 재차 반박하며 진실공방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4월 21일 기자들과 만나 “사전에 북한 측 의견을 구한 게 확실하다”면서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송민순씨가 공개한 이 문건에는 “남측이 반(反)공화국 세력들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북남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위반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북한 입장이 담겨 있다. 이 문건은 국정원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전달받은 당시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안보정책조정회의에 참석했던 나머지 인사들은 송민순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문 후보의 입장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됨에 따라 문 후보는 결국 송민순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강수를 뒀다. 이후 문 후보의 해명이 명쾌하지 않다는 쪽으로 흐름이 전개되면서 ‘거짓말’ ‘말 바꾸기’ 논란으로 옮겨붙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TV토론 때마다 문 후보의 해명을 거짓말로 몰아가며 집요하게 공격했다.

송민순 회고록 논란의 파급 효과

이 장면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안보관 자체보다는 이걸 해명하는 과정에서 말 바꾸기 논란이 벌어진 게 유권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문 후보가 안보 이슈에 대해 수세적으로 대응할수록 확장성은 제한될 소지가 크다.”

안보 이슈가 유권자의 표심(票心)에 얼마나 영향을 줬을까. 이와 관련 지난 4월 25일 jtbc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 영향을 미쳤나’라는 질문에 일반 시민의 8.1%가 “지지후보를 바꿨거나 바꿀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72.1%, “모른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9.7%로 조사됐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 유권자에게 미친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단 박빙의 선거 구도였다면 약 8%의 유권자가 안보 이슈를 이유로 문재인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로 지지를 옮겨갈 수 있다는 결과가 선거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한 안보 이슈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26일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전격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 후보는 4월 26일 사드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정부에서 무리하게 강행할 일은 아니다”면서 “사드 문제는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 핵 도발을 우려하며 안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후보가 북핵을 막기 위해 도입한 사드를 조속히 배치하는 데 반대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19일 KBS에서 주관한 대선후보 TV토론에서는 주적(主敵)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볼 것이냐”는 것을 두고 문재인 후보는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국방백서에는 북한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적이라는 개념보다는 유화적 표현이지만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군대가 대치 중인 상황임을 고려하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북한을 적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게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를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건 우리 군(軍)의 입장으로 보는 게 맞다는 시각이다.

보수 성향의 한 정치권 인사의 설명이다. “TV토론에서 문 후보가 북한을 적인 동시에 통일의 동반자라는 걸 조리 있게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보수 유권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디테일이 부족했다. 안보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문 후보가 내심 당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문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문 후보는 TV토론에서 “집권하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느냐”는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찬양, 고무 등 일부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홍 후보가 “국보법을 폐지할 것이냐”고 재차 묻자 그는 “정치는 타협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문 후보는 2011년 펴낸 자서전 ‘운명’에서 “민정수석을 두 번 하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문 후보의 안보관은 대선후보가 되기 전 “당선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한 발언이 나오면서 확산된 측면이 있다. 문 후보는 또한 개성공단 폐쇄조치에 대해 “어리석고 한심한 조치”라고 반대한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개성공단을 폐지한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에 따른 공조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문 후보는 청와대 재직 시절인 2004년 7월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북한에 살고 있는 이모를 만난 적도 있다. 문 수석의 이모 강모씨는 당시 55세의 나이였다. 북측 상봉자가 대부분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문 후보의 이모가 이산가족 상봉자에 포함된 게 정권 실세를 배려한 게 아니냐는 특혜 논란도 있었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측이 문재인 수석을 특별대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뒷말까지 나왔다.

문 후보는 이에 대해 “허위사실에 기반한 정치공세”라고 유감을 표시한 바 있다. 문 후보는 외가(外家)뿐만 아니라 본가(本家) 쪽 친인척들도 북한에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의 부친은 함경남도 흥남의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이다. 자유한국당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문용형씨는 사촌을 포함한 형제가 9명이나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문용형씨를 포함 4명이 6·25전쟁 당시 월남해 경남 거제 등지에 터를 잡았다. 나머지 친인척은 북한에 남았다고 한다. 문 후보의 사촌과 그 자손들은 아직 흥남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1953년 거제에서 태어난 문 후보는 북에 거주하고 있을지 모를 친인척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는 ‘불안한 안보관’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40%대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공고한 지지층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치컨설팅 업체 ‘윈지코리아’ 박시영 부대표의 분석이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층은 70%의 세력과 30% 정도의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력은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지지층을 말하는데, 이들은 민주당을 대안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문 후보를 선호하는 나머지 30% 지지층도 문 후보에 대한 안보 검증이 일종의 색깔론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안보 이슈가 거듭됨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문 후보를 둘러싼 안보 논란 때문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홍준표 후보는 안 후보 지지층의 이탈 효과로 지지율이 상승하는 양상이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서양호 소장은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 숨죽이고 있던 보수층을 살려냈다”고 진단했다. 서 소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안보관 공략이 샤이 보수층을 깨우는 동시에 문 후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이념 구도로의 전환을 불러왔다. 양자구도였다면 문 후보가 50%를 넘는 데 발목을 잡았겠지만 지금처럼 다자구도에서는 안철수 후보 지지자만 흔들리게 됐다. 부동층은 늘었고 보수 후보 지지율은 상승세를 탔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홍 후보의 최종 지지율이 20%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바른정당 일부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유승민 후보도 두 자릿수 지지율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박지원 2선 후퇴론 재부상

안철수 후보는 여기에다 ‘박지원 상왕론’이 더해져 지지율 하락 폭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전통 보수층인 대구경북(TK) 지역 유권자들은 김대중 정권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에는 박 대표를 비롯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실세로 활동하거나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지난 4월 6일 홍준표 후보는 대전 중앙철도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홍준표를 찍으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된다’고 했다”면서 “오히려 안철수를 찍으면 박지원씨가 상왕(안찍박)이 된다. 안철수는 허수아비”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른바 ‘안찍박’ 프레임은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를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TV토론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이 부분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박지원 대표가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평양대사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안 후보와 합의한 사항이냐”고 유 후보가 묻자 안 후보는 “그만 좀 괴롭히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안 후보 입장에서는 박지원 대표를 거론하는 자체가 아픈 대목이다. 보수층 표심을 잡아야 하지만 박 대표가 거론될수록 보수층 지지세는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박 대표는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공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밝혔으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 지지율이 30%대 이하로 추락하는 걸 막지는 못했다.

박 대표가 국민의당 선대위를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보수표 이탈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상왕론’이 먹혀들자 보다 못 한 일부 의원들이 박지원 2선 후퇴론을 거론했지만 힘을 받지 못했다. 국민의당 문병호 최고위원은 지난 4월 12일 선대위 구성에 앞서 “박지원 대표는 선대위에 참여하지 말고 백의종군 해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으나 박 대표는 이를 거부하고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최근 당내 일각에서 안 후보 지지율이 하락하자 다시 박 대표의 2선 후퇴론이 고개를 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당 관계자의 말이다. “박 대표가 보수표 이탈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계량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다들 박 대표에게 물러나라는 말을 못 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호재와 악재가 있을 텐데, 우리 당 입장에서 박 대표의 2선 후퇴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안철수 후보의 선거포스터에 정당 명칭을 넣지 않을 걸 두고도 정치권 일각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부각되는 게 두려워 선거포스터에서 당명을 뺀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안철수 후보는 선거포스터에서 당명을 빼는 등 파격 포스터를 내놔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현재까지 ‘안찍박’은 안 후보에게 치명적 프레임으로 작용했다. 이 말이 화제가 된 이후 안 후보의 스텝이 전반적으로 꼬였다.”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안찍박 프레임’과 별개로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안 후보 지지층이 문 후보에 비해 충성도가 낮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박시영 윈지코리아 부대표의 설명을 들어 보자. “안철수 후보는 세력의 지지를 받기보다 문재인 후보가 싫었던 개인의 지지세가 강했다. 이 표심은 이른바 부유(浮游)층인데, 이들이 안 후보에게 실망해 이탈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호남 유권자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자, 안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당 국회의원들이 호남에 올인하는 모습이 최근 연출된 바 있다. 보수 성향의 정치권 인사는 “TV토론을 하면 할수록 안 후보 지지율이 하락할 것 같다. 안 후보가 호남에 내려가 ‘목포의 눈물’을 노래했다는데, 그걸 바라보는 TK 유권자들은 돌아설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안 후보가 지지율 20%대를 지키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박지원 상왕론 이후 안철수 후보가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자 당내에서 바른정당과 후보 단일화 또는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었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대선에서 남은 변수는 소(小)단일화 정도가 아닐까 한다”면서 “안철수 후보가 ‘안찍박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시일 내에 합리적 중도보수 세력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만일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한다면 문재인 후보를 추격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TV토론에 출연해 “단일화는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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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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