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13일 연방정부 조직과 공무원 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펜스 부통령 등 각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백악관사이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13일 연방정부 조직과 공무원 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펜스 부통령 등 각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백악관사이트

미국 백악관 서관(웨스트 윙) 바로 건너편에는 아이젠하워 행정빌딩(Eisenhower Executive Office Building)이라는 곳이 있다. 부통령이 주로 머무르는 이 빌딩에는 사무실이 566개나 있다. 이 빌딩은 1871년부터 1888년까지 지어져 초기에는 국무부와 옛 육군성, 해군성이 사용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인 1999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려 아이젠하워 빌딩으로 명명됐다. 대통령과 부통령을 보좌하는 직원들의 사무공간인 이곳에서 지난 4월 26일 상원의원 100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할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비공개 설명회가 열렸다. 상원의원들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짐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 등으로부터 유엔의 대북제재 강화 방안, 중국에 대한 압박, 군사행동 옵션 등 새 대북 정책을 상세하게 들었다. 상원의원들은 또 이들에게 북한의 핵무기 포기 및 도발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최고 책임자들과 대외정책을 포괄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있는 상원의원들이 모두 참석해 북한 문제를 논의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설명회에 참석했다. 때문에 이번 설명회는 미국의 대통령과 정부 및 의회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교·안보 수장들은 설명회 이후 합동 성명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은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동맹국 및 역내 파트너들과의 외교적 조치를 추구함으로써 북한이 핵·탄도 미사일, 핵확산 프로그램을 해체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두겠다”고 강조했다.

주요 공약 줄줄이 취소

새 대북정책 설명회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1일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백악관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을 설명하겠다고 제의했고, 매코넬 대표가 이에 동의했다. 트럼프가 이곳에서 대북 정책 설명회를 가진 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상원의원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4월 29일로 취임 100일이 됐지만 그동안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 상원의원들과도 사사건건 대립해왔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추진하려던 각종 정책들은 상원에서 브레이크가 걸렸고, 행정부의 고위직들에 대한 인준청문회도 지연돼왔다. 때문에 트럼프로선 상원과 협력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트럼프의 또 다른 목적은 북핵 문제를 고리로 국내외의 비판을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가장 낮은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다. ABC 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의 취임 100일 여론조사(4월 17〜20일·1004명)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42%밖에 되지 않았다. NBC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여론조사(4월 17〜20일·900명)에서도 지지도는 40%였다. 취임 100일 시점에서 트럼프 지지도는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1953~1961년 재임) 이후 역대 11명의 대통령들 중 최저치이다. 지금까지 가장 낮은 지지율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으로 48%였다. 전임 대통령들의 취임 100일 국정지지도는 버락 오바마 61%, 조지 W 부시 56%, 빌 클린턴 52%였다.

실제로 트럼프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인 폴리티코와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턴트의 여론조사(4월 13~15일·1992명)에 따르면 F가 24%, D도 13%나 됐다. C는 17%, B는 23%였으며, A는 16%에 불과했다.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을 올린 것은 주요 대선 공약들이 줄줄이 좌초됐기 때문이다. 특히 반(反)이민 행정명령과 수정 명령이 국내외적으로 강력한 반발과 비판을 초래했고 법원에서 제동까지 걸렸다. 트럼프는 지난 1월 27일 잠재적 테러 위험이 있는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7개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 비자발급과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자 미국과 중동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애틀 연방법원 등은 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트럼프는 지난 2월 6일 미국 입국 금지 국가를 7개에서 6개로 줄이는 등 일부 수정된 새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하와이 연방법원 등이 똑같은 판결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지난 4월 25일 불법체류 이민자를 추방하지 않고 보호하는 지방자치단체인 ‘피난처 도시’에 연방정부의 재정지원 중단 행정명령에 대해서도 효력 정지를 선고했다.

트럼프가 건강보험법인 ‘오바마 케어’를 대체하겠다던 1호 공약인 ‘트럼프 케어’는 공화당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발목이 잡혔다. 또 멕시코와 국경에 장벽을 건설한다는 계획도 민주당의 반대로 2017 회계연도 임시예산안에 포함시키지 못하고 2018 회계연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약값 인하 약속은 흐지부지됐으며 수출입은행 폐지 약속은 사실상 번복됐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저금리 정책을 신랄하게 공격하다가 오히려 “재닛 옐런 의장을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말을 바꿨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많은 법안들을 취임 초기에 마련했지만 트럼프는 단 한 건의 법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대신 의회 통과가 필요 없는 행정명령만 남발했다.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은 총 30건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년 재임)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많다. 또 지금까지 상원 인준을 통과한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료는 26명밖에 되지 않는다. 부장관, 차관, 대사, 기관장 등 상원 인준이 필요한 고위직 중 공석은 무려 530석에 달한다. 각 부처 장관들은 빈자리가 너무 많아 대통령의 국정 과제를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23일 미국 핵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2척과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photo 미 해군
지난 4월 23일 미국 핵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2척과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photo 미 해군

180도 달라지고 있는 외교·안보 노선

게다가 트럼프는 참모와 측근들이 대선 기간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져 있다.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취임 24일 만에 사퇴한 가운데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가 진행 중인 이 사안의 향방에 따라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측근 인사들의 관련이 드러나면 의회는 트럼프에 대한 탄핵절차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정책의 잇단 실패와 러시아 스캔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트럼프의 외교·안보 노선은 180도 바뀌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전부터 미국의 적대국인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면서 ‘브로맨스’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 2월 6일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보복조치로 시리아 정부군의 공군기지를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로 공습하라는 명령을 내려 푸틴과는 척을 지게 됐다. 미국과 러시아의 ‘신(新)밀월’을 예고했던 트럼프와 푸틴의 관계는 시리아 문제로 파경을 맞았다. 반면 트럼프는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폐기할 수 있다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더니 정상회담(4월 6~7일)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던 공약도 유보했고,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말도 사라졌다. ‘쓸모없는 기구’라고 비판했던 나토에 대한 입장도 완전히 달라졌다. 트럼프는 지난 4월 12일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 후 “나토는 국제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방어벽”이라고 극찬했다.

트럼프는 지난 1월 20일 취임사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교·안보 노선을 추진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초강대국인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버리고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 역할을 하지 않고 고립주의 노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노선이 ‘개입주의’로 바뀌고 있다. 미군이 지난 4월 13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국가(IS) 근거지에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가장 강력한 재래식 폭탄인 GBU-43, 일명 ‘폭탄의 어머니(Mother of All Bombs)’를 투하한 것이 외교·안보 노선 변경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 6일 미·중 정상 간 만찬에 앞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화하고 있다. ⓒphoto 중국 신화망
지난 4월 6일 미·중 정상 간 만찬에 앞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화하고 있다. ⓒphoto 중국 신화망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꺼내든 배경

가장 주목할 점은 북한 핵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해온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완전한 실패로 규정하고 ‘최고의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을 새로운 대북 정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 정책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제타격을 비롯한 군사 옵션은 물론 경제·외교적 제재와 압박으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대북 정책은 중국과 협력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채찍과 당근’을 제시했다. 채찍은 중국이 끝내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중국 기업까지 직접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시행은 물론 무역 전쟁도 불사하고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도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말한다. 당근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유보와 무역 불균형 문제를 다룰 통상협상에서 양보를 의미한다. 트럼프는 북핵 해결을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 중 트럼프처럼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대통령은 없었다. 트럼프는 입만 열만 북핵 문제를 언급한다.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 펜스 부통령을 차례로 한국에 보내 북핵 도발 불용 의지와 한·미 동맹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시 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수시로 전화통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24일 유엔 안보리 15개 이사국 대사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면서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유엔을 ‘사교클럽’ 정도로 폄하했고 다자주의에 반대했던 트럼프로서는 대단한 방향 전환이다. 트럼프는 대사들에게 “북한은 국제사회의 실질적인 위협이고 최대 문제”라면서 “북한에 대한 현상유지는 용납할 수 없으며 유엔 안보리는 강력한 추가 제재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안보리는 4월 28일 미국의 요구로 외교장관급 회의를 소집해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북핵 문제를 놓고 유엔 안보리가 외교장관급 회의를 소집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틸러슨 장관이 주재한 이 회의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15개 이사국 외교장관들과 이해당사국인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틸러슨 장관은 북핵 문제의 엄중성과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더욱 강력한 추가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북핵 문제 해결에 올인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이 6~7주마다 한 개씩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정보기관의 판단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북한은 상황 변화가 없다면 트럼프의 임기 말까지 파키스탄 핵무기의 절반인 50기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NYT는 북한이 이미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고, 핵탄두를 중·단거리 미사일에 장착해 한국, 일본 및 양국에 주둔한 미군을 직접 공격할 능력을 갖췄다고 밝혔다. NYT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은 아직까지 보유하지 못했지만 이런 능력을 갖추는 건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NYT의 지적대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서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다. 내치에서 어려움을 겪어온 트럼프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성과를 통해 지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게다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낫다는 점도 내세울 수 있다. ABC 방송과 WP의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잘 다룬다는 응답이 46%로 대북 정책이 너무 적대적이라는 응답(37%)보다 높다. 너무 신중하다는 응답도 7%였다. 100일간 업적들 중에서 대북 정책과 시리아 공습이 가장 잘한 것으로 꼽혔다.

문제는 중국이 제대로 대북 압박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의 선택은 무엇이 될 것이냐는 것이다. 트럼프는 독자행동을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군사옵션도 포함돼 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치명적이라면 중국과 러시아도 양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지도자가 외부의 적과 전쟁을 감행함으로써 정치적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국제정치학 용어인 ‘희생양 이론(Scapegoat Theory)’에 트럼프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트럼프와 외교·안보 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던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공화·애리조나)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은 “북한은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트럼프와 만찬을 함께한 두 의원의 발언은 트럼프의 새 대북 정책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무튼 “트럼프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놀라운 일을 할 수도 있다”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말처럼 트럼프가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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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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