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단둥 압록강변의 북·중 송유관 가열·가압기지. ⓒphoto 연합
중국 랴오닝성 단둥 압록강변의 북·중 송유관 가열·가압기지. ⓒphoto 연합

“압록강 태평만댐 위의 대북 송유관을 차단해달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지난 4월 12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홍 후보가 이곳을 북핵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우다웨이 면전에서 거론한 까닭은 중국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송유관이 이곳을 지나간다고 봤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 밸브를 잠그면 북핵(核)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원유의 상당 부분을 차단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홍 후보는 우다웨이와의 회동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태평만댐 얘기를 하니 깜짝 놀라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회한 외교관인 우다웨이가 깜짝 놀란 까닭은 홍 후보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정보를 들이민 까닭이다.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일명 ‘중·조우의수유관(송유관)’은 태평만댐 위를 지나가지 않는다. ‘중·조우의수유관’은 랴오닝성 단둥시 러우팡진 싱광촌의 일명 ‘8.3(八三)저유소’(석유비축기지)로 불리는 ‘진산완(金山灣) 석유비축기지’에서 시작하는 송유관이다. 이후 압록강변 마스(馬市)촌의 ‘중국석유(CNPC)’ 단둥훈련기지 내의 가열·가압펌프를 거쳐 압록강 하저(河底)를 지나 북측 하중도(河中島)인 다지도(多智島)로 북한에 들어가 신의주공항 옆을 지나 평안북도 피현군의 백마산 아래 봉화화학공장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30.3㎞의 송유관이다.<지도 참조>

이 같은 북·중 간 송유시설은 구글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석유비축기지는 세계 3대 오일허브인 싱가포르와 같이 해저(海底)지하동굴 속에 조성하는 것이 아닌 이상 지상에 원통형 탱크를 갖추는 것이 불가피하다. 실제 단둥시 진산완기지 인근 위성사진을 보면 원통형 탱크 수십 기(基)가 보인다. 석유비축기지 바로 옆으로는 석유운송에 필수적인 철로와 고속도로(G11)도 통과한다. 이는 압록강을 건너온 중국산 원유가 비축되고 정제되는 평북 피현군의 봉화화학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봉화화학공장 역시 구글 위성사진으로 확인해 보면 백마산 자락 아래 구획정리가 잘 된 단지 위에 둥근 저장용 탱크 수십 점이 확인된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는 경의선의 지선(支線)인 백마선 철로가 지나가고 백마역이란 기차역이 위치해 있다. 진산완 석유비축기지에서 압록강변 단둥기지까지 직선거리로 10㎞, 단둥기지에서 압록강을 넘어 평안북도 피현군의 봉화화학공장까지 직선거리로 14㎞이니 지형지물에 따른 불가피한 곡선 등을 고려하면 송유관 관리주체인 중국의 국영석유기업 ‘중국석유’가 밝히는 중·조우의수유관의 매설 거리(30.3㎞)와 거의 일치하는 셈이다.

매년 중국서 50만t 공급

중국은 이 송유관을 통해 1998년 이래 연평균 50만t가량의 원유(Crude Oil)를 북한에 공급해왔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북한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도 2009년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52만t의 원유를 수입했다.<38쪽 그래프 참조> 국제사회가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 중단 요구를 본격화한 2014년부터는 중국 당국이 관련 통계를 밝히지 않으나 지금도 대략 52만t가량의 원유를 보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석유 측이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는 북한에 공급하는 원유량도 연간 52만t이다.

이는 중국에서 정제처리된 후 유조열차, 유조트럭, 유조선 등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중유, 경유, 휘발유 등 정제유를 제외한 양이다. 정제설비가 열악한 북한의 원유와 정제유 수입 비율이 대략 50 대 50인 점을 감안하면, 매년 중국으로부터 100만t 이상의 석유가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핵위기가 고조되면서 북·중 간 송유관을 둘러싼 이상신호도 들어온다. AP통신 평양지국장인 에릭 탈마지는 지난 4월 21일 “평양 일대 주유소가 외교관과 국제기구 차량에만 휘발유를 공급하고, 일반인에게는 판매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평양발 보도를 내보냈다. AP통신은 과거 ㎏당 70~80센트가량에 판매하던 평양 한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단가가 최근 1.25달러까지 치솟았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거의 두 배 가까이 휘발유 판매가가 치솟은 셈이다.

결국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이 북한에 공급하는 원유 공급을 실제로 줄였거나, 아니면 북측이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을 예견해 자체 비축을 늘린 것 둘 중 하나다. 어찌됐든 간에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 집권 때인 1962년부터 무려 50년 넘게 지속된 북·중 간 원유 공급망에 이상신호가 들어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파라핀 함유량 높은 다칭원유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중 원유 공급망의 핵심인 ‘중·조우의수유관’을 쉽사리 잠그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중국석유에 따르면, ‘중·조우의수유관’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가는 헤이룽장성 다칭(大慶)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다. 중국 건국 10주년인 1959년에 발견돼 ‘큰기쁨(大慶)’이란 이름이 붙은 중국 최대 다칭유전에서 채굴된 원유는 열차 편으로 단둥으로 옮겨진 뒤 진산완 석유기지에 비축된다. 이후 송유관을 타고 북한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송유관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지는 다칭유전에서 채굴한 원유의 높은 파라핀 함유 비율이다.

실제 다칭유전에서 채굴된 원유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원유 등과 함께 대표적인 파라핀계 원유로 분류된다. 파라핀계 탄화수소의 함유 비율이 높은 원유는 쉽게 응고된다. 이에 송유관을 일정시간 이상 멈추게 되면 송유관 속에서 파라핀 성분이 응고돼 송유관이 좁아지고, 송유관 자체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관 속에 생성된 혈전(피떡)이 혈류를 방해하는 것과 같다. 특히 파라핀계 원유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쉽게 응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유차가 겨울철 혹한기에 연료막힘 현상으로 시동이 안 걸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에너지경제연구원 해외정보분석실의 김경술 선임연구위원은 “요즘 다칭유전의 생산량이 많이 줄어 지린(吉林)유전 같은 동북지방 군소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한데 모아 단둥의 8.3저유소로 보낸다고 들었다”며 “동북지방 일대 원유의 성상(性狀)은 파라핀 함량이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의 한 관계자는 “파라핀은 쉽게 말해 양초를 만드는 성분”이라며 “결국 점도(粘度)가 높은 파라핀계 원유는 불순물이 많아 송유관이 막힐 우려가 있어 대개 원유를 높은 온도로 끓여서 보낸다”고 말했다.

이에 중·조우의수유관은 다칭유전에서 퍼올린 원유가 송유관을 통과하는 도중 응고되는 문제로 인해 섭씨 89도까지 열처리를 해서 북으로 흘려보낸다. 하지만 겨울철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만주벌판의 칼바람과 압록강 지류인 애하(靉河)와 압록강 본류 두 줄기의 차가운 강물 아래를 통과하면 금세 식어버린다. 압록강 도하 직전의 단둥기지에서 원유량 측정과 함께 재차 가열(加熱)과 가압(加壓)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만, 최종 목적지인 백마산 아래 봉화화학공장에 도착할 때는 약 28도까지 떨어져버린다고 한다. 게다가 중·조우의수유관의 경우 40여년 전인 1975년 매설된지라 관로 자체가 크지 않다. 중·조우의수유관을 관리하는 중국의 국영석유회사인 ‘중국석유’ 측에 따르면, 연간 최대 300만t의 원유를 보낼 수 있게 설계된 이 송유관의 직경(지름)은 37.7㎝에 불과하다. 알래스카 지하의 원유를 퍼나르는 직경 1.22m에 달하는 알래스카 송유관에 비교할 경우 3분의 1 크기의 사실상 콧구멍만 한 수준이다.

이에 송유관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일정량의 원유를 지속적으로 흘려주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지 않으면 값비싼 ‘항(抗)응고제’를 송유관 기능 유지를 위해 계속 흘려줘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유관 유지 보수를 위해 잠시 멈추더라도 여름철에는 8시간, 겨울철에는 2시간 이상 잠글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강추위로 연료소비가 늘어나는 겨울철 송유 중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송유관의 기능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송유량이 연간 60만t가량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국영석유회사인 ‘중국석유’가 밝힌 송유관을 통해 북한에 보내는 원유가 52만t인데, 이와 비슷한 수치다. 중국이 김정은 망동(妄動)을 지켜보면서, 내심 송유관을 틀어막고 싶어도 실제로 잠글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최초 해외수출용 송유관

이와 함께 ‘중·조우의수유관’은 중국 최초이자 유일의 해외수출용 송유관이란 상징적 의미가 있다. ‘중·조우의수유관’이 최초 매설된 것은 1975년 12월.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 집권 때로 양자 간의 관계가 나쁘지 않을 때다. 중국이 북한에 원유를 최초 지원한 것은 1962년. 중·소(中蘇) 분쟁 와중에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구사한 북한의 김일성을 우군(友軍)으로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1971년에는 북한과 체결한 ‘중요물자 상호원조협의’에 따라 중국은 북한에 매년 약 50만t의 원유를 지원해왔다.

앞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리셴녠(李先念) 부총리는 1970년 8월 3일, 다칭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동북지역 전체로 보낼 수 있는 장거리 송유관 건설계획에도 착수했다. 일명 ‘8.3공정’으로, 다칭유전에서 동북지역 곳곳을 연결하는 8개 노선, 총연장 2471㎞의 송유관 건설계획이다. 연간 4000만t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대규모 송유관 건설계획으로, 1970년 사업에 착수한 이래 불과 5년 만인 1975년에 완성됐다. 이에 동북지역 곳곳에 일명 8.3송유관과 이어지는 ‘8.3저유소’(석유비축기지)가 들어섰다.

어찌보면 중국의 ‘동북4성(省)’으로 불리는 북한으로 이어지는 30.3㎞의 송유관 건설은 ‘8.3공정’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중국석유 측은 단둥~신의주(평북 피현군) 노선 역시 8.3공정의 일부로 소개한다. 물론 북·중 간 송유관은 직경 37.7㎝로 72㎝에 달하는 간선(幹線)에 비해 절반 정도 크기의 지선(支線)급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첫 번째 해외수출용 송유관이란 의미가 있었고, 중국과 북한이 우의를 기념한다는 뜻에서 ‘중·조우의수유관’이라고 명명하고, 1976년 1월 통유(通油)식을 거행했다.

당시에는 원유를 보내는 송유관과 1.5m 거리를 두고 평행하게 연간 100만t을 보낼 수 있는 직경 21.9㎝의 정제유 송유관까지 나란히 매설했다. 이 송유관은 덩샤오핑 집권 직후인 1981년 해외원조 합리화 조치로 가동을 중단했지만, 이 역시 중국 최초 정제유 수출송유관이란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전까지는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중·조우의교’에 놓여 있는 한 가닥 철로에 의존해 원유를 수송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북·중 간 송유관이 매설된 다음부터는 중국에서 북한에 들어가는 원유공급량이 연간 100만~150만t 규모로 급격히 늘어났다.

40년 된 노후 송유관, 유출·폭발 위험

중국은 ‘중·조우의수유관’ 건설을 매개로 북한 석유화학산업의 마스터플랜을 세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중국의 북한 ‘후방기지화’ 전략과 맥이 닿아 있다. 북·중 송유관의 최종 목적지인 봉화화학공장 역시 ‘중국석화(石化)공정건설’의 기술지원을 받아 조성했다. 평안북도 피현군에 있는 봉화화학공장은 동해안인 나선특별시에 있는 승리화학공장과 함께 김일성의 지시로 만들어진 북한의 양대 정유공장이다. 봉화화학공장은 중국산 중질유를, 승리화학공장은 주로 구(舊)소련산 경질유를 정제처리한 뒤 중유, 경유, 휘발유, 항공유 등을 생산했다.

원유를 정제처리할 수 있는 설계용량은 승리화학공장이 200만t가량으로, 봉화화학공장(150만t)보다 크다. 하지만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원유지원이 사실상 끊어지면서 지금은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봉화화학공장은 하산(연해주)~나선 간 철로와 유조선에만 의존하는 승리화학공장과 달리 송유관이 매설돼 있어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다. 대개 유조선으로부터 원유를 받기 위해 해안가에 입지하는 다른 정유공장과 달리 해안에서 30㎞나 떨어진 백마산 산자락에 정유공장이 자리한 것도 중국과 연결된 철도와 송유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중·조우의수유관’을 매개로 한 북·중 간 우호관계는 이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게다가 북·중 송유관은 40여년 전인 1975년에 매설돼 이미 노후할 대로 노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주벌판의 혹독한 기후 변화에 상시 노출되다 보니 송유관 곳곳에 균열이 가고, 기름 유출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다칭에서 단둥까지 8.3송유관이 아닌 유조열차를 이용해 원유를 운송하는 것도 송유관 노후화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이로 인해 송유관이 지나는 단둥 일대는 중·조우의수유관의 기름 유출과 이상 폭발 가능성에도 노심초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에는 중국석유가 관리하는 다롄항 송유관에서 대폭발 사고가 일어나 서해바다까지 기름띠가 번진 일도 있었다. 다롄항은 다칭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최대 해상수송통로다. 장더장(張德江) 당시 부총리가 직접 사고수습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노후 송유관을 전면 교체하기 전까지는 사고 가능성은 여전하다. 중국석유와 단둥시 정부는 2015년 4월, 압록강 아래를 지나는 북·중 송유관이 터져 기름이 유출되는 상황을 가정한 원유 회수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북·중 송유관은 이제 중국으로서도 잠글 수도 놔둘 수도 없는 계륵(鷄肋)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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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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